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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ㅅ. 상평창(常平倉)과 사창(社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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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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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상평창(常平倉)과 사창(社倉)

○ 서울과 주(州) 및 현(縣)에는 모두 상평창을 두어 법에 따라 수매[糶糴] 사업을 실시하고 지금의 환자(還上) 제도를 개정할 것이다.[서울 안과 각 고을에는 모두 상평창을
설치하여 지금 각처에 있는 환자 미곡과 저장되어 있는 재물, 포백을 상평창 자금으로 만들어 옛날의 상평법을 본받아 곡식이 흔할 때에는 값을 더 주어서 사들이고 곡식이 귀할 때에는
값을 낮추어 내다 팔아서 곡식이 흔해도 농민이 손해를 입지 않게 하며 곡식이 귀해도 농민이 곤란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다. ○상평법에서는 오직 미곡, 포, 돈, 은만을 쓸 것이며
굵은 포와 잡물 사용은 불허할 것이다. 모두 매매(賣買) 방식으로 하도 우대하여 시장 가격보다 대략 3분의 1을 더 줄 것이며 &lt;예컨대 시장에서 쌀 2두의 값이라면 3두로
정하는 것과 같은 것.&gt; 억지로 배정하지 말 것이다. 만약 억지로 배정하는 자가 있으면 해당 관리를 모두 법에 따라 논죄할 것이다. 수매를 실행할 때에 서울에서는 해당
조(曹)에서 대신들에게 품의(稟議)하고 대신이 국왕에게 승인을 얻어서 실행할 것이며, 지방에서는 수령이 감사에게 문의하여 승인을 얻어서 실시하되 감사는 연말마다 회록(會錄)하여
국왕에게 보고할 것이다. &lt;각 고을에서 연말에 감사에게 보고하면 감사는 그것을 집계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장부는 해당 조에 비치한다.&gt; 각 감영, 병영, 통제사ㆍ수사의
영에서도 모두 상평창을 두어 규정에 따라 수매 사업을 실행할 것이며 지금 각 고을에 널려 있는 환자곡(還上穀)은 정부로 올려 보낼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본 고을 상평창의 저축분으로
채울 것이다. ○상고해 보면 '조(糶)'와 '적(糴)'이란 글자의 뜻은 본래 매매(賣買)한다는 말로서 쌀을 팔아 물건을 사는 것을 '조'라 하고 물건을 팔아 쌀을 사는 것을
'적'이라고 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환자미로 대여하는 것을 '조'라 하고 환자미를 받아들이는 것을 '적'이라고 하여 그 글자의 본뜻을 알지 못하고 있는바 이것은
습속이 고루한 소견에 젖었기 때문이다.]

상고해 보면 고려시대에는 상평창을 개성과 평양 및 12목(牧)에 두어 풍흉에 따라 수매를 하였는데 백성에게 여유가 있으면 눅게 사들이고 백성이 부족하게 되면 비싼 값으로 팔았었다.
본조(本朝)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서울과 지방으로 하여금 상평창을 두어 곡식이 귀하면 높은 값으로 곡식을 팔아서 포를 사들이고 곡식이 흔하면 눅은 값으로 곡식을 사고 포를
팔게 한다는 조항이 있으나 지금 서울 이외에는 팔도을 치고 어느 한 고을도 설치 시행하는 곳이 없으니 이는 법전을 이지러뜨림[闕典]이 심한 것이다.

상고해 보면 환자법(還上法)은 사람들에게 무익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 이익은 심히 미미하고 그 해독은 아주 큰바, 오늘날 대저 백성들 근심하고 한탄하다 제자리를 잃은 것은 모두
환자의 폐단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것과 왕안석(王安石) 왕안석(王安石)： 중국 북송(北宋) 때의 유학자로서 이름은 개보(介甫)이며, 청묘법을 시행하였다.

의 청묘전(靑苗錢) 청묘전(靑苗錢): 중국 북송 때 왕안석이 시행한 새 법의 하나인 청묘법을 가리킴. 즉 해마다 봄가을에 나라에서 백성에게 싼 변리로 돈과 곡식을 꾸어 주던 것.

은 그 해독이란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소철(蘇轍) 소철(蘇轍)：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서 자는 자유(子由)인데 중국 8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은 청묘법을 논하여 이르기를 "돈을 백성에게 빌려 주면 출납할 때에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더라도 법으로 그것을 금하지 못할 것이며 돈이 백성의 손에 들어가면 아무리 착실한 백성이라도
낭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그것을 도로 받아들일 때에는 아무리 부유한 백성이라도 기한을 어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형벌을 반드시 쓰게 될 것이니
주ㆍ현에서는 일이 많아지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나라의 유안(劉晏) 유안(劉晏)： 중국 당나라 때의 사람인데 유명한 재정 전문가.

