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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향음주례 세칙을 덧붙임[鄕飮酒禮節目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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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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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향음주례 세칙을 덧붙임[鄕飮酒禮節目附]

현명한 인재를 추천하고 향음주례를 집행하는 예절은 모두 그 지방의 장관이 주인이 되고[주와 현에서는 원[守令]들이 주인이 되고 각 도(道)에서는 감사(監司)가 주인이 되고 서울의
학교[京學]에서는 관장(官長)이 주인이 될 것인바 만일 관장이 사고가 있으면 주와 현의 교관이, 혹은 각 도나 서울의 학교에서는 그 차석이 대리할 것이다.] 현명한 자가
주빈[賓]이 되며 그 다음의 현명한 자가 차석[介]이 되며 또 그 다음이 중빈(衆賓)으로 되어[중빈은 일정한 수가 없다.] 주인이 주빈과 차석에게 오기를 요청한다.[주인이
피초청자의 집 문 밖의 서쪽에 서서 동쪽을 보고 주빈은 동쪽 뜰 아래 서서 서쪽을 향한다. 안내자는 주빈의 좌편에 서서 북쪽을 향한다. 안내인이 주빈의 분부를 듣고 나와 문 밖의
동쪽에 서서 서쪽을 향하며 말하기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하면 주인이 말하기를 "아무 날에 향음주(鄕飮酒)의 예를 행하기 위하여 당신의 참석을 요청합니다"라고 한다.
안내인이 들어가 주빈에게 고하면 주빈이 나와 문 동쪽에 서서 서쪽을 향하여 "오시기에 수고하였습니다" 하고 절하면 주인이 답배하고 나서 말하기를 "당신은 학술이 우수하고 덕행이
높아 이번에 응당 나라의 정치계에 진출하게 되어야 할 것이므로 아무 날 선발하는 의식을 차리기로 하니 당신의 임석하기를 요청합니다"라고 한다. 주빈이 답하기를 "제가 용잔하여
당신의 기대를 저버릴까봐 염려이오니 그만두겠습니다" 하면, 주인이 말하기를 "제가 이미 부형과 선생에게 상의하여 결정하였으니 꼭 오시기를 요청합니다" 하고, 주빈이 말하기를
"당신이 거듭 말씀하시니 제가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하면 주인이 재배하고 주빈이 답배한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가면 주빈[賓]이 절하고 전송한다. 차석에게 요청하는 절차도 이와
같은데 말하기를 "아무 날 향음주례를 행하기로 한바 당신이 차석[介]이 되어주기를 요청합니다"라고 한다. 여러 손님[衆賓]들에게도 주인이 사람을 보내어 서면으로 시일을 통지할
것이다.] 하루를 앞당겨 자리를 배설하고 기명을 장만하였다가[주빈의 자리를 기둥 사이에다 배설하되 북쪽으로 당겨 남쪽을 향하며 주인의 자리는 동쪽 뜰 위에 정하여 서쪽을 향하며
차석의 자리는 서쪽 뜰 위에 정하고 동쪽을 향하며 여러 손님들의 자리는 주인 자리의 서쪽에 정하여 남쪽을 향하되 다 서로 닿지 않게 정할 것이다. 또 대청 아래에 여러 손님들의
자리를 서쪽 뜰 서남쪽에 정하되 동쪽을 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그리고 만일 남은 사람이 있으면 문 좌편에서 북쪽을 향하고 동쪽을 위로 할 것이다. 찬자(贊者)의 자리는 뜰
동쪽에 정하되 서쪽을 향하고 북쪽을 위로 한다. 그리고 술병들을 주빈 자리의 동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당겨 놓으며 정화수[玄酒]는 서쪽에 놓고 보를 그 위에 덮으며 광주리를 병
남동쪽에 놓은 뒤에 큰 술잔과 작은 술잔을 담아서 모두 탁자에다 놓는다. 세숫대야를 동쪽 뜰 동남쪽에다 놓고 물은 세숫대야 동쪽에 두고 광주리는 세숫대야 서남쪽에 두되 모두
탁자에다 둘 것이다. 주빈과 차석 외에는 모두 연령대로 석차를 정한다. 그러나 영학(營學)과 태학에서 추천을 받아 승진될 자는 아무리 많더라도 모두 대청 위에다 자리를 정할
것이다. 만일 남는 사람이 있으면 동쪽을 향하며 북쪽을 위로 할 것이다.] 해 뜰 무렵에 주인이 가서 주빈을 초청하고[그 날 아침에 주인이 직접 가서 주빈을 청하면 주빈이 문 밖에
나와 서쪽을 향하고 절하며 수고했다고 하면 주인이 동쪽을 향하여 절하고 돌아올 때에 주빈이 절하며 전송한다. 차석에 제도 이 같이 할 것이다. 차석 및 여러 손님[衆賓]이 다
따라온다. 주빈[賓]이나 차석[介] 이하가 하루를 앞당겨 모두 학교 근처로 모우는데 주인이 거기에 가서 초청한다.] 곧 주빈을 영접한다.[주빈과 차석 이하가 학교 문 밖에 와서
북쪽을 위로 하고 동쪽을 향하여 선다. 주인이 문 밖에 나가서 영접할 때에 서쪽을 향하여 주빈에게 절하면 주빈이 답배한다. 또 서남쪽을 향하여 차석에게 절하면 차석이 답배한다. 또
서남쪽을 향하여 여러 손님에게 읍(揖)하면 여러 손님이 답례한다. 그리고 나서 주인이 주빈에게 읍하면 주빈이 답례한 뒤에 주인이 먼저 문 안으로 들 우편에 서면 주빈은 문 안으로
들어가 좌편에 섰다가 세 번 읍하고 동쪽 뜰로 온다. 주인은 서쪽을 향하고 주빈은 동쪽을 향하며 차석과 여러 손님들은 주빈의 서남쪽으로 순서에 따라 들어와 북쪽을 위로 하고 동쪽을
향하여 선다. 만일 전부 설 수 없을 때에는 북쪽을 향하여 동쪽을 위로 한다. 주인과 주빈이 세 번 사양한 뒤에 주인은 동쪽 뜰로 해서 올라가고 주빈은 서쪽 뜰로 해서 올라가는데
주인은 동쪽 뜰 위에서 문중방으로 당겨 서서 북쪽을 향하여 재배하면 ―대청에 도착했다는 의미 ―주빈은 서쪽 뜰아래서 문중방으로 당겨 서서 북쪽을 향하며 답배한다.] 주인이 주빈에게
술을 드리고[술잔을 드리는 자가 술잔을 덮었던 보[羃]를 걷으면 주인이 술잔을 넣은 광주리가[篚]로 가서 꿇어앉아 술잔을 가지고 내려오는데 주빈도 역시 내려온다. 주인이 내려오지
말라고 사례하면 주빈이 답례로 사례한다. 주인이 잔을 가지고 세숫대야 있는 데로 가서 남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씻는다. 씻을 적에 주빈이 나아가 동북쪽을 향하여 씻기를 사양하면
주인이 일어나 답례한다. 주빈이 서쪽 뜰 아래로 가서 동쪽을 향하여 서면 주인이 곧 손을 씻고 술잔을 가신다. 잔을 다 씻은 후에 주인이 주빈에게 읍하고 올라오면 주빈이 서쪽 뜰
위에서 답례한다. 주인이 동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잔을 드리면 이내 답배한다. 주빈이 서쪽 뜰 위에 서면 주인이 꿇어앉아 잔을 가지고 일어나 술잔 놓는 데 가서 술을
부어 가지고 주빈의 자리 앞 서쪽에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주빈에게 잔을 드리면 주빈이 서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한다. 주인이 조금 물러서면 주빈이 자리 앞으로 나가 잔을
받고 물러나와 서쪽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선다. 주인이 동쪽 뜰 위로 물러나와 북쪽을 향하여 절하고 잔을 보내면 주빈이 조금 물러선다. 집사[贊者]는 포(脯)와 식혜[醢]를
주빈의 자리 앞에 드리면 주빈이 서쪽으로부터 자리로 올라와 남쪽을 향하여 선다. 집사가 도마[折俎]를 마련해 놓으면 주빈이 꿇어앉아 왼손으로는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포를 갖다가
식혜에 문대어 제기[籩豆]의 중간에다 술로 제사[祭酒]하고 일어나 말석에 가서 꿇어앉아서 술을 입에 댔다가 일어난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내려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서 술을 다
마신 다음 일어나 꿇어앉아서 잔을 놓는다. 이내 절하고 나서 잔을 잡고 일어서면 주인이 동쪽 뜰 위에서 답배한다.] 주빈이 주인에게 술을 권하고[주빈이 세숫대야 있는 데 내려가면
주인도 내려간다. 주빈이 사례하면 주인이 답례로 사례한다. 주빈이 술잔을 가지고 세숫대야 남쪽으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으면 주인이 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선다. 주빈이
손을 씻고 술잔을 가신 뒤에 읍하고 올라오면 주인이 절하며 주빈이 답례한다. 주빈이 잔을 가지고 일어나 술잔 놓은 데로 가서 술을 따라가지고 주인의 자리 앞 동쪽으로 가서 남쪽을
향하여 주인에게 권하면 주인이 동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한다. 주빈이 조금 물러서면 주인이 나아가서 잔을 받고 물러나와 동쪽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선다. 주빈이 서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술잔을 보낸다. 주인이 조금 물러서면 집사[贊者]가 포와 식혜를 주인의 자리 앞에 드린다. 주인이 자리의 동쪽으로 해서 북쪽을 거쳐서 자리에
올라간다. 집사가 도마를 마련하여 놓으면 주인이 꿇어앉아 왼손으로는 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포를 갖다가 식혜에 문대어 가지고 술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 일어나 말석에 가서 술을
입에 대고 일어나 자리에 내려서 동쪽 뜰 위로 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잔을 다 마시고 일어난다.

