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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인사 행정의 개시[開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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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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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사 행정의 개시[開政]

대체로 인사 행정의 개시는[관리의 임명이니 지금은 정사(政事)라고 한다.] 매년 정월 상순에 왕의 명령을 받아 날을 정하여 정사를 개시할 것이다.[지난해 12월 15일에 관리의
표창과 책벌 사건들을 정리해 두었다가 정월 상순에 이것을 발표한다. 그러나 상순에 사고가 있으면 중순으로 연기할 것이다. 표창과 책벌이 끝난 후에 적당한 대상 인재를 선택하였을
때에는 대신[政府]이 나와 앉고 해당 기관의 장관[政曹]이 모아 의론하는바 사헌부(司憲府)에서도 역시 와서 비판하여 신중히 사정한다. 반드시 인물이 상당한가를 심의하여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평정한 후에 임명의 결재를 받을 것이요 소홀하게 전례만을 따라서 함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대체로 관리를 전형함에 있어서 적당한 인재를 발견하였다면 이는 물론 첫
자리를 차지할 사람일 것이나 그 다음 후보자도 많을 것이니 임금은 응당 관리 채용의 책임을 해당 관리에게 일임할 것이며 공연히 추천하는 형식만을 복잡하게 하여 어둠 속에서 추첨하는
짓까지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본을 받아 추천된 자 중에서 첫째와 둘째로만 정할 것이요 지금과 같이 셋째까지 후보로 하는 규정을 폐지할 것이다.]
만일 결원이 많이 밀렸을 때에는 매월 상순에 한 차례 관리 임명의 회의를 가질 것이나[정월을 정식 정사 회의[大政]로 하고 매월 하는 것은 임시 정사 회의[權務政]로 하며 그
외에는 비록 결원이 있을지라도 소홀하게 자주 임명하지 말고 반드시 다음 달을 기다릴 것이다. 정사 회의는 모두 왕의 명령을 받아 날을 정할 것이다. 만일 정부(政府),
육조(六曹), 관각(館閣), 부위(府衛)의 당상관(堂上官) 및 관찰사, 절도사, 수령을 전형할 때라면 반드시 정부의 대신과 상의하고 사헌부에서도 모아서 비판하기를 이상의 규례와
같이 한다.] 단 긴급한 임명에 대해서는 시기를 제한하지 않는다.[긴급한 임명이 아니라면 일정한 시기 외에는 정사 회의[開政]를 가질 수 없다. 현재 대간과 수령의 결원이 있을
때에는 당장에 곧 정사 회의를 갖는다. 그러나 아무리 대간이라 할지라도 역시 결원이 있는 대로 정사 회의를 해서는 안되고 그 다음 회의를 기다려 택정할 것이다. 수령들은 다음
책임자가 있는 이상 역시 사무 집행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요는 적당한 사람을 얻은 데는 신중히 해야 한다. 사람을 등용하는 일은 임금의 큰 임무이며 나라가 편안하고 편안하지
못한 근본이 여기 달렸으니 임금은 마땅히 큰 관심을 가지고 직접 대신과 간부사업을 맡은 책임 관리와 더불어 조회에서 정사 회의를 가질 것이며 그리고 관리 한 사람을 임명할 때마다
반드시 신중히 심의한 후에 비로소 임명을 결정할 것이다. 만일 왕이 아직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세히 조사하여 그가 어떻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임명을 결재할 것이요 후세의
관습만을 따라 깊은 궁에 앉아서 조사도 해보지 않고 덮어놓고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수광(李晬光) 이수광(李晬光)：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적과 싸웠으며 인조 때에 공조판서 벼슬을 하였고 실학파의 선구자로서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저작한 인물.

은 말하기를 "고려 때에는 정사를 발표하는 규례가 일정하여 12월이 정기 정사 회의[大政]이고 6월이 임시 정사 회의[權務政]로 되어 그 시기가 지나면 비록 결원이 있을지라도
관리를 임명하지 않았다. 그리다가 최충헌(崔忠獻) 최충헌(崔忠獻)： 고려 때의 유명한 권신(權臣)으로서 중서령 벼슬을 하고 진강공(晉康公) 봉작을 받았으며 명종(明宗)과
강종(康宗) 두 임금을 축출한 인물.

이 나라의 정치를 제 마음대로 처리하게 되자 비로소 정방(政房) 정방(政房)： 고려 고종(高宗) 때 권신 최이(崔怡)가 자기 집에서 관리를 전형 임명하던 기관.

이란 명칭 하에 거기서 관리를 전형하였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일 년에 두 차례 실시하는 도목(都目) 도목(都目)：조선시대 매년 6월과 12월에 관리의 실적을 고사하던 제도.

