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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군사 연습[講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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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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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군사 연습[講武]

『주례』를 보면 "대사마(大司馬)가 2월에 본 지방의 군대를 모아 각종 전투법[振旅]을 가르치는데 사마(司馬)가 기(旗)로써 백성을 집합시켜 대오를 전투 사열과 같이
정비한다.[정현(鄭玄)은 말하기를 "기(旗)로써 하는 것은 기를 세워서 백성을 그 아래에 묶으려 함이다. 군사는 나라를 지키는 차림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가르치지 아니한
백성으로써 싸우는 것은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 하였으니, 군사란 것은 흉(凶)한 일이라 부질없이 설치해서는 안 되고, 봄의 수(蒐)와 겨울의 수(狩)라는 짐승 사냥을 통하여 싸움을
익힌다. 군사가 나가는 것을 치병(治兵)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진려(振旅)라 하니 모두 싸움을 익힘이니 사시(四時)에 각각 백성을 가르치기를 그 한 가지로써 한다. 봄에는
진려(振旅)를 익혀 군사가 들어오고 무리를 거두어 농사에 전일(專一)하게 한다. 평(平)은 정(正)과 같으니 반듯함이다"하였다.] 이때에는 북[鼓], 큰 요령[鐸], 징[鐲],
사발징[鐃] 등을 사용하여 신호하는데 왕은 노고(路鼓)를 사용하고 제후(諸侯)는 분고(賁鼓)를 사용하며 군장(軍將)은 진고(晋鼓)를 사용하고 사수(師帥)는 제(提)를 사용하며
여수(旅帥)는 작은 북[鼙]을 사용하고 졸장(卒長)은 사발징을 사용하며 양의 사마[兩司馬]는 큰 요령을 사용하고 공의 사마[公司馬]는 징을 사용하면서[제(提)라 함은
마상고(馬上鼓)에 곡목제지(曲木提持)가 있음을 말한다.] 군인들의 앉고 서며 전진하고 후퇴하며 빨리 하고 더디게 하며 자주하고 드물게 하는 절차들을 가르친다.[싸우는 법(法)을
익힘이다. ○오징(吳澄)은 말하기를 "군사가 나가는 것을 치병(治兵)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진려(振旅)라 한다. 선왕(先王)이 사시(四時)의 사냥을 통하여 백성에게 싸움을
가르치는데, 봄에 진려를 한다 함은 군사가 들어오는 뜻을 취하여 그 무리를 거두어 농사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탁촉(鐸钃)ㆍ요(鐃)는 모두 경(磬)과 비슷하고 대소(大小)가 다른데
탁은 그 가장 큰 것이다. 탁(鐸)은 고(鼓)를 통(通)하고 촉(钃)은 고(鼓)를 절(節)하고 요(鐃)는 고(鼓)를 멈춘다"하였다.] 드디어 봄 사냥[蒐田]을 하는데 대사마가
제사를 지내어 백성들과 서약[誓]을 하고 북을 치며 짐승들을 포위하여 잡은 다음에는 지른 불을 끄며 잡은 날짐승들을 바쳐서 땅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다.[봄 사냥을 수(蒐)라고
한다. 유사(有司)는 대사도(大司徒)이니 큰 사냥의 역사(役事)와 무리를 다스리는 정령(政令)을 맡는다. 표학(表貉)이라 함은 표(表)를 세워 학제(貉祭)라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백성과 서약(誓約)한다 함은 사냥의 법을 범(犯)하는 벌(罰)로써 맹서함이니 서약(誓約)하여 말하기를 수레를 범하지 말며 뒤로부터 쏘지 말며 정(旌)을 세우면 드디어
금(禁)하는 구역을 둘러싸며 정(旌)이 멈췄으되 짐승을 다투어 살피지 아니하는 자는 벌하기를 가마(假馬)로써 한다 함이며, 금(禁)이라 함은 산택(山澤)을 맡은 우인(虞人)이
짐승을 지키며 통행을 막아 금하는 구역이니 서약을 하고서 북을 치게 하여 둘러싸고 드디어 사냥을 한다. 불이 폐(弊)한다 함은 불이 멈추는 것이니 봄 사냥은 불을 씀을 주로 하는데
불로 사뤄서 묵은 풀을 다스려 버리고 모두 죽이고 불이 멈추는 것이며, 드린다 함은 올림과 같다. 사냥이 끝나면 우인(虞人)이 정(旌)을 세우고 뭇사람이 모두 그 잡은 짐승을
드리는데, 봄 사냥이 주로 사(社)에 제사드림을 주로 하는 것은 흙이 방금 기운을 펴서 만물을 생(生)하는 까닭이다. 정사농(鄭司農)은 말하기를 "학(貉)은 마(禡)로 읽어야 하니
마(禡)는 사제(師祭)이다" 하였다.] 5월에는 수풀에서 동작하는 법[茇舍]을 가르치는데 봄에 하는 전투 훈련 사열과 같이 하되 여러 아전들은 수레와 인원을 장악하며 군인들의
명단을 암송하여 그 부호와 이름을 구분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대장의 부호는 그 문(門) 이름으로 하였고 현(縣)과 비(鄙)의 부호는 각각 그 현과 비의 이름으로 하였으며 대부의
군대는 그 대부의 이름으로 하였고 향(鄕)의 군대는 그 주(州)의 이름으로 하였으며 지방의 군대는 그 고을[邑] 이름으로 하였다. 그리고 여러 관리들각각 그 사업을 주관하여
군대들의 밤에 진행할 행사들을 분별하게 하였다. 기타의 일들은 모두 봄에 하는 전투 훈련법과 같다.[발사(茇舍)란 풀밭에 머무는 것이니 군사에는 풀밭에 야영(野營)하는 법이 있는
것이며, 수레와 보졸(步卒)을 찬(撰)한다 함은 세어서 가리는 것을 말한다. 서계(書契)를 읽는다 함은 문부(文簿)로써 군사의 실태를 상고하여 기록하는 것이고, 호명(號名)이라
함은 휘장으로 표를 붙이는 것이니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구규(丘葵)는 말하기를 "사(師)는 육군(六軍)의 장수이고, 문(門)은 거(居)하고 있는 문이고, 공읍(公邑)
한전(閒田)을 현(縣)이라 이르고, 소도(少都)를 비(鄙)라 이르고, 대부(大夫)를 가(家)라 이른다. 향(鄕)은 육향(六鄕)을 말하고, 수(遂)는 육수(六遂)를 말한다.
발사(茇舍)의 가르침은 곧 야영(野營)하는 법(法)이다. 오로지 군사의 야간(夜間) 경계하는 일은 분별하는 것이니, 이는 군사를 쉬게 하고 행진을 멈출 때에는 불을 끄고 자서 눈에
본시 보이는 것이 없고 막대를 입에 물고 있어 귀에 본시 들리는 것이 없으며 장차 고탁(鼓鐸)으로써 소리를 치면 듣는 것이 반드시 어지러울 것이고 장차 물건을 세워서 두르면 보는
것이 반드시 어두울 것이다. 이에 오직 호명(號名)을 주로 하는데 호명도 또 반드시 밖으로 가장하는 것은 간사한 무리와 간첩 등의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하였다.] 드디어 여름
사냥[苗田]을 하는데 봄 사냥하는 법과 같이 짐승을 잡은 다음에는 짐승을 몰던 수레를 중지하고 잡은 날짐승을 바쳐서 종묘(宗廟)의 여름 제사를 지내게 한다.[여름 사냥을 묘(苗)라
하니, 새끼를 배지 아니한 짐승을 가려서 잡기를 곡식의 묘(苗)를 가꿈에 잘 자라지 않았거나 여물지 아니한 것을 뽑아 버리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수레가 폐(弊)한다 함은 짐승
몰이를 하는 수레가 멈추는 것이니, 여름 사냥에 수레를 쓰는 것을 주로 함은 취하는 것이 적음을 보이는 것이며 모두 죽이고 수레가 멈추는 것이다. 초(初)라 함은 종묘(宗廟)의
여름 제사이니 겨울과 여름의 사냥이 종묘에 제사함을 주로 하는 것은 음양(陰陽)이 비로소 일어나면 신(神)이 내부에 있음을 형상함이다.] 8월에는 각종 신호에 의한 동작법[治兵]을
가르치는데 봄에 하는 전투 훈련 서열과 같으나 깃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구별한다. 왕은 대상(大常) 대상(大常)：기(旗) 9개만 한 폭에 해와 달을 그린 기.

을 꼽고, 제후는 기(旂) 기(旂)：쌍룡을 그린 기.

를 꼽으며, 군장[軍吏]들은 기(旗) 기(旗)：곰과 범을 그린 기.

를 꼽고, 사도(師都) 사도(師都)：수의 대부.

들은 전(旜) 전(旜)：좋은 비단으로 만든 기.

을 꼽으며, 향수(鄕遂) 향수(鄕遂)：향의 대부.

들은 물(物) 물(物)：잡종 비단으로 만든 기.

을 꼽고, 교(郊) 교(郊)：향과 수의 주장(州長)과 현정(縣正) 이하 관리.

와 야(野) 야(野)：공후국의 여러 읍의 대부.