꿇어앉아서 잔을 드린 뒤 이내 절하고 잔을 잡고 일어나면 주빈이 서쪽 뜰 위에서 답례하며 주인이 꿇어앉아 잔을 동쪽 좌석 한편에 둔다.] 주인이 주빈에게 술을 권하며[주인이 그릇을
놓은 데 가서 꿇어앉아 큰 잔을 가지고 내려가 씻으면 주빈이 내려오는데 주인이 그것을 사례한다. 잔을 다 가신 뒤에 읍하고 올라가면 주인이 서쪽 뜰 위에 선다. 주인이 술잔 놓은
데 가서 큰 잔에다 술을 따라가지고 동쪽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큰 잔을 놓고 이내 절한 뒤에 큰 잔을 잡고 일어나 빈이 서쪽 뜰 위에서 답배한다. 주인이 꿇어앉아
술로 제사하고 이내 큰 잔의 술을 다 마시고 일어나 꿇어앉아 잔을 놓고 이내 절한다. 그리고 잔을 잡고 일어나면 주빈이 서쪽 뜰 위에서 답배한다. 주인이 내려와 잔을 씻으면 주빈의
사례하는 의식은 술을 드릴 때의 것과 같이 한다. 그러나 올라가서 잔을 씻는 데 대하여 절을 하지 않는다. 주빈은 서쪽 뜰 위에 서면 주인은 술을 따라가지고 주빈의 자리 앞에 가서
북쪽을 향하여 선다. 주빈이 서쪽 뜰 위에서 절하면 주인이 조금 물러선다. 주빈이 절하고 나면 주인이 꿇어앉아 큰 잔을 안주 서쪽에다 놓는데 주빈이 사례한다. 주인이 일어나 동쪽
뜰 위로 가고 주빈은 이내 자리 앞으로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큰 잔을 가지고 일어나 서쪽 뜰 위로 가면 주인이 북쪽을 향하여 절한다. 주빈이 자리 앞으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잔을 안주 동쪽에 놓고 일어나 서쪽 뜰 위로 간다. 정씨는 말하기를 "술을 권하지 않는 것은 점잖은 사람들이 환락을 실컷 하지 말며 진실성을 낭비하지 말아서 교제를
원만히 하기 위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주인이 차석[介]에게 술을 드리고[주인이 북쪽을 향하여 읍(揖)하고 동쪽 뜰 아래 내려와 서쪽을 향하여 서면 주빈이 서쪽 뜰 서쪽에서 내려와 동쪽을 향하여 선다. 주인이 차석에게
읍하고 뜰에서 내려오는 것과 한번 사양하고 올라가는 절차는 주빈에서 하던 것과 같다. 주인이 동쪽 말석에서 꿇어앉아서 술잔을 갖다가 내려와서 씻으면 차석이 내려오는데 주인이 그의
내려오는 것을 사례하는 것과 차석이 잔 씻는 것을 사례하는 절차들은 주빈을 대접하던 것과 같으나 잔 씻는 것에 대하여는 절하지 않는다. 차석이 서쪽 뜰 위에 서면 주인이 술잔 놓은
데로 가서 술을 따라가지고 차석의 자리 앞 서쪽에 가서 남쪽을 향하여 차석에게 드린다. 차석이 서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한다. 주인이 조금 물러서면 차석이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술잔을 받고는 물러나와 서쪽 뜰 위로 가는데 주인이 차석의 오른편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하며 술잔을 보낸다. 차석이 조금 물러서고 주인이 서쪽 뜰 동쪽에 선다. 집사[贊者]가
포와 식혜를 차석의 자리 앞에 드리면 차석이 나아가 북쪽으로부터 자리로 올라간다. 집사가 도마를 마련해 놓으면 차석이 꿇어앉아 왼손으로는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포와 식혜와 술을
가지고 제사[祭酒]한다. 이어 잔을 잡고 일어나 남쪽으로 해서 자리에서 내려와 서쪽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술을 다 마시고 일어나 꿇어앉아 술잔을 놓은 다음에 이내
절한다. 일어나면 주인이 차석의 오른쪽에서 답배한다.] 차석이 주인에게 술을 권하며[차석이 내려가 술잔을 씻으면 주인이 동쪽 뜰에서 내려와 씻는 것을 사례하는데 그 절차는 이상의
것과 같다. 씻기를 마치면 차석이 읍하고 사양하며 올라가서 주인의 술잔을 두 기둥[楹] 사이에 놓는다. ―즉 동이[尊]의 앞 ―차석이 서쪽 뜰 위에 서면 주인이 잔에다 술을 가득
따라가지고 서쪽 뜰 위로 가서 차석의 오른편에 선다.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술잔을 놓고 이내 절한 뒤에 잔을 잡고 일어나면 차석이 답배하며 주인이 꿇어앉아 제사지내고 술을
마신다. 이내 잔을 다 마시고 일어나 꿇어앉아 술잔을 놓은 다음에 이내 절하며 잔을 잡고 일어나면 차석이 답배한다. 주인이 꿇어앉아 잔을 서쪽 기둥의 남쪽에 놓고 동쪽 뜰 위로
올라갔다가 읍하고 내려오면 차석은 주빈의 남쪽에 내려와 선다.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차석 사신이 잔질을 하지 않는 것은 한층 떨어진 손님이며 술이란 손님과 주인이 함께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주인이 여러 손님[衆賓]에게 술을 드린다.[주인이 동쪽 뜰 앞 서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여러 손님들에게 세 번 절하면 여러 손님들은 다 주인에게 한
번 절로 답배한다. 주인이 여러 손님들 중 어른에게 자리에 오르기를 청하는 의미로 읍하고 올라와 서쪽 기둥의 남쪽으로 가서 꿇어앉아 술잔을 가지고 내려가 씻으면 여러 손님들 중
어른이 내려가 주인에게 사례한다. 주인이 다 씻은 후에 읍하고 올라가 술잔 놓은 데 가서 술을 가지고 서쪽 뜰의 서쪽으로 가서 남쪽을 향하여 여러 손님들 중 어른에게 드린다.
손님들 중 어른이 북쪽을 향하여 절한 뒤에 술잔을 받으면 주인이 손님들 중 어른의 오른편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하고 잔을 보낸다. 집사[贊者]가 포와 식혜를 그 자리 앞에 차려
놓으면 손님들 중 어른이 자리로 올라와 꿇어앉아 왼손으로는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포와 식혜와 술을 가지고 제사한 뒤에 잔을 잡고 일어나 서쪽 뜰 위로 물러가 서서 술을 다
마시고 절은 하지 않으며 주인에게 잔을 주고는 내려와서 자기의 자리로 간다. 주인이 또 술을 따라가지고 서쪽 뜰 위로 가서 여러 손님들 중 다음가는 자에게 술을 드리기를 그들 중
어른에게 드리는 절차와 같이 한다. 또 그 다음가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같은 절차로 한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주인이 잔에다 술을 따라가지고 와서 서쪽 뜰 위의 대청 아래 있는
여러 손님들에게 드리는데 손님은 한 사람씩 올라와서 절을 하지 않고 잔을 받아 조금 부어 제사하고는 서서 마신다. 그때에 집사가 차례대로 도마와 식혜를 그 자리에 드린다. 주인이
잔을 받아 가지고 내려와 술잔을 광주리에 놓고는 주인이 손님과 함께 한 번씩 읍하고 사양한 뒤에 올라간다. 주빈과 차석과 여러 손님들도 순서에 따라 각자의 자리로 올라간다.
―여기에서 말한 여러 손님은 대청 위에 있는 사람을 ―만일 준자(遵者)가 들어오면 손님[賓]이나 주인이 다 올라가지 말 것이다. 만일 영학(營學)이나 태학 같은 데서는 추천하여
올려 보낼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다 이상과 같이 세 가지 순서로 할 것이다.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술을 마시고 나서 절을 하지 않으며 서서 마시고 또 선 대로 잔을 주는 것은
지위가 낮은 보통 사람이므로 범절을 간단히 하자는 것이며 절을 하지 않고 술잔을 받는 것은 범절을 일층 더 간소하게 하자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일 준자(遵者)가 있으면 그때에
들어오며[준자란 것은 지방 사람으로서 대부(大夫)가 된 사람인데 ―준자라고 부르는 것은 백성들을 교양 감화시켜서 법령을 준수케 한다는 말이다. ―그도 와서 예식을 참관하나 주인의
행사에 대하여 간섭할 것이 아니므로 밖에서 보기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들어오게 된다. 수령(守令)이나 혹 장관이 주인이 될 때에는 주와 현의 교관과 영학의 부학장이 역시 준자로 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학교도 이에 준한다. 준자의 자리는 동이[尊]의 동쪽에 정하고 남쪽을 향하는데 만일 여러 재상이 이미 와서 있을 때에는 대부인 준자는 주인의 북쪽에 앉아
서쪽을 향하며 재상[公]인 준자라면 그중석(重席)에다 앉힐 것이다. 준자가 들어올 때에 주인이 문 안에서 영접하여 읍하고 올라가서 절한다. 술잔을 드릴 때에는 재상에게는 주빈에
대한 절차와 같이 하고 대부에게는 차석에게 대한 절차와 같이 하나 술을 권하는 절차만은 없다. 술을 드리는 절차를 마치고는 주인이 읍하고 내려와서 주빈의 오르기를 청하면 준자가
주빈의 남쪽에 내려와 서는데 주인과 주빈은 서로 읍하고 올라가며 준자와 여러 손님도 다 자기 자리로 올라간다.] 주빈에게 풍악을 아뢰어 즐겁게 한다.[악공(樂工)의 자리를 대청의
서쪽 한편 갓 동쪽―서쪽 뜰 위의 동쪽―에다 설치하고 북으로 향하는데 동쪽을 위로 한다. 악공은 4명이며 이것을 협조하는 자가 있어서 비파를 가지고 길을 인도한다. 그들은 모두
서쪽 뜰로부터 자리에 가서 앉는다. 악공은 ｢녹명(鹿鳴)｣ ｢녹명(鹿鳴)｣：『시경』 ｢빈풍｣의 편명인데 여러 신하와 손님들이 한자리에서 즐겁게 노는 것을 노래한 시.