이 국가의 회계를 맡아볼 때에 아무에게도 꾸어 주지 않으므로 원망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백성들로 하여금 요행히 돈을 그저 얻게 한다면 나라의 이익이 아니며 아전배를
시켜 법에 의하여 독촉한다면 백성을 못살게 구는 것이다. 내가 비록 사람에게 꾸어 준 일은 없지만 사방의 풍, 흉과 흔하고 귀한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곡식이 흔하면 반드시 사들이고
귀하면 반드시 내어다 팔았다. 그 때문에 사방에 몹시 귀하다거나 몹시 흔하다거나 하는 병폐가 없으니 어떻게 꾸어 주겠는가?" 라고 하였다. 유안이 말한 것은 한나라 때의 상평법이니
참으로 시행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또 소식(蘇軾)이 그것을 논하여 말하기를 "청묘(靑苗) 청묘(靑苗): 곡식이 익기 전의 푸른 모, 또는 그런 밭.

를 담보로 해서 돈을 빚으로 주는 것은 옛날부터 금지해 왔던 것인데 이제 그것을 법으로 만들어 매년 시행하고 있다. 비록 강제 배정을 허락하지 않는다고는 하였으나 역시
공문(空文)에 불과하다. 아무리 강제 배정을 않더라도 그간에는 그것을 쓰겠다고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들은 모두 외롭고 가난해서 변제할 수 없는 자들일 것이니 만일 잉여물이
있는 자라면 무엇 때문에 관청을 상대로 하여 빚을 얻어 쓰겠는가? 이런 사람들을 잡아다가 채찍질을 하며 계속 독촉을 하면 그들은 결국 도망칠 것이며 도망한 자에게서 받지 못한
부분을 또 이웃 사람[鄰保]들에게 고루 물리게 되는 것은 형편상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상평법이란 것은 지당하다고 할만하다. 실행하기는 간단하나 미치는 영향은
광범하다. 가령 만 호가 있는 고을에 곡식 천 곡만 있으면 곡식이 귀할 때에 이 천 곡의 곡식을 시장에 내어다 놓으면 물가가 자연 고르게 될 것이다. 이 한 개 시장의 물가가
고르게 되면 그 영향으로 온 나라의 식량이 자연하게 되어 바가지 들고 걸식하는 폐단이 없어질 것이며 이정(里正)들이 싸다니면서 독촉하는 수고도 없어질 것이다. 이제 만약 청묘법으로
바꾸어서 고을에 있는 천 곡의 곡식을 천 호의 집마다 1곡씩 꾸어 준다면 천 호 이외의 굶주리는 사람들은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상평창이 벌어들이는 관가의 돈이 적다고 늘상
걱정하여 상평법을 버리고 청묘법을 실행하게 되면 잃게 되는 것이 더욱 많아서 결국 관청 자체도 백성들도 모두 손해만 막심하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된 후에야 비록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소식의 다른 말들을 상고해 보면 부당한 말도 많기는 하나 이 말만은 정당하고 실정에 적절하여 참으로 만세의 정론이다. 오늘날 환자법의 해독은 소식 당시에 있던 청묘법보다 더할
뿐만 아니라 그 폐단이 수백 년 동안 쌓이고 쌓여서 더욱 심해지고 있으나 개혁할 줄을 모르니 어째서인가?[청묘법을 비록 공문(空文)이라고는 하나 그 법에는 희망에 따라 주고 억지로
배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환자법은 그 법을 만든 때부터 이미 강제로 배정하였으니 다시 말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또 한위공(韓魏公) 한위공(韓魏公)： 중국 송나라 때 정치가, 군사가로 유명하였던 한기(韓琦)를 가리킴.

의 청묘법에 관한 이론을 상고해 보면, "신(臣)이 청묘법의 돈을 흩어 주라는 조서를 보건대 거기에는 가난한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데 목적이 있어서 그들의 토지를 겸병하거나
그들이 곤궁한 틈을 타서 배나 되는 이식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국가로서는 그 수입으로 이로울 것이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법의 내용을 보니 시골 민호의
1등으로부터 그 이하는 누구나 돈 백 꿰미를 빌릴 수 있으나 3등 이상에게는 다시 더 빌리는 것을 허용하였다. 상등호(上等戶)란 곧 종래에 토지를 겸병해 오던 집이다. 이제 돈을
많이 빌려 주고 1,000꿰미에 대하여 1,300꿰미씩을 받는다 하니 이는 관청에서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따먹는 고리대인 것이다. 또 조항에는 비록 강제로 누르는 것을 금한다고
하였으나 상호(上戶)를 택하여 책임을 지워 그 일을 맡기게 되었다. 백성들은 어리석어서 먼 앞일을 생각지 않는바 빚을 얻어 쓰기는 쉬워도 갚기는 아주 어렵기 때문에 이 법령이
발표된 뒤로부터 위아래가 두려워하고 의심하여 모두가 다 말하기를 '만약 강제로 내려 먹이지 않으면 상호(上戶)는 반드시 빚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하호(下戶)와 직업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객호(客戶)들이 더러 요구할 것이나 반드시 갚기가 어려울 것이니 그것을 받아내려면 반드시 형벌을 써서 독촉하게 될 것이며 또 늙은 호주에게 증서를 써라 수결을 쳐라
윽박지르고 물지 못하면 이웃에까지 고루 분배해서 물리는 폐단이 생길 것이다' 라고들 한다.