들은 조(旐) 조(旐)：거북과 뱀을 그린 기.

를 꼽으며, 백관(百官)들은 여(旟) 여(旟)：새매를 그린 기.

를 꼽아 각기 그 사업과 부호들을 기록한다. 기의일들은 다 봄에 하는 전투 훈련과 같다.[군리(軍吏)는 모든 군사(軍師)이고, 사도(師都)는 수대부(遂大夫)이고, 향수(鄕遂)는
향대부(鄕大夫)이고, 교(郊)는 향수(鄕遂)의 주장(州長) 현정(縣正) 이하를 말하고, 야(野)는 공읍대부(公邑大夫)를 말하고, 백관(百官)은 경대부(卿大夫)이다. 정기(旌旗)는
군려(軍旅)가 있는 자는 특이한 물형을 그리고 없는 자는 백(帛)뿐이다.

○ 일월(日月)로 상(常)을 삼고 교룡(交龍)으로 기(旂)를 삼고 태호(態虎)로 기(旗)를 삼고 순색(純色) 비단으로 전(旜)을 삼고 잡백(雜帛)으로 물(物)을 삼고 민사(黽蛇)로
조(旐)를 삼고 조준(鳥隼)으로 여(旟)를 삼는다.]

드디어 가을 사냥[獮田]을 하는데 봄 사냥하는 법과 같이 짐승을 잡은 다음에는 그물을 거두고 잡은 날짐승을 바쳐서 사방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다.[가을 사냥을 선(獮)이라 하니
선(獮)은 죽임이며, 나(羅)가 폐(弊)한다 함은 그물이 멈추는 것이다. 가을 사냥에 그물을 쓰는 것을 주로 함은 죽여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고, 가을 사냥에 사방에 제사함은
만물의 결실에 보답하는 것이다. ○오징(吳澄)은 말하기를 "중추(中秋)에 치병(治兵)을 말하는 것은 예(禮)에 봄과 여름에는 군사를 일으키지 아니하고 가을은 곧 군사를
출동(出動)하는 때이다"하였다. 구준(丘濬)은 말하기를 "여름과 가을의 가르침은 모두 말하기를 '진려(振旅)의 진(陣)과 같이 한다' 하고 또 말하기를 '그 밖은 모두 진려와 같이
한다' 하니, 여기서 사시(四時)의 가르치고 사열하고 하는 법이 모두 같으나 각각 그 중요한 것을 들어서 말하고 글을 서로 인용하여 그 뜻을 나타낸 것임을 볼 수 있다" 하였다.]
11월에 총 사열을 진행한다.[대규모적으로 사열하고 전투 연습을 진행한다.] 이 기일이 되기 전에 여러 관리들은 군인들을 독촉하여 전투하는 법을 연습시키며 우인(虞人)이 사냥할
지대의 풀을 베어 표식을 하는바 백 보(步)를 한 단위로 하는 세 개의 표식[表]을 하고 또 50보로 하나의 표식을 하여 둔다. 사냥하는 날에 사마(司馬)가 뒤에 표식한 곳의
중앙에 기(旗)를 세우면 여러 관리들이 각각 자기의 깃대와 북, 큰 요령, 징, 사발징들을 가지고 각각 자기 백성을 영솔하고 도착한다. 날이 완전히 밝은 뒤에는 세웠던 기를 거두고
늦게 당도한 자를 목을 베고 이어 수레와 인원들의 사열을 전투 서열과 같이 하고는 모두 앉는다.[우인(虞人)이 사냥하는 들판의 풀을 벤다 함은 그 풀을 모조리 베어 달리고 뛰고
함에 편리하게 하는 것이다. 후표(後表)의 가운데의 50보(步)는 표(表)의 중앙이며, 표는 행렬(行列)을 표시하여 바르게 하기 위한 것이고, 네 표의 합한 것은 350보이며
좌우의 너비는 마땅히 이군(二軍)을 넣을 만하고 그 보수(步數)는 군사의 많고 적음을 따른다. 폐(弊)는 자빠짐이니 날이 밝으면 기(旗)를 눕히는 것은 무리의 이르는 것이 마땅히
일찍이 할 것을 기약한 까닭에 날이 밝으면 기를 눕히고 늦게 이르는 자를 베는 것이며, 모두 앉는 것은 마땅히 서약(誓約)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여러 관리들이 전투
서열 앞에 나아가 맹세하는 서사[誓]를 듣고 짐승을 잡아서 보조하는 사람[左右]을 시켜 서열에 돌리면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목을 벤다'라고 한다.[진전(陣前)은 남쪽으로
향하여 표(表)를 향함이다.] 중군(中軍)의 장수가 비(鼙)로 북을 칠 것을 명령하면 고인(鼓人)들은 다 북을 세 번씩 친다. 사마는 큰 요령을 흔들고 여러 관리들은 기(旗)를
들며 수레와 군인들도 다 북을 치며 행진을 시작한다. 징을 치면 수레와 군인들은 다 표식[表]을 하여 놓은 데까지 가서 정지한다. 다시 북을 세 번 치고 큰 요령을 흔들면 여러
관리들은 세웠던 기를 거두며 수레와 군인들은 다 앉는다.[중군(中軍)은 중군의 장수이니, 군리(群吏)가 이미 서약을 듣고 각각 그 대오(隊伍)에 돌아가면 중군의 장수는 북을 치게
하여 군사의 기운을 일으킨다. 고인(鼓人)은 사수(師帥)ㆍ여수(旅帥)이고, 사마(司馬)는 양사마(兩司馬)이고, 탁(鐸)을 떨침은 무리를 일으킴이고, 표(表)에 미친다 함은
후표(後表)로부터 앞으로 나아가 제3표에 이르는 것이다. 탁(鐸)을 떨친다 함은 탁의 위를 가려서 떨침이니 행함을 멈추고 기운을 쉬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북을 세 번 치면 큰
요령을 흔들고 기를 세우며 수레와 군인들은 다 북을 치고 행진하다가 큰 요령을 울리면 수레는 빨리 몰고 군대들은 빠른 걸음으로 제3표식 있는 데까지 가서 정지하며 앉는 동작은
처음과 같다.[표(表)에 미친다 함은 제2표로부터 앞으로 나아가 제3표에 이르는 것이다.] 이어 또 북을 치면 수레는 급히 몰고 사람은 뛰어서 제일 앞에 있는 표식에까지 가서
정지한다.[제3표로부터 앞으로 나아가 전표(前表)에 이르는 것이다.] 적을 공격하라는 북을 세 번 치면 수레는 세 바퀴 전진 군인들도 세 번 찌르고[북으로 경계한다 함은 적을
치라고 경계하는 것이고, 북이 한번 마치매 수레가 한번 구르며 도(徒) 하나가 셋을 찌르고 멈춤은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형상함이다.] 다시 북을 치면 조금 물러서고 사발징을 울리면
퇴각하여 표식한 곳에 와서 정지하며 앉는 동작은 처음과 같다.[요(鐃)는 멈추는 것이니 북을 쳐서 군사가 물러가고, 졸장(卒長)이 요(鐃)를 울리는 것은 여러 북과 호응함이고,
표(表)에 미친다 함은 전표(前表)로부터 물러가서 후표(後表)에 이르러 멈추는 것이다.] 드디어 사냥[狩田]을 시작하는데 정(▩)을 좌, 우 편에 세워 문을 만들어 놓고 여러
관리들이 각각 자기의 수레와 인원들을 영솔하고 차례로 그 문에서 나와 그 수레와 인원이 좌, 우 편으로 갈라져 대오를 편성할 때에 해당 관리가 정돈시키는바 기(旗)는 두 부대의
중간에 세워 그 주둔 지역의 상호 거리를 일정하게 하며 매 백 보마다 주둔케 한 뒤에 해당 관리가 그 주둔 지역들을 순찰하며 험한 지대에서는 사람들을 주동력으로 하고 평평한
지대에서는 수레를 주동력으로 한다.[겨울 사냥을 수(狩)라 하는데, 수(狩)라고 말함은 취하는 데 가리는 것이 없는 것이고, 군문(軍門)을 화(和)라 이르는데, 두 정(旌)을
세워서 만든 것이다. 차례로써 화(和)를 나간다 함은 차례로 화문(和門)을 나가는 것이고, 왼쪽ㆍ오른쪽이라 함은 혹은 나가서 왼쪽으로 가고 혹은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다.
유사(有司)가 평(平)하게 한다 함은 향사(鄕師)가 문에 거하여 그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행렬을 바로잡는 것이고, 기(旗)는 군리(軍吏)의 세우는 것이고 땅을 나눈다 함은 그
대오(隊伍)의 드물고 배고 함을 고르게 함이고, 앞뒤에 둔(屯)을 두기를 100보(步)로 한다 함은 차도(車徒)가 군취(群聚)함을 달리하여 상거(相去)하는 수(數)이다. 수레와
병졸이 화문(和門)을 나가기를 마치면 향사(鄕師)가 또 그 행진(行陣)을 돌아다닌다. 정사농(鄭司農)은 말하기를 "험한 들판에서는 사람이 주가 된다 함은 사람이 앞에 거함이고,
평이한 들판에서는 수레가 주가 된다 함은 수레가 앞에 거함이다"하였다.] 대오를 편성한 다음에는 짐승을 몰 수레를 일정한 장소에 배치하여 놓고 해당 관리가 서열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구(驅)라 함은 짐승을 몰아내어 사냥터로 나가게 하는 것이고 역(逆)이라 함은 목을 찔러 지켜서 달아나지 못하게 함이며 이 차[車]를 설(設)하는 자도
전복(田僕)이다.]\(32) 드디어 중군이 비(鼙)로 북을 치라고 명령하면 고인들은 다 북을 세 번 친다. 양사마(兩司馬)는 큰 요령을 흔들며 수레와 군인들은 다 일어나서 북을
치면서 행동을 시작한다. 군인들은 말없이 사냥을 진행하며 큰 짐승은 바치고 작은 날짐승은 자신이 소유하며 잡은 짐승의 왼편 귀를 떼어 온다.[군사마(群司馬)란 양사마(兩司馬)를
이르는 것이다. 군법(軍法)에 막대를 물어서 말을 멈추는 것은 서로 의혹하기 때문이고 대수(大獸)는 공용(公用)으로 보내고 소금(小禽)은 스스로 가지며 짐승을 잡은 자는 왼 귀를
취(取)하여 마땅히 성적을 계산하려는 것이다.] 사냥을 중지할 곳에 가서 북을 빠르게 치며 수레와 인원들은 함성을 지르고는[폐(弊)하는 곳에 미친다 함은 멈추는 곳에 이르는
것이니, 천자ㆍ제후가 수수(蒐狩)함에 모두 떳떳한 처소가 있는 것이고, 아전과 군사가 북 치고 떠들고 함은 무리가 적을 쳐서 이기고 기뻐함이고, 급한 우레처럼 북을 치는 것을
우레치듯 한다고 이른다.] 곧 사냥을 중지한다.