, ｢사모(四牡)｣ ｢사모(四牡)｣：『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서 사신으로 갔다 온 사람을 위로하는 시.

, ｢황황자화(皇皇者華)｣ ｢황황자화(皇皇者華)｣：『시경』의 편명으로서 국왕이 사신을 지방으로 보내면서 민간의 많은 실정을 물어 가지고 오라는 시.

등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고 주인이 악공에게 술을 대접하면 악공장 1명이 절만 하고 일어나지는 않은 채 술잔을 받는다. 주인의 뜰 위에서 읍하고 술잔을 보내며 포와 식혜를
드리고 사람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한다. 악공들은 술을 다 마시고 나서 절은 하지 않고 술잔만 주인에게 준다. 여러 악공들도 절은 하지 않고 술잔만 받아 제사지내고 마시어 포와
식혜는 제사지내지 않는다. 생황공(笙簧公)이 대청 아래 경쇠의 남쪽으로 들어와 북쪽을 향하고 서서 ｢남해(南陔)｣ ｢남해(南陔)｣：『시경』의 편명으로서 잔치 때에 생황공(피리 부는
사람)이 부르던 시. 현재의 『시경』에는 가사가 실전되었음.

, ｢백화(百華)｣ ｢백화(百華)｣：『시경』의 편명. 본래 두 편으로서 효자를 찬미한 시 한 편은 유실되고 한 편은 국왕의 음란한 행동을 풍자한 시임.

, ｢화서(華黍)｣ ｢화서(華黍)｣：『시경』의 편명으로서 옛날 향음주례(鄕飮酒禮) 때에 쓰던 악장이었는데 유실되었음.

를 한바탕 연주한다. 주인이 서쪽 뜰 위에서 그들에게 술을 드리면 생황공의 장[笙之長] 1명이 절하고 계단의 끝까지 가나 대청에는 올라가지 않고 술잔을 받으며 주인이 절하고 술잔을
보내면 악공들은 뜰 앞에서 꿇어앉아 제사하고 서서 술을 마시며 술을 다 마시고 나서는 절을 하지 않고 올라가서 주인에게 잔을 준다. 모든 생황공들은 절을 하지 않고 술잔을 받아
꿇어앉아 제사하고 서서 마시나 돌려주는 포와 식혜는 제사하지 않는다.

조금 있다가 가수는 ｢어리(魚麗)｣ ｢어리(魚麗)｣：『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서 향음주례(鄕飮酒禮) 때에 부르던 시가.

곡을 노래하고 생황공은 ｢유경(由庚)｣ ｢유경(由庚)｣：『시경』 ｢소아｣의 편명인데 가사는 유실되었음.

곡을 불며 가수는 ｢남유가어(南有嘉魚)｣ ｢남유가어(南有嘉魚)｣：『시경』의 편명인데 임금이 현명한 인재를 얻고서 즐거워하는 시.

곡을 노래하며 생황공은 ｢숭구(崇丘)｣ ｢숭구(崇丘)｣：『시경』의 편명. 지금은 유실되었음.

곡을, 가수는 ｢남산유대(南山有臺)｣를, 생황공은 ｢유의(由儀)｣ ｢유의(由儀)｣：『시경』의 편명. 지금은 유실되었음.

를 아뢰고 나중에는 ｢주남(周南)｣ ｢주남(周南)｣：『시경』의 첫 편명으로서 중국 주문왕 후비(后妃)의 덕행과 가정 단속에 관한 미덕을 노래한 시들.

의 ｢관저(關睢)｣ ｢관저(關雎)｣：『시경』 ｢주남｣의 편명인데 부부간에 서로 화락하게 지내는 것을 읊은 시.

), ｢갈담(葛覃)｣ ｢갈담(葛覃)｣：『시경』의 편명.

