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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인재를 추천하는 세칙[貢擧事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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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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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인재를 추천하는 세칙[貢擧事目]

1\. 국왕은 먼저 예절을 갖추어 공경대부(公卿大夫)[3품 이상]와 측근에 있는 고명한 선비[대간(臺諫), 시종(侍從) 시종(侍從)：봉건시대에 국왕을 모시던 관직명.

외에 직품의 고하를 불문하고 진실로 고명한 선비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인재를 추천하라고 특히 명령할 것이다.]를 위시하여 지방의 주와 현의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옛날 어진
임금의 정치 방안을 정통하고 도덕과 행동이 원만하여 스승이 될 만한 사람과 그 다음 독실한 결심을 가지고 학문에 열중하며 재능이 우수하고 행동 상 수양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여
그들의 이름을 모두 보고하라 하여[도덕, 학술, 재능 및 행동들을 자세히 기재하는 것은 추천장의 양식[薦狀式]과 같이 하며 인재 추천 후의 잘잘못의 책임도 추천법[(薦擧法]에
의한다.] 그 중에서 도덕이 고명한 선비가 있으면 정부에서 정중한 예절을 갖추어 맞아들이고 그 나머지는 지방장관으로 하여금 정중하게 대우하여 올려 보내라 하여 서울에 모아 널찍하고
조용한 집에 거처하게 하면서 봉급을 주며[궐내에 가까운 한 널찍한 집을 택하여 모아서 강론하는 장소로 하기를 정자(程子)의 말한 바 연영원(延英院)처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녹봉을 주고[갑자기 벼슬을 시키지 말고 다만 응교(應敎) 응교(應敎)：왕명에 응대하는 선비.

라는 명예직만을 줄 것이다. 이전에 벼슬을 지낸 사람이라면 그것을 참작하여 녹봉을 주며 선비라도 역시 녹봉을 주기를 지금 군인에게 녹봉을 주는 예와 같이 한다.] 대신 중의 현명한
자를 시켜 그 일을 책임지게 하고 모든 선비들로 하여금 조석으로 함께 성현의 학문에 대하여 토론하게 하며 왕이 가끔 불러다가 문답하는 기회를 주어 정치상 방도를 묻기도 하고
학술상의 토론도 하며[그 중에 특수한 사람은 번갈아 경석(經席) 경석(經席)：국왕에게 강의하는 장소.

에 참여시키며 그 나머지 사람들도 역시 번갈아서 응대하는 전례에 의하여 순서대로 응대케 할 것이다.] 얼마 지낸 뒤에 그 중에서 제일 특출한 사람을 등용하여 높은 직위에 있게 하며
그 중에서 학업이 출중하고 덕행이 고상한 사람을 선출하여 태학(太學) 선생으로 나누어 보낼 것이다.

2\. 모든 주와 현의 교관을 임명할 때에는 반드시 그 고을[邑]이나 또는 그 이웃 고을 사람을 쓸 것이요 이웃 고을에도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그 도(道) 내의 사람을 쓸 것이다.

3\. 만일 그 지방이나 부근 지방에 학술이 우수하고 도덕이 고상하여 남의 스승으로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직함을 가진 관리이거나 선비이거나를 불문하고 도덕과 행동이 가합(可合)한
자.] 역시 학교에서 감사에게 신청하여[학생들이 서면으로 제출하면 감사나 수령(守令)도 역시 상부에 보고할 것이다.] 감사(監司)가 왕에게 보고하면 이것을 이조(吏曹)로 돌려 다시
심사하여 임명할 것이다.[전에 고관을 지낸 사람은 역시 전임 그대로 겸임할 것을 용허하며 품계가 높은 사람은 행직(行職)으로 하고 낮은 사람은 수직(守職)으로 할 것이요 품계가
없이 임명된 사람도 역시 수직으로 할 것이다. 왕에게 하직하고 부임해 온 사람 이외에는 학교에서 범절을 갖추어 맞아 오되 그 고을의 전패(殿牌) 전패(殿牌)：조선시대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다 전(殿)자를 써서 세워 놓고 출장나온 관리들이 참배하던 것.

에 참배한 뒤에 부임하고 임기가 만료되면 가서 왕에게 보고할 것이다. 대체로 겸직(兼職), 행직(行職), 수직(守職)인 사람에게 대하여는 품계를 승진할 때에 각각 이전의 품계를
표준으로 하여 정할 것이다.]

4\. 교관의 직을 세상에서 천하게 여긴 지가 오래되었으니[현재에는 과거를 가지고 선비를 채용하게 되어서 소위 선생, 제자란 것이 모두 학술을 연구하고 행동을 본뜨게 하는 방향에서
아무 도움으로 될 것이 없으므로 교수(敎授)란 소용없는 관원으로 되었다. 더군다나 훈도(訓導)는 더욱 지천한 소임으로 되었으므로 반드시 용렬[庸下]하고 빈천한 자라야 그 직무를
맡게 되어 그들은 학생을 침해하여 저의 기한(飢寒)을 면할 뿐이다.] 응당 그 폐단을 개혁해야 한다. 정부에서 이미 선생을 선발하여 교육을 보급시키고 인재 양성의 책임을 맡긴 이상
모든 국왕의 사명을 띠고 온 사신이라도 선생에게 존경해야 하고 학교에 들어오지 않은 때에는 그의 환영을 하지 않으며[정부의 사신(使臣)이 오면 학생들이 문 안에서 환영할 것이다.
『법전(法典)』에는 지방관이 정부에서 온 관원을 환송, 영접하는 예절이 각 품계마다 다르게 되었으나 교관은 사체가 자연 다른 관리와 같지 않으므로 1품관인 사신이나 감사(監司)가
오더라도 다만 대문 안에서 환영할 것이다.] 망궐례(望闕禮) 망궐례(望闕禮)：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삭망과 명절에 국왕이 있는 방향으로 배례를 하는 절차.

및 유생(儒生)의 시험 외에는 모든 공사(公事)에 참여하지 않는다. 매년 봄과 가을에 감사가 직접 순회하면서 학생들의 성적을 고사하는바[감사는 다만 유생들의 강받는 것을 고사하고
교관과 서로 교육, 교양하는 방법을 평론하며 그가 가르친 유생들의 실지 학업의 우열과 조행의 정직 여부를 고사하여 표창의 후보자로 할 것이요 지금과 같이 훈도(訓導)까지를 동시에
시험치지 말 것이다.] 교관의 실적 표준은 유생들로 하여금 도학(道學)을 숭상할 줄을 알게 하며 학생들의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행동을 단속하며 공부할 적에는 이치를 규명하는 것을
위주하게 한 것을 첫째 성적으로 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열심으로 독서하며 조행에 결함이 없게 한 자를 그 다음 성적으로 할 것이요 만일 많은 선비를 양성하여 고상한 덕성과 유능한
인재로 되게 한 자가 있다면 왕에게 보고하여 특별히 표창 또는 등용할 것인바[혹 성적이 취할 것이 없는 자는 최하로 하고 만일 탐오, 비루하여 제 몸 단속을 못하고 주색(酒色)에
빠진 자는 법에 의하여 벌을 쓰는 동시에 그를 추천한 자도 처벌할 것이다.] 모두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 그들의 성적에 따라 승급시키되 방법은 교관이나 대각(臺閣)과 같이 취급할
것이다.

마단림(馬端臨)이 말하기를 "원풍(元豐) 연간에 학교사업을 크게 발전시킬 때에 교관의 임명을 귀중히 하여 그 선발하는 방법을 관각(館閣)에 들어가는 사람과 같이 동일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우집(虞集) 우집(虞集)：중국 원나라 때의 박학자로서 『도원(道園)』, 『학고록(學古錄)』을 저작한 사람.

이 말하기를 "현재 온 나라의 학교 교관을 자격만을 표준으로 하여 함부로 임명하여 억지로 모든 학생들 위에 앉혀놓고 이름 지어 선생이라고 하기 때문에 직원[有司]들이 신용하지 않고
학생들이 신임하지 아니하여 학교에 유익할 것이 없다. 이렇게 하고야 남의 스승 될 도리가 확립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작은 고을과 읍에 사는 선비들은 그들에게 보고 들을 것이
없으며 부형이 그 자제를 지도하는 방법이 당초부터 반드시 학문을 연구시키려는 참된 마음이 없으며 상종하는 선생이나 동무로 말하더라도 상대자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줄을 모른다.
그런즉 소위 훌륭한 인재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선출할 가망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날의 방도로는 아무거나 지방관[守令]으로 하여금 경전(經傳)을
통달하고 조행이 정직하고 도덕이 완성된 사람을 선발하여 지방관 자신이 그를 선생으로 존경하면서 성의껏 간곡하게 구해 보는 것이 상책일 것이니 그렇게 하면 그의 도덕적 감화의 영향이
매우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행동이 정직하여 괴상한 짓을 하지 않고 예전 선비들의 경전에 대한 이론을 확신하여 이상한 주장을 함부로 하지 않아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을 구할 것이다. 그를 초빙할 때에 그의 글을 외워 학생들로 하여금 귀에 젖고 마음에 박히게 하여 그 근본을 바로잡게 한다면 다음날에도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준(丘濬)이 말하기를 "『예(禮)』에 이르기를 '선생이 엄격한 뒤에야 그에 대한 도리가 높아지고 그에 대한 도리가 높아진 뒤에야 백성들이 학문에 대하여 존경할 줄을 안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선대 왕조에서는 교관의 선발을 가장 중시하여 허다히 노숙한 선비들 중에서 채용하였다. 그러나 뒤에 과거제도가 날로 발전됨에 따라 한번 급제만 하면 곧 등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날에는 추천받은 사람으로서 교관으로 된 자 중에서 순서를 밟지 않고도 또 예외로 고관에 발탁하게 되었으므로 교관으로 있는 사람이 저마다 분발하여 모두 도덕을
지킴으로써 자중(自重)하였다. 그리하여 한때의 이렇다 하는 고관[公卿大臣]이나 지방장관들도 역시 모두 정중하게 그를 대우하였다. 누구나 다 교관되기를 좋아하여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며 규칙을 엄하게 정하여 교육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많이 나고 풍속이 선량해졌다. 그러나 근세에 와서는 선생의 직위가 점차 낮아져서 고관이나 지방장관들도 대개 그를 존경하지
않고 사람들도 교관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서 다만 자리나 지킬 자를 채용하게 되었으므로 소위 교육제도[敎法]란 것이 보잘것없이 되어버렸다. 내 생각으로는 국가의 중요한 임무는
현명한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이 제일 급무이다. 현명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꼭 교양에 치중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임금을 대신하여 이 교양사업을 맡을 사람이 곧 교관인 것이다. 그의
책임이 매우 중대하니 만큼 지금부터는 꼭 그에 대한 선발을 신중히 해야 한다. 정부에서 적임자를 선발한 뒤에는 해당 기관으로 하여금 법규를 엄격하게 지켜 그를 우대하게 하고 이것을
위반하는 자에게는 벌을 줄 것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 좋은 교관을 얻게 될 것이요 좋은 교관을 얻게 되면 학생들이 학업에 충실하여 국가에서는 인재를 선발하는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니
이것이 정치가 잘 되어가고 국가의 기초가 영원히 견고해질 근본으로 된다"라고 하였다.

5\. 대부(大夫)나 사(士)의 자제들로서 학업에 뜻을 둔 자나 기타 일반 백성의 준수한 자들로서 15세 이상이 되는 자들에게 모두 입학을 허가할 것인바 서울에서는 사학(四學)
교관이, 지방에서는 지방관[守令]과 교관이 그들의 학문 연구의 지향 정황을 조사한 후 입학시켜[학생의 결원[闕額]이 있는 대로 매년 춘추 석전(釋奠) 석전(釋奠)：조선시대에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공자에게 춘추로 지내는 제사.

의 1∼2개월 전에 입학을 허가할 것이다. 입학 지원자의 훈장[訓師]이나 동리 부형[鄕里長老]이 학교에 서면[單子]으로 제출하기를 "누구의 아들 누구가 나이 15세가 되었기에 감히
입학하기를 요청하오니 처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며 (만일 그 친장(親長)이나 부형(父兄)이 학교에 서면을 제출할 때에는 "아무 친(親) 아무의 아들 혹은 아무의 아들 혹은
아우가 나이 이미 학(學)에 뜻을 두는 15세가 되어 감히 입학하기를 요청하오니"라고 한다. 만일 서면을 제출할 사람이 없으면 입학할 자 자신이 제출하기를 "성명 아무가 나이
15세에 이르렀으나 우매하여 배운 것이 없기 때문 감히 입학하기를 요청합니다"라고 할 것이다. 만일 그의 연기가 이미 많으면 "연기가 이미 많으니 삼가 처분을 기다립니다"라고 할
것이다. 이후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 학교에서는 이 지원 문건을 교관에게 보고하여 ―학장, 부학장, 수령도 교관[師長]에게 동시에 보고한다. ― 허락한다. 신입자가 처음 들어올
때에는 다른 데 있는 서재[學村]나 외사(外舍)에 입게 하여 ― 교관에게 뵈옵고 모든 학생들과 상봉하는 의식은 규정한 의식과 같이 한다. ― 강독에 참가케 하여 ― 여러 학생들과
딴 줄로 앉는다. ― 그의 학문에 대한 지향이 어떠한가를 보며 교관이 모아 앉아서 ― 강독하는 날짜를 따로 정하여 교관[師長]이 합석해서 앉고 학교에 있는 재임(齋任)도 참석한다.
― 『소학(小學)』과 『사서(四書)』에 대한 강을 받아 보아서 입학시킨다. 처음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모두 강이 끝난 뒤에 밖에 나와서 기다리다가 교관이 대청에 앉으면 ―
인사하기를 교관의 처음 부임할 때의 의식과 같이 하며 "물러가겠다"고 말하고 나와서 본래 서재에 있던 학생들과 서로 읍(揖)하는 예(禮)를 교환한다. ― 이것은 외사생(外舍生)과
읍하는 예이다. 내사생(內舍生)과의 하는 예는 내사에 들어간 뒤에야 한다. ― 장인, 상인, 시정배의 자식과 무당의 자식 및 공천(公賤), 사천(私賤)(노비)의 자식에게 입학을
허락하지 않는다.] 교육시키며 그에게 주는 밭 2경에서 받는 보포(保布)를 면제해준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자는 증광생(增廣生)으로 하여 외사에 있게 한다.[외사에서 만 1년을 둔
다음에 내사(內舍)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만 1년이 되었더라도 학교에 출석한 날짜가 70일 미만인 때에는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신입 학생으로서 나이 많고 또 학업이
특별히 우수한 자이라면 만 1년이 못되더라도 이 규정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학생들 중에서 재능이 있고 행동이 출중하며 학문에 힘쓰는 자가 있으면[학장,
부학장과 혹 수령(守令)과 교관이 여러 사람의 찬성하는 점을 참작하여 그의 실적이 과연 그러한가를 심사한 뒤에 선발한다.] 모아 앉아서 강독을 받아 보고 내사에 들인다.[입사
절차는 전의 것과 같으나 요청하는 문건을 올리지 않는다. 『소학(小學)』, 사서(四書), 『근사록(近思錄)』 및 『육경(六經)』 육경(六經)：『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와 『악경(樂經)』을 말한 것이나 『악경』은 전하지 않음.

중에서 자기가 희망하는 책 한 가지를 강독한다. 사서라 하면 어디서나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말한 것이며 육경이라 하면
『시전(詩傳)』, 『상서(尙書)』, 『주역(周易)』, 『춘추(春秋)』, 『주례』, 『의례(儀禮)』, 『예기(禮記)』를 말한 것이다. 강독한다는 것은 모두 책을 보고 권수에 따라
강독하는데 예로 『맹자(孟子)』 7권을 강독한다면 7권에서 권마다 한 장씩을 빼어서 강독시키는 것이다. 다른 책도 이와 같이 한다. 본문이나 주까지를 하게 강독시키고 의미를 물으되
아주 상세하게 하나 권수가 많은 것이면 8장(章)을 넘지 말게 할 것이다. 다른 책도 이와 같이 한다. ― 매 권마다 한 장씩을 빼어 읽힌다. ― 그리고 하루에 강독 받기를 열아문
사람을 넘지 말 것이며 절대로 경솔히 하거나 허투루 하여 문구만을 읽혀 보지 말 것이다. 이후의 것도 이와 같이 한다.] 내사에 들어온 자에게는 그에게 준 밭 4경(頃)에서 받는
보포(保布)를 면제해줄 것이다. 학교에 입학한 자는 내사와 외사를 막론하고 모두 연령으로써 순서를 정하며[모든 좌차(坐次)는 내사, 외사로 갈라서 사마다 따로 연치에 따라
정한다.] 그들 중에서 오래 두어도 착한 행동을 할 지향이 없는 자와 교육시키는 방향을 준수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를 축출하여 군역에 편입시킬 것이다.[착한 행동을 할 지향이
없다는 것과 교육시키는 방향을 준수치 않는다는 것은 위에 말한 교육 강령[學規]에 속한 것과 학문을 열심히 하지 않고 규칙을 위반하여 나쁜 짓을 하는 것들이다. ― 출학을 당하여
군역에 편입된 자에게는 군인에 나가는 백성의 예와 같이 보포(保布)를 내는 동시에 경지도 군인이 받아야 할 1경(頃) 이외의 것을 전부 회수한다. 그리고 그가 응당 충의위(忠義衛)
및 충순위(忠順衛)의 군인으로 될 자는 그에 해당한 위(衛)에 예속시키고 그가 받아야 할 밭 2경 이외의 것을 회수한다. 또 유명한 집안의 종손인 경우에는 음사[蔭] 관계의
적(嫡)에서 제명하나 법에 의하여 개인에게 주는 밭만은 회수하지 않는다.]

혹자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풍속에는 양반이니 서얼(庶孽)이니 서족(庶族)이니 하는 것으로 신분상의 차별을 두어서 동등으로 쳐주지 않는데 지금 일률로 연령에 따라 좌차를 정하게
하는 것은 웬 까닭인가?"라고 한다. 『예기(禮記)』에 이르기를 "세상에 나면서부터 귀한 자가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천자의 아들도 입학하면 역시 연령에 따라 좌차를 정하였거든
더군다나 그 아래 있는 사대부(士大夫)의 자식들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문벌만 숭상하고 관습이 두서없게 되어 오직 문벌이 혁혁한 것만 생각할 뿐이요 그 사람의
현명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만일 문벌이 대대로 혁혁한 집의 자손이라면 아무리 용렬하고 비루한 자라도 고관대작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은 집안이 한미하면 비록 도덕이 훌륭하고
학식이 우수한 자라도 선비 축에 들지 못하니 사회도덕이 발전되지 못하고 인재가 배출하지 못하며 정치와 법률이 문란해진 것이 모두 다 거기에 기인한다. 이것이 어찌 도덕 정치를
실행하여 세상을 바로잡던 옛날 임금[先王]들의 본의인가? 혹자가 또 말하기를 "그러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분을 반드시 엄하게 따지지 않을 것인가?"라고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분은 곧 천지자연의 원리니 어찌 엄하게 따지지 않겠는가? 대체 소위 신분이란 것은 본래 귀천의 등분이 있는 데서 생긴 것이며 귀천은 본래 사람의 우열이 있는 데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의 선악과 귀천을 불구하고 전혀 조상의 관직이 훌륭한 자만 가리면서 신분만을 엄하게 해야 한다 하니 그것이 의리에 당한 소린가? 더군다나 이 향당(鄕黨)의 학교는
곧 어른과 어린이의 차서를 가리고 도덕적 교양을 위주로 하는 곳이니 더욱 문벌로써 좌차를 정해서는 안 된다. 혹자가 또 말하기를 "그러면 고관의 자손으로서 만일 덕행이 없다면 그가
바로 일반 평민으로 될 것인가?"라고 한다. 옛말에도 '고관 대작[公卿]의 자식이 평민으로 된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으로 보아도 귀천이 대대로 계승하지 않는다는 것이
예로부터의 원칙이다. 그러나 옛날 임금들이 백성에게 유공(有功)한 사람에게 한하여 그의 자손에게 벼슬을 주는 특전(特典)을 정하였으니 이는 매우 후한 대우라 할 것이다. 그러나
법에 제외된 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또 말하기를 "그것은 진실로 잘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이 법을 실행해 왔으므로 갑자기 변경하기 곤란할 뿐더라
세상의 물정을 소란하게 할 염려가 있다. 만일 학교 내, 외사에서 양반과 서얼(庶孽)ㆍ서족(庶族)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 부류대로 좌차의 순서를 정하게 하며[내사생(內舍生)은 앞줄에
서며 양반과 서족은 같은 줄에 서되 양반은 연령 순서대로 서며 서족은 뒤에 서서 자리를 떼어 자기의 부류대로 순서를 찾을 것이다. 외사생(外舍生)은 다음 줄에 서는데 역시 그렇게
한다.] 추천에 의하여 선발할 때에는 문벌의 여하를 막론하고 전혀 학술과 조행과 재능을 위주하며 태학에 입학한 뒤에는 다시 차별을 없애고 모두 연령대로 순서를 정한다. 그러나
향회(鄕會)에서는 서얼과 서족이 남쪽 줄에 앉을 것이며 혹 학식이나 조행이 특출하거나 또는 선발되어 정부관리가 된 자에게는 역시 연령에 따라 양반과 좌석을 같이하기를 허가하는 것이
시태에 맞을 듯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오히려 비속한 견해로서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며 이것으로써 지금의 형편에 적합하다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말이다. 모든 일은
선후의 차이가 있으나 그를 적합하게 처리하는 것은 고금(古今)이 다를 리 없다. 만일 정부에서도 도덕이 높고 실력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여 채용하기를 전혀 사람의 현명 여부에만
치중한다면 누구나 옳은 일을 실천하기에 분발하여 예절을 숭상하는 경향이 지방[鄕邑]에서 실행하게 될 것이니 아무리 완고한 폐습이라도 자연 변경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근본을 벗어나서 법령으로만 고치려 하다가 비등을 일으키거나 폐단을 변경하기 곤란한 것을 두려워하여 우선 고식적인 방법을 쓰는 자가 있다면 이는 모두 정치가 무엇인 줄을 모르는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습속의 반대를 무서워하는 것은 한 평민의 처세하는 방법으로 될지 모르지마는 국의 통치자가 정치를 실시하는 처지에서 할 말은 못된다. 시기란 것은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 조성하는 기회이며 풍속이란 것은 정치와 교양이 있는 뒤에 얻은 바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서족[庶類]이 지방에서 선발되어 태학에로 올라간 자가 재능과 덕행이 현저하면 양반의 축에 들게 하는 것은 그럴 듯하나 외사(外舍)에 있을 때에는 아직 재능과
조행의 탁월 여부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양반 축에서 연령 순서대로 하기를 허락한다는 것은 웬 까닭인가?"라고 한다. 그것은 학업이 같으면 일이 같으며 일이 같으면 반열도 같은
것으로서 같은 반열 간에서 연령에 따라 석차[序]를 정하는 것은 세상의 통칙[通義]이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그렇다면 학생 중에 혹 아전[胥吏]의 자식이 있을 때에는 역시
관원의 자제 축에 들게 해야 할 것인가? 아비는 관청 마당에서 굽실거리고 그 자식은 양반 자제의 축에 들게 하는 것이 옳다 할까?"라고 한다. 그것은 각자가 저의 할 일을 할 뿐인
것이다. 대체로 관청 마당에서 굽실거린 것은 저의 상관[官長]을 위한 것이요 자기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며 같은 반열로서 연령 순서를 찾는 것은 동학[同業]이기 때문이요
아전[胥吏]의 자식으로 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비록 친형제간이라 하더라도 아우는 학문을 하고 형은 농업을 한다면 아우는 선비 축에 들지마는 형은 그 축에 가지
못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전에는 선비 구실을 하다가 뒤에 와서 농사를 한다면 전에는 선비 축에 들었더라도 뒤에는 그 축에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는 원인은 도덕과 의리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을 숭상하는 옳은 의미에서 부, 자, 처와 같은 윤리로써 세상에서 쳐주게 되어 선생과 친구를 오륜(五倫)과 같이 치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이 방향에 대한 본의가 침체해졌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서 새삼스럽게 같은 반열에 있는 것을 의아하게 된다. 대체로 문벌이란 것은 이를테면 그 가계의
한때 혁혁하게 지냈다는 외면에 불과한 것이요 교육제도를 확립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견지에서 본다면 문제로 되지 않는 것이다.[공정한 의리[公義]는 이미 이러하므로 성인(聖人)의
마련한 제도가 공적인 도리와 사적인 은정[私恩]으로 보아 양자가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 만일 친척이나 형제간에 혹 귀천이 다른 자가 있다면 그들은 가족으로서는 각각 연령과 항렬에
따라 좌차를 정하다가 공회(公會) 석상에서 직위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그때에는 서로 그 자리를 피하여 사적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도 역시 의리에 적합하게 하는 방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주자(朱子)의 향약(鄕約)에 '선비가 아니면 같이 상종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역시 양반과 평민의 차별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
선비[士類]란 것은 지금 세상에서 말하는 양반[士族者]이란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소위 선비란 것은 선비의 도리를 공부하여 선비가 될 것이며 양반이란 것은 양반의
성바지[姓族]에 속한 자손이다. 만일 옳은 의리적 행동을 실행하는 것으로써 표준으로 한다면 세상이 다 도덕적인 행동을 숭상하여 예의적 습속이 장성될 것이나 만일 문벌로만 따진다면
세상이 다 문벌만을 구별하기에 노력할 것이니 시비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귀천이 일정하지 않아서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능욕하는 폐단이 없잖을까?"라고 한다. 만일 도덕적 행동을 표준으로 하지 않고 덮어놓고
혼동한다면 이러한 폐단이 꼭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도덕적 행동을 참작하여 반열을 구별하고 그 반열 중에서 연령을 따라 좌차를 정한다면 도덕적 행동을 숭상하는 경향이 분명해지고
귀한 사람을 귀하게 대우하는 방법이 자연히 더욱 현저해질 것이니 무슨 편단이 있겠는가? 지금 무과(武科)는 다만 활 쏘고 말 타는 법을 시험하는 정도로서 거기에 합격한 자가 거진
초솔하고 미천한 사람들이지마는 서족(庶族)으로서 같은 과목에 급제한 자가 양반 씨족[士族]에 속한 자이면서 낙제한 그 무리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기술이나 힘을 주로 하는 데에서도 이러하거든 더군다나 도덕과 의리를 표준으로 하여 선발하는 데야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도 역시 짐작할 만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비라
하면 다 대대 양반의 집 자제들이며 평민 중에서 출신한 자는 어쩌다 한두 명이 있게 된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총명하고 우둔한 것은 대체로 타고난 기품에 달린 것이나 또
더군다나 평민의 환경으로도 결정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양반과 평민 간에는 그 정도가 아주 현저하게 다르다. 그러나 양반은 대개 훌륭한 문벌에 등을 대고 몰락될 걱정이 없다 하여
평소에 수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명망과 의리로 이름을 낸 자가 적으니 이것은 곧 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만일 훌륭한 사람만 등용한다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빠지게 될
것이므로 전에 부귀했던 자가 뒤에는 몰락하게 될 것이니 모든 천품이 총명하고 게다가 부형의 교육을 받은 자로서 어느 누구가 전진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랴? 그렇다면 중류쯤 되는 사람은
모두 출중한 인재로 될 것이니 비록 덕행으로 선발하는 데서 빼려 하더라도 그를 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양반의 자제로서 덕행으로 선발된 자가 많을 것은 자연한 사세로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등용할 적에 문벌에만 국한하는 것은 인재가 묻혀 버리게 되어 사회교화 상 막대한 손실이니 이것이 곧 국가의 성쇠와 사회도덕의 발전 여부에 대한 큰 원인으로
된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그렇다면 서족[庶孽]을 전연 차별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한다. 서족이나 서자(庶子)는 자기 가족 간에서는 구별을 엄하게 하나[같은 형제간이라도
서(庶)형제는 적(嫡)형제의 아래 앉되 자리를 떼어 조금 물러나와 감히 나란히 앉지 못하게 하는 것과 모든 일에 감히 동등으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만일 품위의 등분으로 말한다면
왕자와 왕족간의 적자(嫡子)와 서족은 품위와 사세전(賜稅田)에 차등을 두고 재상 및 고관[卿大夫]들의 적자와 서자는 음사(蔭仕) 관계로 받는 토지에 차등을 두는 것들이다.]
향당(鄕黨)과 학교에서는 연령순서의 의의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향당과 학교에서는 그들이 동일한 선비로 된 이상 여기에서는 일체로 연령에 따른다.]