잡은 날짐승과 짐승을 모아서 사방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교(郊)에 바치며 또 날짐승으로 종묘(宗廟)에 제사를 지낸다.[병졸(兵卒)이 이에 폐(弊)한다 함은 도(徒)가 멈추는
것이고, 겨울 사냥은 여러 가지 물(物)을 쓰는 것을 주로 하므로 많이 잡아 얻는 것이고, 금(禽)을 일러 오고 수(獸)를 드리기를 교(郊)에서 한다 함은 잡은 짐승을 모아
그것으로 사방신(四方神)을 교(郊)에서 제사하는 것이고 들어와서는 또 금(禽)으로써 종묘에 제사한다.]

구준(丘濬)이 말하기를 "군대란 것은 국가를 방위하기 위하여 두는 것인데 평시에 훈련을 시키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전쟁에 내몬다면 이는 군대를 잊어버리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군대란 흉악하며 전쟁이란 위험한 것으로서 상대방을 살육하는 것을 기본 사업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는 사냥으로 전투 훈련을 하였고
제사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였으며 또 짐승을 잡는 일로써 그 기술을 연마하였다. 그리하여 사냥할 때에 군인으로 하여금 눈은 신호[▩旗]에 익숙케 하고 귀는 암호와 명령[號令]에
익숙케 하였으며 혹은 앉아서 명령을 대기하기도 하고 혹은 일어나서 행동하기도 하게 하여 앞으로 전진하게도 하며 뒤로 퇴각하게도 하고 급히 뛰어가게도 하며 서서히 걸어가게도 하며
간격을 넓혀서 산재하게도 하며 불의에 연속적으로 진격하게 하는 등의 행동을 이때에 연습한다. 기타 북소리를 들으면 행동을 개시하고 금(金) 금(金)：쇠로 만든 신호 기구의 일종.

소리를 들으면 정지하는 등의 동작이 있다. 만일 사변이 있을 때에는 사냥할 때의 그 진세를 이용하여 전투 대오를 편성하며 짐승을 잡던 그 기술을 이용하여 적을 대항하기 때문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거나 체계 없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주례』를 보면 1년에 네 번씩 연습을 하였는데 이름이 각각 다르다. 즉
봄에는 진려(振旅)를 가르친다. 진(振)이란 것은 거두어들인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방금 겨울에 대대적으로 사열을 하였고 또 봄은 농사가 매우 바쁘기 때문에 군인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여름에는 날씨가 대단히 덥고 만물이 장성기에 있기 때문에 발지(茇止)라 하고 야간 전투에 관한 일들을 가르치며 가을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여 베어 들이는 때이기 때문에
치병(治兵)이라고 하여 가르치는데 낮에 싸우는 전법을 가르치는 것이며 겨울은 농한기이므로 세 절기에 가르친 것을 종합하여 종합 훈련을 하기 때문에 대열(大閱)이라고 한다. 국가의
큰 사업은 군사에 관한 일이다. 그것은 국가의 평안과 위험 또는 백성들의 죽고 사는 것이 모두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시기를 이용하여 각종 전투 대오
편성법을 연습하였다가 사변이 있을 때에 그들을 동원하여 전투 대오를 편성하고 적을 대항한다면 창, 칼을 무릅쓰고 싸워서 장수들은 전부 승리하고 군인들은 다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도 이로 말미암아 모두 안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평시에 연습을 시키는 것은 그들이 지휘관의 각종 신호를 잘 구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미리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군인들이 지휘관의 의도를 알게 함으로써 그 의도하는 바를 일일이 다니면서 타이르지 않더라도 듣고 보는 순간에 자연히 이해하게 하며 지휘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마음속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손과 발이 그것에 따라 움직이게 하여 모든 군대의 앉고 일어나며 전진하고 퇴각하며 급속히 하고 서서히 하며 산개하고 집합하는 등의 동작을 다 장수의 의도대로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전쟁을 안 하면 말할 것 없지마는 전쟁만 하면 승리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주례』에서 말한 진려(振旅)에서는 북, 큰 요령, 징, 사발징의
소리로써 구별할 수 있게 하며 발사(茇舍)에서는 부호와 이름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하며 치병(治兵)에서는 각종 깃대로써 구별할 수 있게 하며 대열(大閱)할 때에는 이상 세 가지
동작을 종합하여 동시에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군대의 행군과 전투 대오에 있어서 하나라도 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3철에는 각각 한 가지만 전적으로
연습하며 겨울에 사열할 때에는 세 가지를 종합하여 동시에 연습하는 것이다. 한 가지씩 전문적으로 연습시키는 것은 그것에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며 세 가지를 종합하여 연습시키는 것은
세 가지에 다 정통하게 하려는 것이니 여기에서 우리는 옛날 임금들이 전투 훈련을 시키는 방도가 여러 가지이었으나 그 요점은 지휘관의 지휘를 익숙하게 구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전쟁이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하루에 끝날 수도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므로 행동이 일치하기 곤란하나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낱낱이 쫓아다니면서 타이를 수도 없으며 매사를 다 가르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金)과 북소리로써 지휘를 하는바 소리가 다름에 따라 하는
일도 다르며 깃대의 모양으로써도 지휘를 하는바 깃대의 모양이 다름에 따라 하는 일도 역시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렇게 미리 구별할 수 있게 하지 않고 사건이 박두하였을
때에 실행하려면 그 부호들을 반드시 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사변이 오래 계속된다면 방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방어해야 하므로 낮에는 낮에 할 일이 있고 밤에는
밤에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즉 낮에 깃대의 부호로써 지휘하되 군인으로 하여금 용, 범, 새, 거북 등의 모양을 보고 지휘관의 의도를 이해하게 하며 밤에는 부대의 이름과 암호로써
지휘하되 군인으로 하여금 문(門), 현(縣), 비(鄙) 등의 이름을 듣고 자신의 마음으로 해득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미리 구별할 수 있게 하지 못하고 박두하여 지휘한다면
군인들이 반드시 금방 해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3철에 각각 한 가지씩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익숙하게 연습시켜 더욱 심도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세
가지를 종합하여 동시에 검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들을 배합하여 원만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연말에 반드시 총 사열[大閱]로써 가르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전법(戰法)을 가르치는데 매월 세 차례씩 연습하며 심한 추위, 심한 더위가 아니면 휴식하지 않으니 주(周)나라 때의 연습에다 비한다면 횟수가 더 많은 셈이다.
그나마도 전법을 제정한 자가 상세하게 작성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책임을 지고 시행하는 자들도 대부분 모든 역량을 다하여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시경』 ｢거공(車攻)｣ 장 서문에 이르기를 "거공은 주나라 선왕(宣王)이 옛날 제도를 회복한 데 대하여 찬미한 시이다. 선왕이 국가의 정치를 바로잡고 외적의 침략을 물리쳐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국토를 회복하였다. 그리고는 수레와 말을 갖추고 또 기계를 장비하여 영주들을 동도(東都)에 모아서 그 기회에 사냥을 하여 수레와 군인들을
연습시켰다"라고 하고 또 ｢길일(吉日)｣ 장의 서문에 이르기를 "길일은 선왕의 사냥을 찬미한 시다"라고 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선왕이 사냥은 이를 이용하여 영주들에게 주나라가 쇠퇴하다가 다시 부흥한 원인이 수레와 말이 이렇게 번성하고 군대의 규율이 이렇게 엄격한 데 있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니 여기에서 말한 사냥이란 보통 심상한 사냥과는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동래(呂東萊)가 말하기를 "｢거공｣ 장과 ｢길일｣ 장에서 주나라의 옛 제도 회복을 찬미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대체로 사냥하는 제도가 회복된 것은 천자의 부세 제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고 군대의 장비가 훌륭하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군대의 규율이 엄격하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상부와 하부와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사업
준비의 주밀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니 이것으로써도 문왕과 무왕의 과거 업적을 다시 계증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거공｣ 장 주석에 이르기를 "사냥을 할 때에 풀을 많이 베어서 사냥할 장소의 테두리[防]를 만들어 놓고[사냥하는 자는 반드시 크게 들판의 풀을 베어 죽이고 방한(防限)을 만들어
사냥터를 삼고 적(敵)을 둘러싸고 죽이는 곳을 모의(模擬)함을 이름이다.] 혹 그 장소에서 훈련하기도 한다.[혹 다시 그 가운데에 머문다 함은 이르기를 아직 사냥하기 전에 군사를
서약하고 무리를 경계하고 하는 까닭에 싸우는 방법을 발표하여 보이는 것도 마땅히 그 가운데의 머무는 장소에 있다 함이고 그 방한(防限)의 넓고 좁음은 기록된 글이 없다.] 털
갈포[褐]로 전(旃) 전(旃)：기(旗)의 하나. 깃대가 구부러진 기.