, ｢권이(卷耳)｣ ｢권이(卷耳)｣：『시경』 ｢주남｣의 편명.

와 ｢소남(召南)｣ ｢소남(召南)｣：『시경』 국풍(國風)의 일부로서 주문왕의 서자 석(奭)의 봉지인 소(召) 땅에서 부르던 노래를 기록한 것.

의 ｢작소(鵲巢)｣, ｢채번(采蘩)｣ ｢채번(采蘩)｣：『시경』의 편명인데 부인들이 국가 공무로 외지에 나간 남편을 생각하는 시.

, ｢채빈(采蘋)｣ ｢채빈(采蘋)｣：중국 주나라 때 관리의 부인들이 제수를 장만하여 제사를 받드는 일을 노래한 시.

등을 합주한 후 악공이 주빈에게 고하기를 "풍악이 끝났다"라고 하고 곧 서쪽 뜰의 동쪽으로 내려와 북쪽을 향하여 선다. 상고해 보건대 주와 현에는 본래 풍악이 없는 데이므로 풍악을
꼭 쓸 필요는 없다. 또 상고해 보건대 현재 민간에 유행하는 풍악은 대개 다 추잡하고 음란한 풍악뿐이니 옳은 풍악이 회복될 때까지는 차라리 풍악을 안  는 것이 나으니 요새의
유행하는 풍악을 써서는 안 된다.] 사정(司正; 질서를 유지하는 정직한 자)을 정한다.[주인이 자리에서 내려오되 남쪽으로 해서 혼자만 내려오고 주빈이나 차석은 내려오지 않는다.
주인이 집사자[贊禮者]로 하여금 사정을 시키는데 사정이 겸사하다가 승낙하면 주인이 재배하고 사정이 답배한 후 주인은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사정은 주인의 부하 관리나 혹은 학생
중에서 씩씩하고 단정하며 범절을 잘 아는 자를 골라서 시킨다. 대체 예절과 풍악도 다 끝났으므로 곧 주빈을 만류하여 털어놓고 놀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혹 문란한 일이 생길까봐
사정을 정하여 사찰하게 하는 것이다.] 사정이 큰 잔을 들고[사정(司正)이 큰 잔을 씻어 가지고 서쪽 뜰 위로부터 올라 동쪽 뜰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주인에게 명령을 듣는다.
주인이 말하기를 "주빈에게 가부를 물어 보라!" 한다. 사정이 서쪽 뜰 위로 가서 주빈에게 가부를 물으면 주빈이 사양하다가 승낙한다. 사정이 주인에게 가서 이것을 고하고 이내 기둥
어간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재배하고 주인이 동쪽 뜰 위에서 재배하면 주빈은 서쪽 뜰 위에서 답배하며 모두 읍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사정이 큰 잔에 술을 듬뿍 부어 가지고
서쪽 뜰로 해서 마당의 두 계단 사이로 가서 좌편으로 돌아 북을 향하여 꿇어앉아 큰 잔을 놓고 물러나와 팔짱을 끼고 조금 선다. 꿇어앉아 큰 잔을 잡고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이내 큰
잔에 술을 다 마시고 일어나 꿇어앉아 큰 잔을 놓고 그제야 절한다. 큰 잔을 잡고 일어나 씻은 뒤에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잔을 거기 놓고 물러나와 큰 잔의 남쪽에 서면 집사가
포와 식혜를 그 자리에 드린다.] 여럿이 서로 술을 권하고[주빈이 자리에서 내려와 꿇어앉아 큰 잔에다 술을 부어 가지고 동쪽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주인에게 술을 권하면
주인이 자리에서 내려와 주빈의 동쪽으로 가서 선다. 그런 뒤에 주빈이 꿇어앉아 큰 잔을 드리고 이내 절하고 잔을 잡고 일어나 주이 답배한다. 주빈이 서서 술을 다 마시고는 절을
하지 않고 잔을 씻지도 하지 않고 가서 술을 따라가지고 와서 동쪽 뜰 위에서 남쪽을 향하여 주인에게 준다. 주인에게 절하면 주빈이 조금 물러나오며 주인이 잔을 받는다. 주빈이
주인의 서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하고 잔을 보낸 뒤에 주빈은 읍하고 자리로 돌아온다. 주인이 서쪽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차석에게 술을 권한다. 차석이 자리에서 내려와
남쪽으로 해서 주인의 서쪽으로 가 서서 북쪽을 향한다. 그제야 주인이 꿇어앉아 잔을 놓고 이내 절하고는 잔을 잡고 일어나면 차석이 답배한다. 주인이 서서 술을 다 마시고는 술을
따라가지고 서쪽 뜰 위의 서쪽으로 가서 남쪽을 향하여 차석이 절한다. 주인이 조금 물러나고 차석이 술잔을 받으면 주인이 차석의 동편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하고 잔을 보낸 뒤에 주인이
읍하고 자기 자리로 간다. 사정(司正)이 서편 뜰의 서쪽을 다가올라가 북쪽을 향하여 서서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아무가 술을 받으시오!"라고 하면 지명된 이가 자리에서 내려
서편으로부터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차석의 오른편에 서는데 사정은 말석으로 물러가 동쪽을 향하여 선다. ―권하는 술을 받는 사람을 비켜주는 것 ―차석이 꿇어앉아 잔을 놓고 이내
절하고는 잔을 잡고 일어나면 지명된 자가 답배하고 일어난다. 서서 술을 다 마신 뒤에 동이[尊] 있는 데로 가서 술을 부어 가지고 서편 뜰 위의 서쪽으로 가서 남쪽을 향하여 서면
다른 지명된 자가 절하고 잔을 받는다. 차석이 그 사람의 좌편에서 북쪽을 향하여 절하고 잔을 보낸 뒤에 차석이 읍(揖)하고 자기의 자리로 간다. 사정이 또 말하기를 "아무가 술을
받으시오!"라고 하면 지명된 자가 자리에서 내려와 먼저 온 아무의 좌편에 가서 북쪽을 향하여 서는데 먼저 온 아무가 꿇어앉아 술잔을 놓고 이내 절한다. 그가 잔을 잡고 일어나면
새로 지명된 아무가 답배하고 서서 술을 다 마신 뒤에 동이 있는 데로 가서 술을 따라가지고 서편 뜰 위의 서쪽으로 가서 남쪽을 향하여 선다. 새로 지명된 아무가 절하고 잔을 받으면
먼저 온 아무가 새로 온 아무의 오른편에서 절하고 잔을 보내는데 지명된 아무가 읍하고 자기의 자리로 간다. 그 다음의 한 사람과 대청 아래 있는 여러 손님에게 술을 권하는 절차도
역시 이와 같다. 이것이 끝난 뒤에 최후의 술을 받은 아무가 술잔을 광주리에 놓고 뜰 아래의 저의 자리로 내려간다.] 아주 상을 걷어치우고서[사정(司正)이 뜰 위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주인에게 뒤처리할 것을 묻는다. 주인이 말하기를 "주빈에게 더 앉기를 청하라!" 한다. 사정이 서쪽 뜰 위로 가서 주빈에게 더 앉기를 청하면 주빈이 상을 치우자고 한다.
사정이 그대로 주인에게 고하면 주인이 상을 걷어치우기를 청하고 주빈도 좋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정이 서편 뜰 앞으로 내려가 곧 집사에게 이르고 자기는 올라가 좌석의 끝에 서고
주빈은 자리에 내려 북쪽을 향하며 주인은 자리에서 내려 동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며 차석은 자리에서 내려 서쪽 뜰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준 자는 자리에서 내려 자리 동쪽에서
남쪽을 향하며 집사들이 일제히 와서 상을 걷어 서쪽 뜰로 해서 내려가 신부름꾼에게 내어준다. 주빈과 주인, 준자(遵者), 차석[介], 기타 여러 손님[衆賓]들이 다 뜰 아래의
자리로 내려간다. 이상은 모두 서서 거행하는 예식이며 훌륭한 예식으로서 이렇게 되어야 예식이 훌륭하게 완수된다. 또 좋은 술과 안주에 손님[賓]이나 주인이나 모두 다 만족하게 놀게
되어 연기 방장한 사람도 피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차려 놓기만 하고 거두지 않거나 거두기만 하고 차리지 아니하면 이것은 융통성이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리하여 더 앉으라고 청하는
것은 곧 손님으로 하여금 털어놓고 놀자는 것이다. 안주상이란 것은 음식 중의 귀중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대개 뼈를 귀하게 여기고 살은 하급으로 친다. 이것을 사양하는 것은 지금부터
오락 시간이 되므로 도리상 감히 이런 귀중한 안주를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여흥으로 논 다음[주인이 주빈에게 읍하고 신을 벗고 오르기를 청하면 준자와 차석 및 여러
손님들도 다 신을 벗고 올라가며 대청 아래 있던 모든 손님도 다  라와 앉아 동쪽을 향하는데 북쪽을 위로 한다. 자리를 정한 뒤에 육적이며 기타 여러 가지 안주를 차려 놓고 손님과
주인이 실컷 마시는데 술도 음악도 다 일정한 수량으로 제한하지 않고 원만하게 논다. 여기에는 주인 측 집사들도 다 참여한다.

