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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전폐(錢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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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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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전폐(錢幣)

전폐를 쓸 것이다.[모든 돈은 두석(豆錫)으로 주조할 것이다. &lt;두석은 본래 동(銅)을 녹여 만드는 것인데 보통 놋 주석과 같은 것으로서 옛날에는 모두 동이라고
불렀다.&gt; 모양은 둥글고 구멍은 모나며 중량은 한 돈으로 하고 새기는 문자는 '동국통보(東國通寶)' 라고 하여 현재 중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돈과 같게 하되 정밀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테두리는 둥글고 바르게 그리고 새기는 글자는 분명하게 할 것이다. 처음 주조할 때에는 지금 예에 의하여 주전도감(鑄錢都監)을 설치할 것이다. 후에는 사섬시(司贍寺)에게
맡겨서 주조하는 사업을 전담하여 관리하게 할 것이며 여러 가지 돈을 크고 작게 만들지 말고 다만 한 종류만을 주조하여 통용할 것이다. ○ 만일 전국의 경상적인 세미가 4∼5백만
곡이라면 주조 수량을 1백 20만 꿰미로 해야 통용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7∼8백만 꿰미를 주조하여 놓으면 쓰기에 넉넉할 것이니 다시 계속하여 주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중국의 현행 각종 전폐를 고찰해 보면 개원통보(開元通寶)는 대략 9푼 중이며 원풍통보(元豐通寶)는 7푼 중이며 가우통보(嘉祐通寶)는 8푼 중이며 천희통보(天喜通寶)는 1돈
중이며 만력통보(萬曆通寶)는 1돈 2푼 중이며 숭정통보(崇禎通寶)는 8푼 중이다. 그러나 개원전(開元錢)은 오래 유통해 왔기 때문에 많이 마모되었을 것이니 필시 당초에는 1돈
중이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개원전이 가장 경중이 적당하여 오래 쓸 수 있다고 하였다. 『당지(唐志)』 『당지(唐志)』: 중국 송나라 때의 정초(鄭樵)가 저작한 역사책인데 합 2백
권.

를 보면 개원통보의 중량이 1돈 중이라고 하였고, 두우(杜佑) 두우(杜佑): 중국 당나라 때의 사람인데 역사 서적 통전(通典)의 저자.

는 1냥(兩)은 24수(銖)라고 하였는데, 지금 저울은 옛날 저울에 비하여 3배가 되므로 지금 돈을 옛날 저울로 환산하면 7수 이상이 되는바 옛날 5수 전(錢)에 비하면 2수
이상이 더 무겁다. 그러면 지금 저울이 당나라의 것과 같으므로 지금 저울 1돈 중으로 주조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돈은 가치의 척도로서 사용되는 물건이지만 주조가 정교하고
아름다워야 오래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주조한 돈은 대개 모두 추악하다. 특히 왕년에 주조했다는 돈도 아주 추해서 가소롭기 짝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세종조
때에 주조한 돈은 극히 정교해서 중국에서 주조한 것보다 오히려 나았으니 이것도 당시 정치의 잘되고 못되는 데에 기인한 것이다. 이제 돈을 주조하려면 장영실(蔣英實)
장영실(蔣英實): 아산(牙山) 사람으로서 세종 때의 군인의 직에 있었는데 기계 제작에 특출한 기술이 있어서 천문 의기 및 물시계 등을 제작하는 데 많은 공헌이 있었음.

과 같은 사람을 구하여 주조 사업을 전담 관리하게 하고 기술자를 모집해서 정교하게 만들도록 하며 그들을 협조하는 장인들도 기술자 자신이 선택케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모두 녹봉을
후하게 주어 그 직업에 오래 있도록 할 것이며, 지금과 같이 관원들이 아랫사람들에게만 맡겨 버려서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연차 책임을 아랫사람에게만 전가시켜 그들에게 추궁하지
말고 수시로 그 실적을 보아 옳게 평가하여 주고 표창과 벌로써 고무하고 경계토록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주조하는 장인들이 힘껏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니 어찌 정교롭게
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돈 2백 문(文)을 은 1냥에 준할 것이다.