을 감아서 양쪽에다 세워 문을 만들며[이미 방원(防院)을 만들었으니 마땅히 울타리를 설치하고 문을 세우는 것이고 이에 모직갈포(毛織褐布)로써 순색(純色) 비단으로 된 전(旃)의
대를 동여매어 문의 양옆을 삼으며 그 문은 대개 남쪽으로 열리고 모두 두 문을 만드니 두 문에 모두 사전(四旃)과 사갈포(四褐布)를 쓰는 것이다.] 털 갖옷[裘]으로 몸뚱이를
감아서 문 안의 양쪽에 세워 문지방[槷]을 만들되[또 갖옷으로써 나무 몽둥이를 동여서 문 안의 문지방을 만드니 문지방은 수레 길의 속이고 양변(兩邊)이 거륜(車輪)을 제약한
것이다.] 그 너비는 수레를 잡고 겨우 들어올 수 있게 하여 조금이라도 침범하게 되면 문에 부딪쳐서 들어올 수 없게 한다.[그 문(門)의 넓고 좁음은 수레의 양쪽의 굴대 머리와
전(旃)의 대의 사이의 상거(相去)가 각각 한 주먹 너비를 넣을 만한데 주먹 너비는 사람의 네 손가락이고 네 치가 되니 이는 문이 굴대보다 넓기를 여덟 치이고 이 문으로 들어감에는
마땅히 달려 들어가고 천천히 하지도 못한다. 싸움을 가르치고 그 능한지 능하지 못한지를 시험하는 까닭에 말을 달리게 하는 것이며, 만일 달려서 그 굴대 머리가 문 옆의 전(旃)의
대에 부딪치면 들어가지 못하니 이는 그 재주가 공교(工巧)하지 못함을 벌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왼쪽의 군대는 왼쪽 문으로 가고 오른쪽 군대는 오른쪽 문으로 간 뒤에 불을 지르고
사격한다.[천자(天子)의 육군(六軍)을 나누어서 좌우(左右)로 삼으니 비록 함께 방(防)의 안에 머물고 있으나 삼군(三軍)으로 하여금 각각 한 쪽 방(方)에 있게 하고 좌우가 서로
응하게 하여 그 왼쪽에 속한 자는 왼쪽 문으로 가고 오른쪽에 속한 자는 오른쪽 문으로 가서 부대(部隊)를 넘어 떠나지 못하는 까닭에 두 문이 있는 것이다. 싸움을 가르침이 이미
끝나면 군사가 화문(和門)으로 나가서 이에 땅을 나누어 진(陳)을 삼고 이미 진을 침에 수레가 달리고 군사가 뛰고 하여 짐승을 몰아서 방(防)에 넣고 그런 뒤에 방의 풀의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을 불을 지르고 활을 쏜다.] 사격을 할 때는 국왕이 활을 쏜 뒤에 제후들이 쏘고 제후들이 쏜 뒤에 대부와 사(士)가 쏜다. 국왕이 쏠 때에는 큰 기[大綏]를 들고
제후들이 쏠 때에는 작은 기를 들며 잡은 짐승을 깃대 밑에 가져다 바친다.[쏜다 함은 화살을 발(發)하여 쏘는 것이다. 수(綏)는 우기(虞旗)이니 천자가 쏘면 먼저 그
대수(大綏)를 들고 제후가 쏘면 그 소수(小綏)를 드는데 반드시 이 수(綏)를 세워 표를 삼는 것은 천자 제후가 짐승을 잡았을 때에 그대로 그 짐승을 그 아래에 드리려는 것이다.
왕제(王制)에는 말하기를 "천자가 잡으면 대수(大綏)를 내리고 제후가 잡으면 소수(小綏)를 내린다"하고 주(注)에는 이르기를 "내린다 함은 끝냄을 이름이니 이는 짐승을 잡는 것이
이미 끝나면 사냥을 멈추고 수(綏)를 내리는 것이다." 하니, 각각 처음과 나중의 한 가지만을 들어 말한 까닭에 말이 이것과 서로 같지 아니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정한 지역 밖으로 진출하지 않으므로 사냥을 할 때에도 설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추격에 급급하지 않는 것은 옛날의 방도이었다"라고 하였다.[전쟁은 기약한 바의 경계(境界)를
넘어 나가지 아니하고 사냥은 풀을 벤 곳의 방(防)을 넘어 나가지 아니하며 달아나는 것을 쫓지 아니한다 함은 경계나 방을 넘어 나간 자를 쫓지 아니함을 이름이니 이가적의
도(道)이다.]

『춘추(春秋)』를 보면 제환공(齊桓公) 4년 봄에 낭(郎) 땅에서 사냥을 하였다 한다.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군사와 제사는 국가의 중대한 사업이므로 사냥으로써 큰 사업을 가르치는 것이다. 즉 백성들을 동원하여 군사 연습을 시키는 일로써 무력을 시위하여 전국을
위압하는 것이며 짐승을 잡아다가 종묘(宗廟)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효성을 보여서 전국 사람으로 하여금 본뜨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2월에는 각종 전투법[振旅]을 가르친 다음에 봄
사냥[蒐]을 하고 5월에는 수풀 지대에서의 야간 전투법[茇舍]을 가르친 다음에 여름 사냥[苗]을 하며 8월에는 각종 신호에 의한 동작법[治兵]을 가르친 다음에 가을 사냥[獮]을
하며 11월에는 총 사열[大閱]을 한 다음에 사냥[狩]을 하였다. 그러나 제때에 시행하지 않으면 농사에 방해를 주고 일정한 장소를 설정하지 않으면 만물에 피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사냥을 하는 지대로서 정(鄭)나라에는 원포(原圃)라는 곳이 있었고 진(秦)나라에는 구원(具園)이란 곳이 있었으니 다 사냥하는 고정 장소였던 것이다. 만일 일정한 장소를
정하지 않고 백성들의 물건에 피해를 끼치고 또 백성들을 곤란하게 한다면 임금의 수레나 말이 오는 소리를 듣거나 아름답게 꾸민 깃발들을 보고도 이마를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서로
저주하게 될 것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춘추』를 보면 노(魯) 소공(昭公) 8년 가을에 홍(紅) 땅에서 봄에 하는 사냥을 하였다.[유질부(劉質夫)는 말하기를 "수(蒐)는 봄의 일이어늘 가을에 일으키니 정당한 것이
아니며 수(蒐)함에는 떳떳한 땅이 있거늘 홍(紅)에서 하니 또한 정당한 것이 아니다"하였다.]