6\. 서울이나 지방 학교의 학생 정원[儒額]은 다 일정한 수가 있는바 입학으로 예견되는 자가 그 수를 초과하고 그 사람들의 조행이나 학술이 동등할 때에는 활 쏘는 법으로써 결정할
것이요.[태학(太學)으로 승진할 사람을 결정할 경우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한다.] 정원수에 미달할 때에는 당분간 결원대로 두고 학업에 근실한 자의 입학을 기다릴 것이다.[결코 함부로
충수(充數)해서는 안 된다.]

7\. 재학 중인 유생(儒生)에게는 지방관[守令]의 상당한 범절로 대우하여 어떤 관청의 일을 대소를 불문하고 맡길 수 없으며 다만 학업을 전문으로 연구하게 할 것이다.[학교에
재학한 학생을 관리로 임명할 데 대한 일들을 군현조(郡縣條)와 병제(兵制)에서 자세히 말했다. 대체로 학교에 매일 출석하는 학생에게 대하여는 관리의 대소를 불문하고 맡길 수 없으며
다만 그들로 하여금 학술을 깊이 연구케 할 뿐이다.] 중앙정부의 사신이 교육을 시찰하고 공자 사당에 참배할 때에는 모든 학생이 교문 밖에서 환영할 것이요[다만 감사(監司)와
도사(都事)가 첫 번 순시할 때와 및 어사(御史)에게는 그렇게 할 것이나 그 외 다른 사신은 비록 학교에 오더라도 공자 사당에 참배하고 강등으로 온 뒤에만 한꺼번에 나란히 절할
것이다. 이 모든 절에는 사신이 모두 답례로 읍을 한다.] 교육을 시찰하지 않을 때이면 관청에 가서 환영을 하지 않는다.

8\. 학교 유생은 다 다섯 반(番)으로 나누어 학교에서 유숙하는데[만일 전원수[元數]가 60명이라면 한 반을 12명씩으로 하되 모든 교대는 초1일부터 15일까지, 16일부터
30일까지로 정하여 교대한다.] 식량은 학교에서 공급한다.[당번(當番)이 되어 학교에 유숙한 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당번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있으면서 공부하겠다는 자에게도 역시
학교에 유숙하기를 허가하나 식량은 공급하지 않는다. 춘추 제향[春秋祭祀] 때나 총회 때에는 당번이 아닌 모든 학생들에게도 역시 식량을 공급할 것인바 그 비용은 학교 소속 토지의
수입으로 쓴다.] 당번 차례에 나오지 않는 자는[춘추 제향 및 1월, 4월, 7월, 10월의 총회에 참여하지 않는 자도 이와 같다.] 첫 번에는 면책(面責)하고 두 번째는 좌석에서
쫓아내고 세 번째에는 서재[齋]에서 쫓아낸다.[서재에서 쫓겨난 자는 학장[師長]에게 보고하여 상학을 못하게 하였다가 반드시 그가 과오를 개준한뒤에야 다시 상학하기를 허가할 것이다.
대체로 서재에서 쫓겨났던 자가 다시 좌석에 참여할 때에는 반드시 면책하고 사과시킬 것이다.] 일 년이 지난 뒤에도 학교에 올 생각을 아니하는 자는 학적에서 삭제한다.[모든
제적자[削籍者]는 병역에 편입시킨다.] 만일 병이나 기타 사고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경우에는 학장에게 서면[單子]으로 그 사유를 보고하여 벌을 면해줄 것이며 나이 40이 된 자에게는
수직[番]에서 면제한다.[비록 수직을 면제했더라도 일이 있을 때에는 회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만일 학교에서 유숙하기를 희망하는 자는 임의로 내왕할 수 있다. 그리고 장의(掌議)
같은 직원이거나 또는 선발된 학생은 수직을 면제한 자라도 학교에 있으면서 공부할 것이다. 외사생(外舍生)으로서 수직을 면제한 자도 역시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회의에 참여하며 또
때로 자기의 집에 내왕하기를 허가할 것이다.]

당(唐)나라 제도에는 학생이 서울에는 80명, 대도독부(大都督府), 중도독부(中都督府), 큰 주[上州]에는 각각 60명, 하도독부(下都督府) 중등 주[中州]에는 각각 50명, 작은
주(下州)에는 40명, 서울 부근의 현(縣)에는 50명, 큰 현[上縣]에는 40명, 중등 현과 보다 작은 현에는 각각 35명, 작은 현에는 20명이었으며 그리고 주와 현의 학생은
장관보(長官補) 장사(長史)가 주관하였다. 또 지금 명(明)나라 제도로 말하면 온 나라의 부(府) 학교에는 관비생[廩膳生]이 40명, 주 학교에는 30명, 현 학교에는 20명인바
그들에게 모두 국가의 봉급을 주고 있었다.[일인당 달마다 식비로 은(銀) 1냥을 준다.] 관비생 외에 또 증광생(增廣生)이 있는바 그들에게는 관비 보조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학교에 입학을 못하여서 무식하고 한가히 노는 자가 매우 많은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라고 한다. 그것은 나이 적은 자는 아직 공부하게 하나 만일
나이 많은 자이면 의례히 다 병역에 편입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부득이하여 법령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니 만일 공전제도[田制]가 실시된다면 법령의 힘을 기다릴 것
없이 자연 해결될 것이다.

9\. 모든 교육과 학문의 과목은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이다. 이것을 모두 자기가 공부하여서 자신이 수양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방도이니 죄다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것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정자(程子)가 말한 바와 같이 그 도리는 반드시 윤리에 기본을 두어 사물의 이치를 명확히 알게 하며 그 교양은 소학의
소제하고 응답하는 데로부터 나아가 효도와 우애와 충성과 신의 등을 공부하며 예절과 음악을 이용하여 지도도 하고 격려도 하여 점차 인재를 성취시킨다는 것으로서 모두 순서가 있다. 그
요점은 옳은 방향에서 자기를 수양하여 세상을 교양 감화시키는 데 있으니 한 시골 사람으로서도 성인의 도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곧 이 말이며 근세에 숭상하는바 시부 잡문[詞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녹봉이나 따먹는 것과는 다르다.

10\. 학교의 교관은 옳은 도리를 자신이 직접 실천하여 선비들의 모범이 될 것이요 모든 학생의 공부하는 글에 대하여 날마다 과정을 정해주어서 그것을 감독하며[매일 교수할 것.]
닷새 만에 강을 받고 달마다 초하룻날 교관이[서울 사학(四學)에서는 교도(敎導)와 교수(敎授)가 다 모아서 할 것이요 지방의 주와 현의 학교에서는 장관[守令]도 역시 학교에 와서
참가할 것이다.] 모든 학생들을 인솔하고 공자 사당에 참배한 후 교육 강령을 낭독하며[절차는 교육 강령에 실려 있다.] 학생들을 시험치고[역시 보름날 시험친다. 모든
응시자[應講生]는 상, 중, 하로 나누어 대략 반 달 동안 배운 것을 표준으로 하여 상은 30장(張), 중은 20장, 하는 10장으로 정하여 그들의 읽은 책 중에서 그들의 읽은
데까지 본인이 표를 하게하며 아울러 찌[書圖]를 붙여 두게 한 후 그 속에서 추첨하여 시험을 친다. 그런데 만일 낙제한 자가 있으면 뜰 위에 내려 세우고 매 열 다섯 개를 친다.
교관이 매일 일과로 가르친 것. ― 일과로 가르친 과정을 돌아앉아서 외우게 한다. ― 이 외의 모든 시험에는 다 책을 보면서 그 뜻을 자세히 물을 것이다. 모든 수직 차례가 아닌
자도 역시 이상과 같이 찌를 붙여 두면 수직 당번 날에 그 찌를 참작하여 시험을 칠 것이요 만일 외출할 사고가 있을 때일지라도 역시 찌를 붙여 둘 것이다. 그리고 학술이 우수하여
과정을 차리지 않고 자습하는 자와 나이 35세 이상 된 자들은 찌를 붙이지 말고 다만 통독하는 데만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 통독하고 토론할 것이다.[보름날에도 이와 같이
한다. 대체로 초하룻날 공자 사당에 참배한 후 교육 강령을 낭독한다. 그리고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실시하는 시험과 통독에는 수직하는 사람들과 모든 재학생[在學者]도 다 참여할 것이며
사철의 첫 날에는 모든 수직 비번자도 일제히 함여할 것이다. 장관[守令]은 초하루 보름 외에도 역시 틈 있는 대로 자주 학교에 와서 교관과 함께 학생들을 격려할 것이나 초하룻날에
사고가 있어 오지 못하면 교관이 단독으로 진행할 것이다. 혹 교관이 사고가 있어서 장관이 단독으로 할 때라도 학생들에게 시험을 칠 때에는 장관이 반드시 학교로 직접 올 것이요
학생들로 하여금 관청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서울의 사학(四學)에서는 매월 초하룻날 그 학교 교관이 교대하여 학생들을 인솔하고 ― 그때 수직 당번생들에만 한한다. ― 태학에
가서 공자 사당에 참배한 후 강독할 것이다. 중학 및 경기도 영학[京營學]에서는 2월, 5월, 8월, 10월의 초하룻날에 두 학교의 학장[師長]이 교대하여 학생들을 인솔하고 태학에
가서 공자 사당에 참배한 후 강독할 것이다. 지방의 영학[外方監營所]이나 읍 학교[邑學]에서는 매월 초하룻날 모두 공자 사당에 참배하고 2월, 5월, 10월의 초하룻날 일제히 영문
학교[營學]에 가서 강독할 것이다.] 일 년 네 절기마다 한 번씩 글을 지으며[시(詩), 부(賦), 표(表)와 같은 것은 다 거둬 치우고 다만 경서(經書)의 해설이나 여러 학자들의
역사 평론이나 당시 시사 문제의 의견[時務策]으로 할 것이요. 혹 잠(箴), 명(銘) 같은 것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마당에다 늘어 세워서 지금의 과거장[科場] 중에서 하는 짓과
같이 해서는 안 된다. 한 문제를 낼 때마다 집에서 ― 혹 서재에서 ― 조용히 앉아 짓게 할 것이며 글체제는 제목에 맞도록 바로 해설하여야 할 것이며 신기한 재조를 부릴 것이
아니라 대략 동중서(董仲舒), 한퇴지(韓退之) 한퇴지(韓退之)：중국 당나라 때의 저명한 문장가 한유(韓愈). 퇴지는 그의 자.

,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같은 이의 문체를 본받을 것이다. 그리고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다. 해설문은 100자 이상, 논문은 300자 이상으로, 시사 문제의 의견은
600자만을 기준으로 하여 회의하는 날에 바치면 학장이 한꺼번에 모두 평론하되 그 중에서 잘못된 것은 불러서 가르쳐줄 것이요 다시 고하를 평정하여 잡문에 몰두하는 폐단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한 번씩 활 쏘는 법을 연습하여[대개 향사례(鄕射禮) 향사례(鄕射禮)：고을마다 큰 회합이 있을 때와 잔치 때에 거행하던 활 쏘는 의식.

에 의하여 그 식을 정할 것이다.] 한 번씩 글씨를 시험 볼 것이다.[초서(草書)는 그만두고 1인당 정자(正字) 100자 전자(篆字) 50자로 정하되 정자는 그 서체를
『홍무정운(洪武正韻)』 『홍무정운(洪武正韻)』：중국 명나라 태조 홍무 연간에 한자의 음을 중부 중국의 음으로 표준으로 하여 자의(字義)와 발음을 붙여서 만든 서적.

에 의하고 전자는 고문운률(古文韻律)에 의하여 정하게 썼다가 회의 때에 바치면 학장이 글 지은 것과 같이 평정할 것이다.]

소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학습하고 설명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대상인 진리를 똑똑히 이해하여 자기의 마음속에 깊이 인식시키고 자신을 수양하는 일로부터 집안 단속과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까지 연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옛적의 교육 방법은 덕행을 성취시키는 것도 있었고 재능을 능숙하게 하는 것도 있었고 질문의 응답에 능하게 하는 것도 있었으니
이것들은 다 상대자를 보아서 잘 개유하여 각각 그의 소질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때로 학생의 학업 정황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그의 정신을 배양함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에 대하여 또 "그 정도에 적절하게 지도하는 때를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요체는 선생 되는 이는 자체가 덕행을 구비하여 가지고 그때그때에 정황을 보아서 적당하게 지도하는 데
있다.

활을 쏘는 것은 육예(六藝) 중의 하나로서 옛날 임금들이 이것으로써 쏘는 자의 덕행을 살펴보고 선비[士者]를 선택하였으니 그 의미가 깊다 하겠다. 그러나 현재 선비[堵]라 하는
이들은 이 활 쏘는 것을 군인들의 할 일로만 여기고 조금이라도 선비[儒者]들도 해야 할 자기 일인 줄을 모르니 이것은 참으로 예절이 해이하고 교육이 쇠미해져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는 서울이나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 다 활 쏘는 행사를 실행[즉 위에서 말한바 매년 계절마다 한 번씩 실행하는 것이다.]할 것이며 또 기회가 있는 때이거나 혹 시험 본 끝에
모든 학생들의 활쏘기를 연습시킬 것이요 교관이나 장관[守令]도 역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이 좋다.

구준(丘濬)이 말하기를 "『의례(儀禮)』에 활 쏘는 종류는 세 가지가 있어서 대사(大射)와 빈사(賓射)와 연사(燕射)라고 하는바 천자(天子)와 제후(諸侯)와 경대부(卿大夫)가 다
이것을 실행하나 선비는 대사를 하지 않고 빈사와 연사를 실행했다. 삼대(三代) 이후로 활 쏘는 법이 폐지된 지 오래되었더니 오직 진(晋)나라 유량(庾亮)이 주(周)나라 제도에
의하여 실행하였다. 그리다가 明(명)나라 태조(太祖)가 처음으로 전국을 통일한 뒤에 옛사람이 학교에서 선비를 발택하던 제도를 회복하려 하다가 뜻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주, 부, 현(州府縣)의 학교에 명령하여 생원(生員)들이 매일 경서 공부를 끝낸 다음에 학교에다 활 쏘는 장소[射圃]를 하나 설치하고 학생에게 활 쏘는 법을 연습시켰다가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시험을 치게 하며 지방관들도 겨를이 있을 때에는 교관과 연합하여 활쏘기를 연습하게 하였다. 그리고 예부(禮部)에 명령하여 도식, 의주(圖式, 儀注 ;
그림과 설명서)를 정하게 하였으니 모두 여덟 조목이다. 첫째 사식(射式)이요, 둘째 수사곡(樹射鵠)이요, 셋째 치사위(置射位)요, 넷째 주사(主射)요, 다섯째 상주(賞酒)요,
여섯째 사사(司射)요, 일곱째 사기(射器)요, 여덟째 사직(射職)이요, 아홉째 사위(射位)요, 열째 의주(儀注)이다. 소위 사기(射器)란 것이 아홉이고 사직(射職)이란 것이
일곱이니 지금 전국에서 사포(射圃)를 모두 실시하고 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 장관이 공자 사당에 참배한 후 모든 학생의 강독을 참관한 뒤에 그 장소로 가서 활 쏘는 행사를
실행한다"고 하였다.

11\. 매년 봄과 가을에 서울에서는 사교(司敎)[즉 중학교의 학장]가, 지방에서는 감사(監司)가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감사가 반드시 직접 학교로 갈 것이니 만일 자기가 가지
않고 학생들을 관청으로 오게 하는 자가 있으면 중벌로 논할 것이다. 아래도 이에 준한다.] 그 곳 학교 교관들과 함께 모아 앉아[서울에서는 교도(敎導), 교수와 지방에서는 교관과
장관[守令]이 다 모아 앉을 것이다. 이하도 이에 준한다. 지방에서는 감사가 공자 사당에 참배한 후 함께 모아 앉을 것이다. 이하도 이에 준한다.] 교육 강령을 낭독한 후
학생들에게 시험으로 강을 받는다.[시험은 『소학(小學)』 『소학(小學)』：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희(朱熹)가 편찬한 유교류의 아동용 수신 교과서. 전 6권 5책.

), 『가례(家禮)』 중에서 한 책씩을, 사서(四書) 중에서 두 책씩을 추첨하여 정하며 또 『육경(六經)』 중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책 한 권과 『근사록(近思錄)』은 책을 보고
해답하게 하되 의미를 해명하지 못한 자는 매를 칠 것이다. 증광생(增廣生)은 『가례』와 『소학』 중에서 한 책과 ― 나이 20세 되지 못한 자에게는 자기의 희망에 의한다. ―
사서(四書) 중에서 두 책을 추첨하여 정할 것이다. 글 짓는 것은 그만둔다.] 그리고 서로 글을 읽기도 하고 토론도 하며 그 다음 날에는 또 활 쏘는 연습을 할 것이다.[이미 정한
의식과 같이 한다. 만일 사교(司敎)와 감사(監司)가 사고로 인하여 참석하지 못할 때에는 사도(司導)와 도사(都事)가 대리할 것이다. 이하도 이에 준한다. 모든 수직에서 퇴번한
자와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도 전부 참가시키는데 만일 무고히 불참한 자는 매 30개를 칠 것이다. 모든 활 쏘는 연습에는 모두 온 하루를 할 것이며 정숙하게 진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태학과 중학과 영학(營學)으로 승진한 자와 및 매일 출석하지 않는 자로서 지방의 관원[鄕官]이나 학교 선생[庠師]이나 군관에 임명된 자[將官者]와(원본에 결자가 있음)
나이 60세 이상 된 자는 모두 다 회의에 참여할 것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군관으로 되었던 자라도 다시 선비의 관을 쓰이고 강독에 참가시키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한다. 그것이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문관과 무관은 본래 둘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문교[文事]에 종사할 때에는 선비의 의관[冠巾]으로 차리고 군무[武事]에 종사할 때에는 군복을 입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교육이 글러서
방도를 잃었기 때문에 문관과 무관의 길이 서로 막히게 되었으니 이것은 말세의 한 폐단인 것이다. 근세에 와서는 선비라고 하는 자라도 한 번 무기를 잡게 되면 다시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은 못된 폐단 중에도 가장 못된 폐단인 것이다.

12\. 삼년마다[즉 식년(式年)484)이니 가을 순회 시험 때에 겸해서 시행하는 것이 좋다.] 서울에서는 사교(司敎)가, 지방에서는 감사가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그 곳 학교의
교관과 협의하여 교육 강령을 낭독하며 학생들의 시험을 친다.[내, 외사(內外舍)생과 수직을 면제한 학생들도 다 와서 시험을 볼 것인바 『소학』과 『가례(家禮)』 중에서 한 책과
사서(四書)와 육경(六經) 중에서 두 책씩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시험칠 것이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은 다른 서적 하나에 준한다. ―글을 짓는 것은 그만둘 것이다.
태학, 중학, 영학에 승진한 자와 및 향관(鄕官), 학교 선생[庠師], 군관에 임명된 자 ―이미 임명된 자로서 강독을 면제받은 자―와 또 나이 60세 이상 된 자에게는 다 낙제를
면제해준다. 모든 응시자로서 사고 없이 불참한 자는 낙제자로 간주한다. 만일 사고가 있어서 불참한 자는 추후에 시험관 있는 데 가서 시험을 칠 것이다.] 낙제자를 떼어버리되
학적에서 제적하고 병역에 편입시킬 것이다.[나이 20세 미달한 자에게는 다만 매만을 치고 학적에서 제적하지 말고 그들 중에서 양반 집의 장손이거나 종친 및 음사 관계가 있는 자는
다만 학적에서 제적하나 병역에 종사하지 말 것이요 그 중에서 충의(忠義), 충순(忠順) 위(衛)로 될 만한 자는 그 위에 복무하게 할 것이요 기타는 다 병역에 편입시킬 것이다. 혹
다른 사람을 보내어 대리 시험을 친 자는 양자를 다 제적하여 병역에 편입시키며 장의(掌議)와 유사(有司)로서 그를 잘 감독하지 못한 자도 역시 처벌할 것이다.]