1\. 전세(田稅)를 받을 때에 모두 쌀과 돈을 섞어 받을 것이다.[2분은 쌀로 1분은 돈으로 받는다. 포를 만드는 곳에서는 2분은 포로 1분은 돈으로 받을 것이다.]

왕궁의 수요 경비로부터 백관, 이례, 하급 군관 등의 녹봉과 제반 비용 지출 등도 모두 쌀과 돈을 섞어 지출할 것이다.[역시 2분은 쌀로 1분은 돈으로 주거나, 포를 쓸 곳에서는
포와 돈을 섞어 지출할 것이다. 전세를 받을 때에 3분의 1을 돈으로 받는 것으로 정하나 처음 실행시에 먼 곳에는 더러 고루 유통되지 못할 것이니 초두에는 10분의 1 혹은 5분의
1로 정했다가 점차 돈이 고르게 유통된 이후에 3분의 1을 받는 것이 사리에 적당할 것이다.]

2\. 서울 안의 각 부(部), 각 방(坊), 각 거리 및 각 읍 각 진, 각 역, 각 참점에는 모두 점포[鋪子]를 차리고 큰 부락에도 모두 점포 설립을 허용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전폐 사용의 이로움을 알려 진흥시킬 것이다.[모든 점포는 서울 안의 각 방, 거리의 양편에 설치하되 그 수를 정할 것이다. 주군(州郡)의 읍내에는 혹 3∼4개 점포를 설치한다든지
하여 적당하게 할 것이며 진, 역, 참점에도 각각 그 실정을 보아 차이를 두어 정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위에서 자세히 서술했다. 관리자는 근실하고 선량하여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택하며 법에 따라 점포를 설치하는데 점포 건물은 관부에서 모두 지어 준다. 미곡과 각 물품들을 넉넉히 대부해 주어 자본으로 삼게 하되 상환 기일을 여유있게 정해 주며 받을 때에도
보통 시세에 의하여 돈으로 받을 것이다. 지방에서는 규정된 예에 따라 참점전을 준다. 그 밖의 촌에서 개인적으로 점포 설립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역시 그 동리로 하여금 그 점포
짓는 일을 보조하게 한다. 이런 데에는 점포세를 영구히 면제해 주며, 또 미곡 대여를 희망하는 자가 있으면 위의 것과 같이 동일 조건으로 시행할 것이다. ○ 모든 점포는 기와집으로
짓게 하며 마루, 부엌, 기명들을 정결하게 하고 간판, 의자, 탁자들을 일정한 규격에 의하여 비치할 것이다. 꾸어 오는 미곡은 대동미(大同米) 중에서 남은 것이나 혹 상평창에
저축된 곡식으로써 적당하게 대여해 줄 것이다. ○ 점포 안에는 관가와 물건을 매매할 때에 공평한 값에 의해서 할 것과 양반 서리배가 점포에 와서 폐단을 일으키거나 한 푼이라도
토색할 때에는 관청에 고발하는 것을 허용하며 엄중히 다스린다는 조목을 명확히 판자에다 새겨서 문지방 위에 붙여 둘 것이다.]

3\. 지방의 세금은 모두 총수(總首)로 하여금 수납하여 관부에 바치게 하고 관부에서는 색리(色吏)를 지정하여 서울까지 운반하도록 할 것이다. 그래도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 방납하는
자가 있으면 경국대전 방납률(防納律)에 따라 죄를 논할 것이다.[곤장 80도, 정배 2년을 보내고 그 물품은 관에서 몰수하며 그것을 들어준 수령도 역시 명령 위반죄로써 처벌할
것이다. ○ 전폐 주조 수량은 쓸만큼 주조하는데 가령 금년부터 전폐를 쓰기로 한다면 금년 정월부터 녹봉과 각종 지출을 다 법에 따라 쌀과 포와 전폐를 섞어 주고 백성들에게 가을부터
받는 세는 전폐로 바친다는 것을 미리 알게 하면 지방의 백성도 또한 전폐를 구하게 될 것이므로 서울 안에 있는 전폐가 자연히 전국에 유통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을 믿어서는
안된다. 각 도 경상 세입의 총수를 계산하여 6∼7월 경에 그만한 수량의 국가 전폐를 지방에 수송하되 1도에서 1∼2곳 혹은 3∼4곳에 두고 적당한 도회나 고을을 택하여 그것과
물건과의 가치를 공시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미리 사 두어서 가을에 군색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면 좋다. 이렇게 1년만 유통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그와 같이 하지 않고도
자연히 널리 유통될 것이다.]