지난해에 북방에서 풍년이 들어 쌀 1두에 돈 70∼80잎에 불과하였는데 이럴 때에 많이 사 두었다가 귀할 때에 내다 팔면 옛날의 제도와 합치될 뿐만 아니라 토지를 겸병 당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아서 백성들이 실제 혜택을 입을 것이며 국가서도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러 창고에서 쌀을 사들이기 시작하자 제거사(提擧司)란 관리가 몸소 와서 급히
중지시켰다. 그 뜻은 사들이는 이 돈으로 청묘법의 자본을 만들면 연 3분의 이식을 얻어서 자기의 공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니 어느 겨를에 다시 이 백성들의 고질을 덜어 줄 수
있겠는가?

혹자가 섬서(陝西)에서 이 청묘법을 실행한 적이 있었는데 관청에서도 소득이 있었고 백성들도 편리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것은 그때 군량에 부족한 액수가 생겼었는데 때마침 겨울부터 봄
사이에 비와 눈이 때맞추어 오고 보리 모가 잘 자라서 반드시 풍년이 들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전운사(轉運使)가 일시에 실행한 것이니 이는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를 둠으로써 매년 경상적으로 시행할 법을 만들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섬서에서 임시변통으로 적당하게 실행했던 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사마 온공(司馬溫公) 사마 온공(司馬溫公)：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서 이름은 광(光)인데 온(溫)국에 봉하였기 때문에 온공이라 함.

과 여혜경(呂惠卿)이 황제 앞에서 청묘법을 논하였는데, 사마 온공이 말하기를 "춘궁기에 청묘를 담보로 하여 빚을 주는 일을 평민이 하더라도 가난한 백성[下戶]을 착취하여
기한(飢寒)과 유리(流離)에 빠지게 할 것인데 하물며 고을 원이 법으로써 위압하는 데야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라고 하니, 여혜경이 말하기를 "청묘법은 요구하는 자에게만 쓰게 하고
원하지 않는 자에게는 강제로 쓰게 하지 않는다" 했다. 온공이 말하기를 "어리석은 백성은 당장 빚을 얻어 쓰는 것만 알고 갚기가 어려운 것은 모른다. 오직 고을 원만이 강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백성들도 역시 강제하지 않는다"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섬서에서 이 법을 실행한 지가 오래되었으되 백성들은 병폐로 여기지 않고 있다"라고 하니, 온공이
말하기를 "신(臣)이 바로 섬서 사람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청묘법이 병폐가 되는 것을 보았으되 이익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정에서 처음 허락하지 않을 때에도 관리가
실행하여 백성의 고통이 많았거늘 하물며 그것을 법적으로 허락하시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말이 매우 분명하니 그 법이 이로운가 해로운가는 분간하기 어렵지 않다.

혹자가 말하기를 "지금의 환자법은 그 폐단이 많지만 한편 백성의 한때의 결핍을 구제해 준다는 의의도 없지 않다. 만약 이 법을 전면 폐지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한다. 만일 상평법이 없다면 환자법도 전폐하기 어려울지는 모르겠으나 상평창을 이미 건립한 이상 환자법의 폐지는 이해 상으로 보아서 의심할 바 없다.

