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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 목장[牧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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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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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목장[牧馬]

『주례』를 보면 교인(校人) 교인(敎人)：말을 맡은 관리의 우두머리.

이 왕의 말을 기르는 직무를 주관하여 여섯 종류의 말들을 구분하는바 종마(種馬)가 한 종, 융마(戎馬)가 한 색[物], 제마(齊馬)가 한 색, 도마(道馬)가 한 색, 전마(田馬)
한 색, 노마(駑馬)가 한 색이다.[정현(鄭玄)은 이르기를 "종(種)이라 함은 최상으로 좋고 어미를 닮은 것을 말하고 차례로써 차등을 둔다. 옥로(玉路)는 종마(種馬)를 메우고
융로(戎路)는 융마(戎馬)를 메우고 금로(金路)는 제마(齊馬)를 메우고 상로(象路)는 도마(道馬)를 메우고 전로(田路)는 전마(田馬)를 메우고 노마(駑馬)는 궁중(宮中)의
역사(役事)에 쓴다"고 하였다. ○일설에 이르기를 "6마(馬)를 모두 목(牧)이라 이르니 말의 털ㆍ발ㆍ힘이 이른바 물(物)이다. 그 물(物)을 가리어 모두 유(類)로써 서로
구별하게 하는 것이니, 종자(種子)로 기를 만한 것이 한 유(類)가 되고, 싸움에 쓸 만한 것이 한 유가 되고, 털과 발이 정제(整齊)하여 한결같은 것이 한 유가 되고,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 한 유가 되고, 사냥에 쓸 수 있는 것이 한 유가 되고, 재력(材力)이 낮아서 잡역에 쓰는 것이 한 유가 된다"고 하였다.]

대체로 양마(良馬)를 내주어 길러서 타는데 말 4마리에 사(師) 1명을 두고 4개 마굿간[圉]에서 기르며, 12필의 말을 조(皁)라고 하는데 조에는 1명의 취마(趣馬)를 두며,
3개 조의 말을 계(繫)라고 하는데 계에는 1명의 어부(馭夫)를 두고, 6개 계의 말을 구(廐)라고 하는데 구에는 1명의 복부(僕夫)를 두며,[4필이 승(乘)이 되고, 말을 기르는
것을 어(圉)라고 한다. 비(卑)는 말이 12필이고 계(繫)는 26필이고 구(廐)는 216필이며 사(師)ㆍ취마(趣馬)ㆍ어부(馭夫)ㆍ복부(僕夫)는 모두 장수의 이름이다.] 6개 구가
교(校)로 되는데 교에는 좌교, 우교를 두었다.[6마(馬)가 각각 1구(廐)가 되어 함께 1교(校)를 이루니 말이 1천 216필이고 1교(校)를 좌우로 나눈다.] 노마(駑馬)는
양마(良馬) 수보다 3배를 더 많이 기른다.[6마(馬)에서 그 다섯 가지가 모두 양마(良馬)이고 노마(駑馬) 한 가지가 홀로 양마(良馬) 수의 세 곱절이 된다.] 두 마리의 말을
한 마구에 기르는데 1명의 사(師)를 두고 사 8명에 취마(趣馬) 1명을 두며 취마 8명에 어부(馭夫) 1명을 두었다.[여(麗)는 우(偶)이고 노마(駑馬)는 어(圉)로부터
마부(馬夫)에 이르기까지 말이 1천 24필이니 양마(良馬)를 세 곱절한 수와 서로 맞지 아니하니 팔자(八字)는 의심컨대 육자(六字)의 잘못인 듯하다. 복부(僕夫)가 없는 것은
오로(五路)에 메우지 아니함이니 낮게 여김이다.] 천자는 12개 마구[閑]에 6종의 말을 두고 제후는 6개 마구에 4종의 말을 두며 대부는 4개의 마구에 2종의 말을 두었다.[이는
차례로 내려 줄이는 차등이며 매 구(廐)가 1한(閑)이 되는데 제후는 제마(齊馬)ㆍ도마(道馬)ㆍ전마(田馬)가 있고 대부는 전마가 있어 각각 1한(閑)이고 그 노마(駑馬)는 모두
나누어 셋을 만든다.]