4\. 전폐를 사사로이 주조하거나 전폐를 녹여서 다른 물건을 만드는 자는 모두 옛날의 법률에 따라 치죄할 것이다. [한나라 법에서는 사사로이 전폐를 주조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였었고, 당나라 법에서는 전폐를 사사로이 주조하기를 발기한 자와 두목은 교수형에 처하였는데 먼저 그들에게 곤장 백 도를 때렸다. 거기에 심부름을 한 자나 그들의 숙박과 범행에
장소를 제공한 주인에게는 곤장 60도를 때리고도 부역과 정배 보내는 죄를 가하였고 전폐를 주조한 이웃 사람들에게는 1년 도형, 방정(坊正)과 이정(里正)에게는 곤장 60도씩을
때렸으며 이 사실을 고발하는 자에게는 그 범죄자의 가산을 몰수하여 상으로 주고 동범으로서 자수한 자는 그 죄를 용서해 주고 규정된 예에 따라 상을 주기도 하였다.]

5\. 도로의 참점(站店)은 이미 제정한 규정[그 제도는 상편에서 자세히 말했다.]이 있으니 설치한 다음에 그 유지를 위하여 크고 작은 모든 관 행차로부터 이하에 이르기까지 모두
참점에 숙식비[房火錢]를 내게 할 것이다.[조반 혹은 하룻밤 숙박에 1인당 1문을 내고 말을 가진 자는 말 1필마다 1문씩을 더 내는데 모두 풍흉을 관계하지 않는 영구적인 규정으로
할 것이다. ○ 지금 양반들의 행차는 대개 다 숙식비를 주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극히 사리에 맞지 않다. 관 행차나 사적인 여행, 귀하고 천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 규정에 준해서
숙식비를 내어야 마땅하다. 본 고을 수령의 숙식도 반드시 규정에 따라 줄 것이다.] 환관과 변경의 장수, 군관 등이 지나 다니면서 작폐하는 행동을 일체 금지할 것인바 무릇 돈을
지급하지 않거나 작폐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1문 이상이라도 모두 중죄로 다스릴 것이다. 모든 참점의 임무는 수상한 사람을 조사하며 또 급히 행차하는 사신[도사, 선전관
같은 유]및 역졸로서 배행(陪行)하거나 교대하고 돌아가는 자들에게 밥을 한 번씩 대접하고[사신을 따라갈 때의 식비는 관에서 지불한다. ○ 역졸이 사사로이 내왕할 때는 제공하지
않는다.] 밤에 가는 사행(使行)에게는 횃불로 안내하며[한 행차에 4자루를 넘지 못한다.] 이 밖의 일체 잡역에는 참가하지 않는다.[환관과 변경의 장수 군관 무리들이 작폐하는
단서는 모두 마초에서 오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는 마초는 각 고을 각 역에서만 공급하게 하고 참점에서는 공급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지금은 상여가 지나갈 때에 상두꾼을 얻어야 하나
본 고을 관리란 자들이 모두 참점 사람을 억지로 징발하여 횃불을 들리는 일이 있는데 이런 폐단을 엄금할 것이다. 이 명령과 규정을 위반하여 이전처럼 작폐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정부의 관리이거나 양반일 때에는 배행자를, 보통 사람이라면 본인을 잡아 관부에 고하여 논죄하게 할 것이다. 수령이 함부로 처단할 수 없는 자는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처치하며, 감사도
함부로 처치하지 못할 자는 국왕에게 보고하여 처단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금지 사항들은 조목을 명확히 열기하여 판자에다 새겨 참점의 남, 북 대문에 게시하여 둘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양반과 상인(常人)에게 모두 일률로 숙식비를 받는다 하니 이것은 습속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며 또 귀한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본의로 보아서도 차별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다. 귀한 자를 귀하게 여기고 어진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나 상사람이 양반에 대하여 불경하거나 봉변을 준다면 죄가 있다 하려니와 대가를
주고받는 데 있어서 무슨 귀, 천의 다름이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단지 귀, 천 두 글자만을 따져서 일을 억누르거나 강제하고 있다. 그래서 명색이 양반이라고 하면 이르는 곳마다
폐단만을 일으키기 때문에 길가에 사는 사람들은 양반을 싫어하게 되어 심지어는 고의로 자기 집을 누추하게 만들게까지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양반으로서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장인들이
기물을 추악하게 만드는 것도 관부에서 억지로 시키기 때문이며 시장에 장사꾼들이 모이지 않는 것도 관부에서 강제로 눌러 사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그 습속부터 개혁하여야만
일이 다 바로잡히고 귀한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본의가 참으로 행해질 것이다.]