정사 외에 결원이 있는 대로 임명하며 혹은 날마다 임명하기까지 하여 옛적 제도와 다르다. 듣건대 중국에서는 매월 23일에 이부(吏部)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하고 그 외에는 중요한
관리를 임명할 때에만 관계 관리들이 모여서 전형할 뿐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조중봉(趙重峰)이 중국에 갔다 와서 왕에게 비밀 상서를 올렸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제가 가만히 중국 관직 제도를 보건대 전국의 관리가 그처럼 많으나 그 임명을 결정할 때에는 낱낱이
다 신중히 합니다. 혹 결원이 있으면 육부(六部) 육부(六部)： 중국 명나라 정부의 최고 행정 부서로서 조선의 6조(六曹)와 같음.

와 도찰원(都察院)이 모여서 후보자로 추천된 사람에게 대하여 평론을 거쳐 다수의 의견이 결정된 후에야 이부에서는 추천된 사람 중에서 두 명만 후보자로 정합니다. 대체 중국 같이
많은 인물 중에서 어찌 후보자 세 명쯤이야 없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인재를 얻기 곤란하다 하여 혹 나쁜 사람을 임명한다면 그 해독이 백성에게 미치게 되므로 아래서는 적합치 못한
자를 함부로 후보자로 추천하지 못하고 위에서도 사정[私意]을 가지고 함부로 임명하지 않습니다. 한 번 관리로 등용된 후에는 영구히 시비를 당한 일이 없으며 한 번 부임한 후에는 또
모두가 그 직무를 오랫동안 맡게 되고 9년 동안에 세 번 그의 성적을 사정[考]하여 올리고 내리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지방의 교관(敎官)과 국경 지대의 장수[邊帥]들도 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이 의례로 되어 아주 장기간 있을 경영을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 관리들은 안심하고 자기 직무에 노력하며 백성들은 다 생활이 안정되니 중국이 아주 태평을 누리게 되는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재는 중국에 비해서 20분의 1에도 미만한데다가 혹독한 화란을 여러 번 겪은 후로 선비들의 지향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 윤리와 규율이 천명되지
못하고 의리를 분간하지 못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도덕을 의논할 자를 얻기 아주 곤란하므로 직무를 맡아 책임을 질려는 자 역시 흔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부[政曹]에서는 사람을
채용하려 할 때에 미리 평정한 복안이 없이 해당 기관에 나와 앉은 후에야 붓을 들고 비로소 의논하게 되므로 그 임명이란 것이 거의 다 시원치 못하여 여기서 뽑아다가 저기다 보충하고
아침에 임명했다가 저녁 때 교체하곤 합니다. 그 결과 서울이나 지방이나 할 것 없이 관리들이 자기가 맡은 직무가 무엇인 줄을 모르며 혹은 부임하기가 바쁘게 곧 교체되는 자도
있으므로 장부를 없애버리고 재산을 훔치려다가 간사한 아전의 술책에 넘어가기도 하며 또 신관(新官)을 맞이하고 구관(舊官)을 전송하느라고 인부와 말을 내보내어 천리 밖에 분주히
내왕하는 바람에 영락한 백성들의 가산을 탕패하기도 하는바 이런 일은 다 중국에서 볼 수 없는 폐단입니다.[중국에서는 비록 만리 밖에 부임할지라도 자비로 말이나 인부를 얻어 가지고
그 가족을 데리고 갈 뿐이요 사람 하나 말 한 필이라도 관청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에게 폐단으로 될 것이 없고 다들 살림을 유지하고 지낸다.] 그 뿐만 아니라 지방장관으로
될 재능이 부족하면 빨리 교체하는 것이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꼭 출발하기로 정한 날짜에야 왕에게 보고하고 해임시킵니다. 그 때문에 먼 지방에서 마중 왔던 관속은 여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고리대로 빚을 얻어 묵어가면서 신관(新官)이 출발하기를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가서는 가산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니 집은 파산하게 됩니다. 일 년 동안에도 책벌 받고 면직된