대체로 환자법이란 이익은 작고 손해가 크며 이익은 짧고 해가 길지만 상평법은 이익은 있어도 손해가 없으며 편리하기는 해도 폐단이 없는 것이니, 나라일을 하면서 이익이 있고 손해가
없는 것을 버리고 이익이 작고 손해가 큰 것을 취한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환자법이 비록 "백성의 한때의 결핍을 구제해 준다는 의의가 없지 않다"고는 하나 전기하여 백성에게
미리 주었다가 후에 빚을 독촉하게 되니 아무래도 형벌로 몰아쳐서 혹독하게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아전배들이 마을로 읍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소요를 일으키는 폐단도 있을 것이며,
관청에서 내주고 백성들이 들여 넣을 때에 떼어 붙여서 붙여 받는 폐단이 있을 것이며, 요구 여하를 불문하고 강제로 배정하는 폐단도 있을 것이며, 가난하여 도망한 자가 있으면 이웃과
일가에게 대신 물리는 폐단도 있을 것이며, 아전배가 농간을 하여 속여 받거나 중간착취를 하는 폐단이 있을 것이니 여기저기서 생기는 온갖 폐단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잡아 가두는 자가 옥에 가득 차고 온 고을은 채찍질하는 수라장으로 될 것이니, 이것은 한갓 사람을 몰아 잡는 그물로 될 일이어서 더 이상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본의가 없을
것이다. 백성은 본래 아무 일이 없거늘 해마다 피해만 끼치며 관청에서는 본래 일이 없거늘 해마다 소란만 일으키니, 이것이 어찌 좋은 법이라 하겠으며, 어찌 백성의 부모 된 자로서의
할 도리라 하겠는가? 그러나 저 상평법은 풍년에도 흉년에도 농민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위아래에게 모두 이로우며 국가나 개인에게 모두 폐단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법은 없는
것이다.[환자로 해마다 받아들인 곡식은 본래 민가에서 두고 먹어야 할 곡식이며 결코 여유물을 절약해서 흉년의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만 일의 번요(煩擾)만을 일으켜
백성의 재산을 탕진케 하고 서리들의 간사한 짓을 길러 줄 뿐이어서 국가와 개인에게 실로 무익한 것이다. 이익과 손해가 이러하건만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의 폐지를 주저하는 것은 그만
습속에 젖었고 목전의 일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옛날 제도에서도 이 환자법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지난날 요동(遼東)에서도 환자법이 없었으나 백성들이 모두 유족하게
살아서 풍년을 즐거워하고 굶주림을 몰랐다고 하니 이것만 보아도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를 알 수 있다. 지금 서울에는 환자법이 없는데 만약 환자법을 실시한다면 서울의 각 기관에는 일이
많아지고 백성들도 해를 입게 되는 일이 장차 어떠할 것인가? 그러나 사창(社倉)은 다만 부락에서 하는 계(契)의 곡식과 같기 때문에 유익할 수 있고 또 백성들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환자미는 군용 물자[軍資]이다. 만일 환자법을 폐지했다가 혹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장차 무엇으로써 쓸 것인가? " 한다. 지방에 예비하여 둔 세미[留稅]와
상평창의 곡식은 모두 나라의 저축이며 환자미도 역시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하필 환자라는 딴 이름으로 받아야 군용이 된단 말인가? 또 지금의 환자미는 매년 겨울에 받았다가 봄에
도로 주므로 관 창고[官庫]에 두는 기간이 두어 달에 불과하니 이름은 비록 군자라고 하지만 기실 군용으로 쓰기 곤란하다.

혹자가 말하기를 "지금 각 고을에는 이미 본 고을의 환자가 있고 또 상급 기관의 환자가 있어서 그 수량이 점차 불어 가고 백성에게 끼치는 폐단도 더욱 심해 가니, 이것을 전부
폐지한다면 백성은 도탄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와 병사가 각 고을을 순회할 때에 써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한다. 그 비용이 공적인
것이라면[예컨대 군사적인 것과 시험 및 상을 주는 것들.] 그 고을에 저축한 것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며,[본 고을에 예비해 둔 세미와 상평창의 쌀은 법전에 본지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되 경비로 쓴 수량을 연말에 회계하여 보고하라고 하였다.] 만약 개인적인 사용이라면 감사나 병사를 위하여 개인적인 저축을 각 고을에다 둘 리가 없다.

혹자가 말하기를 "환자법을 폐지한다 하여도 흉년에는 백성에게 대여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환자가 자연히 다시 있게 될 것이다" 한다. 만일 영구적으로 정해진 법령이 없다면
흉년에 그 빈궁한 백성들을 전부 구원해 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대차(貸借) 할 수는 있을 것이다.[흉년이 들어서 굶주릴 때에도 백성에 대하여 상평창의 곡식으로써 주고 부역으로
받으며 그저 주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는 우선 그저 주고 뒤에 경지를 빌려 주어 갚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곡식을 주었다가 도로 받는 소란은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일시적으로
있을 뿐이요 매년마다 실행하는 그런 영구적인 폐단으로는 물론 되지 않을 것이다.