5\. 모든 참호(站戶)에 새로 들어온 자에게는 3년의 참호세를 면제해주고 새로 점포를 설치한 자에게는 5년의 점포세를 면제해 줄 것이다.[참호세와 점포세의 수량은 상편에서
말했다. 그 규정은 대개 모두 보포(保布)를 면제해 주고 단지 참호세와 점포세만을 받는데 참호세는 매년 1호당 전폐 40문이며 점포세는 관청에서 지어 준 서울 안의 점포라면 1년에
전폐 120문, &lt;이것은 관에서 점포만을 지어 주고 밭을 주지 않기 때문에 세를 감해 주는 것이다.&gt; 지방에서 밭을 받는 점포라면 240문, 지방 촌락에서 사사로이
설치한 점포라면 세를 받지 말 것이다. ○ 각 고을, 각 영, 진, 역, 참점에는 모두 일정한 포자전(鋪子田)을 주므로 포자전을 받지 않는 점포는 모두 개인 점포가 된다.]

[만약 전제를 시행하기 전이면 신역을 면세했던 자는 밭을 받는 점포에 준하여 동일한 세를 받고, 신역이 있으면서 사사로이 점포를 설치한 자는 외촌에 설치한 점포에 준하여 세만을
면제해 줄 것이다.]

혹 자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풍토는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전폐를 실행하려고 해도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전패(錢貝)제도를 실행하지 못한 까닭은
실행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위에 있는 사람이 참으로 이해관계를 알아서 결심을 갖고 조급하지 말며 동요하지도 말고 꾸준히 두어 해 동안만
진행하면 마치 도랑을 파면 물이 흐르듯이 자연히 흥행하게 되어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도 부유해져서, 오늘의 황폐하고 낙후한 나라가 중국과 같이 문물이 구비된 부강한 나라로 바뀌어
영구히 만세의 복리로 될 것이다.[전대에도 후대에도 전폐 제도를 실행하려다가 실행하지 못한 자가 있었으며 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실행했다가 곧 중지하며 세미와 전폐를 섞어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세미를 받을 때에 전폐를 섞어 받지 않고 전폐만을 실행하려 하는 것은 마치 제방을 막아 놓고 물 흐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전폐가 없으니 만약 법을 시행하는 초기에 사사로이 전폐를 만들어 쓰는 것을 허용한다면 전폐 만들기는 용이하겠지만 그러나 전폐라는 것은 국가에서 그것으로써 전국의 이익을
조절하며 적체된 곡식과 포백을 유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사사로이 주조하는 이런 길을 한번 열어 놓으면 후에는 아무리 엄중한 형법이 있더라도 몰래 주조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어서 간사한 백성들은 마음대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농사를 버리고 전폐를 주조하는 부리깐에만 달려 갈 것이니 그 폐단을 도저히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폐는
국가에서만 주조하고 사민의 주조를 절대로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또 전폐는 중량이 적합하고 제조한 것이 규격에 맞아야만 오랫동안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니 조잡하고 엷게 함부로 만들게
맡겨 둘 수 없는 것이다. 동(銅)도 아끼지 않고 비용 드는 것도 아까워 하지 않았던 본의는 옛사람의 그 의미가 깊다.