무릇 말은 수컷을 암컷의 4분의 1로 하며[4분의 1이라 함은 암말이 셋이고 수말이 하나라 함이다.] 봄에는 말을 맡았다는 방성(房星)이란 별에 제사지내고 새끼 말을 떼어
먹이며[마사(馬社)는 천사(天嗣)이니 방성(房星)을 천사(天嗣)라 한다. 망아지를 붙들어 매는 것은 구속하여 어미 말에게 가까이하지 못하게 함이니 봄에 통음(通淫)할 때에 망아지는
약하여 혈기(血氣)가 정(定)하지 못하니 그 거승(車乘)에 쓰는 말로서 상해(傷害)될까 함이다.] 여름에는 말을 처음 길렀다는 신에게 제사지내고 타지 못할 말은
절랑하며[선목(先牧)은 처음으로 말을 기른 자이니 그 사람은 알지 못한다. 여름에 통음한 뒤에 그 수말을 압제하는 것은 그것이 차고 물고하여 타고 부리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사농(鄭司農)은 말하기를 "수말을 압제한다 함은 불을 침을 이름이다" 하였다.] 가을에는 말을 제일 먼저 탔다는 신에게 제사지내고 좋은 말을 골라 길들이며[마사(馬社)는 처음으로
말을 탄 자이니 세본(世本)에 이르기를 "상토(相土)가 비로소 말을 탔다"고 한다. 복(僕)을 선(善)하게 한다 함은 말몰이꾼을 추리고 연습을 시켜서 모두 잘하게 하는 것이다.]
겨울에는 말에 재난을 주는 신에게 제사지내고 말을 바치며 어부(馭夫)들은 연습시킨다.[마보(馬步)는 신(神)이 말에게 재앙을 주는 자이고, 말을 드린다 함은 성마(成馬)를
왕(王)에게 보임이고, 어부(馭夫)는 이거(貳車)ㆍ종거(從車)ㆍ사거(使車)를 모는 자이고, 강(講)이라 함은 추려서 연습시키는 것이다.] 무릇 군사에는 말의 역량을 타산하여 내어
준다.[말을 분류(分類)한다 함은 그 힘을 가지런하게 함이다.]

취마(趣馬)는 교인(校人)을 보좌하여 양마를 주관하는데 그 사료를 절도 있게 먹이며 그 말들을 6등급으로 선발한다.[찬(贊)은 돕는 것이니 교인(校人)과 복(僕)을 선(善)하게
하는 것과 어부(馭父)에게 강(講)하는 따위의 일을 돕는 것을 이름이고, 분별한다 함은 차등을 두는 것이니 왕(王)의 말을 차등을 두어 가려서 6등(等)을 삼는 것이다.] 또 말을
사용하되 순서를 두고 노력을 균일하게 부리며 네 절기에 따라 번식시키고 먹이고 길들이는 일과 거처 관리에 관한 행사들을 어부에게 주어 시행케 한다.[메워서 행하고 놓아서 머무는
데에 수고롭고 편안하고 한 절도가 있으므로 그것을 나누어서 고르게 하는 것이다. 거(居)는 목아(牧庌) 가처한 곳의 마땅함을 말하고, 치(治)는 망아지를 붙들어 매고 수말을 불
치는 등속을 말한다.

○ 선유(先儒)가 이르기를"사시(四時)의 거(居)한 곳을 변별한다 함은 2월 후에 왕성한 양기(陽氣)가 밖으로 나오면 목지(牧地)에는 아(庌)가 있고 8월 후에 양기가 땅속에
있으면 마구에는 한(閑)이 있음을 말한다"하였다.]

