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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ㅁ) 문벌을 따지지 말 것[勿限門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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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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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문벌을 따지지 말 것[勿限門地]

대체로 인재를 등용할 때에는 오직 현명한 인재만을 선발하는 데 노력할 것이요 그들의 문벌을 따지지 말 것이다.[관리를 등용할 때에는 오직 대상자의 현명 여부만 따지고 일을 맡길
때에 재능 유무만을 따질 것이며 지금과 같이 문벌을 따지는 폐단을 제거하고 또 서경법(署經法) 서경법(署經法)：조선시대 관리가 처음 임명을 받을 때에 자기의 4대, 외갓집 4대,
처갓집 4대를 써서 바치는 법.

도 폐지할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지금의 서경법은 관리의 신분 관계를 심사하는 의미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마저 제거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한다. 소위 서경법은 다만 신임 관리로 하여금
그 사람의 본족과 외가의 사조(四祖) 및 처가의 본족과 외가 사조의 관직, 성명을 본인이 써서 바치게 하여 양사(兩司)에서 신임자의 신분을 조사하는 것이니 심사하는 요점은
선대[先世]의 관직뿐인 것으로서 원래 본인의 현명 여부를 심사하는 본의와는 관계가 없다. 이것은 공연히 문벌만을 존중히 여기는 폐단이 될 뿐이요, 현명한 인재를 선택하여 관리로
임명하는 본의에는 전연 틀린 것이니 아무래도 그 법은 폐지해야 한다.]

조중봉(趙重峰)이 중국에 갔다 와서 왕에게 글을 올려 말하기를 "제가 가만히 보건대 중국에서는 인재를 등용하는 길이 매우 광범하여 오직 재능만 있으면 그의 문벌을 묻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손계고(孫繼皐) 손계고(孫繼皐)： 중국 명나라 때 상두꾼의 아들로서 이부시광 벼슬을 지낸 인물.

같은 사람은 상두꾼의 아들이지마는 지금 수찬(修撰)이 되었고 성헌(成憲) 성헌(成憲)： 중국 명나라 때 천첩의 소생으로서 편수관 벼슬을 한 인물.

은 천첩의 아들이지마는 편수관(編修官)으로 있으며 허삼성(許三省)은 거인(擧人) 거인(擧人)： 중국 역대의 인재 선발에 있어서 군과 현에서 추천을 받은 인사나 향시(鄕試)에
합격되어 서울 시험에 응하러 올라온 인사.

이었지마는 지금 산서(山西) 어사(御史)로 되었으며 기타 국자감 박사(國子監博士), 조교(助敎), 학정(學正), 학록(學錄) 등 관리들 중에는 추천을 받았거나 선발된 선비로서
임명된 자가 부지기수입니다. 대개 부호의 가정은 아주 부화방탕하여 옳게 생활하는 자가 적으며 그 자제들도 부랑자가 많아서 도리어 빈천한 선비가 분발하여 곤란을 극복하고 성공하기를
결심하는 데 비하면 전연 동떨어지므로 아무리 상놈과 서얼 자식[孽屬]이라 할지라도 그가 재능만 있으면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 과거 공부만 한 축들은 공연히 문장만을 숭상하고
조행을 단속한 자가 적으며 실무 역량은 없이 건방지기만 하여 도리어 남에게 욕먹을 것을 두려워하면서 맡은 일에 성과를 거두는 데는 여러 해 동안 관직에 복무한 자만 못하기 때문에
지금에는 과거 출신이나 선발된 선비들로서도 요직에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명나라에서 현명한 인재를 원만하게 등용하여 백성을 안정시키고 광대한 지역을 통치할 수 있는
기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인재를 등용하는 길이 대단히 좁고 시골 백성들은 자기의 자식을 교육시키려는 자가 극히 적습니다. 그 가운데 혹 훌륭한 학문을 가진 자가 있더라도
겨우 향교 학생으로 뽑히게 되면 그것을 다행으로 알고 그만둡니다. 또 서울이나 지방의 미천한 성바지는 아무리 훌륭한 재질을 가졌더라도 다시 분발할 길이 없습니다. 옛적에 삼국이
비록 적기는 했으나 각각 자기 강토를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 결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고려는 중엽에 와서 권력 있는 신하가 국가를 저의 마음대로 할
때부터는 충성하고 식견 있는 선비가 미천한 계급에서 등용되면 그들이 저의 사욕을 부리고 농간을 하는 데 방해를 줄까봐 두려워하여 모략을 꾸미어 서파[庶孽] 자손의 채용을 폐지하였기
때문에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는 길이 점차 좁아졌습니다. 그리다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국가사업을 하는 대신들이 벼슬제도를 자기 자손에게만 유리하도록 만드는 데 몰두하고 국가 만대의
인재를 채용할 수 없는 걱정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재혼한 부인의 자손까지 아울러 벼슬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이것을 법령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극히 공평한
생각을 가진 전하로서도 서파를 자유로 할 일에 대해서 그것이 급무인 줄을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전자에 이중호(李仲虎) 이중호(李仲虎)： 조선 중종(中宗) 때의 저명한 유학자로서
『심성도설(心性圖說)』, 『성리명감(性理明鑑)』과 자경시(自警詩) 수백 편을 저작한 인물.