13\. 삼년마다 9월에[자, 오, 묘, 유(子午卯酉)년에 즉 호적 하는 해와 동시에 사교(司敎)와 감사가 상급 학교에 선비 선발의 날짜를 미리 각 학교와 각 고을에 통지할
것이다. 대체로 기일이 되기 반년 전에 이조(吏曹)가 왕에게 보고하여 해당 기관으로 하여금 기일을 정한 후에 곧 중학과 영학에 공문을 발송할 것이다. 태학이나 관청으로 올라갈
때에도 다 이에 준하되 혹 본래 기일을 정해 둔 기일이 있다면 그대로 해도 좋을 것이다.] 큰 시험[大比]을 치는데 서울에서는 각 학교의 교관과 학장 및 부학장이, 지방에서는
장관[守令]과 교관이 학생들의 덕행과 학문과 재능을 심사하여 현명한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덕행 있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 하고 학문과 기예가 있는 사람을 재능 있는
사람이라 한다. 장관[守令]과 교관이 향약(鄕約)과 학칙[學規]에 규정된 덕업과 과실 및 학업의 우열에 대한 학생들의 평소 실적을 심사하여 일체 향리(鄕里)와 일반 학생들의 공론을
참작한 후에 다시 그의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검열하되 반드시 덕행이 향리에서 드러나고 경전[經術] 공부가 철저하며 재능이 출중한 세 가지를 위주로 한다. 이 심사에서
반드시 먼저 여러 사람의 공론 여하를 심사하나 최후의 결정은 학장과 부학장에게만 있다.] 중학과 영학에 승진할 사람을 결정하되 그 향리의 부형과 학생들을 모아 향음주(鄕飮酒)의
의례로써 훌륭하게 대접한 의식으로써 추천할 것이다.[그의 덕행과 학문과 기예의 사실을 평가하여 정한 양식대로 명백히 진술한 문건을 작성한다. 서울 사학(四學)에서는 중학으로, 각
주와 현 학교에서는 감영 학교[營學]로 승진할 것이다.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의례는 아래에 있다. 새로 추천받은 사람으로서 현명하고 재능 있는 자를 주빈으로 한다. 만일 두 사람
이상이 될 때에는 연령의 순서에 따라 다음의 자를 차석으로 또 3석[三賓]으로 할 것이다. 그러나 술이 취하여 주정을 하거나 창기를 데려다가 풍류에 흥성거린 자는 해당 관원을
중벌에 처할 것이다. 모든 대소 연회에서도 이에 준한다. 식을 마친 다음날에 문건을 가지고 관리와 함께 출발할 것이다. 서울 학교[京學]나 영문이 있는 읍학교[邑學] 외에는 다
여비 각 100문(文)씩을 줄 것이다. 그리고 100리마다 각각 100문을 가급하되 이것은 그 고을 경비[邑經費] 중에서 준다.]

대체로 학교에서 시험 보는 강독과 작문은 그의 언론과 의사를 심사하여 그 실력을 심사 격려하는 것을 기초로 할 뿐이요 오늘날의 과거장 중에서 글을 읽고 짓고 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선발하는 표준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 동시에 상급 학교로 승진하는 것은 평정할 때에도 문장에 구두를 띠는 것이나 문벌의 귀천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현명하고 재능 있는 실정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니 교육과 인물의 선발을 맡은 사람은 꼭 이 의의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14\. 추천장 서식[擧狀式]

어디 학생[지방에서는 아무 고을 학생[邑學生]이라고 할 것이다.] 성명 생 년 월 일.

무슨 직업 아무와 무슨 직업 아무가[혹 이름 대신에 자를 쓰기도 한다.] 금번 인물을 추천할 데 대한 문건을 삼가 올렸는바 그 문건에 이르기를 "…[그의 성품, 조행, 학술,
재능의 사실을 자세히 논술하되 응당 쓸 것만을 쓸 것이다.] 상부에 추천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하였으므로 아무 등이 감히 이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혹은 아무가 잘 알고 있는
이상 감히 추천 아니할 수 없다고도 한다.] 만일 이번 추천된 사람이 재능이나 학식이 보잘것없고 행동에서의 결함이 있을 때에는 잘못 추천한 죄를 달게 받겠다. 삼가 신청한다…"라고
한다.[만일 두 사람 이상을 추천할 때에는 한 장에다 연서할 것이요 꼭 각장으로 할 필요가 없다.]

연 월 일 무슨 직업 아무

무슨 직업 아무.

중학과 영학에 제출하는 추천장의 양식도 이와 같으며 태학과 정부에 승진할 것을 신청하는 서식도 이와 다 같으나 태학과 정부의 것은 '서식'을 '게본(啓本)'이라 하며 '추천하는
것이 적합하다'라는 문구를 고쳐서 '무슨 임무를 맡길 만하다'라고 하며 '만일 부임 후 그 행위가 탐오, 부패하거나 해이하고 문란하며 법령을 위반하고 백성에게 해독을 끼칠 때에는
그와 함께 벌을 달게 받겠다'라고 할 것이다. 태학에서 제출하는 서면에서도 추천자의 명단에 학장과 부학장 이하의 모든 교관들이 연서하며 후일 피추천자에 대한 책임을 학장 부학장이
담당한다. 모든 추천장은 중학, 영학, 태학과 정부의 해당 기관에 보관하여 후일의 참고로 한다.

만일 지방의 주(州)와 현(縣)에서 혹 추천할 만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그만둘 것이나 역시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 사유를 반드시 보고하여 실지 조사의 재료로 할 것이다.

15\. 사교(司敎)와 감사(監司)는 승진하여 온 선비들을 모아 중학과 영학에서 교육시킬 것인바 처음 와서는 사교와 감사가 함께 참석하여 시험을 치일 것이다.[중학에서는 사교와
사도(司導)가, 영학에서는 감사와 도사(都事)가 합석하여 진행할 것이다. 승진할 선비가 다 학교로 모아 시험치는 날에는 학교 문 밖에 자리를 마련하고 따로 관원 한 사람을 주관자로
정하여 승진하여 온 선비들을 접대하게 한다. ―주인이 손님 대우하는 예절로 대우하고 승진자들의 차림을 심사하며 또 문 밖의 소란을 금한다. ―시관[考官]이 강당에 나앉으면 선비들이
두 사람씩 짝이 되어 차례대로 들어오되 서쪽 뜰로부터 대청으로 올라와 수험자의 자리로 가서 절하고 앉는다. 시험 과목은 사서(四書) 중에서 두 책을 추첨하고 육경(六經) 중에서
본인이 희망한 세 책과 『근사록(近思錄)』으로 한다. 시험을 마치고는 사처로 나가서 기다리다가 시험이 끝난 뒤에 학장과 부학장이 대청에 나와 앉으면 수험생들은 학장의 첫 부임할
때의 절차와 같이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물러나와 그 학교의 재학생들과 서로 인사할 것이며 낙제자는 시험이 끝난 대로 돌아갈 것이다. 사교(司敎)와 감사는 시험을 시행한 상황과
명부를 자세히 꾸미어 왕에게 보고한다. 태학이나 정부기관에 승진될 때의 절차도 이와 같다.]

모든 중학과 영학에서는 관비로 보급하는 시설이 넉넉하고 깨끗하게 하니 다시 반을 짜지 말게 하며 혹 부모의 봉양과 부득이한 사고가 있는 자에게는 통학을 허가하는바[집에 가기를
희망하는 자는 학장에게 이유서를 제출해야 하는바 학장은 그의 시간과 거리를 참작하여 휴가를 넉넉히 줄 것이다.][춘추 공자 제향 때와 활 쏘는 연습이 있을 적에는 모든 휴가 중에
있는 자도 일제히 모을 것이요 만일 사고 없이 불참하거나 오랫동안 등교하지 않는 자는 경중에 따라서 책벌한다. 서울이나 감영에 있는 자나 본읍에 사는 자로서 초하루, 보름날의
시험에 사고 없이 불참하거나 또 석 달 동안에 재학이 15일 미만 되는 자는 그 사람의 종아리를 때리고 중하면 본인을 책벌할 것이다.] 닷새 만에 통독과 토론을 하며 매월
초하룻날에 교육 강령을 낭독하며 매년 봄, 가을, 여름, 겨울에 활 쏘는 시험과 글씨 쓰는 시험을 치는 것들은 모두 여러 학교에서 하는 예(例)와 같다. 춘추로 모아 앉아서 시험을
친다.[학장과 부학장이 반드시 다 모아 앉을 것이다. 시험은 『사서』 중에서 두 책을 추첨하고 『육경』 중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두 책과 『강목(綱目)』으로 한다. 대체 강목은
10권씩으로 할 것이니 ―즉 전책이 50권이니 5분의 1을 말한 것 ―1권에서 10권까지라든지 혹은 5권에서 15권까지란 것과 같다. 이하도 이에 준한다. 이것은 다 추천장 중에다
시험받을 책이름을 기재해 놓아야 한다.] 모든 승진된 선비 중에서 만일 학업에 진력하지 않고 행위가 허황하며 재능이 열등인 자가 있으면 추천받은 것을 취소하며 돌려보내고 왕에게
보고하여 그를 추천한 교관과 장관[守令] 및 추천한 교관을 책벌할 것이다.[대체 추천을 취소하고 돌려보내는 것은 시험에 낙제한 자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오래 두고 보아 잘못이
명백해진 뒤에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하도 이와 같다.]

감사와 도사(都事)는 정례 외에도 응당 틈이 있는 대로 자주 학교에 가서 강의도 하고 격려도 할 것이요 또 일이 없을 때와 혹은 밤 조용한 틈을 타서 차례로 3∼4명씩을
불러다가[대체로 여러 학생들을 모아놓고 강독을 시킬 때에는 반드시 학교로 직접 갈 것이요 여러 학생들을 관청으로 불러서는 안되지마는 이러한 때에는 예외이다.] 함께 학술을 토론도
하며 모든 신체와 품성에 관한 일과 윤리, 도덕으로부터 일상생활에 관계되는 일들이며 고금 역사상에 나타난 정황도 말해줄 것이요 지어 백성생활상 이익이나 해독이 있는 점과 풍속이나
정치상 방법들에 대해서 토론도 하고 비판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대, 소학교와 주와 현의 장관도 다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16\. 승진해 온 그 다음 해 가을에 사교와 감사가 사도(司導)와 도사와 함께 그들의 행동과 도덕 및 기예를 심사한 후에 그 중에서 또 현명하고 재능 있는 자를 선발하여 태학으로
승진하기를 결정하는 것은 다 이상의 법과 같이 하나 일층 자세히 선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예식에 의하여 존경한 예절로써 대우할
것이요[다 이상의 법례와 같다.] 그 학교에서 승진되지 못한 자는 그대로 감영 학교[營學]에 두어 교육시킬 것이다.[이 다음 식년(式年) 추천을 결정할 때에 신구(新舊)의 학생들을
합하여 함께 선택할 것이다.]

17\. 태학(太學)의 학장과 부학장은 승진한 선비들을 모아 교육시키는바 처음 왔을 때에 학생들을 모아 앉아 시험을 치일 것이다.[태학의 학장, 부학장 이하 모든 교관이 다 모아
앉아서 시험치는 것과 그 주빈으로 대접하는 것 및 입학하는 절차는 모두 이상의 것과 같다. 그러나 시험은 『사서(四書)』 중에서 두 책과 『육경(六經)』 중에서 세 책을 추첨하여
시행하고 낙제한 자는 추천을 취소하고 돌려보낼 것이다.] 대체로 태학에서는 관비로 보급하는 시설이 매우 넉넉하고도 주의 깊게 하므로[지금 태학에서 선비를 양성하는 규례가 자못
구비되었으니 그대로 하면 적당할 것이다.] 다시 반(番)을 나눌 것이 없고 혹 부모 봉양 및 부득이한 사고가 있는 자가 있으면 통학을 허가할 것이며 닷새 만에 통독, 토론하는 것,
매월 초하룻날 교육 강령을 낭독하는 것, 일 년에 네 번 활 쏘는 연습[射侯] 및 춘, 추의 시험은[반드시 학장 부학장 이하가 다 모아 앉을 것이다.] 모두 전례와 같다. 대체로
승진하여 온 선비 중에서 만일 학업이 조잡하고 조행이 문란하며 재능이 저열한 자가 있으면 그의 추천을 취소하여 돌려보내고 왕에게 보고하여 그를 추천한 중학교의 학장과 부학장 혹은
감사와 도사를 책벌에 처할 것이다. 일단 태학으로 승진하면 선사(選士)라 하며 그를 교육하는 방법은 더욱 엄하게 독려하여 완성된 인재로서의 덕행과 재능을 가질 수 있도록 책임을
다질 것이다.

18\. 매년 가을에 태학 학장과 부학장은 학생들의 덕행과 도덕 및 기예를 심사하여 그 중에서 또 현명하고 재능 있는 자를 선발한[역시 학생 동창들로 하여금 그의 도덕상 행동에
대한 노력 여부와 일반으로 칭찬을 받는가 않는가를 조사하게 하고 학장과 부학장이 다시 세밀하게 검사한 뒤에 품행이 단정하고 염치 있고 겸양하며 학업에 철저하고 정치상 방도를 통달한
자를 선발할 것이다.] 후 평정하여 왕에게 보고하여 정부에 추천한다. 그 방식은 모두 이상의 규례와 같이 하나 보다 정밀하게 선택할 것이며 학생들을 모아 향음주례의 예(禮)에
의하여 존경한 대우를 할 것이다.[역시 전례와 같다.] 혹 그 중에서 학업이 아직 크게 성숙되지 못한 자가 있으면 그대로 태학에 두고 교육시킬 것이다.[다음 번 다른 사람을 추천할
때에 함께 평정하여 선택한다.]

상고해 보건대 옛적에는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글을 왕에게 바치면 왕이 두 번 절하고 받았다 하였으니 이는 추천하는 제도를 존중히 하고 현명한 자를 존경하던 의미가
이같이 심오하고 실질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왕의 은덕에 고무되어 누구나 감히 함부로 천거하지 않았었다. 세상에 임금되는 이가 만일 이 의미를 알 것
같으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하는 것쯤은 손바닥 한 번 뒤집는 것과 같이 용이할 것이다.[임금이 두 번 절하고 받는다는 이 구절은 지금 감히 조목 중에다 그대로 바로
쓸 수는 없으나 임금이 이를 깊이 연구하여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일이다.]

19\. 정부에 승진된 선비에게 대해서는 왕이 대신과 공경 대시(公卿臺侍)에게 명령하여 궐내에 모아 앉아 시험을 치게 한다.[대신이 왕의 분부를 받고 책임자가 되어 정부의
당상관(堂上官)485) 1명과 육조(六曹)의 당상관 각 1명 ―대체로 당상관을 첫머리에 말하는 것은 만일 당상관이 사고가 있을 때에는 차석 당상관이 당상관의 임무를 대행한다는 것을
이름이다. 아래도 이와 같다. ―홍문관(弘文館)486), 사헌부(司憲府)487) 관원 각 1명씩이 궐내에 모아 앉는다. 그리고 그 선비를 영접하여 시험을 치는 범절은 앞에서 말한
규례와 같다. 궐문 밖에다 자리를 배설하고 예조(禮曹)의 사무관[郞官] 한 사람이 주관이 되어 그를 영접하여 시험장으로 안내한다. 시험에서 사용할 책은 태학의 예(例)와 같이 하되
『강목(綱目)』과 ―권수를 제한하지 않고 전 질(帙) 중에서 여덟 권을 내어 한 권에 한 장씩을 시험 본다. ―『대전(大典)』만을 첨가한다. 그리고 낙제자는 추천을 취소한다.]
정부에 추천되어 오면 진사(進士)로 되어[진사는 역시 왕에게 명단을 바치고 부본은 해당 기관에 보관만 할 것이며 지금 모양으로 방을 내걸지 말 것이다.] 본원(本院)에 들어가서
임명이 있기를 기다리게 한다.[본원은 즉 아래에서 말한 진사원(進士院)이니 한(漢)나라에서 선발된 선비를 삼서(三署)에 두어 궐내(闕內)의 숙직을 시키며 차례대로 불러서 등용하는
제도와 같은바 예식의 의복, 관 및 띠 띠는 차림으로 일을 보게 하며 봉급은 매월 쌀 4석[斛]씩을 준다.] 궐내의 숙직을 시키면서 왕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그의
실력을 세밀히 심사한다. 만일 그의 학업이 조잡하고 조행이 문란하며 재능이 보잘것없는 경우에는 그의 추천을 취소하여 돌려보내고 그를 추천한 태학의 학장과 부학장을 책벌할 것이다.

20\. 진사원(進士院)은[임시로 이런 명칭을 붙여 두고 이 다음에 결정하기를 기다린다. 진사원은 꼭 홍문관(弘文館) 근처에 두어야 한다.] 정부(政府)와 해당 조(曹)에서 이것을
영도할 것이다.[정부와 이조(吏曹), 병조(兵曹)의 당상관(堂上官)은 지금 소속 기관의 당상관과 같이 하고 당하관(堂下官)도 역시 소속 기관의 낭청(郞廳)과 같이 한다.]
진사(進士)는 어떤 관직도 맡지 않고 일정한 정원도 없으며[지금의 임시 관원[權知]과 같이 정원이 없으며 다만 승진된 선비로 대우한다. 진사원에는 서리(書吏) 2명, 하인 8명이며
진사 한 사람에게는 하인[小吏] 1명씩 줄 것이다.] 반(番)을 갈라 숙직하며[3반으로 나눌 것.] 춘, 하, 추, 동의 네 절기마다 경서를 강독하며[대신 ―수상(首相)이 유고하면
그 다음 가는 당상관이 대행한다. 이하도 이와 같다. ―과 정부의 당상관 1명, 이, 병, 예조(吏兵禮曹)의 당상관 각 1명, 홍문관의 관원 2명이 모아 앉아 글을 읽혀 보며 뜻을
토론한다.] 활 쏘는 법을 연습할 것이다. [왕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대신과 정부의 당상관 1명, 육조의 당상관 각 1명, 홍문관의 관원 1명씩 모아서 집행할 것이다. 살펴보건대
옛적에는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장차 제사를 지낼 일이 있을 때에는 활 쏘는 법을 보아서 선비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제후가 선비를 천자에게 추천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천자가 그를 활 쏘는 궁(宮)에서 시험하였는데 그의 자세가 예의에 적합하고 그의 행동이 음률에 합치하며 또 활을 쏘아서 많이 맞힌 자를 제사에 참여시키나 자세나 행동이 틀리고 또
활을 쏘아 적게 맞힌 자는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였던바 활 쏘는 것으로써 제사에 참여할 선비를 선택하는 것은 옛날의 제도였다. 지금도 역시 이에 준하여 사시(四時)의 제향(祭享)
때에는 전기(前期)해서 활 쏘는 제도를 실시하는 동시에 겸하여 인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활을 쏘는 의례는 옛날의 법을 참작해서 그 절차를 제정해야 한다. 혹
지금의 하는 대로 한다. 할지라도 대략 읍하고 겸양하고 서로 존경하는 절차를 표시하여 규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활 쏘는 법에 있어서 여러 패가 쏘기를 끝마친 후에는 우승한
사람들끼리 다시 시합을 할 것인바 이렇게 세 번 올려서 쏜 뒤에 그친다.] 왕이 조회를 받을 때에는 진사(進士)가 언제나 왕을 시위(侍衛)하며[당일 숙직 당번자만 시위한다.] 혹
번갈아 경연(經筵)에도 참여하고 혹 한가할 때에는 번갈아 왕의 질문에도 응대하며 제사 때에는 집사(執事)로 보내기도 할 것이다.[이렇게 하면 국왕을 시위하는 사람과 제사일에
협조하는 사람이 모두 충직하고 엄숙하고 겸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국왕이 그들을 불러서 무슨 일을 물을 때에 그들이 경서의 의미[經義], 학술, 정치상의 방도[治道], 당시의
급무[時務], 각 지방의 풍속, 민간의 좋고 나쁜 일들을 국왕에게 말할 수 있어서 대단히 유익하게 될 것이다. 인재를 관찰하는 방도가 모두 여기에 구비되었으니 이대로 실행하면 자연
대상자의 인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달을 경과한 뒤에[이렇게 하면 상부에 있는 자가 진사들의 인품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각 조(曹) 관리들과도 서로
접촉하여 친하게 될 것이므로 모두 그들의 재능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능과 학식의 등급을 토론 결정하여 그에게 적당한 관직을 임명할 것이다.[정부의 각
조(曹)에서는 진사들의 실지 소유한 도덕적 행동과 재능과 기술들에 따라 우열의 등급을 토론하여 결정한 다음에 국왕에게 보고하여 결정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우수한 자 몇 명을
선발하여 6품 이상의 관직을 임명하며 ―이것은 그때의 정황에 따라 적당하게 할 것이다. 즉 2∼3명 혹은 5∼6명을 5∼6품 관직에 임명할 것이나 만일 훌륭한 도덕적 인사가 있을
때에는 품직에 구애함이 없이 적당한 직위에 임명할 것이다. ―기타의 사람은 9품 이상으로부터 7품의 관직을 주어 대시(臺侍) 대시(臺侍)：사헌부(司憲府)의 벼슬아치로서
시종(侍從)으로 되는 일 또는 그렇게 된 벼슬아치를 가리키는 말. 지평(持平)이나 장령(掌令)이 그렇게 될 수 있음.

에 있게 할 것이다. 모든 관리와 서울 및 지방 학교의 일꾼과 주와 현군관 및 정치 인원들의 임명도 그들의 기능을 참작하여 의견서를 붙이고 또 임시 시험적으로 임용하는 제도를 두어
후일의 임명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모든 품계를 받는 것은 반드시 9품직으로부터 처음 시작한다. 만일 바로 5∼6품이나 7∼8품의 관직을 받을 자가 있더라도 시험적으로
맡겨보는[守職] 규정에 의하여 임명할 것이다. 기타 모든 품계를 따지지 않고 등용하는 자도 이와 같이 한다. 특별 등용자와 주와 현 및 향의 관리로서 급수에 따라 승진하는 자와
위사(衛士)로 승급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서울과 지방, 문, 무관직으로부터 9품에 이르기까지 이 계단을 밟지 않고 승진한 자는 벼슬을 주지 말아서 벼슬길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상고해 보면 만일 이렇게 하면 지금 사관(四館) 사관(四館)：조선시대에 있던 교서관(校書館), 예문관(藝文館), 성균관(成均館), 승정원(承政院)의 총칭.

에 있는 관리의 인원수도 응당 삭감해야 한다. 또 국가 법제[國典]에 "사복(司僕)이 국왕의 옆에서 시위(侍衛)하고 내금위(內禁衛)가 뜰 위에를 서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학교로부터 선발되어 온 진사(進士)로써 국왕을 시위하게 된 다음에는 이상의 사복 같은 것도 응당 폐지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부에 추천된 진사는 한(漢)나라 때에 책문(策問)490)으로 현명한 인재로 추천한 자를 선발하던 그 제도에 의하여 현 시기의 정치 문제로써 고찰하는 것이
대상자의 이론을 검토하고 재능을 심사하는 본의에 맞을 듯하다"고 한다. 옛날에 말한바 이론을 검토한다는 것은 글을 시험 친다는 것이 아니며 한(漢)나라에서 현명한 자에게 책문으로써
선발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나라를 다스리는 방안을 물어서 그 의견을 실제 정치에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문은 수재(秀才)나 효행이 있어서
추천된 자에게만 물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대부(大夫)가 된 자에게도 같이 책문에 응하였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점차 문장에만 힘쓰는 폐해가 생기게 되었으니 이것은 후한(後漢)의
중엽으로부터의 인재의 기풍과 문장에서 대강 볼 수 있다. 대체로 글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그의 글을 보면 그 사람의 학술이 정밀한지 조잡한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글짓기에다 정신을 쓰면 마음을 딴 데로 돌리게 되어 진실한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즉 조정에서 참으로 삶의 현명한 여부를 알려면 상당한 기간을 두고 그의
행사를 검토하고 그의 이론을 들어보면 행동하고 응대하는 동안에 다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니 하필 마당에다 늘어세우고 두루마리를 거두어 가지고 하루 동안에 지은 글을 곤아 보고야
자세히 알았다고 할 것인가? 지금 만일 책문(策問)으로 시험을 친다 하면 처음 배우는 후진들이 반드시 앞을 다투어 가면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건너 서로 등초해다가 남의 것을
모방하여 문자를 둘러맞추기로 일을 삼을 것이며 지방에서 추천하는 표준도 부나 책[賦策]과 같은 잡문[文詞]을 위주로 할 것이니 그 해독이 어찌 크지 않다고 할까? 만물을 육성하며
풍속과 교양의 근본을 맡은 자는 꼭 여기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 직접 시험치는 것을 본다는 것은 곧 태학에서 추천한 것을 믿을 수 없다 하여
몸소 시행해 보자는 것인바 이미 시험을 쳐서 좋다고 해 놓은 다음에는 그 사람이 비록 불미할지라도 어떻게 그를 추천한 자를 책망할 수 있겠는가? 실속이 있고 없는 사업이 여기에서
구분된다. 사회도덕의 발전 여하와 인재의 육성 여부가 이것을 중요 고리로 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정치의 본질을 아는 자이라면 반드시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또 말하기를
"그러면 주와 현의 학교에서 가끔 글을 지으라고 하는데 이것은 웬 까닭인가?"라고 한다. 그것은 형편이 좀 다르다. 대체 조정이란 중추기관으로서 상벌(賞罰)을 실시하는 법을
장악하고 있으며 사방에서 복종하는 기관이다. 조정에서는 오직 진실로 덕행 있는 자를 존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기관에서 사람을 채용하려 할 때나 일반 선비들의 지향하는 바도 모두 다
실력을 위주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州)와 현(縣)의 학장들에게 비록 가끔 글을 지으라고 하나 그것은 다만 배운 것을 제대로 발표할 수 있는 정도로 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으로서 해독으로 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영문 학교[營學]에서부터 이것을 금지하는 것은 저술의 폐습이 생길까 봐 그리한 것이다. 만일 조정에서 잡문으로 시험을 치게 된다면
사방에서 누구나 다 헛소리를 주어 모으기에 분주하여 글이 거짓말로 될 것이다. 그 결과 곧 한꺼번에 다 타락하게 되어 본 정신을 잃어버려 어느 틈에 재능을 망칠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될 것이니 거기서 어떻게 실질적인 인재를 고사한다고 말하겠는가?

