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hema: "bangye-translation-original-pair/v1"
pair_id: "bangye-15-001"
document_sequence: 15
pair_index: 1
pair_count_in_document: 4
title: "서문"
status: "complete"
pair_kind: "preface"
document_title: "반계수록 권15(卷之十五)"
volume_title: "직관지제(職官之制) 상(上)"
translation_language: "ko"
original_language: "classical_chinese"
role_order: ["translation", "original"]
boundary_method: "unicode-script-runs-v1"
contains_embedded_bilingual_figure_labels: false
source_hwp: "raw_sources/[반계수록] 권15 職官之制 上.hwp"
source_hwp_size: 287232
source_hwp_sha256: "cc8709b9dced4099482c5a9fb49d8ace272c9bfbd0c3b7d82bf483374510d994"
source_markdown: "source_mds/15_권15_職官之制_上.md"
source_markdown_sha256: "38ff1f9b91ddf88c0ea6e1f00b31399dad7c9ebef1c5015a3eda3acd1b3d56d8"
hwp_version: "5.0.3.4"
extractor: "pyhwp 0.1b15"
translation_source_spans: [[5, 8]]
original_source_spans: [[347, 347]]
translation_chars: 1162
original_chars: 357
translation_sha256: "119f8779b69953835182c2e6cd13e6e02e9a3046db2870cee2344ac778ebae65"
original_sha256: "8d0634c8477113a1cf7f30728dab393df171c7d0eced25d08076a6a0eab83f5a"
translation_images: []
original_images: []
---

# 서문

<!-- PAIR_START id="bangye-15-001" -->

## 한국어 번역문

<!-- ROLE_START name="translation" lang="ko" pair_id="bangye-15-001" -->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현명한 임금이 성좌의 분포와 지리의 조건에 순응하여 국가를 창건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여러 영주국들을 수립한 후 대소 관원을 배치한 것은 자기 한 사람의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적으로 백성을 다스리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제왕이 관직을 설치하여 직무를 분담시키는 것은 다만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당우(唐虞)
당우(唐虞)：전설적인 중국 요 임금과 순 임금의 나라 이름.

시절에는 관리의 수가 백 명 뿐이었으며 하(夏), 상(商) 하(夏), 상(商)：중국 삼대(三代) 시대의 하나라와 상나라.

때에 와서는 그 수가 배로 증가하였으나 다 정치를 극히 잘하였다. 그러나 후세에는 관리의 수가 많을수록 정치는 더 문란해졌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옛적에 어진 이는 말하기를
"관리의 수를 줄이면 일도 줄어질 것이요 일이 줄어지면 백성들의 생활이 편해질 것이나 관리가 많으면 일이 많고 일이 많으면 백성들의 생활이 곤란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관청 일을 잘 처리하는 자는 반드시 그 관청 수를 먼저 줄인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관리를 많이 둔다면 그 담당 직무가 전일하지 못하여 정치상 성과를 잘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관리 제도도 매우 복잡하니 꼭 줄이어야만 된다. 필요치 않은 관리를 줄인 후래야 관청 규율이 확립될 것이요 관청 규율이 확립된 후라야 총명한 인재가 그 직무에
진력하게 되어 정치상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율곡(李栗谷)이 선조(宣祖)에게 고하기를 "우리나라의 면적을 중국과 비교한다면 한 도(道)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건대 중국의 관직이나 관청 수는 도리어 우리나라보다 적으니
우리나라에는 필요치 않은 관청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8도(八道)에는 군읍(郡邑)이 과히 많아서 혹 백성이 없는 지방에도 수령(守令)이 나가
있습니다. 생산하는 자는 적고 소비하는 자만 많으니 어찌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의견에는 당우(唐虞)시대에 관리 수를 백 명으로 정한 제도를 본받아 정부 관직으로서의 합칠 만한
것은 합치며 지방관으로서의 합칠 만한 고을을 합치고 다만 책임 관리만 두고는 필요치 않은 인원은 전부 정리해 버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대체로 이렇게 한다면 정부에는 공밥 먹는
관리가 없어지고 백성들은 생활상 여유가 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ROLE_END name="translation" pair_id="bangye-15-001" -->

## 한문 원문

<!-- ROLE_START name="original" lang="classical_chinese" pair_id="bangye-15-001" -->

書曰 "明王奉若天道 建邦設都 樹后王君公 承以大夫師長 不惟逸豫 惟以亂民." 蓋王者 設官分職 只是爲民也. 唐虞建官惟百 夏商官倍 咸臻至治 後世官逾多 而政逾亂何哉? 昔賢有言曰 "官省則事省
事省則民淸 官煩則事煩 事煩則民濁." 又曰 "善官人者 必先省其官." 夫煩其官 任不專而能成治者 未之有也. 當今 官制亦極煩矣 所宜省約. 冗官省然後 官紀明 官紀明然後 賢才得盡其職
而治可成矣.栗谷告于宣祖曰 "我國之大 比於中國 不及一道. 臣見中朝 官職衙門 反少於我國 可見我國之官司太冗也. 至於八道 郡邑過多 或有坐守無民之地者. 生之者寡 食之者衆 焉得而不困?
臣請倣唐虞建百之制 內而各司 可倂者倂之 外而列邑 可合者合之 只存有掌之官 悉捐不急之員. 夫如是則朝無倖位 民有餘力矣."

<!-- ROLE_END name="original" pair_id="bangye-15-001" -->

<!-- PAIR_END id="bangye-15-0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