술도 잔수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정 없이 마신다는 말이나 문란하도록 마신 것은 아니며 음악도 일정한 제한이 없이 좌중이 유쾌할 만한 정도에서 그만두는 것이다.] 손님들이 갈려
간다.[여흥이 끝나면 손님이 갈려가는데 주빈은 서쪽 뜰로부터 내려오고 주인은 동쪽 뜰로부터 내려오며 주빈 이하가 나와서 문 밖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서며 북쪽을 위로 한다.
주인은 문 밖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재배하여 전송하고 주빈과 차석은 천천히 물러간다.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주빈과 차석이 답배를 아니한 것은 예식이 끝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시월달 노인을 위로할 때에는 그 고을 장관[守令]이 주인으로 되고 지방의 노인으로서 나이 60세 이상이며 덕행과 명망이 있는 사람 중에서 1명을 주빈으로 하고 그 다음 1명을
차석으로 하며 기타를 보통 손님으로 한다.[다 연령을 따라 순서를 정하며 보통 손님 중 나이 많은 세 사람을 골라 세 손님[三賓]이라 한다. 그리고 나이 60세 이상 되는 이의
자리는 다 대청 위에다 정한다.] 60세까지는 세 그릇[豆]이요 70세까지는 네 그릇이며 80세까지는 다섯 그릇이요 90세까지는 여섯 그릇이다. 손님과 주인이 술자리를 시작할 때에
사정(司正)이 북쪽을 향하여 손님에게 앉기를 청하면 손님과 주인이 각각 자기 자리에 나아가 선다. 자리를 정한 후에 사정이 광주리 놓은 데 가서 꿇어앉아 큰 술잔을 갖다가 술을
부어 가지고 기둥 사이로 가서 북쪽을 향하여 서서 이내 술잔을 들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근본 도리'로써 훈계하면 손님과 주인 이하가 다 재배한다. 사정이 꿇어앉아
큰 잔을 놓은 뒤에 재배하고 꿇어앉아서 큰 잔을 갖다가 술을 따르고 일어나면 손님과 주인 이하가 다 앉는다. 사정이 광주리 놓은 데로 가서 꿇어앉아 큰 잔을 놓고 일어나 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그리고 이내 잔수를 정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절차들은 대개 향음주례(鄕飮酒禮)의 것과 같다.

● 향음주례의 설석과 기구 진열도[鄕飮酒設席陳器圖]

![도판 1](../assets/10/image-01.png)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적 예절은 너무 번잡하여 후세에 와서는 실행하기가 곤란할 듯하다"라고 한다. 옛날 예절의 조항 중에는 혹 변통해야 할 데도 있다. 그러나 그 성의와
존경하는 실질적인 의미는 대체로 그 속에 존재한 것이니 그 조문이 비록 번잡하더라도 거기에서 행동과 범절을 규정하는 조목마다 다 깊은 의미가 세밀하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습속에서 보기만 좋게 꾸미는 행위와는 다르니 어찌 번잡하다 하겠는가? 이것은 오직 지금 세상에서 태만[怠惰], 해이 또는 간략하게 한 습속에 젖었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실행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니 무엇이 곤란하겠는가? 예법으로써 습속을 고친다는 말은 들었지마는 습속을 따라 예법을 제정한다는 말은 아직
못들었다. 옛날의 유학자(儒學者) 여씨(呂氏)가 말하기를 "옛적의 현명한 임금이 예법을 마련할 적에 어찌 공연히 번잡한 조문과 필요치 않은 규칙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실행하기
곤란케 하였겠는가? 역시 백성들을 착한 길로 배양할 따름인 것이다. 대체 현명한 사람이 온 세상일을 모두 절차에 맞게 해야만 도덕적 성숙이 완수하는 것이며 또 꾸준히 실천에 노력한
후에야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은 안일을 좋아한다. 만일 공정하는 마음이 부족하면 태만하고 자고자대하는 기풍이 생긴다. 태만하고 자고자대하는 기풍이 생기면 사람의 행동과
범절이 절차에 맞을 수가 없다. 비록 일시적으로 안일하다 할지라도 마음에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불안을 느끼는 중에서 안일을 찾으려 하면 필경 손 하나 발 하나 딸싹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점차 타락하여 방자하며 간사하고 부화하여 저의 신분에 넘친 행위를 하며 위로 임금에게 범하는데 이르러 나중에는 못할 것이 없게 되니 세상의 모든 난잡한 일이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때문에 성인이 이것을 걱정하여 항상 번잡한 조문과 소소한 부문까지 주의를 하여 한가한 틈을 타서 백성들을 교양시켰다. 이것을 계속하여 꾸준히 학습시킨다면 역시
나쁜 행위가 발생할 수 없을 것이며 이와 같이 오랫동안 계속하여 마음이 안정하게 되면 언제든지 불법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든지 의리 아닌 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공손하는 마음으로써 자기의 내심을 바로잡고 의리로써 자기의 행동을 표현한다. 공손하는 마음과 의리 있는 행동이 확정되어 도덕적으로 보아서 잘못된 것이 없다면 의심할
바 없이 그 행동이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에 있어서 절차에 맞지 못한 것은 그 원인이 공손치 못한 데서 나오는 것이며 내심에 공손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밖에 나타나는
행동이 자연 정중하게 되는 것이니 내부의 마음과 외부의 행동이 모두 잘 수양되기만 한다면 실행에 있어서 꼭 절차에 적합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진실로 옳은 말이다.
사람이 만일 그대로만 본받아 실천한다면 진리와 사욕에 대하여 자신이 그것을 구분하고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옛 현명한 임금이 백성들을 착한 길로 교양시킨 본의도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삼대(三代)의 예법과 음악은 각 시대마다 다른 것으로서 ｢주남(周南)｣, ｢소남(召南)｣, ｢소아(小雅)｣ ｢소아(小雅)｣：『시경』에서 '아(雅)'는 정직하고
아름답다는 뜻으로서 아악(雅樂)을 말한 것인데 왕실에서 쓰는 대아(大雅) 이외의 보통 연석에서도 쓰던 악장들을 수록한 부분.