21\. 태학과 중학의 학장 및 부학장, 사학(四學)의 교도(敎導)와 교수(敎授) 및 감사(監司), 도사(都事), 수령(守令), 교관(敎官)은 반드시 재직한 지 1년이 된 뒤에야
선비를 추천할 것이다.[학장과 부학장 중에서 한 사람이 만 1년이 되었을 때에는 한 사람의 기한이 1년이 못되었더라도 만 6개월 후에는 추천할 수 있다.] 선비를 추천할 기한 전
10개월 이내에 전직하게 된 자는 선비를 추천할 기일까지 그대로 재직한다.

22\. 대체로 사학(四學) 및 향학(鄕學)에 재학하는 자는 다만 3년이 된 후에 추천을 받을 수 있으며 중학, 영학 및 태학에 재학하는 자는 만 1년이 된 후에 추천을 받을 수
있다. 나이 40세 미만자로서는 조정에 선발되어 갈 수 없다.[태학에서 조정으로 선발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재능이 우수하고 행동이 특별한 자는 보통 규례에 구애될 것
없으며[학술과 행동이 특수하여 일반이 신복하는 자.] 비록 재학한 지 오래되지 않고 나이 40세 미만인 자라도 역시 수(數)를 채우는 때에는 평정하여 추천하며 재학자가 아니더라도
정원 외로 특별히 추천할 수도 있다.[재학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한 자는 추천장[擧狀] 중에다 그를 보통 규례에 의하지 않고 추천한다는 의견을 아울러 기록해야 하며 나이 40세
미만인 자도 역시 그렇게 한다. 재학하지 않은 자를 정원수 중에 넣어서 추천할 때에는 따로 평정하여 추천할 것이다. ―주와 현에서 승진할 자를 추천하지 않았더라도 만일 적당한
사람만 있다면 감사가 따로 평정하여 추천할 수 있으며 영학에서 승진할 자를 추천하지 못하였더라도 태학에서 역시 따로 평정하여 추천할 수 있다. ―모든 선발된 선비는 본 학교 및
상급 학교에서 다 그 명부를 보관하여 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적에는 40세가 되어 벼슬한다 하였으나 사람의 재분(才分)이 각각 다른 것이니 나이 많고 적은 것을 따질 것이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옛적에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가 많았지마는 후세에 와서는 60∼70세 되는 사람도 역시 드무니 꼭 옛 법만을 고수할 것도 아닐 듯하다"라고 한다. 그것은 옛적의 법을 고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을 꼭
현실에 적응하게 하자니까 옛사람들이 이미 먼저 좋은 것을 다 실행하였기 때문이다. 대체로 옛사람은 제도를 마련할 적에 모두 실정에 적합하게 하였으니 사물에 대한 법칙을 정통하게
이해한 자가 아니면 이런 것을 말할 수 없다. 대체 사람의 우매하고 총명한 정도가 같지 않고 정신의 지향하는 목표와 용기의 발전하는 방향이란 거개 일정한 진취와 안정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현도 역시 "마흔 살이 되면 외부의 사물로부터의 의혹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을 보아 나이 많고 적은 데 따라 보통 사람의 마음의 쏠리는 방향도 역시 각자가
다를 것이니 이것이 『예기(禮記)』에 이른바 '마흔 살이 되면 의지가 강하여 벼슬할 만하다'라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여기에서 말한바 추천을 평정하는 것은 본래 재능과 덕행을 보아
결정하는 것이요 또 재간과 행동이 특수한 자를 표준으로 하는 것인데 정상적인 규례를 준수하지 않고 그 말단인 것을 따를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자기의 재능이 미처 성취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하며 등용하는 시기를 놓칠까 봐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관직제도를 설정할 때에 일정한 인원의 관리를 두고 관직에 임용할 사람도 일정한 수가 있는
것이니 이리 하나 저리 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마찬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마흔 살에 벼슬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규례에 구속됨이 없이 발탁되는 자가 없지 않으며 나이 젊었을 때에
벼슬하기를 용허한다더라도 나이 젊어서 벼슬하는 자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마흔 살에 벼슬할 것이라고 정한다면 그 중에는 이 정상적인 규례의 제한을 받지 않는
자도 있겠지마는 세상 사람이 한창 젊을 때에 사욕을 추구할 데가 없어서 오직 착한 일을 행하기에만 정신을 쓸 것이므로 나이 들어가면서 도덕적인 인재로 성취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젊어서 벼슬하기를 용허하게 되면 실지 젊어서 벼슬하는 사람이 자연 적겠지마는 세상 사람들이 젊어서부터 바로 사리사욕을 찾기에 정신이 골몰하여 착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없게
될 것이므로 나이 들면서 점차 타락하고 말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착한 방향으로 전진하면 그 결과는 대단히 좋은 일이 많으나 사리사욕에 매달려 타락하게 되면 그 결과는 몹시 나쁜
일만 생기게 되는 것이다. 후세에 와서 나라의 정치와 재능과 학술이 옛적만 못하며 음험한 반란 사건이 많은 원인이 대개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후세에 오면서 사람을 너무 일찍이
등용한 것은 사람이 장수하지 못하다 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니 근본적으로 이것을 논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장수하지 못한 자가 많은 것은 자기의 신체가 이미 허약하게 되어
간다고 할 것이나 만일 사람의 마음을 무게 있고 정숙하게 가지며 풍속에 순박하게 바로잡아진다면 반드시 장수하는 자가 많아질 것이다.

23\. 수령(守令)과 교관으로서 선비를 추천하지 않는 자는 면직한다.[만일 선비를 추천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감사(監司)가 그의 이름을 왕에게 보고하며 왕은 그를 심문하라고
명령한다. 만일 사실상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추천하지 못하였다면 그대로 재직하면서 다음 일을 책임지울 것이며 기타의 이유라면 다 면직시킬 것이다. 서울에 있는 학교도 이와 같이
한다. 혹 적당한 인재가 없다 하더라도 함부로 수를 채워 추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십여 집 되는 작은 고을에도 반드시 진실하고 신망 있는 자가 있을 것이거늘 그래도 한 개의
군으로서 적당한 인재가 없다면 이것은 학교 교육이 발전되지 못한 탓일 것이니 교육 책임을 맡은 그 고을 수령(守令)과 교관의 실적 사정에 있어서 중 의상 이상의 평정을 용허하지 말
것이다. 그리고 만일 훌륭한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겨놓고 보고하지 않은 자에게는 특별히 어진 이를 숨긴 죄로써 그를 처벌할 것이다.]

24\. 잘못 추천한 자는 모두 면직시킬 것이며[그 정상이 용서할 만한 점이 있는 자는 1년 동안 봉급 5등을 내리고 기타의 것은 모두 면직시킬 것이다. 추천을 받은 자가 2명
이상이 될 때에는 각 1등을 가하나 죄는 제명하여 평민으로 되게 하는 데 그친다.] 개인적 정실 관계로 인하여 고의로 추천한 자는 기만죄로 논할 것이다.[이것은 추천할 만한 자격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사욕을 부렸거나 상대자의 권력만을 보고 고의로 추천한 자를 말한다. 만일 피추천자가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자라면 설사 부형이 자기의 자제를 추천하였더라도
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교관과 수령은 사교(司敎)와 감사가 죄를 주며 사교와 감사는 태학(太學)에서 죄를 준다. 만일 태학에서 과오가 있으면 물론 조정에서도 자체가 죄를
논하여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전일에 어떤 죄가 있어서 용서를 받았거나 철직을 당한 자라도 그가 현명한 인재를 추천하였다면 모든 것을 전부 불문에 붙이고 특별히 표창하며 발탁하여
등용한다. [혹 상도 주고 품직을 올리기도 하며 벼슬을 주기도 하되 그 크고 작은 범위는 정도에 따라 적당히 정할 것이다. 모든 상(賞), 벌(罰)을 평정할 때에는 무능하고 무식한
자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한동안 겪어 보아 현명한 여부가 똑똑히 나타난 뒤에 실시할 것이다. 비록 추천한 사람이 죽었더라도 응당 관직을 삭탈할 자는 생전의 관직을 삭탈하고 응당
관직을 승급할 자는 죽었더라도 승급시키며 시호[諡]가 있는 자는 그의 선악에 따라 역시 고칠 것이다.]

25\. 만일 자년(子年)이 식년(式年)이라면 자년(子年)의 가을에 사학(四學)과 주와 현에서 선비를 중학과 영학으로 진급시키고 축년(丑年)에는 중학과 영학에서 태학으로 진급시키며
인년(寅年)에는 태학에서 조정으로 승진시킬 것이다.[택학에는 매년 승진할 자를 평정한다.] 그리고 또 그 다음 해를 식년으로 한다.

26\. 3년마다 서울과 지방에서 승진한 선사(選士) 선사(選士)：중국 주나라 때 향(鄕)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사도(司徒; 예부와 같음)에게 추천한 선비.

의 정원은 150명이요 매년 조정으로 승진될 자의 정원은 35명으로 한다.

상고해 보면 우리나라의 중앙이나 지방의 정식 관리[正官]가 1품에서 9품까지인데 동, 서반을 합하여 대략 900여 명이 된다. 대체 선비들이 40세를 전후하여 취직하여 70세
전후에 휴직한다 하면 대개 30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사이에 또 장수하는 이와 일찍이 죽는 자도 있을 것이며 부모 초상을 당했거나 병에 걸렸거나 기타 허다한 사고도 없지 않을
것이므로 그 중간의 숫자를 가지고 계산하면 대략 20여 년에 불과할 것이니 새로 취직한 자와 휴직한 자와의 인수도 이와 상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매년 새로 취직한 자가
35명이라면 20여 년 후에는 그 누계가 곧 700여 인이 될 것이므로 700여 관직에 충당할 수 있고 기타는 특별히 추천된 사람과[즉 지방에서 추천한 선비[貢擧]와 정부의 3품
이상이 공론으로 추천하는 자[公薦]들이다.] 주와 현의 향관(鄕官)으로서 발탁된 자와[정부에서 공식으로 추천한 자 중에는 이전의 재직 여부를 막론할 것이며 주와 현의 향관들 중에도
이미 추천을 받았던 자와 전일 관직을 지낸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무과에 선발되어 승진된 사람들을 채용해서 보충해야 한다.[의(醫), 역(譯), 산(算), 율(律), 잡(雜)
등의 과거에 급제한 사람[擧人]도 이 중에 속하나 그것은 소속 기관[衙門]에서 선발하여 쓴다.] ―만일 관직의 수에 대하여 가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것도 역시 적당히 가감하여
정할 것이다.

27\. 선사(選士)의 정원이 150명이라면 거기서 항상 1배 반을 가한 225명을 중학과 각 도(道) 영학에서 올리는 선사수로 정할 것이나[사학(四學) 및 주와 현의 학교에서
승진하여 올 인수이다.] 모두 그 지방 호구의 다소와 학생 수의 다소에 따라 구분하여 정할 것이다.[만일 태학의 선사 정원 150명 중에서 3년마다 105명씩을 선발하여 조정에로
승진한다면 남은 인원이 45명인바 일곱 번 식년 즉 21년 동안에는 남은 인원의 누계가 315명이 된다. 승진할 사람을 평정할 때에 신구를 합한다면 그 465명 내에서 승진하여 갈
사람이 105명으로 될 것이다. ―24년 후에는 새 취임자와 구관 휴직자의 수가 거의 이와 같을 것이다. ―또 중학 및 각 도의 영학 학생 합계 225명 내에서 식년마다 105명씩
태학으로 승진하면 남는 인원이 75명이니 7식년(式年) 간 남은 인원의 누계가 525명으로 된다. 신구를 합하여 그 중에서 올라갈 사람을 평정하면 675명 중에서 150명이
올라가게 되니 이것이 선사이다. 이상은 모두 호구의 다소와 학생 정원수의 다소를 참작하여 각 도에 배정하고 각 도에서는 이것을 또 각 고을[邑]에 배정한 것이다. 한(漢)나라
법에는 효렴(孝廉) 있는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지방 인구 20만 명 이상인 군(郡)에서는 매년 1명씩을 추천하고 40만 명 이상에는 2명씩을, 60만 명에는 3명씩 추천하나 20만
명 미만에는 2년에 1명씩을 10만 명 미만에는 2년에 1명씩을 추천하였다. 지금도 역시 이 표준에 의하여 대략 2∼3만 혹 4∼5만 명을 1단위로 정하여 1단위 이상이 될 때마다
1식년(式年)에 1명씩 2단위 이상에는 2명씩, 혹 3식년에 2명씩으로 하고 호적면에 실린 인구수를 계산하여 학생의 실지 정원을 참작한 후 이상 표준에 의하여 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각 도의 호구 숫자는 현재 자세히 알 수 없으니 지금의 향시(鄕試) 향시(鄕試)：왕조 때, 각 도에서 관내의 선비들에게 보이던 초시(初試).

) 정원으로 배정한 인수를 표준으로 하여 당분간 그대로 할 것이다. ―만일 배정한 수가 너무 적으면 감사(監司)가 이것을 골라 정할 수가 없을 뿐더러 각 고을에 수를 배정하기도
곤란할 것이요 너무 많으면 함부로 처리하여 선택하는 것이 더러 정밀하지 못할 것이다. 또 식년(式年)이 지난 후 남는 인원이 많아 지방에서 도덕적 행동을 실천하는 선비가 많이
적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절충하여 1배 반의 수로 정하였으나 다시 정황을 참작하여 적당하게 정할 것이다.]

선사(選士) 150명을 각 도에 분배하는 비율.

중학 8명인데 12명을 단위로 하여 사학(四學)에다 배정.

경기도(京畿道) 18명인데 27명을 단위로 하여 주(州)와 현에다 배정.

충청도(忠淸道) 20명인데 30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縣)에다 배정.

전라도(全羅道) 22명인데 33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에다 배정.

경상도(慶尙道) 28[혹 29]명인데 42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에다 배정.

강원도(江原道) 14[혹 10]명인데 21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에다 배정.

평안도(平安道) 16명인데 24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에다 배정.

황해도(黃海道) 11명인데 18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에다 배정.

함경도(咸鏡道) 12명인데 18명을 단위로 하여 주와 현에다 배정.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충청도(忠淸道) 영학(營學)에로 승진할 30명인데 거기서 태학에로 올라갈 자가 20명이니 남는 자가 10명이 되므로 남는 자의 7식년(式年) 간의 누계가
70명으로 된다. 승진할 사람을 평정할 때에 신, 구를 합친다면 100명 내에 승진할 자가 20명으로 된다. 또 경상도 42명 내에 태학으로 승진될 자가 28명이면 남는 자가
14명이 되므로 남는 자의 7식년간의 누계가 98명으로 되니 신, 구 합쳐서 140명 내에 승진될 자가 28명으로 된다. 또 황해도 18명 내에 태학으로 승진할 자가 11명이라면
남는 자가 6명으로 되며 남는 자의 7식년간의 누계가 42명으로 될 것이니 신, 구 합하여 60명 내에 승진될 자가 12명으로 된다. 이것이 그 대략의 숫자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그만두고 가는 자도 없지 않을 것이며 또 특별히 추천된 사람 및 향관(鄕官)으로서 발탁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지 않고 특별 추천되는 자는 이 속에 넣지
않는다.

이것을 현재의 과거 정원[科額]에 비하면 너무 적은 듯하나 그러나 지금 과거의 정원은 본래 서울에 배정된 정원수가 턱없이 많아서 그것을 근거로 하여 표준으로 할 수 없다. 이상에
정한 숫자를 만일 옛날 실시하였던 서울의 정원에 비해 본다면 이것도 역시 많은 편이다.

학교가 아직 설치되지 않은 동안에는 아직 서북 두 지방에서 각 2명씩을 감하여 서울 학교[京學]에 첨가해 두었다가 5∼6년 후에 서북의 주와 현의 학교가 설치되기를 기다려서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 서북(西北)지방 사람[浮客]들이 각각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 본래 정한 수에 의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서울에 우거하고 있는 사람[浮居]들이 비록 각각 고향으로 돌아갈지라도 서울은 인구가 많아서 그것이 지방의 큰 도시[大府]보다 십 배 뿐만 아닐 것이니
학교를 설치한 후에 서북의 정원 4명을 비록 자기의 지방으로 돌려보낸다 할지라도 서울에 있는 정원을 주려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대개 지금 사람을 등용할 적에 각처의
현명한 인재를 공론에 의하여 추천하지 않고 다만 정실 관계에 의하여 자기에게 가까운 양반만을 채용하게 된 까닭이다. 그것이 다 서울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습관이 된 것이니 만일
지금의 이 폐단을 고치면 자연 바로잡아질 것이니 어찌 이 지경까지에야 이르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대개 호구의 실지 숫자에 있는 문제인 것이다. 만일 서울이나 지방에서의 거주가
안정된 뒤라면 서울 사람의 인구도 유생의 정원[儒額]으로 차등을 둔 본 숫자보다도 더 많을 것이므로 그대로 두어 주리지 말고 사학(四學)의 학생 정원도 증가하여 120명으로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 식년(式年)문과 정원수 33명인데 초시(初試) 240명이다. 그 내용은

태학관(太學館) 초시 51명

한성시(漢城試) 초시 40명

경기도(京畿道) 초시 23명

충청도(忠淸道) 초시 23명

전라도(全羅道) 초시 25명

경상도 초시 30명

강원도 초시 15명

평안도 초시 15명

황해도 초시 10명

함경도 초시 10명이다.

현재 생원(生員), 진사(進士) 수가 각각 100명인데

초시(初試)가 각각 700명이다. 그 내용은

한성시 초시 각 200명

경기도 초시 각 60명

충청도 초시 각 90명

전라도 초시 각 90명

경상도 초시 각 100명

강원도 초시 각 45명

평안도 초시 각 45명

황해도 초시 각 35명

함경도 초시 각 35명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주와 현에서 선발될 선비를 각각 정원으로 배정한다면 혹 이 고을에서 선발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자의 수를 다른 고을에서 선발될 자의 수에다 더 주는 폐단이
없지 아니할까?"라고 한다. 주와 현의 구획이 이미 그 정도에 맞게 하였고[주와 군(郡)과 현이 본래 농민의 다소를 참작하여 정한 것이다.] 승진할 선비의 정원은 모두 호구의
다소와 학생 정원의 실지 숫자를 참작하여 차등을 보아 정한 것이니 자연 고르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이 그 사이에 인재의 많고 적은 차이가 없지 아니할 것이나 이것은 풍속과 교육을
맡은 사람에게 책임을 지울 뿐인 것이다.[혹 그 지방의 산천의 수려 여하와 개발 여하는 이미 그 지형의 정황에 따라 주와 현을 만들어서 지리적 조건이 좋은 곳은 자연 큰
고을[大邑]로 되었다. 교육을 시키면 인간의 차등이 없게 된다 하였으니 만일 국가에서 규율을 세우고 교육을 실시하여 잘 감화시키면 어느 지방이 착한 방향으로 발전되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현수하여 어느 지방은 백 명까지 선발되어 승진하게 되는 데도 있다. 이것은 지금의 실정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 역시 토지제도[田制]가 허물어지면서 강한
자가 더 강해지고 약한 자가 더 약해진 이유와 같은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교육과 감화를 시키더라도 결국 유익이 없게 된다면 무엇 때문에 학교를 설치하며 선생을 모시게
되겠는가?] 그리고 각 고을에서 선발되어 승진한 자들 중에는 혹 우열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남아 있는 사람과 새로 승진한 자를 합하여 신, 구를 한꺼번에 평정하여
우수한 자를 태학으로 승진시킬 것이니 태학에서는 그 중에서 우수한 자를 모두 얻게 될 것이며 태학에서도 이렇게 하여 추천하면 조정에서는 그 중에서 우수한 자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조정에서 채용한 자는 다 우수한 인재로서 결국 인재가 많은 지방에는 자연 등용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니 어찌 인재가 누락될 걱정이 있겠는가? 만일 그것이 고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 그 수를 정하지 아니한다면 법이 법답지 못하여 장차 그 폐단을 수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옛날에는 제후(諸侯)국의 공사(貢士) 공사(貢士)：중국 봉건시대 지방에서
인재를 선발하여 국왕에게 추천하던 것.

제도가 있었는데 큰 나라에서는 3명, 그 다음 나라에서는 2명, 작은 나라에서는 1명씩이었다. 그리고 그 공사(貢士)를 선발할 때에 자격이 동등한 자가 있으면 활 쏘는 법으로써
등급을 정한다 하였으니 그때에도 일정한 수가 있었던 것을 알 만하다. 한(漢)나라 때에도 지방에서 선비를 추천할 적에 역시 호구에 따라 그 수를 결정한다 하고 다른 말은 없다.
지금 과거에도 서울 및 각 도의 급제자에 대하여 일정한 정원이 있었으니 예나 이제나 사람을 채용할 때에 그 채용하는 방법이 다르지마는 그 수를 제한하는 것은 변경할 수 없게
되었다.[일찍이 중국 사람의 평론한 것을 보았는데 "남방은 문화가 발전되었기 때문에 과거에서 남방 사람의 급제자가 많으나 북방에는 유능한 인재가 누락되는 일이 있으니 기본 정원을
나누어서 남방과 북방 사람을 갈라서 체용하자"고 요청한 자가 있었다. 이것은 중국에서도 과거법[科法]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 가진 자가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설사 기본 정원 외에
특히 가감할 것을 허용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한 때의 임시조치일 것이요 기본 법령으로 해서는 안 된다.