공양자(公羊子)가 말하기를 "홍 땅에서 봄 사냥을 하였다는 것은 수레와 군인들을 검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곡량자(}\梁子)가 말하기를 "사냥으로써 군사 연습을 시키는 것은 의식[禮] 중에서도 중요한 사업이다. 풀을 베어서 사냥할 장소의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범영(范寗)은 말하기를
"난(蘭)은 향초(香草)이고, 방(防)은 사냥의 최대 한계를 만든 것이다"하였다.] 전(旃)에 갈포를 감아서 군문[轅門]을 만들며[전(旃)은 정기(旌旗)의
이름이다.『주례(周禮)』에 '순색(純色) 비단의 전(旃)을 원문(轅門)에 세웠다' 하니 수레를 높이 들어서 그 멍에로써 문(門)을 표시한 것이다.] 몽둥이에 갈포를 감아 문지방으로
하되[몽둥이는 나무 몽둥이이고, 문지방은 문 가운데의 지방이고, 갈(葛)은 갈(褐)이라고도 한다. 문지방은 문궐(門橛)이고, 갈(褐)은 모포(毛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수레의
굴대가 걸려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방(防)으로 들어가는 양쪽을 주먹 너비로 한다 함은 수레의 양쪽 굴대 머리가 각각 문변(門邊)까지의 상거(相去)가 주먹 너비가 비니 주먹 너비는
네 치이며 수레가 걸리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 걸린다 함은 괘(挂)이다.] 수레가 제 궤도에 맞고[몬지가 수레길을 넘어 나가지 아니함이다.] 말이 속도를 알게 하여
달리며[말을 발(發)함이 서로 맞아서 더디고 빠르고 함이 서로 어울림이다.] 잡는 짐승들을 그리로 모은다.[뭇 짐승을 엄습하여 취(取)함이다.] 여기에서는 말은 탄 자가 달리는
법대로 해야만 잡은 짐승을 쏘아 맞힌 것으로 쳐주며[말 달리는 절도를 어기지 않는 것이다.] 소정 장소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짐승을 쫓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이
전쟁에서 적을 추격하는 법이다.[전쟁에서 달아나는 자를 쫓지 아니하는 의(義)이다.] 그리고 잡은 짐승 중에서 대가리가 상한 것을 바치지 않고[항복한 적을 죽이기를 싫어함이다.]
어린 날짐승도 바치지 않으며[어린 것을 학대함을 싫어함이다.] 날짐승이 아무리 많더라도 국왕은 30마리만을 가지고 나머지는 군인들에게 준다. 그것으로 사궁(射宮)에서 활 쏘는
연습을 하는데[30을 취하여 건두빈객(乾豆賓客)의 포(庖)에 지공(支供)하는 것이며 사궁(射宮)은 택궁(澤宮)이다.] 사격하여 명중하였다면 사냥에서 날짐승을 잡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날짐승을 얻을 수 있으며, 사냥에서 날짐승을 잡았다 하더라도 사격하여 명중하지 못하였다면 날짐승을 얻을 수 없다. 이것으로도 옛날에 도덕을 중시하고 용력(勇力)을 천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활쏘기는 다투지 아니함으로써 인(仁)을 삼고 읍양(揖讓)함으로써 의(義)를 삼는다. ○양사훈(楊士勛)은 말하기를 "사냥할 때에 힘씀이 짐승을 잡는
것에만 있고 읍양(揖讓)하여 오르고 내리고 하지 아니하면 이는 용력(勇力)이고 사궁(射宮)의 안에서 읍하고 사양하고 함이 있으면 이는 인의(仁義)임을 말한 것이다.]

당나라 제도에는 11월에 서울 밖에서 군사 훈련을 거행하였다. 훈련을 거행하기 11일 전에 소관 관청에서 임금에게 군사 훈련을 하겠다고 건의하며 병부에서는 조서를 받아
장수(將帥)들에게 명령하여 참가할 군대들을 선발하고 터를 닦아서 훈련장으로 하며 4방 경계에 다섯 개의 표식[表]을 세운다. 또 따로 훈련장의 북쪽에 펀펀한 장소를 만들되 남으로
향하게 하여 임금의 수레가 머물러 참관할 곳으로 한다. 훈련을 시작하기 3일 전에 상사(尙舍)와 봉어(奉御)가 그 평평한 장소에다 임금이 있을 데와 앉을 장소를 설치하며 기(旗)를
세워서 군문으로 하되 방위에 따라 동방에는 푸른 기, 남방에는 붉은 기, 서방에는 흰 기, 북방에는 검은 기로 한다. 또 그 펀펀한 장소 중앙과 네 귀에 5색으로 된 천자의 기를
세우고 기와 북 각종 무기와 위엄 있는 설비들을 갖추어 위세를 올린다. 대체로 대장(大將) 이하의 군관들은 각기 통솔하는 군사가 있는데 대장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군대
동작법[戰隊之法]을 가르친다. 전투 서열을 편성하는 법을 가르칠 때에는 젊은 군인[少者]이 앞에 서고 늙은 군인[長者]이 뒤에 서나 돌아올 때에는 이와 반대로 된다. 또 늙은 자는
활을 가지고 젊은 자는 창을 가지며 힘이 있는 자[力者]는 기를 들고 용력 있는 자[勇者]는 징[鉦], 북, 칼, 방패 등을 가지고 앞에서 가며 18척 되는 창[矟]을 가진 자가
그 다음에 서고 활과 화살을 가진 자가 뒤에 서서 가는데 기를 눕히면 꿇어앉으며 기를 들면 일어나고 북을 치면 전진하고 징을 울리면 정지한다. 훈련 날에는 임금은 수레[革輅]를
타고 펀펀한 장소[墠所]에 이르는데 병부상서(兵部尙書)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임금의 앞을 인도하여 펀펀한 장소의 뒷문으로 들어와서 임금이 있을 장소에 이르면
관리들은 모두 절을 두 번 한다. 알자(謁者) 알자(謁者)：중국 한나라 때에 조회, 외국 사신 관계 및 잔치와 국왕의 명령을 받아서 지방 출장을 담당하고 있던 관직.

는 여러 주(州)에서 온 사신들을 안내하고 홍려(鴻臚)는 타국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하여 임금 있는 곳에 세우며 사방에서 구경하는 자들은 펀펀한 장소 밖에서 한다. 기사사(騎士使)가
펀펀한 장소를 네 번 둘러본 다음에 연습을 시작한다. 큰 나팔[大角]을 세 번 불면 중군장(中軍將)이 각각 비(鞸)로써 북을 치라고 신호하는데 좌우의 군(軍)에서 모두 북을 친다.
북을 세 번 치면 소관 관리가 기를 눕히며 보병은 다 꿇어앉으며 대장은 기와 북의 동쪽에 서서 서쪽을 향하고 여러 군장들은 그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대장의 서사[誓]를
듣는다. 좌우 3군(軍)은 각각 장사(長史) 두 사람씩 나와서 큰 요령[鐸]을 흔들고 다니면서 대중들을 경계하며 여러 과의(果毅)들은 각각 그 서사(誓詞)를 자기의 부대에 알려
준다. 드디어 북을 치면 해당 관리들은 기를 들고 군인들은 모두 일어나며 기병들도 전진하여 표식이 있는 데 이르러 징[鉦]을 치면 기병들은 이어 정지한다. 또 북을 세 번 치면
해당 관리들은 기를 눕히고 군인들은 따 꿇어앉는다. 또 북을 치면 해당 관리들은 기를 들고 군인들은 모두 일어나며 기병들과 보병들은 빠른 걸음으로 표 있는 데까지 가서 정지한다.
동쪽 군대가 북을 한 번 치면서 푸른 기를 들고 직진(直陣)을 치면 서쪽 군대도 북을 치면서 흰 기를 들고 방진(方陣)을 쳐서 대응한다. 다음 남쪽 군대가 북을 치면서 붉은 기를
들고 앞이 예진(銳陣)을 치면 동쪽 군대도 북을 치면서 검은 기를 들고 곡진(曲陣)을 쳐서 대응한다. 다음 동쪽 군대가 북을 치면서 누른 기를 들고 원진을 치면 서쪽 군대도 북을
치면서 푸른 기를 들고 직진(直陣)을 쳐서 대응한다. 다음 서쪽 군대가 북을 치면서 흰 기를 들고 방진(方陣)을 치면 동쪽 군대도 북을 치면서 붉은 기를 들고 예진(銳陣)을 쳐서
대응한다. 다음 동쪽 군대가 북을 치면서 검은 기를 들고 곡진(曲陣)을 치면 서쪽 군대도 북을 치면서 누른 기를 들고 원진을 쳐서 대응한다. 대체로 두 개 군대의 동작에 있어서
기를 먼저 드는 자가 공격[客]하는 것이요, 후에 드는 자는 방어[主]하는 것인데 오행 상승(五行相勝)의 법에 의거하여 전투 서열을 형성하고 대응하기 때문이다. 매번 전투 대오를
변경할 때에는 두 군[二軍]에서 각각 칼ㆍ방패를 가진 군인 50명씩을 선출하여 도전(挑戰)하는데, 첫 번째나 두 번째의 도전은 번갈아 가면서 용감하고 비겁한 시늉을 하며, 세
번째의 도전은 서로 대항력이 균일한 시늉을 내며,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도전은 아주 승패를 결정하는 시늉을 한다. 매번 전투 대오를 변경하려고 할 때에는 먼저 북을 쳐서 직진을
편성한 다음에 나머지 진(陣)을 편성하는 법에 따라 변경하며 다섯 개 진을 편성해 본 뒤에는 양쪽 군대가 모두 직진(直陣)을 편성한다. 또 북을 세 번 치면 소관 관리는 기를
눕히고 군인들은 다 꿇어앉으며 또 북을 치면 기를 세우고 군인들은 다 일어나며 기병과 보병은 다 급히 뛰어가는데 양쪽 군대가 모두 가운데 표(表)에 이르러 서로 공격하는 시늉을
하고 돌아간다. 매번 퇴각할 때에는 일제히 표식이 있는 데 가서 꿇어앉고 일어나는 것은 이전과 같이 하면서 처음 자리에 돌아간다. 그 다음에 시중(侍中)이 임금 앞에 꿇어앉아
기병의 전투 훈련에 대하여 보기를 요청한다. 기병들의 전투 훈련도 보병 훈련과 같이 하나 매 군에서 각기 기병 8명씩 나와 도전을 하고 다섯 개 진이 진치기를 끝내면 크게 북을
치면서 전진하다가 말을 세우고 서로 공격하는 시늉을 하고 완료한다. 드디어 군대를 집합하고 시중이 군사 훈련의 의식이 끝났다고 보고한 뒤에 돌아갔다.