물화(物貨)는 일정한 규정에 준한다.[이제 고금을 통한 예와 우리나라의 형편을 참작하여 일정한 규정으로 세를 받고 녹봉을 주는 것과 원래 지출해 오던 비용을 정하였으니 모두 이것을
영구적인 규정으로 삼아서 풍년, 흉년이라고 증감하지 말 것이다. 국가와 개인 간의 사용에 있어서는 전폐 200문을 은 1냥에 준해서 일정불변하게 해 두고 기타의 물화는 모두 그
당시의 형편에 따라 비싸고 헐하게 할 것이다.]

백미 1두는 면포 5척, 전폐 20문, 은 1돈 중에 준하고

면포 1필은[6승포로서 길이는 30척, 너비는 8촌]백미 6두, 전폐 120문, 은 6돈 중에 준하고

전폐 20문은 백미 1두, 면포 5척, 은 1돈 중에 준하고

은 1냥은 백미 1곡, 면포 1필[20척], 전폐 200문에 준할 것이다.

[지금 두석 값을 말하면 서울에서는 은 1냥에 두석 25∼26냥이고 보통 면포 1필에 두석 3냥이다. 동래(東萊)에서는 보통 면포 1필에 4냥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물가는 때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것이므로 전폐를 주조할 때에 위에서 사게 되면 두석 값도 자연 귀해질 것이다.]

혹자가 생각하기를 "전폐 40문을 은 1돈에 준하고 쌀 1두에 준하는 것이 정당할 것 같다"고 한다. 만일 전폐가 천해져서 그때의 형편에 맞는다면 그렇게 해도 불가능할 것은 없다.
그러나 꼭 그때의 물정을 잘 맞추어서 규정을 정해야 한다. 이렇게 한번 정했더라도 한번 정한 다음에는 영구히 개정하지 말아야 한다. 대체로 전폐의 교환율을 규정하는 비율은 전폐의
가치를 동의 값과 주조하는 비용과를 대조해 보아서 서로 현저한 차이가 없게 하여 사사로이 주조하거나 전폐를 훼손하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중국의 전폐를 가져다 통용하더라도
값을 일정하게 정해서 경중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혹자가 말하기를 "중국에서는 전폐가 통용된 뒤에 쌀 1두에 수백 문을 받게 되므로 전폐 수십만 문을 저축한 자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 지금 규정한 전폐의 가격은 중국의 것과 너무
틀리지 않는가?" 한다. 이것은 중국의 전폐가 후세로 내려오면서 생긴 폐단이니 경계해야 할 것이며 본받을 것은 못된다. 대개 역대 이래로 계속 주조하여 전폐는 점차 축적되었지만
곡식과 포백은 그와 함께 증가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건 값은 귀해지고 전폐는 천해졌다. 그리하여 전폐가 많을수록 더 부족을 느끼게 되어 전폐를 더 주조하기 때문에 그만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한나라에서 곡식이 흔할 때에는 1곡에 수십 문 받은 일도 있었다. 전국시대 위나라 이회(李悝) 이회(李悝):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서 치수 사업과 농사
개량으로 저명한 인물.