창고에 저장한 곡식이 오래 되면 묵은 것을 햇것으로 바꾼다는 규례가 있으나 그것을 실행할 때에는 민간에 억지로 배당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은 곡식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하는 기록을 상고해 보면 "옛날에는 나라에 9년 동안 쓸 저축이 있었다" 고 하였고, 또 "조는 10년을 견딘다" 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와 현의 창고에 저축하는 곡식은
대부분 오래 둘 수가 없다. 북방은 남방과 조금 다르지마는 역시 오래가지 못하며 남방도 몇 년을 지나지 않아서 모두 먹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땅이 아래로 습한 탓도 있겠지만 역시
창고 제도가 허술하고 치밀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대체로 창고를 지을 때에는 성 안에서 높고 건조한 곳을 택해야 하며 터를 단단히 닦고 벽돌을 구워 창고 바닥에 이중 혹은
삼중으로 깔아서[지금 중국의 창고는 이렇다고 한다.] 습기를 방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지금 주와 현들의 성 밖에 있는 창고들은 더욱 형편이 없다. 국가의 저장이라 하여 관청에서
맡기는 하나 외촌(外村)에다 분산해 두기 때문에 평상시에 공적 사적인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난리를 당하면 그저 헛되이 버리게 될 것이다. 창고는 오직 성 안에만
둘 것이며 지금과 같이 외촌에다 두는 창고는 모두 없앨 것이다. 만약 환자법을 폐지한다면 이것은 자연 고쳐질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상평법이 참으로 좋기는 하나 혹 불행하게도 탐오하는 아전이 있어서 물가가 오르고 내릴 때에 상사(上司)를 속이고 은폐하여 재물을 도적질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한다. 이런 것은 그때의 폐단이며 법 자체의 폐단이 아니다. 그러나 탐오를 일삼는 아전배들은 모두 다 사람들이 그것을 알까봐 두려워한다. 지금 시장에다 가격을 공시해 걸어
놓으면 원근 사람들이 다 알게 돌 것이니 아무리 속이려 하여도 쉽게 속이지 못할 것이다. 설사 그들이 도적질을 한다더라도 국가에서 손해를 보는 데 불과할 것이며 백성들에게 멋대로
학정을 가하지는 못할 것이다.[혹자가 또 말하기를 "상평법을 시행함에 있어서 혹시 곡식을 내다 파는 것이 공정하지 못해서 부호만이 이익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한다.
이런 일은 지금의 환자법에서도 그런 폐단이 있다. 그러므로 관리된 자는 응당 공명하고 고르게 내다 팔아야 할 것이다. 만일 관리로서 편파적이고 사적인 행동을 한다면 자연 그것에
해당하는 법률이 있다. 지금 법전의 방납 죄에는 범법자와 그것을 용허한 자에게도 모두 엄하게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대체로 법이란 것은 본래 그것을 시행하는 사람이 공정해야 한다.
만약 시행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자라면 정부에서 응당 발각하는 대로 처벌하고 다시 선량한 사람을 택해야 할 것이다. 공평한 실행자가 없이 법을 논한다면 고금에 이런 이치는
없다.]

사창(社倉)을 시행할 때에는 선비나 시민들에게 설명해 주어서 각각 자기 면[鄕]에다 옛 법에 의하여 설립할 것이다.[국내에 시행하려면 사람들에게 깨우쳐 일러주어서 각각 자기 면에다
사창을 건립하여 흉년에 대비할 것이다. 설치를 원하는 자가 있어서 신청하면 본 고을에서 상평창의 미곡을 적당하게 대여하여 기한을 10년 이상으로 넉넉히 정해 주어 거기에서 나온
이익[息米]이 넉넉해진 다음에 원수량을 상환하게 할 것이다. 만일 부유한 자로서 미곡을 내어 사창 기금으로 할 것을 희망하는 자가 있으면 역시 편의를 보아서 그것을 허락할 것이며
거기에서 얻은 이식과 본곡도 후에 상환할 것이다. 사창미를 거두어들이고 분산시키는 규정은 주자(朱子)의 사창 제도에 의할 것이나 그 제도는 변통해야 할 것도 있으므로 지방의 실정을
참작하여 적당하게 규정을 세울 것이며 지금 부락에서 하는 계(契)의 규정과 같게 할 것이다. 사창을 설치한 다음에는 관에 보고하여 승인을 얻어서 준수하되 향약(鄕約)과 합하여 한
개 항목의 일로 삼을 것이다. 향약 중에서는 그 지방에 살거나 다른 고을에서 이거한 조관(朝官)이나 선비 중에서 행실이 점잔 으며 근실하고 재간 있는 자를 택하여 그 일을 주관하게
하며 마을의 부로(夫老)들과 상의하여 공동으로 처리하게 하고 본 고을에서는 다만 장려하고 협조해 줄 뿐이며 간섭하거나 강요하지를 말 것이다. 설치하기를 원하지 않는 곳이 있더라도
강제로 설치하게 하지 말 것이다. ○ 사창을 설치하는 곳에는 창고 지을 기지로 1경을 주고 세와 병역을 면제해 줄 것이다. &lt;창고를 짓고 남는 땅의 세와 부역은 창고에서
주관하게 할 것이다.&gt; 또 3명을 두어 &lt;이들의 보포(保布)와 경(頃)에서 내는 부역을 면제해 준다.&gt; 창고를 지키고 관리하는 일을 보게 할 것이다. 만약 그
마을에 없애 버릴 지방 창고가 있으면 그 창고를 이용하게 할 것이며, 창고를 새로 짓게 되면 경(頃)에서 내는 부역으로써 그 공사를 도와줄 것이다. ○ 사창에는 반드시
대청[廳堂]을 만들어서 그 마을의 회의하는 장소로 쓰게 할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사창법은 참으로 편하고 좋지만 백성들이 설립하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설립한다라도 마을에서 그 사업을 담당할 만한 인재가 없어서 혹 서투르게 하여
실패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다. 이미 정부에서 내린 명령이 있고 수령이 성심으로 설복시키고 백성의 이익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호응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사람이
이익을 보고 손해를 입지 않는다면 그로 인하여 그것이 하나의 습속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할 만한 사람을 얻지 못해서 실패하게 된다면 것은 일시의 과오이며 법 자체의
잘못은 아닌 것이다. 설령 잘되는 데도 있고 못되는 데도 있더라도 해마다 백성을 못살게 구는 해독은 없을 것이다. 만일 백성들이 이 해독을 입지 않는다면 그들은 직업에 안착되어서
농사에 힘을 쓰게 되어 집마다 저축이 있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상평창이 있어서 보조를 해 주면 흉년의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니 지금의 환자에 비할 바 아닐 것이다.