28\. 모든 일은 똑똑히 관찰하여 의혹이 없게 하는 것이 주요하고 또 순서를 찾아서 처리해야 한다. 국가에서 선비를 교양시키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후세에 와서는 일반 경향이
모두 다 이(利)끝만을 따져서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그러므로 약간 재능이 있는 선비들도 앞을 다투어 조잡한 소리로 부화한 글장이나 지어서 한때의 요행수를 얻으려 하여
사람의 만단 정력을 전혀 여기에 경주하고 있다. 때문에 명색 공부를 했다고는 하나 실상 경서(經書)의 뜻은 반 구설도 모르며 또 등용되어 요직에 있는 자들은 다 서울에서 세력 있는
집 자식들이므로 시골 사람은 불평을 품고 자신이 자기를 포기한 결과 이름은 학생이라고 하지마는 글자를 모르는 자가 역시 많다. 지금 만일 그렇다 하여 갑자기 법에 의하여 죄다
병역에다 몰아넣는다면 일반의 불평을 야기 시킬 뿐만 아니라 실로 백성들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는 것과 같다. 그런즉 이 법을 실행하기 전에 두어 해 앞당겨 왕이 친히 백성들이 믿을
만한 명령을 내려 그에 관한 세칙을 발포하여 사람마다 왕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분명히 알게 하는 동시에 그들을 고무 격려시켜야 한다. 또 감사(監司)와 도사(道事)를 선택하여
두서너 번 순회하면서 상벌(賞罰)의 대상자를 고사한 후에야 범령을 실시하고 한결같이 준수하여 동요가 없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지금 서북지방은 더욱 미개하여 문자 아는 자가
없으니 따로 관대하게 처리하여 교육사업이 발전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학문에 뜻을 둔 선비가 없지 않으며 혹 시골에도 꾸준히 공부하고 행동을 얌전하게 갖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대개 다 퇴짜를 맞아 타락되어 있으니 인재추천제도를 실시하는 초기에는 한 식년(式年)만을 한하여 주와 현에서 추천하는 선비를 보통 정원 외에 적당 인수를 가하여
관직을 임명하기도 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29\. 허황한 잡문으로 보는 과거를 개혁하며 난잡한 희학질을 엄금할 것이다.[일단 과거를 혁파하고 인재추천제도[貢擧]를 실시한다면 지금까지 해 오던 나쁜 희학질을 하여 인심을
타락시키고 사회의 도덕적 교양을 부패케 하던 것도 자연 제거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된 습속이라 사람들의 이목에 젖어졌으므로 역시 금지하는 법적 조항을 엄하게 세워야 될
것이다. 대체 선비가 처음 출신하여 부임하게 되면 더욱 명념하여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연구하기에 진력해야 할 것이요 광대를 데리고 회학질을 하면서 거리를 떠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선배들도 역시 후진을 점잖게 대하여 희생적 정신으로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사랑하는 뜻으로써 격려할 것이요 함부로 농담을 하거나 추잡하고 기괴한 작란을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첫 급제자를 신래(新來)라 하여 의례히 광대를 불러다가 풍악을 잡히고 사흘 동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놀며 또 연회[慶宴]를 베풀어 축하 연회라 하여
광대 배우와 꼭두각시 같은 놀음을 성대하게 떠벌린다. 선배들로서 그 연회에 참여한 자들도 반드시 그 놀음에 같이 참가하여 지어 새 짐승의 형용을 꾸미어 해괴망측한 짓을 시켜 놓고
서로 함께 오락을 하니 이것은 바로 오랑캐로부터 전해온 풍속을 아직 고치지 못한 것이다. 만일 인재로 추천 뒤에도 혹 전 버릇을 고치지 않고 광대, 배우 등을 불러 축하연을 베풀고
오락을 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그에 참가한 선배를 제명하고 신래(新來)를 부른 출신자에 대하여도 그 추천한 것을 취소하며 그 집의 어른 된 자에게도 역시 같은 벌을 줄 것이다.
나라에서 꽃을 주고 풍악을 주는 것으로 말하면 본래 당(唐)나라 명황(明皇)이 질탕 유희로써 국민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이니 그 따위 짓을 일체 혁파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연회를 베풀고 헛튼 장난을 한 것은 본래 불가하나 자식으로서의 부모에게 영광을 보이기 위한 것이니 무방할 듯하다"라고 한다. 제 자신을 위한 것이나 부모를 위한
것이 본래 두 가지 일이 아니며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나 부모를 섬기는 것이 역시 두 가지 일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절차는 1년에 네 철마다 잔치도 하고 제사도 지내는
예절이 본래 『예기』에 실려 있으니 어찌 급제한 것을 자신이 경사로 하여 연회를 베풀고 풍악을 잡혀 오락하면서 축하연[慶宴]이라고 한 뒤에야 부모를 섬기는 도리라고 할까? 만일
그렇다면 급제한 것이나 벼슬이 올라간 것이나 그것이 다르지 않는바 혹 지방 장관[州牧]으로 가거나 재상[卿相]으로 올라갈 때에도 반드시 이렇게 축하연을 베풀어 그 올라가는 것을
요행으로 여기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할까? 지금은 첫 급제한 자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7품 이하의 하급 관리가 승문원(承文院; 중국과의 내왕하는 문서를 맡은
곳)과 한림(翰林) 한림(翰林)：조선시대 예문관(藝文館)에 있던 검열(檢閱), 봉교(奉敎), 대교(待敎) 등 관직의 총칭.

과 같은 청직[淸選]에 등용될 때에도 역시 신래(新來)놀음을 놀리면서 주식(酒食)을 토색하며 선전관(宣傳官) 선전관(宣傳官)：조선시대 선전관청(宣傳官廳)에서 국왕의 시위와 명령
전달 등 직무를 맡아보던 관직명.

감찰(監察)로부터 대소 백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식을 토색해 먹은 뒤에야 앉기를 허락한다. 조정의 풍기가 이미 이러하니 하인들도 그 본을 받아 서리(書吏)로부터 군졸에 이르기까지
그 폐단이 더욱 심하다. 지어 지방의 향교 유생(鄕校儒生)들의 새로 들어오는 자에게도 주식을 토색해 먹고야 참여하게 하며 혹은 포목을 바치라 하여 이것을 '신래값[新入價]'이라
한다. 이렇게 습속으로 된 폐단이란 가는 데마다 한심거리로 되니 그것들을 일체로 엄금하여 나쁜 풍습을 변경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는 소위 선배로서 좌석에
앉아 있는 자와 과거에 새로 급제하여 그대로 추종한 자는 그가 문관이거나 무관, 고급 관리이거나 저급 관리임을 불문하고 전부 관직을 취소한 것이며 대간(臺諫)과 지방 장관으로서
그를 보고 시정하지 못한 자에 대하여도 역시 중죄를 줄 것이다.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과거의 폐단에 대해서는 이전 선생들이 철저하게 평론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고치기는 곤란하니 혹 현량과(賢良科)
현량과(賢良科)：중국 한(漢)ㆍ당(唐)시대 인재선발을 위한 과거 종목의 하나.

로 하면 과거의 이름을 변경하지 않고도 현명한 사람을 등용할 실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떠한가?"라고 한다. 기묘사류(己卯士類) 기묘사류(己卯士類)：조선 제11대 왕 중종
14년(1519)에 홍경주(洪景舟)ㆍ남곤(南袞)ㆍ심정(沈貞) 등이 조광조(趙光祖)ㆍ김정(金淨)ㆍ이자(李耔) 등 수십명을 당파로 몰아 죽였는데 이것을 '기묘사화'라 하며 당시 그
사화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기묘사류라 함.

도 역시 부득이 그렇게 실행해 보았다. 그러나 유서봉우(柳西峯藕) 유서봉우(柳西峯藕)：조선 중종(中宗) 때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제자로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있은
후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력하여 『주역』에 능통하였으며 천문, 음악, 서화, 복서에까지 정통했던 사람. 서봉은 그의 호.

도 역시 그것이 구차하다고 말하였다. 모든 일은 제도와 실제가 꼭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이니 세상에 다른 이름을 빌려 가지고 끝까지 그 일을 성공하는 예가 없다. 만일 임금이 학문에
밝고 의지가 확정된다면 꼭 꾸준히 단행하여 자연 실질적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거늘 무엇이 성가셔서 불충분한 이름에 의존하여 성공하기를 희망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시(庭試)499)와 알성(謁聖)500) 과거는 임금이 직접 시험 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것은 폐해가 혹 없지 않을까?"라고 한다. 소위 정시나 알성과도
역시 책임 관리에게 명령하여 불을 켠 초에 금을 그어 시간을 제한해 놓고 시험을 보는바 그 시험하는 것이 짝을 맞추어 짓는 잡문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잠시 동안에 급제와 낙제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속담에 "정시나 알성과는 소경도 한 번 쳐 본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역시 다 시험 보기를 경쟁하는바 거기에 채용된 자는 거의 다 경박하고
까땍수를 바라는 축들로서 더욱 가소롭다. 지어 허망한 소리로 글을 지어 더욱 문자 상의 해독을 끼치게 되는 일까지 있으니 사람의 심리를 못 쓰게 만드는 점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을
것이다. 임금이 태학을 순시할 적에는 꼭 학식 있는 선비를 불러다가 경전에 관한 학문을 토론하며 정치상 방도들을 물어 장차 발탁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할 것이요 사람을 경솔하고
염치없는 기풍으로 유도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의례히 과거를 특별히 뵈이는바 이것은 어떠한가?"라고 한다. 과거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장차 인재를 얻어 나라를 다스리려는
것이니 경사의 유무가 과거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것은 경사가 있을 때에 죄수를 사하고 품계를 올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니[후세에 와서 임금들이 경사가 있으면 의례히 전국의
죄수에게 대사(大赦)를 실시하며 백관의 품계를 올려준다.] 이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대체 인심이 부동하고 풍속이 박해지며 하부에서도 내용이 공허한 잡문만을 종사하여 그것이
날로 졸렬하고 낮은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은 모두 이 과거가 빚어낸 폐단이니 일체 혁파할 것을 법령으로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태평한 날이 없어서 만년을 지내어도
암흑세계와 같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방에서 인재를 추천해 올리는 것은 진실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을 채용할 때에 이미 글로써 하지 않고 또 문장력[詞表之類]으로 하는 것을 전폐한다면
중국과의 외교 문건에 있어서 의사를 잘 표시하지 못할 폐단이 없지 아니할까?"라고 한다. 세상일은 언제나 실천적 행동이 부족한 데서 걱정이 생기고 말이 부족한 데서 걱정이 생기지
않으며 언제나 실질이 부족한 데서 걱정이 생기고 외식적으로 발라맞추는 것이 부족한 데서 걱정이 생기지 않는다. 후세에 와서 실질상 도덕이 상실된 것은 부허한 문장에만 매어 달리기
때문이다. 문장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것이 본래 너무 화려한 것을 염려해야 하고 부족한 것을 염려해서는 안 된다. 가사 문학[文詞]만을 주중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러나 현재의 문장을
평론한다면 날이 갈수록 더욱 졸렬하고 산만하여 구절이 순서를 잃어버려서 말이 의사를 충분히 발표하지 못하게 된 것은 모두 과거에서 온 해독이다. 만일 이야기를 만들어 외우는 자료로
하거나[지금 강경[明經] 급제를 공부하는 자들이 책마다 각 장, 각 줄에서의 한 자씩 따다가 그것을 추잡하고 우스워서 기억하기 쉬운 속어로 만들어서 성령(聖令)이라고 한다. 만일
이것에 숙달되면 그 장이나 그 줄에 관한 의심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지마는 그 뜻을 대라면 아주 캄캄하고 있다.] 글구를 따서 글짓는 자료로 하는[지금 제술(製述) 과거를
공부하는 자들은 경서(經書)나 『사기(史記)』에 있는 문자와 숙어들을 따다가 그 문자의 대구나 거기에 근사한 문자들을 가지고 부문별로 분류해 둔 것을 밑천으로 하여 뜯어 붙여서
유초(類抄)라고 한다. 만일 이것만을 보면 과제를 따라 마디마디 뜯어다 발라맞출 수는 있으나 원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폐습을 없앨 것 같으면 세상의 글이 많아져서
상소문이나 조칙도 역시 장차 진실하고 정중하게 되며 위로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 사람에게 일러주는 문장들도 다 신심을 가지고 일반 백성을 설복하게 될 것이며 오늘날의 실시하고 있는
그것과는 천양의 차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덕행이 높은 사람의 글은 신명과 인간을 감동시키고 세상의 모범으로 될 수 있는바 이것은 도덕이 고명한 학자 손에서 나오는 것이며 결코
과거 공부하는 선비 축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법대로 하면 주와 현(州縣)에서는 인재를 도로 올려 보내고 도에서는 태학으로 올려 보내고 태학에서는 정부로 올려 보내는 것이 각각 연한이 있으며 또
정부로 올라간 후에도 곧 실제의 관직을 주지 않으니 이렇다면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너무 늦어지는 폐단이 없지 아니할까?" 한다. 일명(一命) 일명(一命)：중국 주나라 때의 관제로서
9명(九命; 아홉 가지 품계) 중의 제일 낮은 품계.

이상은 다 하늘이 정해준 본직이니 만일 하나라도 나쁜 사람이 임명되면 그의 행동이 곧 백성에게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옛날 임금들은 충분히 배양하고 골똘히 가르치며 정밀하게
선택하고 자세히 살핀 후에 직위에 임명하여 일을 담당시켰다. 그렇게 해야만 관원은 어진 사람을 얻게 되므로 정치와 교양이 잘 실행되며 백성들이 생활의 안정을 얻어 성과를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 와서는 미리 교양을 시키지 않고 또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극히 중대한 일인 줄을 모른다.[이것은 대체 과거로 사람을 뽑고 연한으로 따지는 자격만을
보고 사람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비를 채용하려 할 때에 정밀하게 선택하며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인습대로 경솔히 채용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훌륭한 인재가 산골에 묻혀
있는 줄을 알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바 그것은 사리(事理)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며 그리고 사상이 확정되지 못한 까닭이니[인재를 채용하는 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일을 빨리 처리하거나 경삼하게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면 또 전혀 내어 버려두는 자들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깊은 인식과 확정한 사상이 없는 데서 오는 까닭이다.] 비록
정치를 잘하려는 임금이 있더라도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원인이 여기 있다.[대체 이 방법으로써 성의껏 실행하여 너무 조급히 하지도 말고 잊어버리지도 않는다면 자연 인재를 빠짐없이
추천하게 되고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서도 누락된 자 없을 것이며 또 인재는 적당한 직위에 등용되어 나라가 태평하여질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인재를 추천하는 제도는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사람들의 마음이 옳지 못하여 사리사욕에 끌리기 쉬울 것이니 어떻게 할까?"라고 한다. 후세에
와서 사람의 마음이 옳지 못하게 된 것은 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만일 과거제도가 없어진다면 아무리 매를 치면서 옳지 못한 짓을 하라 하여도 역시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세상일은 여럿이 공동으로 하면 사욕을 부리기 곤란하나 혼자 하는 일은 사욕을 부리기 쉬운 것이며 실적을 따지게 되면 사사로운 꾀를 부리기 어려우나 허위로 하면 사사로운 꾀를 부리기
쉬운 것이며 밝은 데서는 사욕을 부리기 어려우나 음침한 데서는 사욕을 부리기 쉬우며 장기간을 두고 보는 데서는 제 마음대로 하기 어려우나 짧은 기간에 해치우는 데서는 저의 마음대로
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추천에 의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는 향당(鄕黨)에서 공정한 여론을 널리 탐문하고 그 사람의 평소 착하고 나쁜 행동을 조사한 뒤에 추천할 것을 심사하고
여러 사람을 모아 존경하는 범절로써 대우하고 보증을 정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책임을 지게 한다. 그러나 과거법은 일체 이와는 반대이다. 이것으로 보면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 사욕을
부리기 쉬운가? 과거가 사욕을 부리기 쉬운가? 대체로 실적을 따진 후 범절을 차려서 인재의 추천, 보증을 확인하게 되면 추천하는 자는 함부로 추천하지 못하고 오직 피추천자를
철저하게 알지 못할까봐 염려할 것이며 선비된 자도 함부로 나서지 않고 오직 자기 공부가 아직 도저하지 못한가를 염려할 것이다. 그 중에서 혹 사욕에 끌려 속이고 나선 자가 있다면
허투루 추천한 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며 추천받은 자도 쓸모없다 하여 쫓겨나면 그 수치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만큼 하나를 처벌하여 100명에게 경종을 울리는 방법으로 될 것이다.
이처럼 하면 추천에 의하여 현명한 인재를 얻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는 모두 자신의 실력을 양성하기에 노력하는 동시에 현명한 사람에게 양보하게 되어 풍속이 점차 순후하고 정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제도와 같이 이름을 시험지에 발라 붙여 등록해 가지고 가서 짧은 기간에 급제하게 되면 추천하는 자는 보증하는 책임이 없어서 사람을 알랴고
애를 쓸 것이 없으며 선비된 자로는 한때의 요행수를 바라기 때문에 자신 수양에는 뜻이 없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무리 재능이 없는 자가 추천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시험관[考官]은 하기를 "내야 그 글이나 곤을 줄 알 뿐이지 그 밖의 다른 일은 모른다" 하고 선비는 또 말하기를 "과거에 다행히 급제한 것은 원래 응당한 일이다"라고 하여 책임은
돌아갈 데가 없으며 수치스러운 일은 당할 자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면 현명한 인재를 선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장차 모두 거짓 행위를 경쟁하듯이 하여 풍속이 날로
부화 경솔하게 될 것이니 이 인재선발과 풍속이 그렇게 되는 것은 모두 그 자체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로서 현명한 자나 암둔한 자가 다 같이 빤히 보고 있는 일이다. 설사 인재를
추천하는 제도가 오래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해이해지고 정부의 규율이 문란해져서 혹 나쁜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열을 추천한 자 중에서 다섯은 좋은 사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그
사람만 개체한다면 그래도 좋은 법은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법으로 말한다면 현명한 대신들이 아주 공평한 입장에서 실행한다더라도 현명한 인재를 획득하는 데는 아무
도움으로 될 것이 없으며 그것은 필연코 인심을 타락케 하며 풍속을 부화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쁜 종자가 생겨나서[송(宋)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종자가
나쁘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과거에서 출신한 자가 나중에는 다시 그것을 주관하게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 과거를 주관하면서 나쁜 종자를 뿌리는 데야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임금의 인식이 철저치 못하며 과단성 있게 실행하지 못한 것을 걱정할 것이요 있을 수 있는 사욕이 허용되는 폐단쯤은 염려할 것이 아니다.[대체로 옛사람의 법은 본래
간략하게 마련하여 폐단이 없게 하였지마는 불충분하고 폐단이 많은 것은 후세에 와서 그리된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언제나 폐단이 많은 을 실시하고 있으나 아직 폐단이 없는 일을
실시해 본 자가 없다. 이것은 당시 임금된 자가 일찍이 그 본질을 직접 규명하지 않으며 비열한 도배들이 저의 자신이 해를 입을까봐 개정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제상의
이치는 예나 이제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아아! 인삼, 백출(白朮)과 독한 약을 먹어본 자라야 자연 그 약효를 알게 되는 것이니 말로만 논쟁하기는 곤란하다.

30\. 국왕의 말과 관공청에서 사용하는 글은 다 사실대로 기록할 것이요 네 자(字)씩, 여섯 자씩 짝을 맞추어 쓰는 소위 사륙체[四六騈儷]의 사용을 불허한다.[사륙체는 경솔하고
실상이 없는 문체이니 일체 금지할 것이다.]

이율곡(李栗谷)이 일찍이 『동호문답(東湖問答)』502)이란 책을 지어 선조[宣廟]에게 올렸는바 그 책에 교육을 실시하여 선비를 채용하는 제도를 논한 요지가 있어서 대략 다음과
같다. "교육을 실시하는 방법은 학교를 발전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훈도(訓導)를 아주 천한 소임으로 보고 반드시 가난하여 생활할 수 없는 자는 데려다가 그 직무를
맡겨 기한이나 면하게 하기 때문에 훈도 되는 자도 역시 다만 학생들에게 착취하여 저의 배나 채울 줄로 알고만 있으니 대체 교육이 어떠한 일인 줄을 알 자가 누구이겠는가? 이 같이
하고도 인재 양성을 바라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잡으려 한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지금의 실정에 비추어 생각해 보건대 우선 팔도 감사(八道監司)로 하여금 관하 각
고을에 지시하여 삼 년마다 한 번씩 그 고을 사람으로서 남의 선생이 될 만한 사람을 선발하여 그 명부를 감사(監司)에게 보고케 하고 감사는 각 고을에서 선발된 자를 종합하여
이조(吏曹)에 제출하면 이조에서는 그 명부에 의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고 다시 엄밀하게 선택해야 한다. 모든 훈도(訓導)를 정할 적에는 반드시 그 고을 사람을 임명할 것이나
그 고을에서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이웃 고을 사람을 임명할 것이며 이웃 고을에도 또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그 도내의 사람으로 임명할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임명한 뒤에는 임기를
제한하지 말고 오직 교육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중앙에서 어떤 사명을 띠고 내려간 고관이 있더라도 예절을 차려 그를 존경할 것이며 고관이 향교(鄕校)에 들리지
않으면 환영을 나가지 않게 할 것이며 선비들의 시험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회(公會)에 일체 참여하지 말게 하며 그리고 훈도로 하여금 자신들의 몸을 점잖게 갖게 하며 학생들을
격려케 할 것이다. 그런 뒤에 해마다 감사가 직접 가서 그들의 성적을 조사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만 시험할 것이요 훈도들은 시험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훈도가 학생들로 하여금
도덕적 학문을 숭상할 줄을 알게 하며 각자의 몸가짐을 엄숙하게 하며 품행을 옳게 가지게 하며 학생들의 글 읽는 것을 통제하여 진리를 연구하는 방향에서 노력하도록 했다면 그것을
훈도의 첫째 성적으로 할 것이다. 또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를 열심으로 하게 하며 조행상에 결점이 없게 하는 것을 훈도의 다음 성적으로 할 것이다. 훈도의 성적이 첫째가는 자는
왕에게 보고하여 표창하고 6품의 실직에 임명하여 선비들 계층을 고무케 할 것이며 그 다음가는 자도 역시 왕에게 그 공로를 보고하고 직품을 승진시켜 표창하는 뜻을 표하여 교육에
노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전대로 용렬하여 성적이 보잘것없는 자가 있으면 하등으로 평정할 것이며 만일 여전히 탐오 비루하여 학생들을 착취하는 자가 있다면 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이다. 대체로 이렇게 하면 훈도(訓導)의 책임이 매우 중하게 되어 이전에 훈도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던 선비들도 역시 그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학교는 세상의 모범으로 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선비들의 풍습이 날로 문란하여 가서 학문이 무엇인 줄을 모르고 오직 허영과 사욕에만 매달려 있으니
어떠한 방법으로 이것을 제지할 것인가?" 한다. 이것은 선비들의 과실이 아니라 정부의 지도가 나쁘기 때문이다. 현재 인재를 채용할 때에 다만 시, 부[文藝] 등 잡문에만 치중하고
도덕과 의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므로 비록 하늘을 꿰뚫는 학문과 한 세상에 유명한 행동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만일 과거를 거쳐 나가지 아니하면 조금도 그들의 포부를
시험해 볼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태학에서는 원점(圓點) 원점(圓點)：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 학생들의 출석 정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석 식사 시간에 학생 명단에 둥근 점을
찍던 것.

을 근거로 학생의 시험 자격을 주기 때문에 모든 선비의 일상생활의 행사가 모두 다 사리사욕을 찾는 술책뿐이다. 상부의 지도가 이러니 선비의 풍습을 어떠한 방법으로 개정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해결 방도로는 응당 8도(道)와 서울 5부(部)로 하여금 해마다 한 번씩 생원(生員), 진사(進士)와 유학(幼學)으로서 조금 학문에 뜻을 두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선발케 해야 하는데 반드시 너무 높은 수준에서 선발할 것이 아니라 다만 도덕적 학문을 주로 하는 자를 전부 참여시켜야 한다. 그들의 명부를 작성한 후 전부 이조(吏曹)
및 예조(禮曹)에 제출하면 이조와 예조에서는 한자리에 모아 그들의 명부를 조사하고 더 상의를 한 후에 생원, 진사 200명을 골라 태학에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을 5반(番)으로
나누어 한 반을 40명씩으로 하여 지방에 있는 자라도 반이 정해진 뒤에는 반드시 기일까지에는 오게 해야 할 것이다. 또 유학(幼學) 200명을 골라서 사학(四學)에 나누어 있게
하되 학교마다 50명씩 배정한 뒤에 역시 5반으로 나누어 매 반마다 10명씩으로 정하고 이것을 선사(選士)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유교학자로 등용된 신하 중에서 학문이
성숙되고 행동이 점잖은 자를 골라서 태학과 사학(四學)의 교관으로 임명하여 학생을 교육케 하되 도덕적 학문만을 연구하는 것을 주로 해야 한다. 이 도덕적 학문은 반드시 윤리에
기초하여 사물의 이치를 규명하며 착한 일로 수양하여 도덕적 품성을 이룩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정치상의 방법을 달통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만일 선사들 중에서 학문과 행동이 다 여기에 해당한 자가 있으면 곧 정부에 승진시켜 왕의 측근자[臺侍]의 반열에 있게 할 것이요 혹 그만 못한 사람이라도 행동에 있어서 결함이 없고
나이 사십이 넘은 자는 역시 여러 가지 다른 관직에 임명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선사 중에서 성인의 도덕을 절실하게 믿지 않고 행동을 허투루 한 자가 있으면 그 명부에서 삭제해
버리는 동시에 이조와 예조에서는 다시 다른 사람을 골라서 그를 보충할 것이다. 그 밖에 선사들 관비로 공급하는 식사 등절은 극히 넉넉하고 깨끗하게 하여 정부에서 현명한 인재에게
우대하는 도리를 극진히 해야 한다. 또 지방 유학(幼學) 유학(幼學)：조선시대에 아직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를 일컫던 말.