자가 한두 명 뿐만 아니며 신관 한 사람을 마중하기 위하여 오는 자가 100명뿐만 아니니 일 년 동안에 이 일로 인해서 살림을 없앤 자가 몇 백 명이겠습니까? 이조(吏曹)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에 한때의 부주의로 인하여 사방의 백성이 모두 다 해를 입게 되니 이것을 어찌 사소한 일이라 하여 고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 이조에 명령하여 꼭
먼저 평정을 거쳐 만족한 공론이 있은 후에라야 그 추천된 자를 임명할 것입니다. 오직 재능 있는 이만 쓰고 사정에 끌리지 말 것이며 꼭 현명한 자를 쓰고 부정한 자를 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드시 추천된 사람 중에서 첫째가는 사람을 등용하여 오랫동안 그 자리에 두어서 그로 하여금 국가사업에 빛나는 성과를 달성한 후에라야 그 벼슬을 올려 준다면 그때에는
아마도 사다 분발하게 될 것이요 백성들도 살기가 편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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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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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政凡開政 除拜今稱政事. 每歲正月上旬 取旨定日開政. 前歲十二月望日 褒貶開拆正月上旬開政 上旬有故則用中旬. 褒貶後 政官擇得人才 政府開坐 政曹合坐會議 憲府亦合坐會推 從容難愼 必審人器相當
僉議皆定然後 乃開政擬望 不可怱怱徇例苟且. ○凡注擬旣得其人則止合首薦 副望已多矣 人君當以用人得失 責之政官而不可虛煩其望 以爲暗中抽籤之歸也. 宜依中朝 定以首ㆍ副二望 罷今三望之規.
若有缺官衆多則每月上旬 一開政. 正月爲大政 餘月爲權務政 過此則雖有缺 不得數數率爾差除 必待後月. ○凡開政 取旨定日. 若政府ㆍ六曹ㆍ館閣ㆍ府衛堂上官及觀察ㆍ節度使ㆍ守令 則必議于政府而憲府會推
如上規. 唯緊急差出者 不拘時. 非緊急差出 不得無時開政. 今臺諫ㆍ守令 有闕則便卽開政 臺諫雖有闕 亦不可隨闕開政 待後政擇授. 守令旣有貳官則亦不闕事 唯貴得人 不可怱怱苟授也. ○用人
君之大務 治亂之本 人君當實體之 親與宰相ㆍ銓官 臨朝開政 每制一官 必難愼審議而後 乃定授之. 如上所未知者則必審問之 咨其如何如何而後定授. 不可因循後世之習 深坐宮中 不詢不問
任其冥昧而信筆落點也.李粹光曰 "高麗時 頒政有定式 十二月爲大政 六月爲權務政 過此則雖有缺 未常差授. 至崔忠獻專國政 始變舊制 有政房之稱. 本朝則一年兩都目外 隨闕隨差 或至逐日爲政
與古異矣. 聞中朝 每月二十三日 吏部會選. 其餘則唯大段除拜會推而已."趙重峰東還封事曰"臣竊見中朝官制 天下庶官 如此其多 而注擬之際 一皆難愼. 或有缺官則六部ㆍ都察院 會議擬望之人
僉議皆定然後 吏部只擬二望. 夫以中夏人物之盛 豈無三望之可擬哉? 誠以人才難得 或授匪人則害及生民 故下不敢以非才苟充 上不敢以私意苟任. 一被選授 永無劾駁之議 旣到其任 又皆久於其職 九載三考
乃定黜陟. 敎官ㆍ邊帥 亦以家累自隨 率爲經遠之計. 故庶官多盡其職 而百姓多得其所 中朝之所以保大享安者 有由然矣. 東方人才視中夏 未滿二十分之一 而累經斬伐 士趍隨訛 倫綱不明 義理莫分
求其經邦論道者 蓋絶難遇 而其當局思職者 亦不多見矣. 政曹乃於注擬之際 論不豫定 坐于政廳然後 執筆始議 率皆苟充 抽東補西 朝授夕換. 京外官員 未諳所職之爲何事 而或有坐席之未煖者 絶簿盜財
祗陷於奸吏之術. 迎新送舊 差發人馬 奔走千里之外 以破殘民之産者 又中國所無之弊也. 中國爲官者 雖赴萬里之外 以私馬私人運其家小. 一馬一人 不煩官力 所以弊不及民 而人全恒産也. 且其新除之人
不合牧民則速處可也 而必於當行之日 乃始啓罷. 遠來官屬 稱貸月利 留待新官之發 則歸家賣田僕償月利 而家已告絶矣. 一歲貶罷者 不止一二 而爲一官來迎者 不啻百人 則一年之中 以此失業者 幾百人哉?
吏曹用人 至於暫時之不審 而四方士民 無不被害 可謂細事而不之改乎? 願聖明 申飭吏曹 須先論定 洽於公議然後 乃充其望. 罔及私昵 惟其能 罔及惡德 惟其賢. 必用首薦 而久任其職 待其奮庸熙載然後
乃加超遷 則庶乎人人知勸 而民獲其所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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