일찍이 상평창과 사창을 함께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후 옛날의 문헌을 상고해 보니 이전 사람의 말에 "상평창은 부(府)나 주(州)에다 설치하고 의창(義倉;사창)은
면[鄕]이나 부락[社]에다 설치한다" 고 한 것이 가히 좋은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법의 좋은 점에 관해서는 옛날 사람들이 모두 이미 말했으니 지금은 오직 그대로 시행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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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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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及州縣 皆置常平倉 依法糶糴 改今還上之規. 京中及各邑 皆設常平倉 以其邑卽今見在還上米穀 及所儲財帛 移爲常平資本 倣古常平法. 穀賤時 增其價以糴 穀貴時 減其價以糶 使穀賤不傷農
穀貴不傷民. ○常平之法 唯用米穀及布 錢銀 不許用麤布雜物. 一從買賣 其價優定之 數比市直 大約三分加一 爲例 (如市直米二斗 則定以三斗之類.) 毋或抑配. 抑配者 當該官吏 皆依律論罪.
其糶糴時 京則該曹 稟議大臣 啓聞爲之. 外則守令 稟報監司而爲之. 每歲終 皆會錄啓聞. (各邑則歲終 具報監司 監司會錄啓聞 置簿於該曹.) 監兵統水諸營 亦各立常平倉 依法糶糴.
卽今散置列邑還上之穀 則其量宜移上者外 仍充爲本邑常平之儲. ○按糶糴字義 本是買賣之謂 賣米買物 謂之糶 賣物買米 謂之糴. 今國人 皆以還上貸給 爲糶 還上爲糴 而不復知其字之本義
蓋溺習偏方所見而然也.按高麗時 置常平倉于兩京十二牧 以年豐歉 行糶糴 民有餘 則斂之以輕 民不足 則散之以重. 本朝經國大典 亦令京外 置常平倉 穀貴則增價以貿布 穀賤則減價以賣布. 而今
但京城外八方 無一邑設行者 甚是闕典也.按還上之法 不可謂無益於人 而其益甚微 其害甚巨 目今 生民之愁歎失所 大抵皆還上之弊使然也. 此與王安石靑苗錢 其害無異. 蘇轍 論靑苗法曰"以錢貸民
出納之際 吏緣爲奸 法不能禁 錢入民手 雖良民 不免非理費用 及其還納 雖富民 不免違限. 如此 則鞭笞必用 州縣多事矣."唐劉晏掌國計 未嘗有所假貸有尤之者. 晏曰"使民僥倖得錢 非國之福
使吏倚法督責 非民之便. 吾雖未嘗假貸 而四方豐凶 貴賤 未嘗不知 有賤必糴 有貴必糶. 以此 四方無甚貴甚賤之病 安用貸爲?"晏之言 漢常平法也 誠能行之 善無過此. 又蘇軾論之曰"靑苗放錢
自昔有禁 今始立成法 每歲常行 雖云不許抑配 亦是空文. 縱令果不抑配 計其間 情願人戶 必皆孤貧不濟之人 家若自有嬴餘 何至與官交易? 此等鞭撻已急 則繼之以逃亡 逃亡之餘 則均之鄰保 勢所必至.
且夫常平之爲法也 可謂至矣. 所守者約 而所及者廣. 借使萬家之邑 止有千斛 而穀貴之際 千斛在市 物價自平. 一市之價旣平 一邦之食 自足 無操瓢乞丐之弊 無里正催驅之勞. 今若變爲靑苗 家貸一斛