, 김근공(金謹恭) 김근공(金謹恭)： 조선 중종(中宗) 때 목사 김창(金琩)의 서자로서 이중호(李仲虎)의 제자인데 집이 가난하여 의식주에 곤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학문과 후진
교육에 일생을 바친 인물.

등이 비록 서파이지마는 종신토록 학문에 애쓰면서 후생들의 교육에 노력하였던바 그 교육 방침은 소학(小學)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고관이나 선비들이 염치를 알고 명분과 교화를
존중히 여기게 된 것은 모두 이 두 사람의 공로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생활이 곤란하여 굶어 죽었습니다. 저의 우매한 생각으로는 부인의 재혼을 전연 금지한다면
범중엄(范仲淹) 같은 인재가 세상에 등용되지 못했을 것이요 서파를 아주 쳐주지 않는다면 이중호 같은 사람들이 또 당장에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이나 지방에 있는 훌륭한
인재들이 출세할 길이 없고 규율과 질서가 필경 문란하게 되어 그 해독이 국가에 미칠 것입니다. 지금 만일 세상에 현명한 임금이 나서 멀리는 옛날의 어진 임금과 가까이는 현재의
중국을 본받아 적당한 방법으로 변통하여 꼭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기에 노력한다면 옛날 태평 시대의 정치가 몇십 년 후에는 아마 실현될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유서애(柳西厓)766)가 왕에게 글을 올리기를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은 범위를 널리 해야 할 것이요 좁게 해서는 좋지 못합니다. 때문에 '현명한 인재라면 어디서나 선발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공(周公)은 선비를 선발할 때에는 반드시 미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등용하였으며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수상(首相)으로 있으면서 도적 2명을 등용하였으며
안영(晏嬰)은 착한 말 한마디를 듣고 그가 부리던 마부를 추천하여 대부(大夫)로 임명하였으며 그처럼 많은 서한(西漢) 인재는 대부분 지방 관청의 이속[胥吏] 중에서 채용하였습니다.
그 뒤에 위(魏)와 진(晉) 이래로 비로소 문벌을 따지는 주장이 있었는데 정치와 교화가 해이해진 원인은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 역시 이에 대하여 느낀 바가 있습니다. 세상이
태평하면 현명한 인재는 높은 지위에 있고 민간에는 숨은 인재가 있지 아니하므로 정치상 업적이 나타나고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오나 세상이 문란하면 정부에 있는 자라고 꼭 다 현명하지
못하고 민간에 있는 자라고 꼭 다 암둔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춘추(春秋)』767)에 있는 무씨(武氏), 윤씨(尹氏), 잉숙(仍叔)의 아들은 다 문벌이 혁혁한 사람이며
그와 동시에 의봉인(儀封人), 저익(沮溺), 하궤(荷蕢) 등은 다 조잔한 직위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거나 농사일에 묻히어서 탄식한다 하였습니다. 세상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여기에