등의 노래는 곧 주나라의 음악인데 어찌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인가?"라고 한다. 이 다음에 만일 현명한 임금이 나오면 자연 그 왕조 일대의 음악을 제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두고 개혁하지 않을 음악도 있다. 예로 ｢주남｣, ｢소남｣, ｢소아｣ 등 가사는 본래 어디서나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므로 나라의 제사[宗廟] 때에 쓰는 음악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내전[房中]에서도 쓰고 시골[鄕黨]에서도 써서 서울이나 지방에서도 모두 적용하였으니 실로 고금을 막론하고 다 통용하던 음악이다. 현재뿐만 아니라 백 세를 지내더라도 고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아깝다! 그 곡조와 반주하는 절차가 세상에 전해 오지 못한 것이! 예법이나 음악에 뜻을 두는 사람은 꼭 여기에 주의를 하여 연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날 예법에는 악공(樂工)에게도 주인이 직접 술을 드렸으니 이것은 암만해도 좀 과한 듯한데 어떠한가?" 한다. 옛적에는 악사(樂師) 악사(樂師)：중국 주나라
때 국가의 대학에서 교육과 춤을 맡은 관직.

가 원래 다 유식한 자였다. 악사가 무식하고서 음악을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찌 요새 세상에서 보는 하급 추잡한 따위와 같았겠는가? 그러므로 악사가 모두 예법과 음악에 관한
일들에 참여하였고 따라서 그들에게도 상당한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 좌석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 술을 드리면서 그들에게만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며 술을 드릴
바에는 절을 해야 하니 이것은 예절을 중하게 여기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적 예법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대부(大夫)가 자기의 가신(家臣)528)에게 대하여서도 모두 절하는 전례가
있었으니 이것은 오직 위아래가 서로 존경하여 일체 예법만을 준수하였던 것을 말한 것이다. 서로 존경하여 예법을 준수하면 직분과 차서가 자연 확립되어 거기에서 화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예법을 존중히 하다가 외람된 일이 생기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다만 계급의 귀천과 세력의 강약으로만 따지기 때문에 존귀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 사이에는
응당 예절을 차려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일체 그만두어 버린다. 아아! 지금 악공(樂工)은 거의 다 음탕, 난잡한 하천배로서 함께 이런 예법을 시행하지 못할 자들이다. 또 어떻게
이런 예법을 실시하겠는가?]

이것은 모두 『의례(儀禮)』529)에 의거한 것으로서 생략된 것은 "한 사람이 큰 잔을 든다는 것과 두 사람이 큰 잔을 든다"는 등의 절차뿐이니 옛날의 예법이 더할 수 없이
훌륭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본래 큰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모든 제사와 연회의 절차가 예와는 대단히 다른바 이 다음에 성인이 나서 옛 예법과 음악을
회복한다 할지라도 응당 그 원칙상에 있어서 변경하지 못할 것만은 그대로 두고 정리할 것이나 그 중에서 사소한 조목들은 반드시 가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러한 규정들은 지금
세상에 전혀 없는 일이니 꼭 낱낱이 옛법을 따를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손님이나 주인이 다 서게 되며 예식을 행하기 전에 하는 절차가 너무 번잡하니 늙고 병든 사람으로서는 오래
섰기가 암만해도 곤란할 듯 하니 좀 간략하게 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한 사람이 큰 잔을 든 것과 두 사람이 큰 잔을 드는 것은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옛적
예법의 활 쏘는 때와 제사 때와 같은 데도 모두 이러한 의례가 있었다. 그러나 주자(朱子)『가례(家禮)』에도 이를 생략하고 간략하게 하여 옛날 예절대로 따르지 아니하였다. 또 그의
『어류(語類)』530)를 보면 주자는 예법과 음악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대체로 다 간략하게 할 의견을 가졌다.]

또 ｢향사례(鄕射禮)｣를 상고해 보면 준자(遵子)도 술을 권하는 조항이 있으니 향음주례에도 역시 준자의 술을 권하는 조항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향음주례는 본래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고무시키지 위하여 마련한 것인데 준자도 술을 권하게 되면 그 사이에 절차가 너무 번다할 것이므로 지금 주자의 ｢향약연집(鄕約燕集)｣ 조항에 의거하여 노인과 관직이
있는 자에게는 상등 손님으로 대우하여 특별히 술을 드리기만 하고 그로 하여금 술을 권하지 않게 하는 규정을 적용하였으니 예식을 간략하게 하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반드시 조항을 이처럼 꼭 규정하여 기록할 것이 아니라 다만 『의례(儀禮)』 중의 ｢향음주례｣ 본문과 당나라의 사기[唐志]에 실린 ｢향음주례｣ 등 몇 가지만
기록하여 이 다음 적당한 시기에 이것을 참작하여 쓰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한다. 대체 그렇게 하는 것이 물론 좋으며 그에 따르는 시비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본래 옛 것을 전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응당 참작할 것은 참작하여 이 다음에 쓰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책 중의 상, 하 부분의 체제가 다 그러한데 여기에만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는 식으로 어물어물 모호하게 할 수는 없다. 만일 이 다음 속편을 쓰게 되면 혹 그렇게 처리할 수도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당(唐)나라의 예법은 옛날의 시대가 가까워서
실행하기가 쉬움에도 불구하고 불충분한 데가 매우 많아서 전혀 예법의 본의를 잃어버린 데가 많다.