則千戶之外 孰救其飢? 常平官錢 常患其小壞彼成此 所喪愈多 虧官害民 雖悔何逮?"今按蘇氏他說 固多失當 而此言則深功事情 眞萬世通論也. 今日還上之害 不特甚於熙寧 而積弊數百年 行之愈力
而不知變通 何也? 靑苗法雖曰空文 其法則猶謂以情願 而不抑配矣. 若今還上 則其作法時 固已抑配矣 無復可論也.又按韓魏公論靑苗法言"臣準散靑苗詔書 務在惠小民 不使兼幷乘急以要倍息
而公家無所利其入. 今條約 乃自鄕戶一等而下 皆立借錢貫陌 三等以上 更許增借. 上等戶 乃從來兼幷之家 今令多借之 錢一千 令納一千三百 則是官自放錢取息. 又條約 雖禁抑勒 然須得上戶
爲甲頭以任之. 民愚不慮久遠 請時甚易 納時甚難 故自制下以來 上下惶惑 皆謂若不抑散 則上戶必不願請 下戶與無業客戶 雖或願請 必難催納 將來 必有行刑督索 及勒干係書 手典押耆戶長 同保均陪之患.
去歲 河朔豐稔 米斗不過七八十錢 若乘時多斂 俟貴而糶 不唯合古制 無失陷兼 民被實惠 亦足收其羨嬴. 今諸倉方糴 而提擧司己亟止之 意在移此糴本 盡爲靑苗錢 則三分之息 可爲己功
豈暇更恤斯民久遠之患? 若謂陜西 嘗行其法. 官有所得 而民以爲便 此乃轉運司 因軍儲有闕 適自冬及春 雨雪及時 麥苗滋盛 定見成熟 行於一時可也. 今乃建官置司 以爲每歲常行之法
豈陜西權宜之比哉?"司馬溫公 與呂惠卿 論靑苗於帝前 公曰"靑苗出息 平民爲之尙能以蠶食下戶 至饑寒流離 况縣官法度之威乎?"惠卿曰"靑苗法 願則取之 不願不彊也."公曰"愚民知取債之利 不知還債之害
非獨縣官不彊 富民亦不彊也."帝曰"陝西行之久 民不以爲病."公曰"臣陜西人也. 見其病 不見其利 朝廷初不許 有司尙能以病民 况法許之乎?"二公之言 亦甚分明 其利害不難見矣.或曰"今之還上
其弊雖多 亦不無濟民之乏. 若全廢之 則未知如何?"曰若無常平 則還上或難全廢 常平旣立 則還上之罷 利害無疑. 蓋還上 利小害大 利短害長. 常平 有利無害 有便無弊. 爲國而捨其有利無害者
而取其利小害大者 豈得爲智? 還上之法 雖曰不無濟民之乏 旣前期與民 後責其償 則未免馭以刑獄 嚴督責納. 於是 有里胥催驅 邑閭驚擾之弊 有官出民入 缺與高捧之弊 有不問情願 抑勒配給之弊
有貧民有亡 代徵鄰族之弊 有吏緣爲奸 詭受橫侵之弊 百弊斯興 不可枚擧 以至囚繫滿圄 鞭笞遍境 徒爲陷人之網 而無復利民本意矣. 民本無事 而歲歲被害 官本無事 而歲歲多擾 此豈良法
此豈爲民父母之意哉? 若夫常平 豐不傷農 饑不傷民 上下俱利 公私無弊 法之善者 無過於此. 還上年年所受之穀 本是民家當儲之穀 非節有餘補凶歉者也. 徒見事煩擾 耗民財長吏奸而已 實無益於公私.
利害如此 而人多疑於當罷者 以習於成俗 而眩於目前也. 古制 未聞有還上. 往時 遼東亦無還上 而民皆饒足 樂豐濟飢 其爲效驗 據此可見. 今 京城無還上 若令設置還上 則京司多事 而民之陷害者
將如何耶? 若夫社倉則只如今洞內契穀 故能有益 而便於民也.或曰"還上乃軍資也. 若無還上 軍興之際 將何以濟?"曰留稅常平 莫非國儲 還上亦莫非出於民 何必別徵一項 名爲還上 然後乃爲軍用耶?
且今還上 每年冬末得捧 春間還給 其見留官庫 不過數月 則名雖軍資 其實難以濟於軍用也. 曰"今列邑 旣有本邑還上 而又有上司還上 其數漸敷 民弊尤甚. 若悉罷此 則民可免於塗炭矣. 但監兵使