당나라 부병(府兵)들은 전법(戰法)을 매년 12월에 가르쳤다. 절충도위(折衝都尉)가 5교(校)의 군대를 통솔하여 거행하는데 그 군대에다가 좌교위(左校尉)ㆍ우교위를 두며 두 교의
위치를 백 보(步)가량 상거하게 한다. 그리고 한 교는 10개의 보병 부대와 1개의 기병 부대로 편성하며 모두 삭번(矟幡)을 거두고 인기(刃旗)를 펴 가지고 산개하여 서서
나팔수[角手]가 대각(大角) 불기를 기다린다. 한 번 불면 여러 교가 다 보병과 기병을 집합시켜 대오[隊]를 편성하고 두 번 불면 깃대를 눕히고 번(幡)을 풀며 세 번 불면
기(旗)와 창을 든다. 좌교와 우교에서 북을 치면 두 교의 사람들이 모두 함성을 올리며 전진한다. 우교에서 징을 치면서 조금 퇴각하면 좌교가 전진하여 우교가 섰던 장소에 이른다.
좌교에서 징을 치면서 조금 퇴각하면 우교가 드디어 좌교의 섰던 장소에 이른다. 우교에서 다시 징을 치면서 대오에 돌아가면 좌교가 다시 도전을 하다가 다 징을 치면서 각기 대오에
돌아간다. 대각을 한 번 불면 다 번(幡)을 거두고 활에 화살을 끼우고 칼을 잡으며 두 번 불면 기와 창을 들고 대오는 다 전진하며 세 번 불면 좌교와 우교가 다 대오를 인솔하고
돌아간다. 이 날에 이어 사냥을 하는데 잡은 것을 각각 잡은 사람의 소유로 한다.