으로서 선사(選士)에 피선된 사람도 그 다소를 따라 고을 향교(鄕校)에 재학시키고 적당히 반을 갈라 관비로써 보조하여 훈도(訓導)에게 수업하게 할 것이다. 만일 그 중에서 학술과
행동이 특별히 우수한 자가 있는 때에는 주와 현에서 감사(監司)에게 보고하면 감사는 그 명부를 작성하여 이조와 예조에 제출하여 태학 아래 서재[齋]에 있게 하되 생원(生員)과
다름없이 접대하며 그들의 실적과 덕행을 살펴보아서 정부에 추천할 것이다. 대체로 이 같이 하면 선비로 된 자들도 역시 도덕과 의리를 존중히 여기며 시, 부, 잡문[文藝]만을
숭상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며 일반 백성들도 분발하게 되어 온 세상이 다 그에 따라 감화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생원, 진사, 유학으로서 선사에 참여하지 못한 자는 그 이름을 어디다 올려야 할 것인가?"라고 한다. 생원이나 진사는 태학에다 적을 둘 것이요 유학(幼學)은
사학(四學)에다 적을 둘 것은 모두 이전과 같다. 그러나 원점(圓點)을 하지 않으며 관비 보조도 없고 오직 공자묘에 제사지낼 때와 임금이 학교를 순시할 때에만 일제히 모으게 하며
또 그때에만 식당에 참여케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방에 있는 향교의 생도(生徒)는 흔히 글을 한 자도 모르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고 한다. 지방의 군(郡)이나 읍의 선비는 정원수가
있으므로 그 정원 내에 있는 자를 제거하기는 곤란할 듯하다. 그러나 나이 많고 재능이 없는 자를 제거하고 다시 나이 젊은 자로 보충할 수는 있다. 그리고 정원수 외의 선비로서
교육시킬 수 없는 자는 모조리 군역으로 편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방에서 소위 선비 노릇을 한다고 하는 자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한다. 이것은 그 중에서 가르칠 만한 자는 골라서 향교(鄕校)로 보내고 가르칠 수 없는
자는 모두 군역에 편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만일 재능이 걸출한 선비가 어디나 이름을 두지 않고 산골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자기 목적 수행을 위하여 가난한 생활을 만족하게 알고 성현의 도리를 공부하는
것을 낙으로 알고 있으나 그의 도덕적 행동과 의리에 대한 높은 소문이 사방에 전파되어 있다면 그 사람을 장차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처사(處士)
처사(處士)：도덕적 수양과 학문 연구를 목적으로 하여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를 일컫던 말.

로 불러다가 그 소문이 과연 사실인가를 살펴보아 그것이 과연 헛소문이 아니라면 응당 보통 규례에 구애됨이 없이 그를 특별 등용하여 왕의 고문의 직책을 맡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의 말은 참으로 훌륭하여 거의 삼대(三代)시절의 사람을 채용하던 법과 방불하다. 그러나 세상이 말세가 되어 백성들의 허위가 날로 증가하고 있으니 선발할
때에 만일 공평한 방법대로 되지 아니하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한다. 그것은 비속한 견해이다. 예로부터 법을 마련할 때에 본래 현명한 인재를 만나서 실행하는 것은 물론이나 그러나
현명한 인재가 없다 하여 법을 마련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법을 일단 실행하면 풍속이 점차 변경되어 가면서 선비들이 염치를 알게 될 것이니 사욕을 부리던 폐단도 역시 자연
없어질 것이다. 만일 사욕을 부리던 것이 걱정되어 다만 전부터 내려오던 규례만 지킨다면 사리ㆍ사욕에서 벗어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렇고도 교육을 철저히 하며 인재를 양성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세상에는 착한 사람은 아주 적고 나쁜 사람이 아주 많은 것이니 당신의 말대로 실행된다면 어찌 온 세상이 모두 다 점잖은 사람을 적대시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까?"라고 한다. 예로부터 정치를 잘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악평을 듣는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자산(子産) 자산(子産)：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저명한 재상 공손교(公孫僑)의
자.

이 정(鄭)나라의 수상(首相)이 되었을 때에 일 년이 되어서는 악평이 일어나 여러 사람이 자산을 죽이겠다고 떠들다가 삼 년이 된 뒤에는 악평이 정지되고 여러 사람들이 자산의 죽을까
바를 걱정하였으며 공자가 노(魯)나라에 등용되어 정치를 처음 실행할 때에는 공자를 없애버리어도 탓하지 않겠다[投之無戾] 투지무려(投之無戾)：고대 중국의 공자가 노(魯)나라에
등용되었을 때에 백성들이 처음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서 "누가 공자를 없애버리더라도 탓하지 않겠다"라고 욕질하였다는 말.

는 노래를 부르다가 공자의 덕화의 혜택을 입은 뒤에는 바로 사심 없이 나만 생각한다는 찬송이 있었다. 그러므로 오직 옛날 방도에 따라 꾸준히 실행하여 변경하지도, 중지하지도,
겁내지도 아니한 후에야만 결심을 안정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법을 실행함에 있어서 오직 사람들의 과오를 고치기만을 허용하고 이전의 잘못을 용서한다면 재직 관리들은 당장에 자기의
과오를 고쳐서 곧 착하게 될 것이요 벼슬하지 않은 사람들도 면목이 일시에 새로워져서 모두 다 교양의 감화받기를 좋아할 것이니 어찌 원망이나 악평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겠는가?"라고
하였다.

31\. 종학(宗學; 종실 자제를 가르치는 학교)의 제도도 역시 학교 제도와 같이 하여 그 규정을 자세히 정하여야 한다.[종학에는 도선(導善)을 두는데 종3품(從三品)으로,
전훈(典訓)을 종4품(從四品)으로 하여 각 1명씩을 두되 도덕과 의리가 있고 조행이 단정한 사람을 선택하여 종학의 교육을 전담시킬 것이다. 종친(宗親)으로서 나이 15세가 되면
종학에 입학하여 수업한다. 매일 배운 과목을 암송하게 하여 그 성적을 기록해 두었다가 ―기록에다 도장을 찍는다. ―매월 말에 왕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 중에서 사고 없이 결석하거나
암송할 때 불통(不通)이 많은 자는 벌을 준다. 또 5일 만에 한 번씩 ―초하루 후나 보름 후―강독하고 매월 두 번씩 시험을 치는바 이미 읽은 책을 읽으면서 그 뜻을 설명하게 하는
것은 모두 사학(四學)의 규정과 같으나 성적을 기록했다가 분기 말에 왕에게 보고한다. 다섯 차례 강을 받는 중에 두 번 불통한 자는 책벌을 주며 사고 없이 결석한 자나 규칙을
위반하고 법령을 범한 자는 책벌에 붙였다가 분기마다 왕에게 보고하고 벌을 준다. ―대체로 책벌을 줄 때에는 아직 어린 자는 매를 때리고 그 중에서 국가의 녹봉을 받는 자는 경중에
따라 녹봉 1∼2등 혹 4∼5등을 3개월 동안 내리울 것이다. ―나이 40세 된 자로서 『소학』, 『가례』, 사서, 『근사록』 중의 2경(經)을 통달한 자와 나이 아직 40세가
못되었더라도 『소학』, 『가례(家禮)』, 사서, 『근사록』 중의 3경 이상을 통달한 자와 ―종정부(宗正府)의 당상관(堂上官) 및 사정(司正), 태학의 학장 및 부학장,
이조(吏曹), 예조(禮曹)의 당상관 및 종학관(宗學官)이 모아 앉아서 시험을 치는바 책마다 추첨하여 시행하는 것은 사학의 규정과 같으며 그 결과를 왕에게 보고할 것이다. ―나이
50세가 된 자는 모두 입학을 면제한다. 그리고 매년 6월, 12월에 시험을 치고 매월 2일, 8일, 16일, 23일은 휴가일로 한다. ―그 학칙[學規]과 도덕적 행동을 서로
권하며 과실을 서로 지적하는 것과 매월 초하룻날 교육 강령을 낭독하는 것이며 분기마다 글씨 쓰는 법을 시험하는 일체 규정은 학교의 규정과 같다. ―종친으로서 성인(成人)이 된 자는
그 달 초하룻날을 이용하여 태학에 가서 모든 학생들과 인사를 한 후 학생들과 함께 공자 사당에 참배하고 또 학장에게 절하고 ―학장은 앉은 대로 절만 받는다. ―연령의 순서대로 앉아
강독에 참여했다가 돌아갈 것이다. ―겨울과 여름에는 대사성(大司成)이 종학(宗學)에 가서 종학 교관과 모아 앉아 교육 강령을 낭독하며 시험을 치는 것과 또 그들과 강독하는 등의
규정은 사학의 규례와 같다. ―대사성이 종학에 도착하면 종학관(宗學官)이 환영하며 대사성이 들어와 앉으면 종학관이 그 앞으로 가서 규정한 절차에 의하여 재배하고 나오는데 이때에
대사성은 앉은 대로 부동한다. 종친들이 들어와 여러 줄로 자리에 선다. 대사성도 일어나서면 종친들이 재배하고 대사성이 답례로 재배한 후에 종친들은 물러간다. 그리고 모아 앉아 교육
강령을 낭독하며 강을 받는다. 대사성이 사고가 있으면 그 차석이 대리하는데 절차는 마찬가지다. ―종학관이 재학 중인 종친과 서로 인사하는 절차는 매월 초하룻날 도선(導善)은 북쪽
벽에 앉고 전훈(典訓)은 동쪽 벽에 앉는다. 종친들이 앞으로 나와 여러 줄로 서서 ―정1품(正一品)이 한 줄, 2품이 한 줄, 3품 이하가 한 줄, 직함을 갖지 못한 자가 한
줄로―재배하면 종학관은 앉은 대로 부동한다. ―평소에는 절을 한 번 하고 종학관이 답배한다. ―도선과 전훈이 처음 부임할 때에는 종친들이 재배의 예를 드리고 도선과 전훈은 앉은
대로 부동한다. 대체로 종친은 비록 재학자가 아니더라도 종학관과 서로 만나면 대군(大君) 이하가 다 절하고 종학관도 답배할 것이다. ―종친으로서 학교에 재학을 면제한 자라도 매년
왕의 앞에서 치는 시험에는 사서(四書) 중에서 두 책을 추첨하고 육경 중에서 본인이 자원하는 두 책과 『소학』, 『강목』들을 다 책을 보고 읽어서 통달한 자는 상을 주며 두 차례에
걸쳐 통달한 자에게는 품계를 한 급씩 올려줄 것이다. ―3품 이상은 네 차례 통달해야 올려준다. 재학을 면제하지 않자라도 1년 1차씩 왕의 앞에서 치는 시험에서 이미 읽은 책
중에서 세 책을 통한 자도 상을 주어 장려할 것이다.]