큰 관계가 있으니 대개 문벌과 미천한 계급을 불문하고 오직 훌륭한 인재만을 선발하여 등용할 뿐입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남도[南方] 선비들만을 채용하고 서북 지방 선비는 전연
채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서북 지방에도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특히 먼 지방이 되어 반연과 후원하는 힘이 적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가끔 그 중에 특수한 인물을 등용하여 재능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분발하게 하고 동시에 남북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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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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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限門地凡用人 惟其賢才 勿論其門地. 任官惟賢 位事惟能. 改今門地之弊 並除署經之法.或曰"今署經法 亦是審官之意 而並去之 何也?"曰所謂署經者 只是使新除官
自爲書納其內外四祖及妻內外四祖之官職ㆍ姓名 而兩司考之 許其行公與否也. 是其所審者 先世官職耳 本不干於察其人之賢否也. 徒崇門地之弊 而深有乖於擇賢任官之義 不可不袪者也.趙重峰東還封事
曰"臣竊見皇朝作人之路 甚廣. 惟其有才則不論其門地 如孫繼皐葬師之子而今爲修撰. 成憲丫頭 婢妾之名.之子而今爲編修. 許三省擧人而今爲山西御史. 其他國子監博士ㆍ助敎ㆍ學正學錄等官 以擧人貢士
充補者不可勝數. 蓋豪富之家 專習驕淫 鮮克由義 而子弟無賴 則反不如寒賤之士 動心忍性而增益其所不能 故雖常民ㆍ孽屬 不廢其材. 科擧之類 徒尙文辭 少有飭行 而浮躁無實 則反不如歷仕之輩
畏人恤言而當事盡職. 故雖擧人貢士 多出於顯途 此皇朝之所以立賢無方 而能撫衆御遠者也. 我國取人之路甚狹 鄕民欲敎其子者甚鮮. 其中號爲巨擘者 得補校生則深幸而自畫 中表賤族則雖有良材美質
更無振奮之路矣. 昔三國雖少 各能保方隅者 以其用人之無間也. 蓋自高麗中葉 權臣當國 將恐忠智之士 起自草茅而有妨於己私 謀廢庶孽之科 而賢路漸狹. 至於我朝 謀國大臣 祗爲私其子孫之計
而不念萬世失人之憂 幷與再嫁子孫而禁錮之 載錄於令典. 雖以殿下之至公 其於揚側陋之事 尙未知爲急務也. 頃如李仲虎ㆍ金謹恭之徒 雖是庶孽 而終身苦學 力勸後生 先以小學. 今之卿士 知廉恥而重名敎者
兩人之功爲多 而窮餓而死. 臣愚竊恐全防再嫁 則范仲淹之才 不用於世. 專廢庶孽 則李仲虎之流 又餓于時. 京ㆍ外英才 罔有成就 而綱倫終斁害及於國家. 今如不世出之主 遠慕成湯 近法中朝 變通有術
期於得人則隆古之治 庶望於數十年之後矣."柳西厓箚子曰"用人之道 貴廣而不貴狹 故云立賢無方. 周公擧士 必先白屋. 管仲相齊 擧盜二人. 晏嬰 用一言之善而薦其御者爲大夫. 西漢人才之盛
多得於郡縣胥吏. 自魏晉以降 始有門地之議 政敎陵替 職此之由. 抑臣又有感焉 世治則賢才在上而野無遺賢 故庶績熙而頌聲作. 世亂則在上者 未必皆賢 在下者未必皆愚. 春秋書武氏ㆍ尹氏ㆍ仍叔之子
皆門地高顯之人也 而其時如儀封人ㆍ沮溺ㆍ荷蕢之流 皆沉淪於卑冗之位 歎息於壟畝之中. 世道升降 此其大機. 大槩勿論門地與賤流 唯賢才是求而已. 我國 多用南方之士而西北則絶無焉. 其實西北亦未嘗無才
特以地遠而攀援之勢少也. 間擢其表表者而用之 使人才競勸而無間於南北 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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