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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경연의 의식[經筵講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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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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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경연의 의식[經筵講儀]

[이하의 원문이 없음.]

조정암(趙靜菴)이 중종(中宗)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임금과 신하의 사이가 아주 멉니다. 근래에 강관(講官)은 마음 놓고 앉아서 강의를 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내심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전의 낡은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습속이란 진실로 개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조회에 임할 때에 여러 신하들이 우러러보지 못하던 그것이 내려오면서 습관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종(成宗) 때에야 어찌 이런 일이 있었으리요!
연산주(燕山主) 때에 심순문(沈順門)이 임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여 죄를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임금의 위엄이 극도로 엄격하여져서 여러 신하들은 모두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강의하는 신하들이 임금 앞에서 부복(俯伏)하는 것도 연산주[廢朝] 때의 잔재입니다"라고 하였다.

조중봉(趙重峰)이 상소하기를 "강관(講官)이 부복하는 것은 실지 임금을 존경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옛날 선대 임금 때에는 보통 편좌(便坐)하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장헌대왕(莊憲大王)은 상참(常參)과 전향(傳香)의 날에도 경연 강의를 중지하지 않았고 온화한 안색으로 조용히 좌우 신하들을 돌아보고 묻는 것이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에 임금과 신하들의 의사가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그리고 백성의 원한과 국가의 병통이 모두 임금에게 알려져서 계획 사업을 옳게 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좋은
업적으로 된 것입니다. 그리다가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발[簾]을 드리우고 여러 신하들이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는데 그 후 이 습관이 규정으로 되어 심지어 어진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날 때에도 언제나 부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명종(明宗)왕은 경연에서 강의를 들을 때에도 매번 편좌하게 하였습니다. 대체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하늘과 땅 같은 것입니다. 대개
하늘과 땅은 반드시 순응하여 천기(天氣)가 아래로 내려오고 지기(地氣)가 위로 올라가야만 모든 만물을 산생, 성장시키고 교대를 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임금은
허심하게 아랫사람들의 좋은 의견을 기대해야 하며 아랫사람은 임금의 얼굴을 보고 의견의 접수 여부를 살핀 연후에야 진심으로 의견을 털어놓으며 잘못된 시책들을 시정하여 국가를 태평케
하는 사업을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임금이 그 권세에 교만하고 신하가 그 위엄에 겁내게 하여 가지고 좋은 정치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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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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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筵講儀○經筵講儀 以下缺.靜菴告于中宗曰"我國君臣之分隔絶 邇來屢敎講官平氣以坐 而羣臣不知上意之誠否 故未能猝變舊習. 以此觀之 習俗之難變固矣. 貞熹王后臨朝時 羣臣莫能仰視 循成此習.
若成宗朝則豈有如此事乎? 廢朝 沈順門以仰視被罪 積威之極 羣臣震懾 今之俯优 亦廢朝之餘習也."趙重峰上疏曰"講官俯伏 實非至敬之道. 祖宗朝 例賜便坐 如莊憲大王 常參傳香之日 亦不停講
而溫顔假色 從容顧問 有若家人父子. 然當此之時 上下之志 無有不通而民咨國病 冏有不達 所以訏謀定業以至今日休者也. 自貞熹王后垂簾 羣臣莫敢仰觀 厥後習以爲常 至於明良相遇而一向俯伏. 明廟當筵
亦嘗每許便坐矣. 夫羣臣之分 判若天地. 天之與地 必須天氣下降 地氣上升然後 能生育萬物而成交泰之功. 故君須虛心而望其啓沃 下瞻天顔而審其納否然後 可以誠孚志通 補闕匡失而臻太平之盛矣. 自古以來
未有上驕其勢 下怵其威而能成治道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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