무마(巫馬)는 말의 병 치료를 맡았는데 말을 타 보고 의원을 협조하여 약으로 말의 병을 치료하고 그 비용을 교인에게서 받으며[타 보고 다스린다 함은 말을 달려서 그 병을
발(發)하게 하여 병든 곳을 알아서 그것을 다스림에 서로 돕는 것이다. 무마(巫馬)는 마조(馬祖)ㆍ선목(先牧)ㆍ마사(馬社)ㆍ마보(馬步)의 신(神)을 아는 자이고 또 의원(醫員) 네
사람이 있어 직무를 한가지로 하게 하므로 돕는다고 한다. 비용을 받는다 함은 의원이 말병을 치료한 비용을 충당받는 것이다.] 말이 죽으면 그것을 팔게 하여 그 값을 교인에게
바친다.[포(布)는 돈이고 가(賈)는 그 속관(屬官) 소리(小吏)를 이름이니, 가(賈) 두 사람은 사고팔고 함을 맡은 자이다.]

목사(牧師)는 방목지를 맡았는데 다 지켜야 할 규정을 제정하여 반포한다.[나눈다 함은 말을 기르는 자에게 목지(牧地)를 나눠 줌이다.] 정월에 목장에 불을 놓으며[목지를 불살라
묵은 것을 없애고 새풀이 나게 한다.] 2월에 교미를 시키며[중춘(中春)은 음양(陰陽)이 사귀고 만물이 생하는 때이니, 말의 암컷 수컷을 교합(交合)시키기에 적합한 것이다.] 기타
모든 사업과 규정들을 주관한다. 그리고 사냥이 있을 때에는 해당 지역의 풀에 불 지르는 일을 돕는다.

어사(圉師)는 어인(圉人)에게 말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는데, 봄에는 오양깃을 쳐내고 마구에 짐승 피를 뿌리며 여름에는 서늘한 집에 말을 매어 두며 겨울에는 말을 바친다고
하였다.[말을 기르는 것은 반드시 사시(四時)에 순응하는데 겨울에는 추워서 풀을 까는 까닭에 봄에 더우면 그것을 제거하여 버리고 또 마구에 똥과 더러운 것이 쌓여서 말의 병을 불러
올까 두려우므로 짐승을 잡아서 피를 거기에 바르고 거(居)하며 워랑은 말에게 해를 가리어 서늘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경』 ｢용풍(鄘風) 정지방중(定之方中)｣ 편은 소서(小序)에 이르기를 "이 시는 위문공(衛文公)을 찬미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그 마지막 장에 이르기를 "좋은 비가 이미
내렸으니 저 관인(倌人)에게 명령하여 이른 새벽에 말을 준비시켜 상전(桑田)에 가서 농사일을 지도하였다. 문공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실하고 심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큰 암말이 3천
마리였다" 하였다.[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영(靈)은 선(善)함이고, 영(零)은 떨어짐[落]이고, 관인(倌人)은 말을 메는 일을 맡은 자이고, 성(星)은 별을 이고, 설(說)은
머물러 그치는 것[舍止]이고, 병(秉)은 잡는 것[操]이고, 색(塞)은 실(實)함이고, 연(淵)은 깊다는 뜻이다" 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말이 7척 이상이면 큰 말[騋]이다. 봄에 알맞은 비가 내렸으니 농사일이 한창 시작되었다. 문공이 이때에 말 관리하는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른 새벽에 수레를
메우게 하고 빨리 가서 농민들을 위로하고 장려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문공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실하고 심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르는 말들은 7척이나 되었는데 암말도
이미 3천 마리에 달하는 많은 수가 있었다. 대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실하며 심중하게 하면 무엇이나 하려고 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일이 없는 것이니, 그 부유하고
번성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기(記)에 이르기를 '나라 임금이 얼마나 부유한가를 물을 때에는 말 숫자로 대답한다'하였다. 이 시에서 큰 암말이 이와 같이 많다고
하였으니 그 말들이 얼마나 많이 증식했는가를 알 수 있으며 또 위(衛)나라가 얼마나 부유했는가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소동파(蘇東坡)가 말하기를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사업은 반드시 심중한 자만이 할 수 있고 경솔하고 천박한 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사방득(謝枋得)도 말하기를 "마음을 성실하게 가졌기 때문에 매사에 진실하며 거의 공담을 하지 않으며 마음을 심중하게 가졌기 때문에 매사에 깊고도 원대하여 옅고 비근한 계획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사업을 어찌 공허한 것만을 말하며 천박한 사업만 하려는 자들이 능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말들은 진실로 옳은
것이다.