의 말에 의하면 "조 1석에 전폐 30문이다" 라는 것이 있으니 옛날에는 전폐가 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폐가 귀하더라도 곡식, 포백의 값과 서로 맞아서 유통에 저애가 되지
않는다면 비록 적더라도 많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때 백성들은 집집마다 곡식을 저축해 두고 상품과 서로 교환해서 썼던 것이다. 내가 일찍이 들은 바에 의하면 옛날 요동에서는 전폐
60문을 은 1돈에 준하여 썼었는데 여진족이 요동을 점거한 후에 40문을 은 1돈에 준해서 쓰게 하였다고 한다. 대략 은 1돈이 풍년이면 좁쌀 3두에 준하며 곡식이 귀하면 심지어
1두에 준한다. 좁쌀 1승은 풍년이면 전폐 2문에 준하고 곡식이 귀해지면 6문에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러나 요동의 말[斗]은 커서 우리나라 말의 두 배에 해당하니 이것으로 보면
명나라의 돈 가치가 송나라, 원나라 때의 그것과 같이 헐하지 않았으며 전폐 가치의 경중은 위정자가 정하는 규정에 달린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전폐가 통용되지 않았는데 근세에
와서야 개성부에서만 비로소 쓰기 시작하였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에는 전폐 30문을 은 1돈에 준하다가 그 후에는 50문 또 그 후에는 70문으로 준하더니 지금에는 은 1돈에
백문으로 준한다. 이것은 대체로 전폐를 전국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개성 한 부에서만 사용하므로 아직까지 주조한 전폐가 모두 개성부 한 곳에 몰렸으며 또 정부에서 전폐를 출납하는
바 없이 저자의 백성[市民]들이 사사로이 서로 물건을 매매하기 때문이다. 당초 을해 경인년에 정부에서 전폐 제도를 시행하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쌀 1승에 두석 돈은 1문,
적동전(赤銅錢)은 2문으로 정하였는데 후에 한 가지만 사용하는 것을 알고 쌀 1승에 3문으로 정했으나 그래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5문, 7문까지 더 올렸었다. 녹봉에다 전폐를
섞어 주기는 했으나 본 녹봉 외에 약간의 전폐를 더 줄 뿐이었고 세를 받거나 녹봉을 주는 데에 있어서 그것을 일정한 규정으로 정해서 출납하지 않고 민간에서만 사사로이 사용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결국은 얼마 안 가서 폐지되고 말았으니 이것을 가지고 결론을 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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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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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錢幣. 凡錢 以豆錫 鑄成(豆錫 本以銅 鎔化者. 凡鍮錫之類 在古 通稱爲銅) 形圓孔方重一錢 文曰東國通寶. 如今中國見行錢 而務令精好 輪郭周正 印字端明. 初鑄時 或可依今例 設都監