상고해 보건대 옛적에는 천자(天子)와 제후(諸侯)의 아들을 비롯하여 고관과 양반 선비[公卿大夫士)의 아들까지 다 대학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인재를 채용할 때에는
오직 현명하고 도덕 있는 사람을 표준으로 할 뿐이요 친한 사람만 추천하였거나 친하지 못한 사람을 빼지를 않았으며 친한 사람을 빼어 버리고 친하지 못한 사람만 추천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왕족 중에서도 대신이 났었고 딴 성바지 중에서도 대신이 났었다. 그러다가 후세에 와서는 종친에게 다만 녹봉과 직품만 올려주고 실직에 등용하지 않는다. 그제야 종친과
사대부가 따로 두 길로 갈리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미 태학이 있지마는 또 종학을 설치할 수밖에 없이 되었다. 지금 여기서는 다만 현행 제도에 의하여 그 조목을 열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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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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貢擧事目一 先爲禮 命公卿大夫 三品以上 及近侍賢儒 臺諫ㆍ侍從之外 勿論職秩高下 苟其賢士也則亦特命薦士. 方岳州縣之吏 悉心推訪明先王之道 德業充備 足爲師表者 其次篤志好學 材良行修者
皆以名聞. 備述道德學術材行 一如薦狀式. 其得人謬擧功罪 亦一依薦擧法. 其有道之士 朝廷 厚禮迎聘. 其餘 命州縣敦遣 萃於京師 館之寬閑之宇擇一近闕寬閑公廨 以爲聚講之所 如程子所言延 英院之爲
可也. 給其廩俸. 不遽進以官 止以應敎命名. 前銜則量品給俸 儒士亦給廩俸 如今軍職付祿例. 以大臣之賢者 典領其事 俾羣儒 朝夕相與講明正學 時賜召對 訪問治道 論講學術. 其表著者
則輪使入參經席 其餘 亦如輪對之例 以次登對. 久則擧其賢傑以備高任 擇其學業大明 德義可尊者 爲太學之師. 次以分敎京ㆍ外 州ㆍ縣之學.一 凡差州縣敎官 必以其邑及隣邑之人. 隣邑
無人則以其道之人.一 若其地及近地 有學明道著 可爲人師者 勿論前銜官與儒士 唯以德行可合. 亦許學中申請監司 諸生 呈書 監司守令亦報狀. 監司 啓聞 下吏曹 更審除授. 前銜之官高者
亦許以原仕兼之. 階過者 爲行職. 階卑者 爲守職. 無階而超授者 亦爲守職. 其有除朝辭赴任者則學中 以禮延請 本邑殿拜牌肅拜然後上任 待任滿入朝啓事. ○凡兼行守職 其計考陞資則各從原階.一
敎官之任 爲世所賤 久矣 今世科擧取士 所謂師弟子者 皆無所資於學術行義 故敎授因爲冗官. 至於訓導則尤爲至賤之任 必庸下貧賤者然後 乃授其任 使侵漁校生 免其飢寒而已.當痛革其弊. 朝廷
旣重師儒之選 責以成敎育材之效. 凡使命之至 皆禮敬待之 不入學校則不爲祗迎. 朝廷使臣至 學者 乃祗迎於門內. 法典 外官迎送使臣 每品各異 然敎官 事體自異他官 雖一品使臣ㆍ監司 至學
祗迎於大門內. 除望闕禮及儒生考講外 凡公事並不會參. 每歲春秋 監司 親巡考其成繢但試講儒生 敎官則與之商論敎誨之術 只考所敎儒生之學問能否 持身敬肆 以爲褒貶之地 勿爲如今幷試訓導也.
使儒生知尙道學 整其威儀 飭其行實 其讀書以窮理爲要者 績之上也. 使讀書不倦 操行無疵者爲次. 如有作成多士 敦德達材者 啓聞 特加▩擢.或有碌碌無績者 課以殿. 若如舊貪鄙無檢 酗昵酒色者
依律論罪. 又罪其擧主. 皆待任滿 隨其績效超遷. 使敎官ㆍ臺閣 混爲一途.馬端臨曰"元豐中 大興學校 重師儒之官 不肯輕授 與入館閣者 其選同科矣".虞集曰"今天下學官 猥以資格授
强加之諸生之上而名之曰師爾. 有司 不信之 生徒 弗信之 於學校無益也. 如此而望師道之立 可乎. 下州ㆍ小邑之士 無所見聞 父兄所以導其子弟 初無必爲學問之實意 師友之游從 亦莫辨其邪正.
然則所謂賢材者 非自天降地出 安有可望之理哉. 爲今之計 莫若使守令 求經明ㆍ行脩ㆍ成德者 身師尊之 至誠懇惻以求之 其德化之及 庶乎有所觀感也. 其次則求夫操履正直而不爲詭異 確守先儒經義
不妄爲奇論 衆所敬服者 延致之日 諷誦其書 使學者習之 人(入)耳著心以正其本 則他日亦當有所發也."丘濬曰 "禮曰'師嚴然後道尊. 道尊然後 民知敬學.'祖宗朝 最重敎官之選 往往取之耆儒宿學.
其後 科目興 乃取之一榜. 擧人其有優異者 不次擢居顯要 故居是官者 人人自奮 旣皆以道自重 而一時公卿大臣ㆍ藩臬守令 亦皆重之. 人旣樂爲之 莫不謹身飭行 嚴立規模以爲敎 善人多而風俗美.
近世師儒之職 日卑 公卿藩臬 略不加之以禮 而人不屑就 徒取充位者 所謂敎法者 蕩然矣. 臣以爲國家要務 莫急於儲賢 儲賢 必先於敎養. 所以代君以施敎養者 帥儒之職也. 其任至重 自今宜愼重其選.
朝廷旣選其人 而仍勑有司申明憲綱 以禮待之 違者坐以罪. 如此則敎官得人 敎官得人則生徒充業 而國家有得人之効 所以成世務壽國脈 此其基也."一 大夫ㆍ士子弟 志學及凡民俊秀者 年十五以上 皆許入學.
京則四學 敎官 外則守令ㆍ敎官 考其志學而後入 隨學生闕額 每歲春秋釋奠 前期一兩朔 許人入學. 將入者之訓師 若鄕里長老 呈單子 于學中曰 "某人之子某 年旣志學 敢請入學 謹候進止."
若其親長父兄 呈單則曰 "某 親某之子 若某之子若弟 年旣志學 敢請入學." 若無呈單之人 則將入者 自爲單子曰 "某年旣志學 愚未有聞 敢請入學." 若年紀已多則云 "年紀已多謹候" 以下並同.
學中以告于師長 (並告長貳 守令亦是師長.) 而許之. 初到 令接學村或外舍 拜師長 見諸生 如常儀. 參講 (與諸生別行坐.) 觀其志學 師長會坐 (別定講日 師長會坐 學中齋任 並會坐.)
考講小學ㆍ四書然後 乃許入. 凡初入學者 講畢 出俟外次 候師長坐堂 禮拜如師長初上任儀. 訖退與原在齋者 行相揖禮 (只與外舍生行揖禮 內舍生則入內舍然後乃行.)
○工商市井之子ㆍ巫覡雜類之子及公私賤口 不許入. 而敎之 蠲其所受田二頃保布. 初入者 爲增廣生居外舍. 居外舍周年以上然後 乃許入內舍. 若周年內居學未滿七十日者 勿計. ○若年長ㆍ學業優異者
雖未滿歲 亦不拘. 每歲春秋 擇其有材行ㆍ力學者 長ㆍ貳若守令ㆍ敎官 參以衆所稱許 而審察其實以擇. 會坐考講 入內舍. 並如前例 但無呈單. ○講小學. 四書ㆍ近思錄及六經中 自望一書. ○凡言四書
謂大學ㆍ論語ㆍ孟子ㆍ中庸. 六經 謂詩ㆍ書ㆍ易ㆍ春秋ㆍ周禮ㆍ儀禮(禮記附.) ○凡講 皆臨文而逐卷以講 如孟子七篇則七篇 皆抽一章 他書倣此. 並傳註從容講問 詳盡意義 但卷秩 多者無過八章.
(每卷各抽一章.) 一日所講 無過十數人 切勿忽率苟簡 只憑句讀. 後皆倣此 入內舍者 蠲其所受田四頃保布. 凡入學者 內ㆍ外舍 皆以齒爲序.凡坐次 別其內外舍而各序以齒. 其久無向善之志及大不率敎者
斥之從役. 不向善 不率敎 如上學規 向學不篤 違規作過之類. ○凡汰削從役者 依軍民出保布一頃外 還其所受田. 其應爲忠義ㆍ忠順衛士者 入屬其衛. 還其二頃外田. 世嫡親蔭之類
只出籍而依本科不還田.或曰 "國俗 兩班ㆍ庶孽ㆍ庶族 別其品流 不相爲齒 而今使一槩序齒何也?" 曰禮 天下 無生而貴者. 是以天子之子入學 亦以齒序 况士大夫之子乎? 本國 徒尙門地 俗成苟且
唯論族世之華楚 不問行義之修否. 若世閥子孫 則雖庸才鄙夫 分通於卿相 門係寒素則雖碩德茂學 不齒於士類. 世道之不升 人才之不興 政刑之紊亂 皆以此也. 是豈先王體道規世之意哉? 曰
"然則名分不必嚴乎?" 曰名分乃天地自然之理 豈可不嚴? 夫所謂名分者 本出於貴賤之有等 貴賤 本出於賢愚之有分耳. 今欲莫卞其人之善惡貴賤 專差先世之職秩華楚 而曰嚴名分 於義何所當乎?
而况鄕黨學校 乃序長幼敦風化之所 尤不可以門閥爲序也. 曰 "然則貴者之世 若無才德則卽爲凡庶乎?" 曰古語不云乎?'公卿之子 爲庶人.'貴賤之不以世. 古之道也. 但先王 念其有功德於民
而特置蔭及之典 忠厚之至也. 其有蔭者 在法 當列士類 法所不及者 無可論也. 曰 "是固至矣 但本國 久行此法 難以頓變 且恐駭時俗. 若令學校內ㆍ外舍 兩班與庶孽ㆍ庶族 各以其類序齒. 內舍生
居前行. 兩班與庶孽ㆍ庶族 雖同行而兩班 序以齒 後庶孽ㆍ庶族 間其位序齒. 外舍生 居次行 亦然. 其論升則不問門地 一以學行材能. 及入太學則不復有別 一以齒序. 其於鄕會則庶孽ㆍ庶族 坐於南行.
若學行表著及爲選士爲朝官者 亦許齒序兩班 如此恐合時義." 曰此猶是俗見 而未悟也. 以爲時義當然者 亦甚不然. 凡事 本末之序 有先後而古今之宜 無二致. 誠能先自朝廷 尙德ㆍ敦實 取捨
一唯賢不肖之爲 則人人 自奮於行義 而敬讓之風． 行於鄕邑 弊習雖痼 自然變矣. 若徒齊禁令之末 而興紛起怫 懼其難變乎舊 而姑爲苟簡者 皆非知治者也. 且恐駭時俗者
匹夫處世之道ㆍ非王者行政之所當言也. 時者 君相之所爲也 俗者 政化之所成者也.或曰 "庶類之升爲選士者 才德旣著 與兩班序齒 可矣. 其在外舍時 則未知其材行之卓爾 而亦許齒序 何也?"
曰業同則事同 事同則列同 而序以齒 天下之通義也. 曰 "如此則吏胥之子或有入學者 亦當序齒於官員之子弟矣. 其父 趍走於庭 而其子則齒於子弟 可乎?" 曰彼各有所當也. 夫趍走於庭者 爲其官長也
非爲其子弟也. 同列而序齒者 爲其同業也 非爲其吏胥之子也. 唯其如是 故雖兄弟之親 弟業士而兄業民則弟齒於士而兄不得齒 雖一人之身 前爲士而後爲民 則前齒於士而後不得齒. 夫人之所以爲人者
以其有道義也. 是以尙德之義 體三綱 同立於天地間 而師友 列於五倫也. 只爲後世此義不著 故旣與之同業而復疑於同序耳. 若夫門族者 自係其華素之形爾 非所與論於立敎ㆍ敦序之地也. 公義旣是如此
而聖人之制 公義ㆍ私恩 兩不相妨. 親戚兄弟 或有貴賤之異者 則於其家族 各序以屬而公會値壓 亦許相避以全其私. 此又義理之曲 盡其當者耳.或曰 "朱子鄕約 有非士類則勿齒之文. 以此觀之
亦不可無士族ㆍ庶人之別." 曰士類云者 與今之所謂士族者 其意不同. 所謂士類者 治儒行而爲士類者也. 士族者 士夫之子姓族屬也. 若以行義則天下競勸於德行 禮俗所以成也. 若以門地則天下 唯辨其門閥
爭端 所以興也.或曰 "如此則貴賤無常 不無賤凌貴之弊耶?" 曰若不以德而徒然混同 則誠有此弊. 苟爲考德分類 以類序齒則尙德之風 明而貴貴之義 自益著矣 有何弊乎? 今夫武科 只試弓馬之間
太半麤賤之輩而庶族同科者 雖序士族 而未聞其類之不第者 因此生濫也. 技力尙然 况德義之選乎. 以茲驗之 亦可知矣. 且雖如此 爲士類者 皆是世族子弟 起自凡民者 幸有一二. 何者? 人稟淸濁
大抵係於氣類 又况居養所移 世家與凡民絶異. 蓋以依倚門緖 無沉淪之虞 故恬常不修 名義罕立 此乃法使之然也. 若惟善是擧 不才自遺 前見榮顯 後臨泥塗 則凡根聰明之性 習父兄之敎者 孰不勉勵?
然則中品之人 悉爲長材 雖是德選捨之 何適. 但選以德行而世族之多才 自然之勢也. 限以門地而靡人才虧 世敎莫大之害也. 此國家治亂 世道升降之大段大機也.或曰 "然則庶孽 全無差等否?"
曰庶孽於其家族 嚴嫡庶之分. 兄弟雖同行而庶兄弟 次於嫡兄弟 間其位差退 不敢並坐. 凡事 不敢敵耦之類. 若論品數之制 則王子ㆍ宗室ㆍ嫡庶品位 賜稅有等 卿大夫嫡庶子
蔭田有差之類.於鄕黨ㆍ學校正序齒之義. 鄕黨ㆍ學校 旣是士類 則一槩序齒.一 京ㆍ外學儒額 皆有定數 擇講者過數 而行同學均則別之以射. 下至太學論升 凡有行同能偶者 則別之以射.
未滿數則姑闕之以待勉業者. 切不可苟然充數.一 在學儒生 守令 待之以禮. 大小官任 亦不得差定 只令專心學問. 鄕官ㆍ將官擇任等事 詳見郡縣及兵制條. 凡在學未免番者 不得授以大小官任.
只令講明學術. 使臣之來 視學拜聖則諸生 祗迎于學門之外. 唯監司ㆍ都事 初巡及御史爲然. 其餘使臣雖至 學但拜聖 就講堂後 旅拜. 凡旅拜 皆有答揖. 不視學則不迎于官門.一 學儒生 皆分五番居學
如元數六十人 則每番十二人. 凡上下番者 皆以朔望交遞. 饋以公糧. 當番居學者 皆饋公糧. 非當番而欲仍留講學者 亦許. 但不食公糧. ○春秋祭祀齊會時則番外諸生 亦饋以公需. 公需者
學田所入也.臨番不就者 春秋祭祀及四孟 朔不參者 同.一度則面責 二度則黜座 三度則黜齋. 黜齋者 告于師長 不得入學. 必改過自新後 許復入. 凡黜齋者 復參坐時 必面責以謝過. 周年無意來學者
削其籍. 凡削籍者 從軍役. 若有疾病事故 則具由呈單子于師長免罰. 年至四十者 免番. 雖免番 有事則會參. 其欲居學者 任意往來. 其掌議等任及升貢 則無論免番在學. ○外舍免番者 亦有事則會參.
亦許以時往來.唐制 京都學生八十人. 大都督府ㆍ中都督府ㆍ上州 各六十人. 下都 督府ㆍ中州 各五十人. 下州 四十人. 京縣 五十人. 上縣 四十人. 中縣中下縣 各三十五人. 下縣 二十人.
州縣學生 長官補長史主焉. 又今大大明之制 天下府學廩膳生 四十人. 州學 三十人. 縣學 二十人. 皆有廩給. 每人月給糧銀一兩. 廩膳生外 又有增廣生 此則無廩給.或曰 "今不籍學校 無識閑遊者
甚多 此則何以處之?" 曰年未滿者 姑令從學. 若年長者則當悉充軍額也. 然此在今日 不得已用法令之威耳. 若田制旣行 則不待法令而自歸於正也.一 凡敎學之方 六德ㆍ六行ㆍ六藝 皆所講明而修己治人之道
悉已具於聖賢經傳. 約而言之則程子所謂其道 必本於人倫 明乎物理. 其敎自小學灑掃應對 以往修其孝悌忠信 周旋禮樂 其所以誘掖激礪 漸磨成就之道 皆有節序. 其要 在於擇善修身 至於化成天下.
自鄕人可至於聖人之道者 是也. 非若近世詞章科擧利祿之謂也.一 學校之官 躬行正道以表率多士 諸生所讀之書 日作課程以督之. 每日開講. 間五日 通讀講論. 每月朔 敎官 京四學則敎導ㆍ敎授皆會.
外州縣學則守令亦詣學. 率諸生謁聖讀法 儀見學規 考講諸生 望日 亦考講. ○凡應講生 分上中下 大約半月. 上則三十張 中則二十張 下則十張 許隨所讀過標定 並塡書圖 抽籤考講. 不通者 降立階上
撻楚十五. ○除敎官每日課受 (有日課授ㆍ學者則背誦.) 外凡考講 皆臨文以講詳盡義趣. 諸下番者 亦依上例書圖 上番日 考圖以講. 若有出入事故 則皆塡錄書圖. 凡學術優異 不待課程
而自勉者及年過三十五歲者 勿爲書圖 只參通讀. 仍相與通讀講論. 望日同. ○凡月朔 謁聖讀法 朔望考講通讀. 每朔望則上下番及凡在學者參. 四孟朔則諸下番者 齊會皆參. ○守令朔望外 亦宜以暇日
數至學中 同敎官勸勵. 朔日有故未就 則只敎官行之. 雖或敎官有故 守令獨行. 凡試儒生 必親詣學 不得使儒生 移就官府. ○京四學則每月朔 四學敎官 輪次率諸生 (只其朔番生.) 往參太學
謁聖通讀. ○中學及京營學則四仲朔 兩學師長 輪次率諸生 往參太學 謁聖通讀. ○外方監營所在邑學則每月朔 皆參謁聖 而四仲朔 一參通讀於營學. 每四時 一製述. 悉罷詩ㆍ賦ㆍ表. 但以經書義
諸子史論. 時務策間或以箴銘 而不使庭列如今科場之爲. 每發一題 使在家(或居齋) 從容以製. 其體制 但當直述 不爲新巧 略如董韓程朱文 又不必多言. 義則百字以上 論則三百字以上
策則六百字以上爲式 待曾日納之 師長 聚以評論. 其有未善則召以敎之 更不考定高下 以啓文詞之弊. 一射侯. 略以鄕射之禮 定其儀式. 一考書. 不用草書 每人 正字一百字 篆字五十字.
正字以洪武正韻爲式 篆字以古文韻律爲式. 亦令在家 從容以書 會時呈納. 師長課敎 如製述例.所謂敎學 非徒講說而已. 以得之於心 而修身齊家以及天下也. 古之敎者 有成德者 有達材者 有答問者
是皆因人善喩 各盡其才也. 故曰時觀而不語 存其心也. 又曰當其可之 謂時 要在爲師者 自有其德而時措之宜爾.射者 六藝之一 而先王 以是觀德而擇士 其意深矣. 今之爲士者 視以爲武弁兵卒之任
而莫或知爲儒者己分事 誠由禮壞敎失而然也. 凡京ㆍ外學校 皆行射禮. 卽上四時射. 又以暇日或講讀之餘 諸生 習射 敎官ㆍ守令 亦暇日以射 可也.丘濬曰 "儀禮 射有三 大射ㆍ賓射ㆍ燕射.
天子ㆍ諸侯ㆍ卿大夫 皆有之. 士無大射 而有賓射ㆍ燕射. 三代之後 射禮不行 久矣. 惟晉庾亮 曾依周制以行 我太祖 初得天下 欲以之取士 以復古人擇 士泮宮之制而不果. 令天下州府縣學 訓誨生員
每日講讀經書罷 於學後 設一射圃 敎學生習射 朔望 要試過. 其有司官閑暇時 與學官一體習射. 命禮部定圖式ㆍ儀注 凡入則. 一射式 二樹射鵠 三置射位 四主射 五賞酒 六司射 七射器 八射職 九射位
十儀注. 所謂射器者 凡九. 射職者 凡七. 至今天下皆立射圃. 朔望 有司躬謁先師 及聽諸生講讀後 詣圃行射禮."一 每春秋 京則司敎 卽中學師長. 外則監司 巡列學 監司 亦必親詣學.
若不就學而令諸生移就官府者 論以重律. 後皆倣此. 與本學敎官會坐 京則敎導ㆍ敎授 外則敎官ㆍ守令 皆會坐. 後皆倣此. ○外則監司 謁聖行禮後 與之會坐. 後亦倣此. 讀法 考講諸生. 小學ㆍ家禮中
抽籤一書 四書中 抽籤二書 六經中 自望一書及近思錄 皆臨文其不通者撻楚. ○增廣生 家禮ㆍ小學中 抽籤一書 (年未二十者 從自望.) 四書中抽籤二書. ○不用製述. 仍與通讀講論. 明日 又行射禮.
如其儀. ○若司敎ㆍ監司 有故則司導ㆍ都事代行. 後倣此. 凡下番ㆍ免番諸生 皆齊會. 無故不參者 撻楚三十論罰. 凡講射各全日 務令從容情洽. ○升太學者及升中學營學者及免番中 時任
鄕官ㆍ庠師ㆍ將官者 (時任□者. 外□曾經者並參. ○凡言鄕官各鄕正 亦在其中.) 及年六十者 幷不會參.或曰 "曾經將官者 復着儒巾而參講 如何?" 曰此何所妨? 文武 本不可歧而二之.
但當在文事則冠巾 當武事則戎服而已. 後世 敎失其道 故文武不相通 此衰季之末弊也. 至於近歲 名爲儒士者 一操弓矢則不 得復入學校者 尤末弊之末弊也.一 每三年 卽式年也 秋巡講 兼之可也.
京則司敎 外則監司 巡列學 與本學敎官會坐讀法 考講諸生. 內ㆍ外舍免番諸生 亦皆會講. 小學ㆍ家禮中 自望一書. 四書ㆍ六經中 自望二書. (庸學則二書 準他一書.) 不用製述.
○升太學者及升中學ㆍ營學者及任鄕官ㆍ庠師ㆍ將官者 (曾任者 並免講.) 亦及年六十者 皆免汰講. ○凡應參講者 無故不參 則以不通論. 其有故者 追講於考官 所到處. 汰其不通者 出籍從役.
年未二十者 只撻楚 勿出籍. 其世嫡及有親 有蔭者 只出籍勿定軍役. 其應爲忠義ㆍ忠順衛者 入屬其衛 其餘皆屬軍役. ○或有代講者 則借者ㆍ代者 皆削籍 定軍役. 掌議ㆍ有司不察者 亦治罰.一
每三年季秋 子午卯酉年 與戶籍同歲 司敎ㆍ監司預以升士列學日 知委於列學列邑. ○凡期日前半歲 吏曹啓 令該司擇日 乃移文於中學ㆍ營學. 下太學及升朝 皆倣此. 或元有定日 亦可. 大比
京則本學敎官ㆍ長貳 外則守令ㆍ敎官 攷其德行道藝而選賢者ㆍ能者 有德行者 謂之賢 有道藝者 謂之能. ○守令ㆍ敎官考其平日鄕約ㆍ學規所書 德業ㆍ過失及材學優劣 一從鄕黨ㆍ學衆所推稱者 更加詳察其所取
必以行著鄕里 學明經術 材能可任三者 必先審公共之論 而唯在長貳之裁鑑耳. 論升于中學ㆍ營學 會其鄕老學衆以鄕飮酒之禮 禮賓之. 論其德行ㆍ道藝之實 明白陳述 依式成狀. 京四學 升于中學. 各州縣學
升于營學. ○鄕飮酒禮儀節 見下. 以所興賢能爲賓. 若二人以上則以其次 爲介爲三賓. 其行酒至亂 及用妓女娼樂者 當該官 從重論罪. 凡大小宴會 皆同此. 旣行禮 明日 與狀吏偕行.
其非京學及營底邑學 則皆給路資錢各一百文. (準米五斗.) 百里外 加百文 每百里 各加百文. 皆以其邑經費會支.凡學中考講製述時 觀言意以爲省勵其實之地而已 非若今之科擧以是爲選格也.
其論升則不在句讀文字 亦不以門地貴賤 唯以賢能之實爾. 主敎選者 宜深體此意.一 擧狀式某學生 外方則曰 某邑學生 姓名年甲某職某 某職某等謹申 或代以報字. 爲貢擧事 右件人云云
具論其性行ㆍ學術ㆍ材能之實 唯其所當 "可合陞貢 某等 知賢不敢不擧. 或云某所諳知不敢不擧. 如或擧人材學荒莽 行義虧缺者 甘坐謬擧之罪." 謹具申狀云云. 若擧二人以上 則一狀列論
不必別爲二本.年月 日某職某某職某中學ㆍ營學擧狀 同此式. 大學升朝亦同. 但爲啓本而改可合升貢 爲可堪某任云云. 如或任後贓汚敗常及疲懦濫酷 違法害民 甘與同坐. 太學亦列書長貳以下諸官
而其功罪則長貳 當之. 凡擧狀 各留藏於中學ㆍ營學ㆍ太學ㆍ政曹以爲後考.若外方州縣 或乏可擧之才 則雖從實闕之亦必申狀 具其所以無人之實 以爲考覈之地一 司敎 監司 聚其所升之士而敎之中學ㆍ營學.
初至 會坐考講. 中學則必司敎ㆍ司導 營學則監司ㆍ都事 會坐. ○所升之士 旣集學下考日 於學門外設次 別定官員一人 以主待升士. (待以主客之禮整其禮貌 又主禁門外喧亂.) 考官 坐講堂
升士每二人爲耦 以次而入 升自西階 上堂就講席拜坐. 講四書中抽籤二書 六經中自望三書 近思錄. 講畢 出就私舍候. 講罷 長ㆍ貳 坐堂 禮拜如師長初上任儀. 訖退與原在學者行 相揖禮. 其不通者
罷歸. ○司敎ㆍ監司 詳具擧行事狀及名簿啓聞. 下太學及升朝同.凡中學ㆍ營學廩養之具 極其豐潔 不復分番. 其有父母之養及不得已故者 聽其往來. 告歸者 必呈單子于師長 師長 量其久近 從優給暇.
○春秋祭祀及講射 凡歸家者 亦齊會. 其無故不來及久不來學者 從輕重論罰. 居京及營底本邑而無故不參朔 望講讀及三朔內 居學未滿十五日者 齋中 笞其家僮重則 論罰. 其五日 通讀講論 月朔讀法
四時射侯 考書 並同諸學例 春秋會坐考講. 必長ㆍ貳皆會坐 講四書中抽籤二書 六經中自望二書及綱目. ○凡綱目 每限十卷 (卽全卷五十九篇之一.) 如自一卷至十卷 或自五卷至十五卷之類 其下倣此.
皆於擧案中 自列應講書. 凡所升之士 如有學荒行虧材下者 罷歸而啓 罪其敎官 若守令ㆍ敎官. 凡罷歸 除講書不通者外 必須經久 善惡著明然後乃行. 後皆倣此.監司ㆍ都事 常課外 宜以暇日數至學中
講說勸勵. 又於無事時或淸夜燕閑之際 輪召三四人 凡會諸生 講讀則必親詣學 而不得令諸生 移就官府 此則不在其限. 與之論議學術 凡身心性情彛倫日用之常以及古今事物之宜 至於民事利病 風俗治道
唯其所議而皆可商確. 凡大小學校 州縣之長 皆當如此.一 論升之明年秋 司敎ㆍ監司與司導ㆍ都事 攷其德行道藝而又選賢者 能者 論升于太學 並如前法而尤加精擇 會其學衆以鄕飮酒之禮禮賓之. 並如前例.
其學未加進者 仍留營學而敎之. 後式年論升時 幷合新舊以擇.一 太學長貳 聚其所升之士而敎之 初至 會坐考講. 太學長ㆍ貳以下諸官 皆會坐以講 . 其賓待入學之節 並如前例. 但講四書中抽籤二書
六經中抽籤三書 其不通者 罷歸之. 凡太學廩養之具 極其豐謹 今太學養士之規 亦頗詳備 當依今例. 不復分番. 其有父母之養及不得已故者 則聽其往來 其五日通讀講論 月朔讀法 四時射侯 春秋考講
必長貳以下 皆會坐. 幷同前例. 凡所升之士 如有學不明行不修材不可進者 罷歸而啓 罪其中學長ㆍ貳若監司ㆍ都事. 凡旣升於太學則爲選士. 凡其敎之之術 益加篤厚 尤以大人成德達材之事責之.一 每歲秋
太學長貳 攷其德行道藝而又選其賢者ㆍ能者 亦先使學衆僚屬 攷其德業勉否 衆推之 而長貳 更加審察 必以性行端正 有廉恥禮讓ㆍ通明學業 曉達治道者. 論啓而升于朝 並如前法而尤加精擇 會其學衆
以鄕飮酒之禮禮賓之. 亦如前例. 其學未大就者 仍留太學而敎之. 每後論升時 幷合論擇.按古者獻賢能之書于王 王再拜受之 其重道尙賢之意 深實若此 此所以民興於德而人不敢妄擧也. 世之人主 誠知此義
治國安民 猶運之掌也. 君上再拜受之一節 今不敢直書條目中 人主所當深省 而必行之者也.一 升朝之士 命大臣與公卿ㆍ臺侍 會坐考講於闕內. 大臣 取旨 爲命官 與政府堂上一員 六曹堂上各一員
(凡言堂上必首 堂上有故然後 次堂上行 下皆同此.) 弘文館 司憲府官各一員 會坐闕內 其延待入講之節 如前例. 於闕門外設次 禮曹郎官一員 主客之 以次引入以講. 所講之書 如太學例. 但加綱目
(此則不限卷 於全帙中抽八卷而各抽一章.) 大典. 其不通者罷歸. 旣升於朝則爲進士 進士 亦書名奏御 副在政曹而已. 無如今放榜等事. 入直本院 院卽下所謂進士院 如漢之擇士 直三署
給宿衛待次之制. 冠帶從事 給祿月四斛. 給宿衛 備召對 審察其實. 如有學業不明 行義不修 材能不可用者 罷退而罪其太學長ㆍ貳.一 進士院 姑擬此號以待擇定. 院當置於弘文館近處. 政府ㆍ政曹
提領其事. 政府ㆍ吏ㆍ兵曹堂上 如今屬曹堂上之例. 其堂下官 亦如 屬曹郎廳之例. 進士 無職掌 無定員. 如今權知 無定員 但待其升士而已. ○院有書吏二人 直廳皁隸八人 .進士每員 各給小史一人.