당나라 제도에 임금의 사냥 의식도 11월에 거행한다. 기일 전에 병부(兵部)에서는 여러 사람을 모아 사냥하는 법을 연습시키며 우부(虞部)에서는 사냥할 장소를 표식하여 놓고 그 뒤에
기를 세운다. 하루 전에 여러 장수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기 밑에 집결하는데 날이 밝은 뒤에는 기를 거두고 늦게 도착한 자를 처벌한다. 병부(兵部)가 사냥을 시작한다는 명령을 내리면
사냥할 장소를 포위한다. 양쪽의 장수들은 다 기를 세우고 있다가 밤이 되어 사냥 장소를 포위하는데 남쪽만을 포위하지 않는다. 임금이 사냥할 장소[田所]에 도착할 때에는 북을
울리면서 오며 포위한 장소 안에 들어가서 풍악을 잡힌다. 북 60개는 임금의 동남쪽에 두어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60개는 임금의 서남쪽에 두어 동쪽으로 향하게 하며 다 말을 타고
각각 통소와 나팔을 가지게 한다. 여러 장수들은 다 북을 치면서 포위한 장소에 가서 짐승 몰이할 기병을 정한다. 임금이 말을 타고 남쪽을 향해 서면 해당 관리가 큰 기[大綏]를
걷어들고 따라가며 여러 공(公)들과 왕 이하의 관리들이 다 말을 타고 활과 화살을 가지고서 임금의 앞뒤에 벌려 서며 사(司)에 속한 관리들도 또 작은 기[小綏]를 걷어들고
따라간다. 이어 짐승을 몰아 임금 앞에 나타나게 하는바 처음 한 번 몰고 지나가면 해당 관리들이 활과 화살을 갖추어 앞으로 가져가며 두 번째 몰고 지나가면 해당 관리가 활과 화살을
임금에게 드리며 세 번 몰고 지나갈 때 임금이 이어 짐승의 왼쪽에서 쏘는데 매번 짐승을 몰 때마다 반드시 세 마리 이상씩 되게 한다. 임금이 쏠 때에는 큰 기를 들며 그 다음에
공과 왕들이 쏠 때에는 작은 기를 든다. 짐승을 몰던 기병들이 정지한 다음에 백성들의 사냥이 시작된다. 대체로 짐승을 쏠 때에 왼쪽에서 쏘아서 화살이 오른쪽 가슴으로 나오는 것을
상(上)으로 잡아 주고 쏘아서 오른쪽 귀로 나온 것을 다음으로 잡아 주며 짐승의 왼쪽 지레[脾]를 쏘아 오른쪽 갈비로 나온 것을 하(下)로 잡아 준다. 그리고 여러 짐승을 쏘면서
쫓아다니지마는 모두 죽이지 않으며 한 번 살에 맞은 것은 다시 쏘지 않으며 짐승의 대가리도 쏘지 않고 또 짐승의 털을 베지 않으며 무릇 표식 밖으로 도망한 것은 좇아가서 잡지
않는다. 사냥이 끝날 때에는 우부(虞部)에서 사냥 장소 안에 기를 세우고 이어 달아 놓은 북과 여러 장수들의 북을 우레처럼 치면 군인들은 북소리에 따라 환성을 지른다. 잡은 짐승과
날짐승들은 기 밑으로 그 왼쪽 귀만을 가져 오게 하며 큰 짐승은 바치고 작은 짐승은 사유로 한다. 그 상(上)으로 잡아 준 것은 종묘(宗廟)의 제수로 쓰고 다음으로 잡아 준 것은
외국 손님 접대에 쓰고 하(下)로 잡아 준 것은 포주(庖廚)에 충당한다. 그리고 해당 관리에게 명령하여 그 짐승들을 갖다가 사방 신에게 제사지내며 또 각 사당과 땅귀신에게까지
제사를 지낸다.[이상은 강무(講武)를 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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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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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武周禮大司馬中春敎振旅司馬以旗致民 平列陣 如戰之陣. 鄭玄曰 "以旗者 立旗期民於其下也. 兵者守國之備 孔子曰'以不敎民戰 是謂棄之.'兵者凶事 不可空設 因蒐狩而習之." 凡師出曰治兵
入曰振旅 皆習戰也. 四時各敎民以其一焉 春習振旅 兵入收衆 專於農. 平猶正也.辨鼓ㆍ鐸ㆍ鐲ㆍ鐃之用 王執路鼓 諸侯執賁鼓 軍將執晉鼓 師帥執提 旅帥執鼙 卒長執鐃 兩司馬執鐸 公司馬執鐲
提謂馬上鼓 有曲木提持. 以敎坐ㆍ作ㆍ進ㆍ退ㆍ疾徐ㆍ疏ㆍ數之節. 習戰法. ○吳澄曰 "凡師出曰治兵 入曰振旅 先王因四時之田以敎民戰 而春日振旅者 取兵入之義 以收其衆而使之就農也. 鐸ㆍ鐲ㆍ鐃
皆似磬而大小異 鐸其至大者. 鐸以通鼓 鐲以節鼓 鐃以止鼓." 遂以蒐田 有司表貉 誓民 鼓遂圍禁 火弊 獻禽以祭社春田爲蒐. 有司大司徒也 掌大田役治徒庶之政令. 表貉立表以貉祭也.
誓民誓以犯田法之罰也. 誓曰 "無干車 無自後 射立▩ 遂圍禁 ▩弊爭禽而不審者罰以假馬禁者虞行守禽之厲禁也." "旣誓 令鼓而圍之 遂蒐田. 火弊火止也. 春田主用火因焚菜除陳草 皆殺而火止.
獻猶致也. 田止虞人植▩ 衆皆獻其所獲禽焉. 春田主祭社者 土方施生也."鄭司農云 "貉讀爲禡 禡師祭也." 中夏敎茇舍 如振旅之陳 羣吏撰 讀曰算. 車徒 讀書契 辨號名之用 帥以門名 縣鄙各以其名
家以號名 鄕以州名 野以邑名 百官各象其事 以辨軍之夜事 其他皆如振旅. 茇舍草止之也 軍有草止之法. 撰車徒謂數擇之也. 讀書契 以簿書校錄軍實也. 號名者徽識所以相別也. ○丘蔡曰 "帥六軍之師也
門所居之門 公邑閒田謂之縣. 少都謂之鄙 大夫謂之家 鄕謂六鄕 野謂六遂. 茇舍之敎 乃寨法專以辨軍之夜事. 蓋休兵偃師之時 宿火而寢 目固無見御枚而處 耳固無聞也. 將以鼓鐸以聲之則所聞必亂.
將以植物而揮之則所見必昧. 於是 專以號名爲尙 而號名又必外假者 所以防姦細及間諜等事." 遂以苗田 如蒐之法 車弊 獻禽以享初. 夏田爲苗 擇取不孕任者 若治苗去不秀實者. 車弊驅獸之車止也.
夏田主用車 示所取物希皆殺而車止. 初宗廟之夏祭也 冬夏田主于祭宗廟者 陰陽始起 象神之在內. 中秋敎治兵 如振旅之陳. 辨旗物之用 王載大常 諸侯載旂 軍吏載旗 師都載旜 鄕遂載物 郊野載旐
百官載旟 各書其事與其號焉 其他皆如振旅. 軍吏 諸軍帥也. 師都遂大夫也. 鄕遂鄕大夫也. 郊謂鄕遂之州長縣正以下. 野謂公邑大夫 百官卿大夫也. 蓋▩旗 有軍旅者畫異物 無者帛而已. 書音畫.
○日月爲常 交龍爲旂 熊虎爲旗 通帛爲旜 雜帛爲物 龜蛇爲旐 鳥隼爲旗. 遂以獮田 如蒐田之法 羅弊 致禽以祀祊. 秋田爲獮獮殺也. 羅獘網止也. 秋田主用網 中殺者多也. 秋田祭四方報成萬物也.
○吳澄曰 "中秋言治兵者. 禮春夏不興師 秋乃出兵之時也." 丘濬曰 "夏秋之敎 皆曰如振旅之陳. 又曰其他皆如振旅 可見四時敎閱之法 皆同 各隨時擧其重者而言 互文以見義也." 中冬敎大閱
大閱兵而習戰. 前期羣吏 戒衆庶修戰法. 羣吏鄕師以下 虞人萊所田之野爲表 百步則一 爲三表 又五十步爲一表. 田之日 司馬建旗于後表之中 羣吏以旗物ㆍ鼓ㆍ鐸ㆍ鐲ㆍ鐃 各率其民而致. 質明弊旗
誅後至者 乃陳車徒如戰之陣 皆坐. 虞人萊所田之野 芟除其草萊 令便馳驅也. 後表之中 五十步表之中央 表所以識正行列也. 四表積三百五十步 左右之廣 當容三軍 其步數則隨軍多少. 弊 仆也.
質明弊旗 期衆之至 須早故 明以仆旗 後至者誅. 皆坐以當聽誓也. 羣吏聽誓于陣前 斬牲 以左右徇陣曰 "不用命者斬之." 陣前南面向表也. 中軍以鼙令鼓 鼓人皆三鼓 司馬振鐸 羣吏作旗
車徒皆作鼓行.鐲 車徒皆行及表乃止 三鼓摝鐸 羣吏弊旗 車徒皆坐. 中軍 中軍之將也. 羣吏旣聽誓 各復其部曲. 中軍之將 令鼓鼓以作其士衆之氣也. 鼓人 師 帥 旅帥也. 司馬 兩司馬也.
振鐸以作衆也. 及表 自後表前至第二表也. 摝鐸掩 鐸之上而振之 所以止行息氣也. 又三鼓 振鐸作旗 車徒皆作鼓進 鳴鐸 車驟徒趨 及表乃止 坐作如初. 及表 自第二表 前至第三表.乃鼓 車馳徒走
及表乃止. 自第三表 前至前表. 鼓戒三闋 車三發 徒三刺. 鼓戒 戒攻敵也. 鼓一闋 車一轉 徒一刺 三而止象服敵. 乃鼓 退鳴鐃且却 及表乃止 坐作如初. 鐃 所以上鼓 軍退 卒長鳴鐃以和衆鼓.
及表 退自前表 至後表而止也. 遂以狩田 以▩爲左右和之門 羣吏各帥其車徒 以叙和出 左右陳車徒 有司平之 旗居卒間 以分地前後 有屯百步 有司巡其前後 險野人爲主 易野車爲主. 冬田爲狩
言狩取之無所擇也. 軍門曰和立兩▩以爲之. 叙和出 用次第出和門也. 左右 或出而左 或出而右. 有司平之 鄕師居門 正其出入之行列也. 旗 軍吏所載 分地調其部曲踈數前後. 有屯百步
車徒異羣相去之數也. 車徒畢出和門 鄕師又巡其行陣. 鄭司農云 "險 野人爲主 人居前. 易 野車爲主 車居前." 旣陳 乃設驅逆之車 有司表貉于陣前. 驅 驅出禽獸使趍田者也. 逆 逆要 不得令走.
設此車者 田僕也. 中軍以鼙令鼓 鼓人皆三鼓 羣司馬振鐸 車徒皆作 遂鼓行徒御枚而進 大獸公之 小禽私之 穫者取左耳. 羣司馬 謂兩司馬也. 軍法 御枚止語 爲相疑惑也. 大獸輸之於公 小禽以自卑也
得禽獸者取左耳 當以計功也.及所弊 鼓皆駴 車徒皆譟. 及所弊 至所止之處. 天子ㆍ諸侯蒐狩 皆有常處 吏士鼓譟 衆攻敵克勝而喜也. 疾雷擊鼓曰駴. 徒乃弊 致禽饁獸于郊 入獻禽以享烝. 徒乃弊
徒止也. 冬田主用衆物 多衆得取也. 致禽饁獸于郊 聚所擭禽 因以祭四方 神於郊入 又以禽 祭宗廟.丘濬曰 "兵者 守國之備 苟非素敎 一旦驅之以臨敵 是棄之而已. 然兵凶戰危 以殺戮爲事