久後仍委司贍寺 專掌鑄錢 勿鑄大小錢及諸色錢 唯鑄一品以行. ○如通國常稅 四五百萬斛 則鑄錢數 及一二十萬貫 乃可行布. 若至七八百萬貫 則可以周贍不須更爲常鑄.今取考中國見行諸錢 開元通寶
大率重九分 元豐通寶 七分 嘉祐通寶 八分 天禧通寶一錢 萬曆通寶 一錢二分 崇禎通寶 八分. 然 開元錢 歲久多磨 必是當初一錢重. 古今 以開元錢 爲最得輕重之宜 可行永久. 按唐志"開元通寶
錢重一錢."杜佑云"一兩二十四銖."今秤 比古秤三倍 今錢 爲古秤之七銖以上 比古五銖錢 則加重二銖以上. 然則今時之秤 與唐秤 相同矣. 定以今秤一錢重 爲當. 錢雖權貨流行之物 然 必鑄造精好然後
可以行遠. 我國製造 例皆麤惡. 往年設局鑄錢 而其錢 麤甚可笑. 嘗觀世宗朝凡造 無不極臻精妙 逾於華製 此亦係世道之汚隆也. 今若鑄錢 當求如蔣英實者 專掌監造 鳩集良工 務令致精 其助工人等
亦令本工 自擇 皆優其餼廩 久於其業 勿使如今 請托官員 行下圖立. 自上至下 節節委任責成 而以時考功 賞罰勸懲. 如是 則百工殫力 各效其能 豈有不精之理?以錢二百文 準銀一兩.一 凡收田稅
皆米錢參收. 二分米 一分錢. 其作布處 亦二分布 一分錢.御需以下 百官吏隸軍士祿俸 及凡百支費 亦米錢參支. 亦二分米 一分錢. 其用布處 亦布錢參支. ○收稅 雖定以三分一 以錢 然初行時
遠方或未周布 初頭則定以十分一 或五分一 待漸次錢足均布 然後 定收三分一 於事爲適也.一 京中部坊街衢及各邑 各鎭 各驛 各站 皆立鋪子. 凡盛村 亦皆許立 令民 興使錢之利. 凡鋪子
京中各坊街衢兩傍 量定其數. 州郡 邑內則或三四鋪 量宜多少. 鎭驛站亦稱是爲差. 制詳上篇. 募人 擇勤實性良 可任事者 依法置鋪 皆官作鋪舍. 米穀凡物 從優借貸 以爲資本 寬其期限
從平直償以錢. 外方則依例受田 其外村 願立私鋪者 亦使里中 助其役. 此則永免鋪稅. 願貸米穀者 亦一體施行. ○凡作鋪舍 蓋以瓦 廳廚器皿 務令修凈 靑帘床卓 一依其制. 其所貸米穀
以大同餘米或常平所儲 量宜多少. ○鋪子裡 凡官家交易 一從平直 兩班ㆍ吏胥輩作弊 徵索一文以上 許狀告重治 明立事目 刻板 揭其門楣.一 外方稅錢 令各其總首 收合納官 官定色吏 輸納於京.
京外防納者 依大典防納律論罪. 杖八十 徒二年 其物沒官 聽從守令 以制書有違律論. ○凡鑄錢數及可行. 如今年 爲始行錢 則自今年正月 廩祿各項支費 皆依法參頒 而使民 預知秋來收稅入錢 則外方之民
亦當求錢 而京中之錢 自然流布八方矣. 然不可徒恃此 計各道常稅總數 及夏秋間 量宜輸送官錢 一道一二處 或三四處 定都會 官懸其元定之直 許民就買 使無窘速可也. 一歲如此 以開其流 則後不復然
而自能廣布矣.一 私鑄錢 及燒毁成錢 爲他器者 依古律斷罪. 漢法 私鑄錢者死. 唐法 私鑄錢造意人 及勾合頭首者 並處絞 仍先決杖一百. 從及居停主人 加役流 各決杖六十. 鑄錢處 隣保徒一年
坊正里正杖六十. 若有糾告者 卽以其家産賞 同犯自首 免罪 依例酬賞.一 道路站店 旣有定制 其制詳見上篇. 務令安集 一應大小公行以下 皆給房火錢.朝飯或夕宿 每一止舍 每人錢一文 持馬者
每一匹加一文 豐凶永定. ○卽今 兩班之行者 例不給房火錢 事極無理. 勿論公私行 貴賤人 皆當準式給之. 本邑守令之止舍者 亦必一一準給.如宦官邊將軍官輩 經行作弊之端 一切痛斷. 凡不給錢及作弊者
一文以上 皆治以重罪. 凡站店之役 譏察荒唐人 又急行使命 如都事 宣傳官之類. 及驛卒 陪行交遞後 回去者 供飯一次. 使臣陪去時 則自官饋食. ○凡驛卒以私往來者 則否.
當夜使行引炬.一行無過四柄. 此外一切諸役 皆無所與. 宦官邊將軍官輩作弊之端皆由於草料. 凡應給草料者 只令各官 各驛 供饋 站店則勿令供饋. 今過行喪轝 苟圖得擔軍 而有本官色吏者 皆勒發店人
爲炬軍 宜痛斷此弊. 凡違令式 依前作弊者 朝官兩班則執從人 凡人則執當身 告官論罪. 守令不得擅斷者 報使處置. 監司不得擅斷者 啓聞處置. 凡禁斷等事 明立條目 刻板