진(秦)나라의 선조에 비자(非子)라는 사람이 대구(大丘)에서 살았는데 그는 말과 모든 짐승 기르기를 좋아하고 또 짐승을 잘 번식시켰다. 대구 사람이 주나라 효왕(孝王)에게
말하였더니 효왕이 비자를 불러서 견수[汧]와 위수[渭]의 사이에서 말을 관리하게 하였는데 말을 많이 번식시켰다. 이때에 효왕(孝王)이 말하기를 "옛날 백예(栢翳)란 사람이 순
임금을 위하여 말을 주관하였는데 많이 번식시켰기 때문에 순 임금이 그에게 봉지를 주고 성을 영(嬴)씨로 하게 하였다. 오늘 그 후손들도 나를 위하여 말을 번식시켰으니 나도 그 땅을
나누어 부용읍(附庸邑) 부용읍(附庸邑)：주(周)나라 때에 직접 왕에게 조공하지 못하고 큰 제후에게 붙여서 조공하던 작은 영주.

으로 삼으니 진(秦)나라에 가서 영씨 제사를 다시 계속 받들라!"고 하였다.

위(魏)나라 무후(武侯)가 오기(吳起) 오기(吳起)：중국 춘추시대 위(魏)나라의 명장.

에게 묻기를 "무릇 군용 말을 기르는 데 무슨 방법이 있는가?"라고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대체로 말은 반드시 그 거처를 편안하게 하고 물이나 풀을 맞추어 주며 주리거나 배부르지
않도록 조절하며 겨울에는 따뜻한 마구에 매며 여름에는 서늘한 집에다 매어야 하는 것입니다. 털이나 갈기를 깎아 줄 때에도 사방에 떨어지게 하여 그 눈과 귀를 찔러서 놀라게 하지
말며 뛰는 법을 연습시킬 때에도 그 뛰고 서는 동작이 능숙하여 사람과 말이 서로 친숙하게 된 뒤에야 타거나 수레를 메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의 안장이나 굴레 또 고삐를 장만하는
것도 반드시 완전하고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무릇 말은 말기에 병드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 병드는 것이며 주린데서 병이 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먹은 데서 병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고 길은 멀면 반드시 자주 올랐다 내렸다 하여 사람에게는 좀 수고롭다 하더라도 말을 피곤하게 하지 않도록 삼가 하여 항상 일정한 여유를 가지게 하여야만 적의 침입을
방비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천하를 제 마음대로 횡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초기에 돌궐(突厥)의 말 2천 필을 얻고 또 수(隋)나라의 3천 필을 적안택(赤岸澤)에서 얻어 농우(隴右) 지방에 옮겼다. 그 관령(官領)은 태복(太僕)에게 맡기고 그
관속으로 목감(牧監), 부감(副監)을 두었다. 감(監)에는 승(丞), 주부(主簿), 목위(牧尉), 배마(排馬), 목장(牧長), 군두(羣頭)가 있었는데 다 정(正)과 부(副)를
두었다. 또 무릇 군(羣)에는 장(長) 1명을 두고 장 15명에 위(尉) 1명을 두었는데 해마다 성적을 고사하여 배마로 승급시켰다.

구양수(歐陽脩)가 말하기를 "목장에다 관직을 두는 제도[監牧之制]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는데 대개 근세에 와서 적용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승(尙乘)이 임금의 말을 관리하였는바 말 기르는 장소를 좌ㆍ우에 여섯씩 두었다. 1은 비황(飛黃), 2는 길량(吉良), 3은 용매(龍媒), 4는 도도(騊駼), 5는 결제(駃騠),
6은 천원(天苑)이니 총 12곳이었다. 한 장소에 마구간[廐] 둘씩을 두는데 1은 상린(祥麟), 2는 봉원(鳳苑)이라 하며 말을 둘려 매고 먹이었다.