不可以人試. 於是 因蒐狩而習之 因祭以行獵 用獸以試術. 使其目熟於▩旗 耳熟於號令 或坐以待 或作以起 進而之前 退而之後 疾而趍走 徐而緩行 分疏而散開 急數而屢進 皆於是時. 聞鼓而興
聽金而止 一朝用其所以田獵者而施之行陣 用其所以殺獸者而施之敵人 不至倉皇失措 紛亂無統也." 又曰 "周禮 四時皆敎閱 而名各不同. 春曰振旅 振之爲言收也 以冬方大閱. 春則農務方殷故收其衆也
夏氣炎燠 萬物告成故以茇止爲名 而敎之以夜戰之事. 秋氣肅殺故以治兵爲敎 而敎之以晝戰之法 冬則農事已隙 通以三時之敎 而幷擧焉 故謂之大閱也. 國家大事在戎 而國之安危 民之生死所係. 當昇平之時
而習戰陣之法 異時有事 驅之以臨戰陣 冒鋒鏑 將可以全勝 卒可以全生 而國亦由之以全安焉. 然 所以敎之者 欲其有所辨也. 辨之於豫則兵知將意欲 有所謀爲 不待言語告詔 曉然自諭於耳目之間.
耳目有所見聞 則心運於中而手足應於外. 凡士卒坐ㆍ作ㆍ進ㆍ退ㆍ遲ㆍ速ㆍ開ㆍ合之數 皆將意之所欲爲者也 如此 是惟不戰 戰無不勝矣. 周禮 振旅所辨者 在鼓ㆍ鐸ㆍ鐲ㆍ鐃 茇舍所辨者在號名
治兵所辨者在旗物 至於大閱則兼辨 夫是三者焉. 三者行師ㆍ布陣 缺一不可 三時則各專習其一 冬閱則兼用其三. 專之欲其精熟 合之欲其貫通 是知先王敎戰之法雖多端而其要不外乎辨而已矣. 夫戰非一人可爲
亦非一日可了 人多則難齊 必欲齊之. 不能人人以戒之 不可事事以敎之 故有金鼓之聲. 聲有不同則事亦隨異 有旗物之節 節有異形則事亦隨別. 苟非早有以辨之 乃至臨期而示之 必不能盡記也. 日多則難防
必欲防之 晝有晝之事 夜有夜之事. 晝則爲旗物之號 使之視龍ㆍ虎ㆍ鳥ㆍ龜之像而知所向 夜則爲名號之別 使之聞門名ㆍ縣鄙之名而契於心. 苟非早有以辨之 乃至臨期而示之 必不能遽曉也. 夫三時各辨一物
則習之熟而諭之深矣. 苟非合三者而幷閱焉 又安能通融而盡其用哉? 此歲終所以必有大閱之敎也. 惟今朝廷敎戰之法 月凡三次操練 非嚴寒盛暑不息 比周人之敎閱尤爲數矣. 然所以立爲之法者
未必詳盡而所以奉行之者 多不盡心也."○詩序曰 "車攻宣王復古也. 宣王能內修政事 外攘夷狄 復文武之竟土. 修車馬 備器械 復會諸侯於東都 因田獵而選車徒焉." 又曰 "吉日美宣王田也."朱子曰
"宣王之田 因此見車馬之盛 紀律之嚴 所以爲中興之勢者 在此 其所謂田者 異乎尋常之田矣."呂氏 東萊 曰"車攻ㆍ吉日 所以爲復古者何也? 蓋蒐狩之禮 可以見王賦之復焉 可以見軍實之盛焉
可以見師律之嚴焉 可以見上下之情焉 可以見綜理之周焉 欲明文武之功業者 此亦是以觀矣."車攻疏曰 "田者 大芟草以爲防 言田獵者 必大芟殺野草以爲防限 作田獵之場 擬殺圍之處. 或舍其中 或 復.
止舍其中 謂未田之前 誓士戒衆 故發示戰法 當在其間止舍也. 其防之廣狹 無文. 褐纏旃以爲門 旣爲防院當設周衛而立門焉. 乃以織毛褐布 纏通帛旃之竿 以爲門之兩傍. 其門蓋南開 幷爲二門
用四旃四褐也. 裘纏質以爲執 執魚列反. ○又以裘 纏椹質以爲門中之闑 闑車軌之裡兩邊 約車輪者. 間容握驅而入擊則不得入. 其門之廣狹 兩軸頭去旃竿之間 各容一握 握人四指爲四寸 是門廣於軸八寸也.
入此門 當馳走而入 不得徐也. 以敎戰 試其能否 故令驅馬. 若驅之 其軸頭擊著門傍旃竿則不得入也. 所以罪不工也. 左者之左 右者之右 然後焚而射焉. 以天子六軍 分爲左右 雖同舍防內
令三軍各在一方 取左右相應. 其屬左者之左門 屬右者之右門 不得越離部伍 以此故有二門也. 敎戰旣畢 士卒出和 乃分地爲屯. 旣陣 車驅卒奔 驅禽內之於防然後 焚燒此防草 在其中而射之.
天子發然後諸侯發 諸侯發然後 大夫士發. 天子發 抗大綏 諸侯發 抗小綏 獻禽於其下. 發謂發矢射之也. 綏虞旗也. 天子發則先抗擧其大綏 諸侯發則擧其小綏 必擧此綏爲表者 天子諸侯殺時
因獻其禽於其下也. 王制曰 "天子殺則下大綏 諸侯殺則下小綏." 注云 "下謂弊之 是殺禽已訖 田止而弊綏也 各擧始終之一故 與比不同也. 故戰不出頃 田不出防 不逐奔走 古之道也. 戰不出所期之頃
田不出所芟之防 不逐奔走 謂出於頃防者 不逐之 古之道也.○春秋桓公四年春正月 狩于郎.胡氏曰 "戎祀國之大事 狩所以講大事也. 用民以訓軍旅 所以示之武而威天下 取物以祭宗廟 所以示之孝而順天下.
故中春敎振旅遂以蒐 中夏敎茇舍 遂以苗. 中秋敎治兵 遂以獮. 中冬敎大閱 遂以狩 然不時則傷農 不地則害物. 田狩之地 如鄭有原圃 秦有具囿 皆常所也. 違其常所 犯害民物而百姓苦之 則將聞車馬之音
見羽旄之美 擧疾首蹙頞而相告 不可謹乎?"昭公八年秋 蒐于紅. 劉質夫曰 "蒐 春事也 秋興之非正也. 蒐有常地矣 于紅亦非正也."公羊子曰 "蒐于紅簡車徒也"穀梁子曰 "因蒐狩以習用武事 禮之大者也
芟蘭以爲防 范寗曰蘭香草也. 防爲田之大限. 置旃以爲轅門 旃 ▩旗之名 周禮通帛旃轅門 印車以其轅表門. 以葛覆質以爲槷 質 椹也. 槷 門中臬. 葛或爲褐. ○槷 魚列反 門橛也. 褐戶葛反
毛布也. 流房握御轚者 不得入流旁握 謂車兩轊頭 各去門邊空握 握四寸也 轚挂則不得入門. ○轚古帝反 挂也. 車軌塵 塵不出轍. 馬候蹄 發足相應 遲疾相投. 揜禽旅.揜取衆禽 御者不失其馳然後
射者能中. 不失馳騁之節. 過防 不逐不從 奔之道也. 戰不逐奔之義. 面傷不獻 嫌誅降. 不成禽不獻惡虐幼少. 禽雖多 天子取三十焉 其餘與士衆 以習射於射宮. 取三十以共乾豆賓客之庖. 射宮
澤宮. 射而中 田不得禽則得禽. 田得禽而射不中 則不得禽 是以知古之貴仁義而賤勇力也. 射以不爭爲仁 揖讓爲義. ○楊士勛曰'謂田獵之時 務在得禽 不升降 是勇力也 射宮之內 有揖讓
是仁義也.'"○唐制 仲冬之月 講武於都外. 前期十有一日 所司奏請講武 兵部承詔 遂命將帥簡軍士 除地爲場 四出立五表 又別墠地於北廂南向 爲車駕停觀之處. 前三日 尙舍奉御 設大次及御坐於墠所
建旗爲和門. 如方色 都墠之中及四角 皆建以五綵牙旗ㆍ旗鼓ㆍ甲仗ㆍ威儀悉備. 大將以下各有統帥 大將被甲乘馬 敎戰隊之法. 凡敎爲陣 少者枉前 長者在後 其還則反之. 長者持弓矢 短者持戈矛
力者持▩旗 勇者持鉦ㆍ鼓ㆍ刀ㆍ楯 在前行 持矟者次之 弓箭爲後行 旗臥卽跪 旗擧卽起 聲鼓卽進 鳴金卽上. 講武之日 皇帝乘革輅至墠所 兵部尙書介胄乘馬 奉引入自都墠北和門 至大次 在位者皆再拜.
謁者引諸州使人 鴻臚引蕃客立於大次 四方觀者立於都墠. 騎士使外四周然後講武. 吹大角三通 中軍將各以鞸令鼓 二軍俱擊鼓. 三鼓 有司偃旗 步士皆跪. 大將立於旗鼓之東西面 諸軍將立於其南
北面以聽大將誓. 左右三軍各長史二人 振鐸分循以警衆 諸果毅各以誓詞 告其所部. 遂聲鼓有司擧旗 士衆皆起 騎從皆行及表 擊鉦騎從乃止. 又擊三鼓 有司 偃旗 士衆皆跪. 又擊鼓 有司擧旗 士衆皆起
騎驟徒趍及表乃止. 東軍一鼓 擧靑旗爲直陣 西軍亦鼓 擧白旗爲方陣以應之. 次西軍鼓而擧赤旗 爲銳陣 東軍亦鼓而擧黑旗 爲曲陣以應之. 次東軍鼓而擧黃旗 爲圜陣 西軍亦鼓而擧靑旗 爲直陣以應之.
次西軍鼓而擧白旗 爲方陣 東軍亦鼓而擧赤旗 爲銳陣以應之. 次東軍鼓而擧黑旗 爲曲陣西軍亦鼓而擧黃旗 爲圜陣以應之. 凡軍先擧者爲客 後擧者爲主 從五行相勝之法 爲陣以應之. 每變陣
二軍各選刀楯士五十人挑戰 第一ㆍ第二挑戰 迭爲勇怯之狀 第三挑戰 爲敵均之勢 第四ㆍ第五挑戰 爲勝敗之形. 每將變陣 先鼓而爲 直陣然後 變從餘陣之法 五陣畢 兩軍俱爲直陣. 又擊三鼓 有司偃旗
士衆皆跪. 又聲鼓擧旗 士衆皆起 騎馳徒走 左右軍俱至中表 相擬擊而還. 每退至一行表 跪起如前 遂復其初. 侍中跪奏請觀騎軍 騎軍皆如步軍之法 每軍各八騎挑戰 五陣畢. 大擊鼓而前 盤馬相擬擊而罷
遂振旅 侍中奏禮畢乃還.唐府兵敎戰之法 每歲季冬 折衝都尉率五校兵馬之在府者 置左右 二校尉 位相距百步. 每校爲步隊十騎隊一 皆卷矟幡 展刃旗 散立以俟角手吹大角. 一通 諸校皆斂人騎爲隊 二通
偃旗矟解幡 三通 旗矟擧. 左右校 擧繫 二校之人 合譟而進. 右校擊鉦隊少却 左校進 遂至右校立所. 左校擊鉦少却 右校遂至左校立所. 右校復擊鉦隊還 左校復薄戰皆擊鉦 隊各還. 大角復鳴一通
皆卷幡 攝矢弛弓甲刃. 二通 旗矟擧 隊皆進. 三通 左右校皆引還. 是日也 因縱獵獲 各入其人. 唐制 皇帝狩田之禮 亦以仲冬. 前期 兵部集衆庶 修田法 虞部表 所田之野 建旗於其後. 前一日
諸將帥士 集於旗下. 質明弊旗 後至者罰. 兵部申田令 遂圍田. 其兩翼之將 皆建旗及夜布圍 闕其南面. 駕至田所 皇帝鼓行入圍繫吹 令以鼓六十 陳於皇帝東南西向 六十陳於西南東向 皆乘馬 各備簫角.
諸將皆鼓行圍 乃設驅逆之騎. 皇帝乘馬南向 有司斂大綏以從. 諸公王以下 皆乘馬帶弓矢 陳於前後. 所司之屬 又斂小綏以從. 乃驅獸出前 初一驅過 有司整飭弓矢以前 再驅過 有司奉進弓矢 三驅過
皇帝乃從禽左而射之 每驅必三獸以上. 皇帝發 抗大綏然後 公王發 抗小綏 驅逆之騎止然後 百姓獵. 凡射獸自左而射之 達於右胸爲上 射達右耳本爲次 射左脾達於右顝爲下. 射羣獸相從 不盡殺
已被射者不重射 不射其面 不剪其毛 凡出表者 不逐之田. 將畢ㆍ虞部 建旗於田內 乃雷擊駕繫及諸將之繫 士從譟呼. 諸得禽獸 旗下致其左耳 大獸公之 小獸私之. 其上者 供宗廟 次者供賓客
下者充庖廚. 乃命有司 饁獸於四郊 以獸告至於廟社. 已上論講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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