揭於店南北大門.或曰"兩班常人 一樣給房火錢 此恐難變俗. 且揆諸貴貴之義 亦當有間."曰貴貴尊賢 固是理之當然. 然常人若不敬兩班 而慢侮侵薄 則誠爲有罪矣. 至於酬價償直之事 豈以貴賤而有間?
我國只以貴賤二字 唯事抑勒. 故名爲兩班 則到處生弊 路傍之人 厭苦兩班 使其屋舍 爭務矮陋 是豈非兩班之羞乎? 工匠器用之麤惡 官役抑使之故也. 邑場商賈之不赴 官貿抑買之故也. 如此等事
必須變俗然後 事皆得宜 而眞貴貴之義 行於其間矣.一 凡站戶新集者 免其戶稅三年. 鋪子新設者 免其鋪稅五年. 站戶鋪子稅數 亦見上篇. 蓋皆免保布 而只有戶稅鋪稅 站戶 每一戶 歲錢四十文 鋪子
京中官造鋪 歲錢一百二十文 (只官造鋪舍 而不受田 故減稅.) 外方受田鋪 二百四十文. 外村閭里私鋪 無稅. ○各邑 各營鎭驛站鋪子田 皆有定數 凡不受鋪子田者 爲私鋪.若未行田制之前 則除免身役者
準受田鋪. 有其身役 而私自立鋪者 卽外村私鋪也.或曰"本國土風 與中國異宜 雖欲用錢 亦難以行."此甚不然 錢貝之不行 非不可行 是人不行耳. 苟上之人 眞知利害 而決意行之 勿促勿搖 則期以數年
如渠開水流 自然興行 國富民裕 變荒僻惰窳之地 而爲華夏文物之鄕 永爲萬世之利矣. 前後 或有欲行而未能者 皆因旋行旋罷 而田稅不參以錢故也. 收稅 不參以錢 而欲行錢 是猶塞隄而求流也.本國無錢
若設行之初 許令私鑄 則易於産錢. 然 錢者 上之所以權天下之利 而濟粟帛之滯者也. 若此路一開 後雖有嚴刑重法 盜鑄者無窮 奸民擅利 而黎庶爭起 棄南畝趨鎔鑄 其弊不可復救矣. 只當公鑄
切不可許私鑄. 且錢 輕重得宜 制造合度然後 可以流行久遠 不可任其麤薄. 古人所以不愛銅 不惜費者 其意深矣.物貨準式. 今參以古今通行國俗形便 以定式 收稅頒祿及凡元定支費
則以此永定不以豐凶有所增減. 至於公私行用 則但以錢二百文 準銀一兩 一定不易 而餘皆隨其時貴賤.白米一斗 準綿布 五尺. 錢 二十文 銀 一錢.綿布一匹 六升 長三十尺 廣八寸. 準白米 六斗. 錢
一百二十文. 銀 六錢.錢二十文 準白米 一斗. 綿布. 五尺. 銀 一錢.銀一兩 準白米 一斛. 綿布 一疋二十尺. 錢二百文.今豆錫價 京中則銀一兩 豆錫二十五六兩. 常木一疋 豆錫三兩
東萊則給四兩餘. 然 物價隨時貴賤 若至鑄錢時 上所求貿 則銅錫 亦自貴矣.或以爲'以錢四十文 準銀一錢 準米一斗 爲當.'若錢至於賤 而苟適時宜 如此亦無不可. 唯在其時 善稱物情 以定式耳.
雖如此定之 一定之後 亦須永久不改. 大抵定錢之式 以錢價 比銅價工費 不使相懸 以啓盜鑄及毁錢之弊 可也. 中國錢 雖令通用 亦須定價如一 毋令有輕重可也.或曰"中國錢幣之行 斗米率不下數百錢.
是以 藏錢數十萬者 亦不爲富戶. 今定錢式 無乃與彼相遠乎?"曰此乃中國後世之末弊 可戒而不可效者也. 蓋歷代以來 鼓鑄不休 錢漸積多 而穀帛不敷 故物重錢輕. 錢愈多 而愈患不足 又益鑄錢
以至如此. 漢世穀賤時 或至一斛數十錢. 戰國魏李悝之言曰'粟一斛 爲錢三十.'古時錢重 可知. 錢重 亦能與穀帛相權 而不滯於用. 雖小猶多 是以其民家儲穀粟 而本末相資也. 嘗聞舊時 遼東六十錢
準銀一錢, 淸人據遼後 定以四十錢 準銀一錢行之. 大約銀一錢 豊歲粟米三斗 穀貴至一斗. 粟米一升 豐歲錢二文 穀貴至六文. 然遼東斗大 一斗當我國二斗 以此見之 大明錢價 不如宋元之輕 而錢式輕重
亦在乎爲政者所定耳. 本國則錢貝不行 而獨開城府 近世始用之. 初以錢三十文 準銀一錢 其後以五十文 又以七十文 今則至百文. 蓋以國中不行 而此一府用之 前後所鑄 咸聚於一府 又上無所出納 而市民
私相貿貨故也. 曾在乙亥ㆍ庚寅 自朝家欲行時 前則定以米一升豆錫錢一文 赤銅錢則二文 後知獨行一品 而定以一升三文爲不行 故增定五文 至七文. 祿俸雖給錢 只於元祿外 加給若干錢而已. 不於收稅頒祿
定式出納 而欲定於民間私用 尋復未行 而罷 此則皆不足據以爲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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