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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ㄹ) 국가의 혼례[昏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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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 국가의 혼례[昏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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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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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국가의 혼례[昏禮]

국가의 혼례[國家昏禮]는 옛날의 제도를 따라 현명하고 덕행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며 지금과 같이 자녀들을 모아 놓고 관상을 보아 선택하는 폐단을 폐지해야 한다.[내가 듣건대
이렇게 하는 일이 역시 우리 조선의 옛 풍속이 아니다. 태종(太宗)왕이 이속(李續)의 아들로 부마(駙馬)를 삼을 생각이 있어 판수 지화(池和)를 중매로 보내어 물어 보았으나 이속이
거절하므로 태종이 화를 내어 이속의 가산을 몰수하고 즉시로 여러 사대부(士大夫)의 자녀들을 궁전 마당에 모아 놓고 친히 보고 선택하였다. 그것이 후에 준례로 되었다 한다.]

선조(宣祖) 왕 혼례[嘉禮] 때에 이이(李珥)가 상소하기를 "옛날 제왕들의 혼인할 대상자는 모두 성현의 후손과 어질고 현명한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선택하였었으나 그 구하는 방도는
오직 '자나 깨나 요조숙녀(窈窕淑女)를 구하며 아무리 구하여도 얻지 못하면 자나 깨나 더 생각하고 연구하는 데 불과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으며 지금과 같이 궁궐 마당에 모아 놓고
그중에서 우등과 열등을 추려 낸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지난 일은 추궁할 수는 없지마는 지금부터라도 용모와 의복 차림으로 등급을 가리지 말며 사주를 보아서 운명을
판단하는 것을 위주로 하지 말 것입니다. 먼저 보모의 현명 여부를 보아서 그 가정의 법도를 살피며 다음에 위품과 의리가 법도에 합당한가를 보아서 그 여자의 덕행을 살피며 또 그의
성씨를 캐되 먼저 대신들에게 문의하고 반드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은 다음에 결정한다면 하늘과 사람의 의사에 모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대개 부모의 현명 여부는 궁궐 안에서
명확하게 알 수 없으니 만일 널리 물어 보지 않고 급하게 결정을 하여 놓는다면 신하들이 아무리 의견이 있더라도 어찌 감히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삼대(三代) 이후로 가정
법도[家法]가 바른 것은 송[趙宋]나라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송나라에서는 황후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대신들에게 물었으니 이 제도는 참으로 후세의 본받을 일입니다. 대체 한 명의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고 한 명의 나쁜 자를 축출하는 데도 온 나라 사람의 여론을 존중히 하거늘 하물며 덕 있는 여자[聖女]를 구하여 임금의 배필로 삼으면서 어찌 독자적 견해로
결정하겠습니까? 혼례[六禮]의 의식으로 말하더라도 일일이 전례를 따를 것이 아니라 유학자인 신하를 시켜 옛날 의식들을 광범히 참고하고 예경(禮經)을 연구하여 후세에 전할 만한
제도를 제정한다면 혼인에 관한 예절이 바로잡혀질 것이며 현명한 자손에게 미치는 문화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원우(元祐) 중엽에 철종(哲宗)이 황후를 정하려고 하였는데 범조우(范祖禹)가 선인(宣仁) 황태후에게 상소하여 황후 선택에 관한 네 가지 일[四事]을 진술하였다. "첫째는
문벌[族姓]입니다. 옛날의 제왕과 혼인하게 된 자는 반드시 큰 나라의 제후들, 옛날 어진 임금과 공훈이 있고 어진 사람의 자손이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지금 황실 외손의 나라에서
선택하였다. 미천한 사람으로서 우황제와 대등한 지위에 두지 않기 때문에 그 복록이 크고 자손이 번창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자의 덕행[女德]입니다. 하(夏)ㆍ은(殷)ㆍ주(周) 세
나라가 융성할 때에는 다 어진 황후[賢妃]가 있었으나 그 나라들이 망할 때에는 모두 나쁜 여자[嬖女]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다 『시경(詩經)』과 『상서(尙書)』에 기재되어