[예절의 본의는 존경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의 예절에는 그 간편한 것을 위주하여 천리(天理)와 사욕[人欲] 및 옛 예법과 현재의 풍습 중에서 어물어물하였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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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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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飮酒禮節目附貢賢 能行鄕飮酒之禮 皆官長爲主人 州縣 守令爲主人. 諸道 監司爲主人. 京學 官長爲主人. 有故則州縣敎官若諸道京學貳官 代行. 賢者爲賓 其次爲介 又其次 爲衆賓. 衆賓
多少無定. 主人戒賓介 主人詣其門立於門 外西 東面. 賓立於東階下 西面. 將命者 立於賓之左 北面. 受命出立於門外之東 西面曰敢請事 主人曰某日行鄕飮酒之禮 請吾子臨之. 將命者 入告 賓出
立於門東 西面拜辱拜 主人答拜. 主人曰吾子 學優行高 應茲觀國 某日展禮 請吾子臨之. 賓曰某固陋恐辱命 敢辭. 主人曰某固已謀於父師矣 敢固以請. 賓曰夫子申命之 某敢不敬 須主人再拜 賓答拜.
主人退 賓拜送 其戒介 亦如之. 辭曰 某日行鄕飮酒之禮 請吾子貳之. ○衆賓以下 主人遣人 以書戒之使知日. 前一日設席陳器. 設賓席於楹間 近北 南向. 主人 席於阼階上 西向. 介席於西階上
東向. 衆賓 席三於賓席之西 南向 皆不屬. 又設堂下衆賓席於西階西南 東向北上. 若不盡則從門左北向 東上. 設贊者位於阼階東 西向北上. 尊兩壺於賓席之東 少北. 玄酒在西加勺羃 置篚於壺南東
肆實以爵觶. 皆以卓子安置設洗於阼階東南. 水在洗東 篚在洗西南 肆亦以卓子安置. ○賓介外 皆以齒爲次. 如營學ㆍ太學升貢者 雖多 皆席於堂上 如三賓之例. 若不盡則東向北上. 厥明 主人速賓
其日朝 主人親往以速賓 賓出門 西面拜辱 主人東面答拜還. 賓拜送 介亦如之. 賓介及衆賓 皆從之. ○賓介以下 前一日皆集學堂近處 主人往其所館以速之. 乃迎賓. 賓介以下 至於學門之外
東面北上立. 主人 出迎于門外 西面拜賓 賓答拜. (又西南面拜介 介答拜.) 又西南面揖衆賓 衆賓報揖. 主人揖賓 賓報揖. 主人 先入門而右 賓入門而左 三揖至于階. 主人西面 賓東面 介及衆賓
序入立於賓西南 東面北上. 若立不盡則北面東上. 主人與賓三讓 主人 升自阼階 賓升自西階 主人 阼階上 當楣北面再拜. (拜至堂也.) 此賓西階上當楣北面答拜. 主人獻賓 執尊者 徹羃
主人適篚跪取爵降 賓亦降. 主人辭賓對. 主人以爵適洗 南面跪洗. 將洗 賓進東北面辭洗. 主人興對. 賓復西階下位東面. 主人乃盥手洗爵. 沃洗者 西北面沃之. 卒洗 主人揖賓升 賓西階上北面拜洗.
主人 阼階上北面跪奠爵 遂答拜. 賓西階上立 主人 跪取爵興 適尊實之 進賓席前西 北面獻賓. 賓西階上北面拜. 主人少退 賓進於席前受爵 退復西階土北面立. 主人 退於阼階上北面拜送爵 賓少退.
贊者 薦脯醢於賓席前 賓自西方升席 南面立. 贊者設折俎 賓跪左執爵, 右取脯換於醢 祭於籩豆之間 遂祭酒興就席末 跪啐酒興 降席 適西階上北面跪卒爵興 跪奠爵遂拜. 執爵興 主人 阼階上答拜.
賓酢主人 賓降洗 主人降 賓辭 主人對. 賓以爵適洗南 北面跪 主人阼階東 南面辭洗 賓興對. 主人 復阼階東 西面 賓盥手洗爵 卒洗揖讓升. 主人 拜洗 賓答拜. 賓跪取爵興 適尊賓之 進主人席前東
南面酢主人. 主人阼階上北面拜. 賓小退 主人 進受爵 退復阼階上北面立 賓於西階上北面拜送爵. 主人少退 贊者 薦脯醢於主人席前 主人 由席東自北方 升席. 贊者 設折俎 主人跪左執爵右取脯
換於醢祭於籩豆之間遂祭酒興. 席末啐酒 興降席 適阼階上北面跪卒爵興 跪奠爵遂拜 執爵興. 賓西階上答拜 主人跪奠 爵于東序端. 主人酬賓. 主人 適篚 跪取觶降洗 賓降 主人辭降. 卒洗 揖讓升
賓西階上立. 主人適尊實觶復阼階上 北面跪奠觶 遂拜. 執觶興 賓西階上答拜. 主人 跪祭酒 遂飮卒觶興 跪奠觶遂拜. 執觶興 賓西階上答拜. 主人降洗 賓降辭 如獻禮. 但升不拜洗.
賓西階上立主人適尊實之 進賓席前北面 賓西階上拜. 主人少退 賓旣拜 主人 跪奠觶於薦西 賓辭. 主人興 復阼階上. 賓遂進席前北面跪取觶 興復西階上 主人 北面拜送
賓進席前北面跪奠觶于薦東興復西階上. ○鄭氏曰 酬酒不擧 君子 不盡人之歡 不竭人之忠以全交也. 主人獻介 主人 北面揖 降立阼階下. 西面. 賓降立於西階西 東面主人揖介至階 一讓升拜至如賓禮.
主人跪取爵于東序端 降洗 介降 主人辭降 介辭洗 如賓禮 升不拜洗. 介西階上立 主人適尊實之 進於介席前西 南面獻介. 介西階上北面拜 主人少退 介進北面受爵. 退復西階上 主人於介 右北面拜送爵
介少退. 主人立於西階之東. 贊者薦脯醢於介席前 介進自北方升席. 贊者設折俎 介跪左執爵右祭脯醢 遂祭酒. 執爵興 自南方降席 復西階上北面跪卒爵興 跪奠爵 遂拜. 執爵興 主人介右答拜. 介酢主人
介降洗 主人復阼階降辭如初. 卒洗 介揖讓升 授主人 爵于兩楹之間(卽尊南.) 介西階上立 主人實爵 詣西階上 立於介右. 北面跪奠爵 遂拜 執爵興 介答拜. 主人跪祭 遂飮. 卒爵興 跪奠爵 遂拜.
執爵興 介答拜. 主人 跪奠爵于西楹南 復阼階上揖降 介降立于賓南. ○鄭氏曰介不自酌下賓也 酒者 賓主共之. 主人獻衆賓 主人於阼階前西 南面 三拜衆賓 衆賓 皆答一拜主人. 以衆賓之長揖升
適西楹南 跪取爵降洗. 衆賓之長降辭. 主人卒洗揖升 適尊實之 進於西階上西 南面獻衆賓之長. 衆賓之長 北面拜受爵 主人於衆賓長之右北面拜送. 贊者設脯醢於其席前 衆賓之長 升席跪
左執爵右祭脯醢祭酒. 執爵興 退於西階上 立飮卒爵 不拜 授主人爵降復位. 主人又適尊實之 進於西階上 獻衆賓之次者 如獻衆賓之長. 又次一人 升飮 亦如之. 主人實爵西階上獻堂下衆賓
每一人升不拜受爵跪祭立飮. 贊者以次薦脯醢於其位. 主人受爵降奠於篚 主人與賓一揖一讓升. 賓介衆賓 序升卽席. (此衆賓 謂堂上有席者.) 若有遵入則賓主皆勿升.
○若營學太學則升貢者雖多皆如三人之例. ○鄭氏曰 "卒爵不拜 立飮立授 賤者禮簡. 不拜受爵 禮彌簡也." 若有遵者則乃入. 遵 鄕人之爲 大夫者. (謂之遵者 方以禮樂化民 欲其遵法之也.
亦來觀禮而不欲干主人正禮 故在於外 此時乃入. ○守令若長官爲主人 則州ㆍ縣敎官與營學貳官 亦可爲遵. 京學倣此 ○席於遵東 南面. 有諸公則大夫 席於主人之北 西面 公重席. 遵入 主人 迎于門內
揖讓升拜. 至爵獻 公則如賓禮 大夫如介禮 但不酢. 旣卒獻 主人 揖降升賓 遵降立于賓南 主人與賓 揖讓以升. 遵及衆賓 皆升就席. 樂賓.設工人席於堂廉西之東 (卽西階上之東) 北面東上. 工四人
先二瑟 後二歌. 有相者持瑟導之 皆升自西階就位坐. 工歌鹿嗚ㆍ四牡ㆍ皇皇者華. 卒歌 主人獻工 工之長一人 拜不興受爵. 主人阼階上拜送爵 薦脯醢 使人祖祭. 工飮卒爵 不拜授主人爵. 衆工則
不拜受爵 祭飮遍有脯醢 不祭 笙入堂下磬南北面立 樂南陔ㆍ白華ㆍ華黍. 主人獻之于西階上 笙之長一人拜盡階不升堂受爵. 主人拜送爵 階前 跪祭立飮 卒爵不拜升授主人爵. 衆笙則不拜受爵 跪祭立飮