당나라 초기에 태복 소경(少卿) 장만세(張萬歲)를 시켜 여러 목장들을 지도하였는데 정관(貞觀) 때로부터 인덕(麟德)에 이르는 40년간에 말이 70만 6천 필이었다. 8개의
방(坊)을 기(岐), 유(幽), 경(涇), 영(寧) 등지에다 설치하였는데 땅 넓이가 천 리였다. 즉 1은 보락(保樂), 2는 감로(甘露), 3은 남보윤(南普閏), 4는
북보윤(北普閏), 5는 기양(岐陽), 6은 태평(太平), 7은 의록(宜祿), 8은 안정(安定)이었다. 또 8개 방에 속한 토지는 1천 230경(頃)인데 백성들을 모집하여
경작시킴으로써 사료를 공급하였다. 8개 방의 말을 48개 감(監)으로 나누어 길렀으나 말은 많고 지대는 협소하여 다 소용할 수 없기 때문에 또 8개 감을 떼어다 풍유하고 광활한
하서(河西) 지방에 분포시켰다. 대체로 말 5천 필 있는 데를 상감(上監)이라 하고 3천 필이 있는 데를 중감(中監)이라 하며 기타를 하감이라 하였는데 감에는 다 좌(左)감ㆍ우감을
두고 그 지방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그 당시에는 전국에서 비단[縑] 1필로 말 한 필을 바꾸었다. 장만세가 말을 오랫동안 관리하였는데 은혜와 신망이 그때 농우(隴右) 지방에서
자자하였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초에 국가 말이 더욱 감소되고 있기 때문에 현종이 왕모중(王毛仲)에게 서울과 지방의 마구들을 맡아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말이 점차 초기 숫자인
24만 필로 회복하게 되었고 개원 13년에 이르러 43만 필에 달하였다. 그 후 돌궐(突厥)족이 국경을 침입하였을 때에 현종은 후하게 포섭하고 매년 북방에 있는 군대로 하여금
항복한 돌궐족과 서로 통상할 것을 허락하고 금과 비단으로 말을 사서 하동(河東)과 삭방(朔方)에 좌목ㆍ우목(左右牧)을 설치하고 사육한 결과 말이 혼합종으로 되어 힘이 더 강해졌다.
천보(天寶) 이후로는 모든 군(軍)의 군용 말은 거의 만여 필씩 되었는데 논의하는 자들은 진(秦)나라, 한나라 이래로 당나라 말이 가장 번성하였다고 하였다.