分番入直 分三番. 四時講 大臣 (首相有故 則亦次堂上代行. 下同.) 與政府堂上 吏ㆍ兵ㆍ禮曹堂上 各一員 弘文館官二員 會坐通讀講議. 射.停親臨則大臣與政府堂上一員 六曹堂上各一員
弘文館官一員 會行之. ○按古者 天子ㆍ諸侯 將有祭祀 射以擇士 故曰諸侯 貢士於天子 天子試之於射宮 其容體 比於禮 其節 比於樂 而中多者 得與於祭. 其容體 不比於禮 其節 不比於樂 而中少者
不得與於祭. 射以擇士與於祭 古之制也. 今亦依此 四時祭享前期 設行 兼以取諸執事可也. 其耦射 揖讓升降周旋之節 當參酌古禮 定爲其式. 雖或仍今試射 亦宜略著 揖讓恭敬之節以定其儀. 凡射侯
群耦畢射 又升射 三射而後止. 每上視朝 侍衛殿上. 只入直者入侍. 或輪入經筵 或燕閑時 輪對. 祭祀則差諸執事. 如此則侍 衛助祭之人 皆是忠藎莊敬之士. 召對之際 經義ㆍ學術ㆍ治道ㆍ時務
四方風俗 民間得失 皆得以聞於人君 大有所益. 而觀人之道 備於此 自然可知其爲人也. 居一周然後 如此則不唯在上者 知其爲人 政府ㆍ政曹百僚 皆得相接習熟 皆知其材之高下大小.辨論其差等
而命之官秩. 政府ㆍ政曹隨其德行ㆍ道藝之實 而辨其差等之論 稟旨以定. 量簡其若干人直除六品以上職 (在其時 酌宜以定. 或二三人或五六人 直除五六品 若有俊德之人 勿限品 唯其當.)
餘除九品以上至七品職於臺侍. ○百執事 內外學校 州縣軍民之任 量其器能 而待闕注補. ○凡始授階者 必自從九品始. 若其直除五六品 七八品職者 依守職例授階. 凡他不次擢遷者 同此.
○除特薦者及試州ㆍ縣ㆍ鄕官陞遷者 及衛士叙用者外 內外東西班職以至 從九品 非此選進者 勿許入仕 以淸仕路之源.按旣如此則今四館參下官數 自當減省. 又國典 凡朝會燕享 司僕侍御側 內禁衛列階上
旣使所進之士 侍殿上 則司僕亦當革罷也.或曰 "升於朝者 依漢策賢良遺制 策以時務 似合考言審才之意矣." 曰古之所謂考言 非試文之謂也. 漢策賢良 亦非試之也. 乃訪以治道而施於有政也. 是以
非獨秀孝對策 其已爲大夫者 亦同對策也. 然由此之故 漸至文弊. 後漢中葉以降 人材ㆍ氣象ㆍ文章蓋可見矣. 夫文者 出於心者也 見其文則其人學術之精粗 亦可知也 然志於爲文則用心己外而喪其實矣.
朝廷誠欲察其賢否 年歲之間 考其行事 接其言議 周旋應對之際 皆可以得之矣. 奚必庭列收卷 試其一日之文而後 乃爲審也? 今若試之以策 則始學後進 必爭相傳抄 以模綴文字爲事. 州縣之擧
亦必以文詞爲先 其害豈淺淺哉? 陶造化而司風敎之本者 不可以不謹乎此也. 且人君親試 則是以太學論升 爲不足信 而自爲試之也. 旣爲試可則後雖其人不才 安能責其擧主乎. 此虛實失得之分也. 世道之升降
人才之成毁 斯其大機. 小知治體者 必不爲此擧也. 曰 "然則州縣學校之有時製 何也?" 曰此其事勢有不同者焉. 夫朝廷者 樞機之地 賞罰之則 四方之所響應者也. 朝廷之所貴 唯在實德 則有司之所求
人士之所志 莫不以實 故州縣師長 雖時令製述 只可爲驗其學述之一助而不至爲害. 然自營學絶此者 恐其因成弊習也. 若朝廷而試之文 則上下四方 先已馳於揑虛而文爲僞說 將淪胥喪心 敗才之不暇
尙何考實之可言耶?一 太學ㆍ中學長貳 四學敎導ㆍ敎授及監司ㆍ都事ㆍ守令ㆍ敎官 必居任滿歲然後 乃薦士. 長貳中一員 滿歲則一員 雖未滿歲 滿六朔後 乃薦. 其遷遞 當薦士前十朔以內者 限薦士仍任.一
凡居四學及鄕學者 皆滿三歲然後 得充薦. 居中學ㆍ營學及太學者 滿一歲後 得充薦. 年未四十者 不得升朝. 謂自太學升於朝. 若有茂材ㆍ異行非常格所拘者 謂學行卓爾 衆所信服者. 雖居學未久及年未四十
亦備數論薦. 雖不居學 亦得數外別薦.居學未久者 於擧狀中 並論其所以不拘之意. 年未四十者 亦然. ○其不居學者 於常數外 別論以薦. (雖州縣所未升而苟有其人 則監司 亦得別爲論升. 雖營學所未升
而太學亦得別爲論升.) ○凡所升之士 本學及升學 皆書名以藏.或曰 "古雖云四十而仕 人之才分不同 何有於長少. 且古者 人多壽考 後世六七十者 亦稀 似不必泥古." 曰非以泥古 欲事之盡其宜
則古人已先獲之. 凡古人制節 無不極當 非精夫物理而有得焉者 不足以語此. 夫人之愚智不齊 而其志氣之所進 血氣之所就 大槩皆有向定之期. 是以聖賢 亦謂四十而不惑. 凡人少長 其心思所至 亦自有異.
此所以禮云四十曰彊而仕也. 况此論升 本以才德而又有材行茂異 不拘常格之文 而隨其後者耶. 當患其才之不及成 而不患其用之不及時也 且國家設官 有常員 任職之人 有常數 以彼以此 其實一也.
是以雖稱四十而仕自 不無不拘常格者 雖許早歲而仕 年少入仕者 亦自爲罕. 但槩以四十則雖不無不拘常格者 而天下之人 方其小也 無利可慕 唯志於善 故長易成德. 許令早仕則雖早 仕者自爲罕而天下之人
從少已直汲汲趍利之心 無由向善 故長漸陷溺. 天下向善以上 有無限好事 天下趍利以下 有無限不好事. 後世政事 才術之不逮 傾危反亂之多者 蓋以此也. 後世用人太早 非爲人不壽考而然 本非可論於此.
然人多不壽 雖云氣數已衰 果令人心莊靜 風俗淳正則亦必壽考者之多也.一 守令ㆍ敎官闕薦者 罷職. 若有不薦士者 則監司 以名啓聞 命推考. 若實無其人 則仍之而責後效 餘皆罷職. 京學倣此.
○苟無其人 不可苟充. 然十室之邑 必有忠信 而至於闔郡無人 則是學校不興也. 守令ㆍ敎官 皆不許中上以上考. 若有賢俊而掩不以聞 則另以蔽賢之罪 罪之.一 凡誤薦者罷職. 其情狀可恕者
降祿五等周年. 其餘 皆罷黜. 所擧二人以上 各加一等 罪止除名爲民. 其徇私故擧者 以欺罔論. 此爲知其不才 而徇私欲 視勢利而故擧者. 苟賢能也 雖其子弟 不以此論. 敎官ㆍ守令ㆍ司敎ㆍ監司論罰.
司敎ㆍ監司ㆍ太學論罰. 若夫太學有誤則朝廷 自當論其罪罰. 並毋論赦前及去職. 其進賢者 特加▩擢. 或賞賜 加資 封爵 隨其大小之宜. ○凡論賞罰 除庸謬無識者外 必歷驗之久 賢不肖 著見然後
乃行. ○雖擧主已沒 應奪官者 追奪. 應進職者 追贈. 有謚者 隨其善惡亦改之.一 如子年爲式年則子年秋 四學 州縣 升士于中學ㆍ營學. 丑年 中學ㆍ營學 升于太學. 寅年 太學 升于朝.
太學則每歲論升.又次年 爲式年.一 每三年 京ㆍ外所升選士 一百五十人爲額. 每歲升于朝者 三十五人爲額.按本國內外正官一品至九品 並東西班 約可九百餘員. 夫士 四十前後從仕 七十前後休官
大槩不過三十年. 其間 又不無壽夭ㆍ喪病ㆍ雜故 取其中數則約可二十餘年 而新入者與舊盡者 相當矣. 若每年入仕者 三十五人則積至二十餘年 便得七百餘人 可充七百餘職. 其餘則須特薦人 卽貢擧外
朝廷三品以上 公薦之類. 及州ㆍ縣ㆍ鄕官升遷 朝廷公薦 勿論已仕未仕者 州ㆍ縣ㆍ鄕官 亦不無已被選及前銜之人. 及武選升仕之類. 醫ㆍ譯ㆍ算ㆍ律ㆍ雜擧人 亦在其中 而各有本衙門. ○若職官之數
合有增損 則此亦準宜加減以定.一 選士 定額一百五十人則每加一半以二百二十五人 爲中學及各道營學之額 卽四學及州縣所升之數. 皆從戶口衆寡 學額多少以分定. 如太學選士一百五十人 每三年內
百五人升朝則餘留者 四十五人. 積至二十一歲七式年 則所餘留者 爲三百十五人. 每新舊 幷合論升 則於四百六十五人內 升百五人矣. (二十四年後則新入與舊盡者 庶可相當矣.) 又如中學及各道營學生
合二百二十五人 每式年 一百五十人 升於太學則餘留者 七十五人. 積至七式年 所餘留者 爲五百二十五人. 新舊幷合論升 則於六百七十五人內 升一百五十人 爲選士矣. 一從戶口衆寡 參以學額多少
分定各道 各道又以此 分定各邑. 漢法 孝廉 郡國口二十萬以上 歲擧一人. 四十萬以上 歲擧二人. 六十萬 三人. 不滿二十萬 二歲一人. 不滿十萬 三歲一人. 今亦依此 約以二三萬或四五萬口
爲一分論 每滿一分以上 一式年一人 二分以上 二人. 不滿一分則二式年一人 以是爲差. 或二式年 三人 或三式年二人. 畫計帳口大數 參以學生實額 而分定如式 可也. 各道戶口之數 今未可詳
倣今鄕試分數 姑擬其例. ○若加定之數 太狹則監司 無所攷擇又難以分敷列邑. 若太優則或有濫雜不精. 又久後留餘者 衆而鄕里實行之士 多見積滯 今加□半以定 更當審量其宜.選士一百五十人分諸道
加數分定例中學八 以十二分定四學.京畿十八 以二十七分定州縣.忠淸道二十 以三十分州縣.全羅道二十二 以三十三分州縣. 濟州慶尙道二十八 或二十九 以四十二分州縣.江原道十四 或十三
以二十一分州縣.平安道十六 以二十四分州縣.黃海道十二 以十八分州縣.咸鏡道十二 以十八分州縣.右如忠淸營學所升三十人 而升於太學者 二十人 則餘留者十人. 積至七式年 所餘留者 爲七十人
每幷合新舊論升則於百人內 升二十人矣. 又如慶尙道四十二人 而升於太學者 二十八人 則餘留者 十四人. 積至七式年 所餘留者 爲九十八人 幷合新舊則於一百四十人內 升二十八人矣. 又如黃海道十八人
而升於太學者 十二人 則餘留者六人. 積至七式年 所餘留者 爲四十二人 幷合新舊則於六十人內 升十二人矣. 此其大數也. 於其中不無罷歸者 又有由特薦及鄕官而出者矣 其不居學校而別薦者
又不在此中也.此比今科額則似過少 然今科額 本京數太濫不可據以爲準也 若比古京府擧額則此亦多矣. 學校未興之間 則姑減兩界各二人 添於京學 待五六年後 西北州縣學校興行 京中浮客 各歸定居然後
依其本數可也.或以爲 "京中浮居 雖各歸田里 然京都人士之衆 比外大府 不啻十倍. 學校興行後 西北四額 雖歸本土 京都則不可減." 此蓋今興用人 不公擧四方之賢而只私目前冠冕 皆是京人 故因成如是.
若變今弊 事自歸正 豈至是乎? 然大槩此在戶口▩數而已. 若各安定居之後 京都人士 猶爲過於儒額差等之本數也 則亦當仍此不減 而四學儒額 亦各增爲百二十人可也.今式年文科數 三十三人. 今生進數
各一百人.初試 三百四十人內 初試 各七百人內館試 五十漢城試 四十 漢城試 各二百京畿 二十 京畿 各六十忠淸 二十五 忠淸 各九十全羅 二十五 全羅 各九十慶尙 三十 慶尙 各一百江原 十五 江原
各四十五平安 十五 平安 各四十五黃海 十 黃海 各三十五咸鏡 十 咸鏡 各三十五或曰 "州縣升士 各有定額 則不無此邑所遺者 優於彼邑所升者之弊耶?" 曰州縣 旣適其宜 州ㆍ郡ㆍ縣本差田丁多少
爲定. 而升士之額 一從戶口衆寡 參以學額實數 差分以定則自爲均矣. 如令其間不無人才盛衰之異 此則當責之主其風敎者而已.若其山川之淸濁開塞 則其爲州 爲縣 已與其地形之宜 相符矣. 地形好處
自爲大邑也. ○有敎無類 若自國家 綱紀敎化則 何地不興於善? 今之華楚相縣 或至百什者 形勢使然. 亦猶田制 壞而强漸强 弱漸弱之勢也. 果令雖有敎化 終於無益 則何爲而置學立師乎. 且列邑所升
雖或有彼此優劣 每合新舊論升則優者常升於太學 而太學則皆得其優者矣. 太學亦如是而朝廷則皆得其優者矣. 然則朝廷所得者皆是人才之優者而人才衆多處 自多登進之人矣 寧有遺才之患乎.
若曲慮其不均而不定其數則法不爲法而將不勝其弊矣. 古者諸侯貢士 大國三人 次國二人 小國一人 而云行同能偶 則別之以射 其有一定之數 可見矣. 漢時貢擧 亦一從戶口 差定其數而無他語. 今之科擧
京及各道解額 亦各有一定之數. 古今取人 其所以取之者 不同而其有定限則不能改易也.嘗見中國論者 謂南方文勝 會試 南人多占而北方有用之才 見遺. 請分元額 分取南北之人. 此在科法中不無意見者也.
若夫常數之外 許令別爲加減 此係一時權時制宜 不可以爲經法也.一 凡事 貴於明見不惑 而亦須處之有序 國家之不敎士 久矣. 後世導率 無非嗜利僥倖之習. 是以士之稍有才者 爭爲庸瑣雕摘之文
以幸一朝之利. 人之精神志慮 全在於是 故名爲讀書而實不識半句經義. 且登仕當路者 皆是京華形勢之子 故鄕曲之人 自畫暴棄 名爲校生而目不識字者 亦多. 今若卒然律之以此而盡汰軍役則非徒興怨
實是罔民之大者. 宜先數年 自上親下明信懇惻之敎 須示事目 使人人曉然知上意之所在 而興起勸勵. 又擇監ㆍ都事 二三巡 考講賞罰然後 從而行法 畫一無撓 可也. 今西北尤荒莽無文 另加寬限 待其興業.
且今不無有志學問之士 或有鄕曲積行之人 而率爲擯斥淹滯 貢擧設行之初 限一式年 州縣薦士 於常額外 量宜加數以備任使. 且使人心知所勸戒 可也.一 永革浮詞之科 嚴禁雜戲之習. 旣罷科擧
興貢擧則其間戲樂不經 壞人心 敗世敎者 自當除去. 然習俗已久 人熟心目 亦須嚴立條禁乃止. 夫士初出身立朝 則尤當惕勵 加修以求盡其事君治民之道 不當優倡戲樂游娛市街. 其先進之待之也 亦當禮貌之
而勉以致君澤民之意 不當爲之慢弄 使作醜愧之戲. 今初出身者 謂之新來 例爲導倡張樂 周遊市街三日. 又設宴會 謂之慶宴 盛張聲樂優倡傀儡. 其先進之會筵者 必戲弄新來以至禽獸之狀 可駭可愕之態
無不使爲相與以爲娛樂 此直胡風之未變者. 若貢士之後 或有仍舊不改 而近倡優設宴戲者 則其先進 削籍除名 新來 幷削其薦 有家長者 亦令同罪. 至於賜花賜樂等事 本出於唐明皇之以逸欲敎有邦
宜一切革罷也. 或曰 "設宴張戲 固不可 至於人子爲親 則似無所妨." 曰爲己與爲親 本非二事 敎子與事親 亦無二道. 人子事親之節 四時祭燕 本載於禮 豈可以己登薦 自以爲慶而設燕張樂
名之爲慶宴然後 乃爲事親之道耶? 苟如是則登薦與進職 其事無異. 若赴州忟登卿相者 必開設慶宴以幸其升 而娛樂其親 爲可耶? 今非獨初登科者爲然 參下淸選槐院翰林 亦皆戲弄新進 責辦酒食.
宣傳官ㆍ監察以至大小百司 無不責辦酒食而後 許參同坐. 朝著旣如此 下人效尤 書吏ㆍ皁隸ㆍ軍卒之類 其弊尤甚. 至於外方鄕校儒生新入者 亦責辦酒食而許參. 或使納布 謂之新入價. 流習之弊 觸處寒心
皆當一體痛禁以期變俗. (犯者其先進在坐者 及聽從新參者 勿論文武大小官 皆削籍除名. 臺諫及外方官長不擧劾者 並重論.)或曰 "科擧之害 先哲論之 盡矣. 但行之已久 難以頓改.
若賢良科則不變科擧之名 而有得人之實 如何?" 曰己卯士類 亦不得已而行此. 然柳西峯藕 亦言其苟且矣. 凡事 名實須相副 天下未有假借他名 而終成其事者也. 人主不先立志 則萬事本無可言.
果人主學明志定 則當剛健明斷 而行之不疑 自有實效 何苦而依阿苟且以冀其成也?或曰 "庭試ㆍ謁聖則人君親試 其或無害否?" 曰所謂庭試ㆍ謁聖 亦命有司燭刻試之. 其所試 不過對偶之文而瞥眼之間
定其取捨 故諺曰庭試ㆍ謁聖 盲人亦望. 是以乳臭小兒 亦皆爭試而其所取 率皆輕佻僥倖之輩 尤爲可笑. 至於表詞空言之中 尤爲文字之賊 其壞人心術 特又甚焉. 人君視學則當引近有識之士 講論經術
詢及治道以資簡拔 不當導人以浮薄無恥之風也. 曰 "國有喜慶事 則例爲別設科擧 是則如何?" 曰設擧取士 蓋將以得人才而理國家也 何預於慶事有無. 此與頒赦加資 同一意也 後世人君 有喜慶事 則例爲行
赦八方罪囚 加百官官資. 是則尤無可論也. 蓋人心之流浪 風俗之澆薄 下至空言文詞 亦以日就庸卑者 莫非科擧之害. 當一切盡罷 定爲著令. 不然 國無可治之日而萬世 如長夜矣.或曰 "貢擧 固爲至矣.
但取人 旣不以文詞 而又全廢詞表之類則或 不無文詞不足而於事大文字 未能達意之弊耶?" 曰天下之事 常患於行不足而不患言不足 常患於實不足而不患文不足. 後世實德之喪 以役志於浮文之故也. 文詞
本當憂其過靡 而不當憂其不足也. 就令只據文詞而論今之文章 日益庸碎 至於語不成倫 辭未達意者 皆是科擧之害也. 誠無造話資誦 今明經者 每段 摘其一字 造作俗語 務爲淫 褻可笑易記之話 以資其誦
謂之聖令. 若熟乎此 則能不忘其章段疑似 而於其大義 全所昧昧. 摘句資綴 今製述者 摘集經史文字 取其字之對偶 句之相近者 截章分門以資綴緝 謂之類抄. 若覽此則隨題引用 可得裁剪之巧而於其本文
多不經意. 之習 則天下之文章 不可勝用 而奏疏制詔 亦將就實典雅. 事上誥下之間 皆有以信諭人心 比諸今日之爲 不啻天壤之懸隔矣. 而况有德者之文 至於協神人 垂世範 此出於君子之儒
而決不出於科儒之輩也?或曰 "此法 州縣升於道 道升於太學 太學升於朝 各有年數而升朝之後 又不卽任. 如此則不無用才太遲之弊耶?" 曰一命以上 皆是天職. 苟一有匪人 害及生民. 是以先王 養之厚
敎之篤 擇之精 察之審而後 命之以位 而任之以專 夫然後 官得其人 而治化行. 民得其所 而績用成. 後世 旣無敎養之事而又不知用人爲至重事 此蓋緣科擧取士 資格用人而然.
欲取士則不加精擇審察而循例輕用. 不然則雖知賢才 遺棄巖穴 而不以爲意. 由其無深燭事理而志慮不定故也. 非獨用人 凡事皆然. 非欲速不耐 則又全抛忘之 皆由其無深識定志故也.此所以雖有願治之君
而不能成其功也.蓋能持是道 以誠行之而勿迫勿忘 則自當擧無遺才 用無不宜而天下治矣.或曰 "貢擧之法 固至矣. 但後世 人情浮薄 易以徇私奈何?" 曰後世 人情之浮薄 法使然也.
若無科擧則雖日撻而使之浮薄 亦不可得也. 凡天下之事 衆共則難私 獨見則易私 責實則難私 以僞則易私 陽明則難私 暗秘則易私 經久則難私 間暫則易私. 貢擧之法 博採鄕黨公共之論 覈以平日善惡之實
明擧而會衆禮興 保任而徵於久遠. 科擧之法 一切反是. 據此觀之 貢擧 易以容私乎? 科擧 易以容私乎? 夫責實備禮 明以保擧則擧之者 不敢妄擧 而唯恐其知人之或未至 爲士者 不敢妄進
而唯恐其自修之或未盡. 苟有徇私冒進者則妄擧之罪咎 無所逃而不才之黜 恥無所容 適足爲懲一勵百之地. 如此則不唯擧得其人 天下 皆將務實讓賢 而風俗 日入淳正矣. 糊名謄錄 去取於俄頃則擧之者
無保任之責而不憂於知人 爲士者 苟冀一時之倖而無意於自修. 雖有不才被擧者 考官則曰 "我知考其文詞而已 不知其他也." 爲士者亦曰 "科場幸中 自是常事也." 責無所歸而恥無所立.
如此則不唯擧失其人 天下皆將務僞爭競 而風俗日趍浮躁矣. 此兩者 皆理勢之必然 而愚智之所共見也. 設令貢擧 歲久人怠 朝綱解弛 容其奸謬 猶可擧十得五而改其人則美法 猶在矣.
今科擧之法則雖以賢相ㆍ良臣行之以至公 無益於得人 而不能不使人心壞敗 風俗澆薄 而况於種子不好 宋人 謂科擧種子不好 言科儒出身 復爲主司也. 而行之以不公乎? 只患人君 知之不明 行之不斷.
容私之弊 非所慮也. 凡古人之法 本皆簡以無弊 苟且多弊者 後世之法 是也. 然後世 每行多弊之法 而不曾行其無弊者. 時君不會體究其實而庸流鄙夫恐其害於己私 沮止之故也. 其實古今本無異宜也.
嗚呼參朮ㆍ鴆毒 服之者 自有其效 難以口舌爭也.一 王言及公用文字 皆從實錄 不得用四六騈儷. 四六 輕浮文字 一切禁斷.栗谷嘗著其成東湖問答以上宣廟. 其論設敎取士之制 略曰 "設敎之術
莫先於學校. 今者 以訓導爲至賤之任 必得貧困無資者而授其職 使免其飢寒. 爲訓導者 亦徒知侵漁校生以自肥而已. 夫孰知 敎誨之爲何事. 如是而欲望作成人才 何異於緣木而求魚. 爲今者之計
莫如使八道監司移文列邑 每三年一度 選其鄕人之可爲人師者錄其名 報于監司. 監司 合諸邑之選而移于吏曹. 吏曹案其簿 博採公論 更加精擇. 凡差訓導之際 必以其邑之人授之. 其邑 無人則授鄰邑之人.
鄰邑 又無人則授以其道之人 不限其箇滿 惟以成敎爲期. 使命之行 待之以禮 不入鄕校則不使祗迎. 除儒生講試外 凡公會 幷不來參 使訓導持身自重 勉勵學者. 然後每年監司親到考其成勣. 但試儒生
不試訓導. 若使儒生能知道學之可尙 整其威儀 飭其行檢 其讀書 務以窮理爲要則績之上也. 使儒生讀書不倦 操行無疵則其次也. 績之上者 啓聞論賞 授以六品之職 以聳動士林. 其次者 亦啓其勞
加其資級以示褒賞 使勉於敎誨. 若其依舊碌碌 無績可考者 卽課以殿. 又若依舊貪鄙 誅求校生者 按律治罪. 夫如是則訓導之任 甚重而不屑之士 亦有肯爲者矣. 或曰'泮宮 首善之地而今士習日渝 不知學問
徒慕榮利 亦何術而可救耶?'曰此非儒生之過也 朝廷之導率 未得其道也. 今之取人 只以文藝爲重 不以德義爲貴. 雖有通天之學 高世之行 若不因科第而進 無由少試其道. 且於泮宮 以圓點會士
凡士之日用行事 無非求利之術. 導率如此則士習 何由可正乎. 爲今之計 當使八道及京都五部 每年一度 選生員ㆍ進士ㆍ幼學之稍有學問之志 不爲非義之人 不必太高其選 只知道學之可尙者 皆當與焉. 錄其名
悉移于吏曹及禮曹. 吏曹ㆍ禮曹會于一處 案其簿而更加商議 取生ㆍ進二百人 居于太學 分五番. 每番四十人 雖在鄕者 必及期而至. 又取幼學二百人 分處四學. 每學五十人 亦分五番 每番十人 名之曰選士
別擇儒臣之學成行尊者 爲太學及四學之官 使誨諸生 惟以講明正學爲務. 其學 必本於人倫 明乎物理 擇善修身以成德爲期. 曉達治道 以經濟爲志. 若有學行 皆中於是者 卽升于朝 使居臺侍之列
雖不及此而行無瑕玷 年過四十者 亦授以百執事之職. 如有信道不篤 行己無檢者 刊除其籍 吏ㆍ禮曹更擇他人 隨闕隨補. 且其廩養之具 極其豐潔 以盡朝廷 待賢之道. 若外方幼學與選之人 隨其多少
居于鄕校 量宜分番 官給供具 使授敎于訓導. 若於其中別有學行卓異者 州縣 報于監司 監司錄其名 移于吏ㆍ禮曹 俾居于太學下齋 接待與生員無異 觀其實德而升于朝. 夫如是則爲士者 亦知德義之可尊
不徒文藝之爲尙 凡民興起而四方風動矣. 或曰'生ㆍ進ㆍ幼學之不參選士者 當籍名于何所?'曰生ㆍ進則籍名于太學 幼學則籍名于四學 皆依舊矣. 但不爲圓點 不食官養 至於釋奠及主上視學之時 一齊聚會
乃參食堂矣. 或曰'外方校生 多有不識一字者 何以處之?'曰郡邑之儒 皆有定數 數內儒生 汰去似難. 但當更得其年少者補之 而汰其年長無才者耳. 若數外儒生之不可敎者則悉補軍額 可也.
或曰'外方所謂業儒者 置之何地?'曰此則擇其可敎者而歸之鄕校 汰其不可敎者 悉充軍額可也. 或曰'若不羈之士 無所寄名 遯跡山樊 杜門求志 安貧樂道 德義之聲 播于遠邇則將 何以待之?'曰如此之人
徵以處士 察其虛實 名不虛得也則當待 以不次之位 使任補袞之責矣. 或曰'子言固善矣 庶幾三代取人之法矣. 但世道日降 民僞日滋 選拔之時 不徇公道則奈何?'曰此流俗之見也. 自古立法 固是待人而行.
亦不爲無人而不立其法也. 茲法旣行 風俗漸變 士知廉恥則徇私之弊 亦當自止矣. 若以徇私爲懼而徒守常規則利欲之網 無人得脫 尙可以明敎 而作人乎? 或曰'世間賢者至鮮 不賢者至衆. 子言若行
則豈不至於擧一世而仇君子乎?'曰自古善爲政者 其初莫不有謗 子産相鄭 一年而謗興 輿人 誦其欲殺 三年而謗止 輿人唯恐其死焉. 孔子相魯 投之無戾之歌 雖發於初政 惠我無私之頌 旋作於化成.
惟堅守古道 力行無變 不沮不怒 然後民心可定也. 且茲法之行 惟許改過 不念舊惡 則君子豹變 小人革面 皆欲入於陶鑄之中矣. 怨謗之作 何患於不止乎?"一 宗學之制 亦須同學制 詳定其規. 宗學
設導善從三品 典訓從四品各一人 極擇有道義方正之人 專掌其敎. ○宗親 年十五 入宗學受業 每日課授背誦 錄通否(幷塡書圖.) 每月季啓聞. 其無故不學及不通多者論罰. 又間五日通讀講論. 每月二次
考講(朔後望後.) 曾讀臨文 詳盡意義 幷如四學例 而錄通否 每節季啓聞. 五次講二不通者 論罰. 其無故不詣學者 違禮犯令者 附過 每節季啓聞論罰. (凡論罰未長成者撻楚 其有祿者隨輕重
降祿一二等或四五等 各三朔.) 年滿四十而通小學ㆍ家禮ㆍ四書ㆍ近思錄二經者 雖未滿四十 而通小學ㆍ家禮ㆍ四書ㆍ近思錄三經以上者 (宗正府堂上及司正ㆍ太學長貳ㆍ吏禮曹堂上及宗學官 合坐試講
每篇抽籤如四學例. 啓聞.) 年滿五十者 並免就學. 每歲六月ㆍ十二月攷學. 每月二日ㆍ八日ㆍ十六日ㆍ二十三日給暇. ○其學規勸戒 月朔讀法 四節考書幷如學例. ○宗親始冠者 因月朔 詣太學
與諸生行相揖禮 同諸生拜聖 又拜師長 (師長坐自如.) 齒坐 參講讀而退. ○冬夏 大司成巡至宗學 與宗學敎官 合坐讀法考講 仍與通讀講論 並如四學例. (大司成至 宗學官祗迎 大司成入就坐
宗學官就前再拜 如儀而退 大司成坐自如. 宗親入就位重行. 大司成起立 宗親再拜 大司成答再拜 宗親退. 於是乃合坐 讀法考講. 大司成有故 貳官代行如例) ○宗學官與在學宗親相見之禮. 每月朔
導善北壁 典訓東壁坐 宗親就前重行 (正一品一行 二品以上一行 三品以下一行 無職一行.) 再拜宗學官坐自如. (常時則一拜 宗學官答拜). 導善 典訓初上任 則宗親行再拜禮 導善 典訓坐自如.
凡宗親 雖非在學者與宗學官相見 則大君以下皆拜 宗學官答拜. ○宗親免學者 每歲 殿講 四書中 抽籤二書 六經中 自願二書. 小學ㆍ綱目 皆臨文通者 論賞. 二次則加一資. (三品以上 四次乃加.
○未免學者亦一年 一次殿講 隨所讀三書通者 論賞奬勸之.)按古者 自天子ㆍ諸侯之子 以至公卿大夫士之子 皆入太學而敎之. 至於任人則惟其賢德 不擧親而遺疏 亦不遺親而擧疏. 是以有公族之卿
有異姓之卿. 後世宗親 但崇祿秩 不任以官. 於是宗戚與士大夫 別爲二途 故未免旣有太學而又置宗學矣. 此蓋但因今制而著 其節目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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