遍有脯醢不祭. 乃間 歌魚麗笙由庚 歌南有嘉魚 笙崇丘 歌南山有臺 笙由儀 乃合樂周南 關雎ㆍ葛覃ㆍ卷耳ㆍ召南 鵲巢ㆍ采蘩ㆍ采蘋. 工告于賓曰正歌備 乃降立西階東 北面. ○按州縣 本無樂處
不必用樂. 又按今世俗樂 大抵皆淫哇靡靡之樂. 雅樂未復間 寧無樂爲 是不可用今俗樂. 立司正. 主人降席 自南方特降 賓介不降. 主人使贊禮者爲司正. 司正 禮辭許諾. 主人再拜 司正答拜.
主人升復席. ○司正以主人官佐若諸生 擇莊正習禮者 爲之. 蓋以禮樂之正旣成 將留賓以燕 爲有懈惰 立司正以監之. 司正擧觶 司正 洗觶升自西階阼階上北面 受命于主人. 主人曰請安于賓.
司正西階上告于賓曰請賓安 賓禮辭許. 司正 就告于主人 遂立於楹間 北面再拜. 主人阼階上再拜 賓西階上答拜 皆揖復席.司正賓觶降自西階 詣中庭兩階間 左還北面 跪奠觶 退拱少立. 跪取觶不祭遂飮
卒觶興 跪奠觶遂拜. 執觶興 洗北面跪 奠觶于其所 退立于觶南. 贊者薦脯醢於其位. 旅酬. 賓降席 跪取觶於篚 實觶 詣阼階上 北面酬主人. 主人降席 進立於賓東 賓跪奠觶遂拜執觶興 主人答拜.
賓立飮卒觶 不拜 不洗 適尊實之 阼階上東 南面授主人. 主人拜 賓少退 主人受觶 賓於主人之西 北面拜送 賓揖復席. 主人詣西階上北面 酬介. 介降席自南方立于主人之 面. 主人跪奠觶遂拜 執觶興
介答拜. 主人立飮卒觶 適尊實之 進西階上西 南面立. 介拜 主人少退 介受觶. 主人於介東 北面拜送. 主人揖復席. 司正 升自西階近西 北面立 相旅曰某子受酬 受酬者 降席 自西方進
北面立於介右. 司正退立於序端 東面. (避受酬者) 介跪奠觶遂拜 執觶興. 某子答拜介. 立飮卒觶 適尊賓之 進西階上西 南面立 某子拜受觶. 介於某子之左 北面拜送. 介揖復席. 司正曰某子受酬.
受酬者 降席自西方立於某子之左 北面. 某子 跪奠觶遂拜 執觶興. 受酬者答拜 某子立飮卒觶 適尊實之 進西階上西 南面立. 受 酬者拜受觶 某子於受酬者之右拜送 某子揖復席. 次一人及堂下衆賓 受酬
亦如之. 卒受酬者以觶跪奠于篚 降復階下位. 徹俎. 司正 進阼階上北面 受命于主人. 主人曰請坐于賓. 司正西階 上告于賓曰請賓坐 賓辭以俎 司正以告主人. 主人請徹俎 賓許. 司正 降西階前
乃命執事者. 司正 升立于序端 賓降席北面. 主人降席阼階上北面. 介降席西階上北面. 遵者 降席 席東南面. 執事者 齊進徹俎 由西階以下 出授從者. 賓ㆍ主人ㆍ遵ㆍ介ㆍ衆賓 皆降復階下位.
○自此以上 皆立行禮. 是禮之盛也. 至此而盛禮俱成. 酒淸肴乾 賓主百拜 强有力者 猶倦焉. 張而不弛 弛而不張 非文武之道. 請坐者 將以賓燕也. 俎者肴之貴者 蓋骨體貴而肉賤也. 辭之者
不敢以禮殺當貴肴. 乃燕. 主人 以賓揖讓 脫屨乃升. 遵ㆍ介及衆賓 皆脫屨升坐. 堂下衆賓 亦皆升坐 東面 北上. 皆有席 乃羞肉胾庶羞隨宜. 賓主燕飮 行無算爵 無算樂. 主人之贊者 皆與焉.
○無算爵 謂不定數也. 非無限以至亂也. 無算樂 亦謂或間或合 取歡而止也. 賓出. 已燕 賓出. 賓降自西階 主人降自阼階 賓以下出 立於門外之西 東面北上 主人送於門外之東 西面再拜
賓ㆍ介逡巡而退. ○鄭氏曰 "賓ㆍ介不答拜者 禮有終也."孟冬之月 正齒位則守令 爲主人 鄕之老人年六十以上有德望者 一人 爲賓 次一人 爲介 其餘 爲衆賓. 皆以齒爲次. 衆賓之長三人 爲三賓.
年六十以上 皆席於堂上. 六十者 三豆 七十者 四豆. 八十者 五豆. 九十者 六豆. 賓主燕飮則司正 北面 請賓坐. 賓主 各就席立. 司正 適篚跪取觶 興實之 進立於楹間北面
乃揚觶而戒之以忠孝之本 賓主以下 皆再拜. 司正跪奠觶再拜 跪取觶飮卒觶興 賓主以下 皆坐. 司正適篚跪奠觶興復位 乃行無算爵. 其大抵皆如鄕飮酒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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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鄕飮酒設席陳器圖或曰 "古禮太繁 恐難行於後世?" 曰古禮節目之間 或有合變通處 然其誠敬之實 大體所在則其文雖繁 其升降揖讓 皆曲有精義 非如世俗觀美之爲 豈可謂煩. 只爲今世 習於怠惰苟簡
故視爲難行爾. 其實 行則行之. 有何難行哉? 吾聞以禮變俗 未聞循俗制禮也. 先儒呂氏之言 曰 "先王制禮 豈苟爲繁文末節 使人難行哉. 亦曰以善養人而已. 蓋君子之於天下 必無所不中節然後 成德.
力行而後 有功. 夫四肢欲於安佚也 苟恭敬之心 不勝則怠惰傲慢之氣生. 怠惰傲慢之氣 生則動容周旋 不能中乎節體. 雖佚而心亦爲之不安 安其所不安則手足不知所措 故放辟邪侈 踰分犯上 將無所不至.
天下之亂 自此始矣. 聖人憂之 故常謹於繁文末節以養人於無所事之時 使其習之而不憚煩 則不遜之行 亦無自而作. 至於久而安之則非法不行 無所往而非義矣. 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不孤
則不疑其所行矣 故發而不中節者 常生乎不敬. 所存乎內者 敬則所形乎外者 莊矣. 內外交修則發乎事者 中矣." 誠哉! 言也. 人苟體此 則天理人欲之分 自可卞驗而先王以善養人之意 亦有以得之矣.或曰
"三代禮樂 代各有作. 周南ㆍ召南ㆍ小雅等歌 乃周室之樂也. 於今用之 如何?" 曰如後聖有作 則固宜制定一代之樂 然亦有因而不改者 周南ㆍ召南ㆍ小雅等歌 本用之無方 非如宗廟之樂之比.
是以古人用之房中 用之鄕黨 邦國無所不宜 實爲古今通用之樂歌 非但於今 雖百世無改 可也. 惜乎其倡歎諧協之節 不盡傳於世也. 有志禮樂者 當留心講究焉.或曰 "古禮 樂工亦主人親獻 恐或過當
如何?" 曰古之樂師 本皆有識者非有識 不能知樂. 非如今世淫樂賤隸之比. 是以皆與於禮樂之事 而其待之不可不以禮也. 况在坐者 皆有獻 此不可獨無 有獻則有拜 爲重其禮故也. 是以古禮 君獻於臣
大夫於其家臣 亦皆有拜. 惟上下恭敬 一於禮而已. 恭敬重禮 則分序自明 而和樂生焉. 未聞重禮而生踰僣也. 後世但以貴賤形勢臨之而已 故尊於卑 雖當乎禮 一切闕絶之也. 嗚呼 今之樂工 率皆淫亂下流
不可與爲禮者. 又安所施此禮也?此皆依儀禮而所省者. 一人擧觶 二人擧觶 等節爾 古禮無以尙矣. 然此等 則本非大義所在. 今世 凡祭祀燕會之儀 與古絶異縱後聖有作 復古禮樂
當因其大體之不可變者而整理之耳. 至於其間 小小節目則必有損益. 如是則此等規 爲今世所無 不必一一從古 况賓主立 行禮之前 儀節太繁則老病者 恐難久立 省以從簡 似爲得宜. 一人擧觶 二人擧觶
非獨鄕飮酒禮 有此 古禮 如燕射祭祀之禮 皆有如此等節. 朱子家禮 亦從簡省 不能盡從. 且以語類觀之 朱子論用禮樂處 大抵皆有此意思.又按鄕射禮 遵亦有酢 則鄕飮酒 亦遵有酢矣. 然此鄕飮酒禮
本爲興賢而設. 遵亦有酢則其間儀節太多 故今依朱子鄕約燕集條有齒爵者 特獻如上客而不酢之規 以從簡約云.或曰 "不必如此定載 而只載儀禮鄕飮酒本文及唐志鄕飮酒禮 以俟其時參酌用之 可也." 夫如此固可
亦可免於是非叢中. 然此書 本非爲傳古而已者 其當參酌者 參酌之以待用也. 書內上下體例 皆然. 此不可獨如是含糊兩依也. 若續篇則或爲如此處之耳 况唐禮雖近而易行 頗有苟簡全沒 禮之本義處多.
禮之本義 在敬而唐禮則取其簡便 欲因依 彌縫於天理ㆍ人欲 古禮與 今俗之間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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