巡到列邑 有所當用 則奈何?"曰若係公用 如軍務試賞等事. 則本邑公儲 無非所當用之財 本邑留稅 常平 法典本許 支用 而歲終會減以聞. 若是私用 則監兵使 本無備私儲於列邑之理.或曰"雖罷還上法
饑歲未免貸民 自然復有還上矣."曰若無常定之法 則饑歲 雖或不能盡賙 而有所借貸 凶歲賑飢 亦當散以常平 給以雇役 無告白賙 而後 方可貸田 還捧之擾 止其一時耳 自不爲每歲應行無窮之弊也.倉積多時
雖有換舊蓄新之規 不免抑配民間者 大槩以穀不耐久也. 嘗考傳記"古者國有九年之蓄."又有曰"粟支十年者."我國州縣倉儲 率不經久 北地雖與南方有間 而亦未經久. 南方則不過數年 皆爲不可食之物
雖緣地氣下濕 亦是倉舍制度疎脫 不堅緻而然也. 凡作倉舍 宜擇城中高燥處 築土堅密 燔造塼甓 排布倉底兩重或三重 中國倉庫 皆如此云. 避其蒸濕可也. 至若今州縣外倉 則尤爲無據. 旣是公儲 典以官司
而散置外村 常時公私弊害 不可勝言 而臨亂 徒爲虛棄矣. 倉舍 只置城邑 今之外倉 則當悉罷之也. 若罷還上 則此當自改矣.或曰"常平之法 固至矣. 但或不幸 而有貪贓之吏 物價高下之間 欺蔽上司
以盜財物 則奈何?"曰此係時之弊 非法之弊. 然 凡爲貪贓之吏者 皆恐人之知之也. 今懸價于市 遠近共聞 雖欲欺蔽 亦所未易. 設令盜隱 國家不過見耗財物而已 不使赤子 爲其肆虐之地也. 或又曰"常平
若或分糶不均 豪富偏利 則奈何?"曰此則今還上 亦有其弊 爲官者 當公明均糶. 苟官自偏私 則自有其律. 今律典防納之罪亦犯者聽者 俱極嚴也. 大槩法者 本以得人 而行之者也. 或有匪人
朝廷當隨覺罪之 更擇賢才. 若外得人 而論法 則古今無是理也.社倉 行諭士民 各於其鄕 卽今之面. 依古法興設. 行下國內 曉諭人士 各於其鄕 建立社倉 以爲凶荒之備. 如有願立者 狀陳本官
量貸常平米穀 寬限十數年 其息米優足 後償還元數. 若有富家願出米穀作本者 亦從其便 息米及數 亦爲償還. 其斂散之規 則依朱子社倉舊制 其有合變通者. 又須參以土俗 隨宜立憲 如今契憲之爲規. 旣成
告官經印遵守 與鄕約 合爲一項事. 約中 推擇土居或寄居朝官士人之有行義勤幹者 主其事 而鄕父老 公共措置 本官則但勸助興修而已 不得干與勾管. 其不願立處 亦不勒定强立. ○其立社倉者
許給立倉地一頃 蠲免稅兵(其頃內造倉外餘地 戶役或稅 皆自本倉主之.) 又定復三夫(免保布頃夫之役.) 使爲守倉執事之任. 若其鄕今有外倉當罷者 則幷許其倉舍 仍爲社倉. 其有造倉者 則量宜題給頃夫
以助其役. ○凡社倉 必有廳堂 兼作鄕中講納之所.或曰"社倉之法 誠爲便好 奈民不興立何? 雖或興立 鄕里之間 難以常得其人 或至苟且 仍爲糜廢 則奈何?"曰朝家旣有命令 而守令誠心勸諭 不爲侵害
則必有應之者 人蒙其利 不見其苦 則因以成俗矣. 若其不得人 而廢墜者 則是乃時之弊 非法之弊也. 設令修廢不常 猶無年年毒民之害. 民苟免害 則可以安業務農 家有蓋藏矣. 又有常平以補益之
則饑歲濟活 亦非今日還上比也.嘗謂常平 社倉兩者並立 爲盡善. 後考傳記 前哲之言曰"置常平於州府 立義倉于鄕社."可謂善法. 乃知法之善者 古人皆已言之矣 只在擧而行之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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