송나라의 말에 관한 사업[馬政]은 태조(太祖) 초에 좌비룡원(左飛龍院) 우비룡원을 설치하고 사(使)라는 관리 2명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는데 그 뒤에 고쳐서 기기원(騏驥院)이라 하고
천사감(天駟監)의 통제 하에 두었다. 진종(眞宗) 경덕(景德) 2년에 여러 주(州)에 있는 목장 용방(龍坊)들을 고쳐서 다 감(監)이라고 하였다. 지방에는 14개의 감이 있었는데
각 주에 목감(牧監)을 두고 지주(知州)나 통판(通判)이 겸임하였다.[이상은 목마(牧馬)를 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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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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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馬周禮校人 馬官之長. 掌王馬之政 辨六馬之屬 種馬一物 戎馬一物 齊馬一物 道馬一物 田馬一物 駑馬一物. 鄭玄云"種 謂上善似毋者 以次差之 皁路駕種馬 戎路駕戎馬 金路駕齊馬 象路駕道馬
田路駕田馬 駑馬給宮中之役." ○一說謂"六馬皆謂之物 馬之毛足力. 所謂物之辨其物 使皆以類而相從. 可爲育種者爲一類 可供戎事者爲一類 毛足齊一者爲一類 善於馳走者爲一類 可供田獵者爲一類
材下而供雜役者爲一類." 凡頒良馬而養乘之 乘馬一師四圉 三乘爲皁 皁一趣馬. 三皁爲繫 繫一馭夫 六繫爲廐 廐一僕夫 四匹爲乘 養馬曰圉. 皁馬十二匹 繫三十六匹 廐三百十六匹.
師ㆍ趣馬ㆍ馭夫僕夫皆帥名. 六廐成校 校有左右. 六馬各一廐 共成一校馬一千二百九十六匹一校分左右. 駑馬三良馬之數. 六馬其五皆良馬 駑馬一物 獨三倍良馬之數也. 麗馬一圉 八麗一師 八師一趣馬
八趣馬一馭夫. 麗偶也. 駑馬自圉至馭夫 凡馬千二十四匹 與三良馬之數不相應. 八字疑爲六字之誤. 無僕夫者 不駕於五路 卑之也. 天子十有二閑馬六種 邦國六閑馬四種 家四閑馬二種 此降殺之差也
每廐爲一閑. 諸侯有齊馬ㆍ道馬ㆍ田馬 大夫有田馬各一閑. 其駑馬則皆分爲三焉. 凡馬特居四之一. 特牡馬 四之一者 三牝一牡也.春祭馬祖 執駒 馬祖天駟也 房星爲天駟. 執駒 拘之無令近母.
春通淫之時 駒弱血氣未定 爲其乘匹 傷之. 夏祭先牧 頒馬攻特 先牧 始養馬者 其人未聞. 夏通淫之後 攻其特 爲其蹄齧不可乘用. 鄭司農云"攻特 謂騬之." ○騬趵書犗也 俗謂之騸. 秋祭馬社 臧僕
馬社 始乘馬者 世本曰相土始乘馬. 臧僕 謂簡練馭者 令皆善也. 冬祭馬步 獻馬講馭夫. 馬步 神爲災害馬者. 獻馬 見成馬於王也. 馭夫 馭貳車從車使車者. 講猶簡習. 凡軍事 物馬而頒之. 物馬
齊其力.趣馬掌贊正良馬而齊其飮食 簡其六節.贊佐也 謂佐校人藏僕 講馭夫等事也. 簡差也 差擇王馬 以爲六等. 掌駕說 音稅. 之 頒辨四時之居治以聽馭夫. 駕以行說 以止有勞逸之節故叙而頒之也.
居謂牧庌所處之宜. 治 謂執駒攻特之屬. ○先儒謂"辨四時之居者 二月之後 盛陽處外則在 牧而有庌. 八月之後 陽在地中則在廐而有閑也."巫馬掌養疾馬而乘治之 相醫而藥攻馬疾 受財于校人.
乘治謂驅步以發 其疾知所疾處 乃治之. 相助也. 巫馬知馬祖ㆍ先牧ㆍ馬社ㆍ馬步之神者. 又有醫四人 使與同職 故云相也. 受財以資醫馬之費. 馬死則使其賈粥 音鬻. 之 八其布于校人. 布 泉也. 賈
謂其屬官小吏 賈二人主買賣者.牧師掌牧地 皆有厲禁而頒之. 頒授圉者以牧地. 孟春焚牧 焚牧地以除陳生新草. 中春通滛 中春 陰陽交萬物生之時 可以合馬之牝牡. 掌其政令. 凡田事贊焚菜. 焚菜
山澤之虞主之.圉師掌敎圉人養馬 春除蓐釁廐 始牧 夏庌馬 冬獻馬. 養馬必順四時. 冬寒 藉之以蓐故春煖則除去之. 又恐其廐積糞穢 而致馬疾故殺牲以血塗之 而居焉. 庌
廡也所以庇馬凉也.○詩鄘風定之方中序曰"美衛文公也" 其卒章曰"靈兩旣零 命彼倌人 星言夙駕 說于桑田. 匪直也人 秉心塞淵 騋牝三千."朱子曰"靈 善. 零 落也. 倌人 主駕者也. 星 見星也.
說 舍止也. 秉 操. 塞 實. 淵 深也.朱子曰"馬七尺以上爲騋 言方春時雨旣降 而農桑之務作. 文公於是 命主駕者 晨起駕車 亟往而勞勸之. 然非獨此人所以操其心者誠實而淵深也. 蓋其所畜之馬
七尺而牝者 亦已至於三千之衆矣. 蓋人操心誠實而淵深 則無所爲而不成 其致此富盛宜矣. 記曰'問國君之富 數馬以對.'今言騋牝之衆 如此則生息之蕃可見 而衛國之富 亦可知矣."按蘇軾有言"富强之業
必深厚者爲之 非輕揚淺露者之所能致也."謝枋得亦言"秉心也實 故事事朴實 不尙高虛之談. 秉心也淵 故事事深長 不爲淺近之計. 富國强兵 豈談高虛 務淺近者之所能辦哉?" 誠哉! 是言也.○秦之先
有非子居大丘 好馬及畜 善養息之. 大丘人言之周孝王 孝王召使主馬于汧渭之間 馬大蕃息. 於是 孝王曰"昔 栢翳爲舜主畜之 多息故有土賜姓贏 今其後世 亦爲朕息馬 朕其分土 爲附庸邑 之秦
使復續贏氏之祀!"○魏武侯問吳起曰"凡畜卒騎 豈有方乎?" 起對曰"夫馬必安其處所適其水草 節其飢飽 冬則溫廐 夏則凉廡. 刻剔毛鬣 謹落四下 戢其耳目 無令驚駭. 習其馳逐 閑其進止 人馬相親然後
可使車騎之 具鞍勒御轡 必令完堅. 凡馬不傷於末 必傷於始 不傷於飢 必傷於飽. 日暮途遠 必數上下 寧勞於人 愼無勞馬 常令有餘 備敵覆我 能明此者 橫行天下."○唐之初起 得突厥馬二千匹
又得隋馬三千於赤岸澤 徙之隴右. 其官領以太僕 其屬有牧監ㆍ副監 監有丞有主簿ㆍ牧尉ㆍ排馬ㆍ牧長ㆍ羣頭有正有副. 凡羣置長一人 十五長置尉一人 歲課功進排馬.歐陽修曰"監牧之制始此
蓋起於近世."尙乘掌天子之禦 右左六閑 一曰飛黃 二曰吉良 三曰龍媒 四曰騊駼 五曰駃騠 六曰天苑 總十有二. 閑爲二廐 一曰祥麟 二曰鳳苑 以繫飼之.初用太僕少卿張萬歲 領羣牧 自貞觀至麟德四十年間
馬七十萬六千. 置八坊 岐ㆍ幽ㆍ涇ㆍ寧ㆍ間 地廣千里 一曰保樂 二曰甘露 三曰南普閏 四曰北普閏 五曰岐陽 六曰太平 七曰宜祿 八曰安定. 八坊之田千二百三十頃 募民耕之以給蒭秣. 八坊之馬
爲四十八監 而馬多地狹不能容 又柝八監 列布河西豐曠之野. 凡馬五千爲上監 三千爲中監 餘爲下監 監皆有左右 因地爲之名. 方其時 天下以一縑易一馬 萬歲掌馬久 恩信行於隴右.○玄宗開元初 國馬益耗
帝以王毛仲 領內外閑廐 馬稍稍復始二十四萬 至十三年 乃四十三萬. 其後 突厥欸塞 玄宗厚撫之 歲許朔方軍 西受降城爲互市 以金帛市馬 於河東ㆍ朔方左右牧之. 旣雜胡種 馬力益壯 天寶後 諸軍戰馬
動以萬計. 議者謂秦ㆍ漢以來 唐馬最盛. ○宋之馬政 太祖初置左右飛龍二院 以二使領之 後改爲騏驥院 以天駟監隸焉. 眞宗景德二年 改諸州牧龍坊 悉爲監. 在外之監十有四 諸州有牧監 知州通判兼領之.
以上論牧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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