영원한 구감입니다. 대체 황후란 국가의 어머니로서 온 나라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니 황후[六宮]가 덕행이 없다면 어떻게 그 지위를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나 규중에 있는 여자[閨門]의
덕행이란 잘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 조상을 보고 가정 규범[家法]을 살피며 기타 여러 가지 일들을 참작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높은 예절[隆禮]입니다. 황제와
황후는 하늘과 땅, 해와 달과 같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남자가 예복을 입고 몸소 가서 영접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친왕(親王)들이 혼인을 할 때에도 아내를 동등한 예절로써
맞아들이지 않으니 천하에 어찌 남자만이 존귀하고 그의 배필은 천하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먼저 기본을 바로잡아서 전국의 모범이 되게 하십시오. 넷째는 광범하게 의논하는
것[博議]입니다. 옛날에는 황제가 황후를 맞을 때에는 재상[上公]이 가서 맞아 오고 영주[諸侯]들이 혼인에 관한 일들을 주관하였으며 국가에 큰 사업이 있으면 대신들과 미리
의논하였습니다. 대개 한 명의 집정관(執政官)을 등용하고 한 명의 근신(近臣)을 승급시킬 때에도 반드시 전국의 여론을 따르거늘 하물며 나라의 어머니인 황후의 선택을 광범히 문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장문의 상소는 내용이 충직하고 간곡하고 주밀하여 후세의 모범으로 될 수 있다. 상세한 것은 상소 본문에 있다.[그 글에 이르기를"신(臣)은
엎드려 조지(詔旨)를 받드니 황제가 황후를 들이는 육례(六禮)를 한림학사(翰林學士)ㆍ어사중승(御史中承)ㆍ양성급사(兩省給舍)ㆍ예부(禮部)ㆍ태상시(太常寺)로 하여금 한가지로 자세히
의논하라 합니다. 신은 그윽히 엎드려 생각건대 이는 곧 나라의 큰일이고 만세(萬世)의 근본이고 행복이 매인 곳이고 교화(敎化)가 먼저 나오는 곳이니 옛적부터 성왕(聖王)이 중시한
것입니다. 지금 폐하(陛下)께서 마땅히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네 가지가 있으니 삼가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상고(上古)에서 상고하고 후세에서 참작하여 폐하를
위하여 모조리 세고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이르기를 족성(族姓)이라 하고, 둘째는 이르기를 여덕(女德)이라 하고, 셋째는 이르기를 융례(隆禮)라 하고, 넷째는 이르기를
박의(博議)라 합니다. 이른바 족성(族姓)이라는 것은 신(臣)은 들으니 옛적의 임금이 더불어 혼인을 하는 것은 반드시 큰 나라의 제후로서 선성왕(先聖王)의 후손이거나 큰 공(功)이
있는 어진 이의 자손으로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사둔의 나라로 하며 지체의 적고 낮은 자로써 위로 지존(至尊)에게 짝을 짓지 아니하는 까닭에 그 복(福)이 성(盛)하고 크고 자손이
번창하는 것입니다. 옛적에 황제는 서릉(西陵)의 딸에게 장가드니 이것을 유조(嫘祖)라 하고 황제의 정비(正妃)가 되더니 그 자손이 모두 천하를 두니 오제(五帝)와 삼황(三皇)이
모두 황제의 후손입니다. 대순(大舜)은 제요(帝堯)의 두 딸에게 장가들어 위예(潙汭)에 이강(釐降)하여 드디어 천하를 두고 대우(大禹)는 도산(塗山)에 장가들어 이에 하계(夏啓)를
낳으니 천하가 돌아가서 자손이 나라를 받음이 470여 년이고 성탕(成湯)은 유신씨(有莘氏)에게 장가들어 자손이 천하를 둠이 600여 년이며 주(周)나라의 선조(先祖) 후직(后稷)은
강원(姜嫄)에게서 나서 세대(世代)로 어진 왕후를 두고 태왕(太王)은 태강(太姜)에게 장가들어 왕계(王季)를 왕계는 태사(太仕)에게 장가들어 문왕(文王)을 낳고 문왕은
태사(太姒)에게 장가들 적에 그 예(禮)가 더욱 성하니 대아(大雅)에 이것을 노래하여 이르기를 '예문(禮文)으로서 그 길상(吉祥)을 정(定)하여 위수(渭水)에서 친영(親迎)하도다.
배를 지어 다리를 삼으니 그 빛이 크게 나타나도다' 하니 옛적부터 혼례는 문왕과 같이 성(盛)함이 있지 아니하며 태강(太姜)은 염제(炎帝)의 후손이고 태임(太任)은 태호(太昊)의
후손이고 태사(太姒)는 대우(大禹)의 후손입니다. 태사(太姒)가 열 아들을 낳으니 무왕과 주공은 모두 성인(聖人)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빛난 제후가 되었으며 주나라의 자손이 천하에
퍼진 것은 태사의 덕(德)입니다. 시인들은 문왕의 성(聖)이 본시 태임(太任)에게서 말미암은 것을 아름답게 여겨 그 시(詩)에 이르기를 '늘 공경(恭敬)함을 생각하는
태임(太任)이여, 문왕의 어미니로다. 늘 화열(和悅)함을 생각하는 주강(周姜)이여, 경실(京室)의 아내로다. 태사(太姒)가 아름다운 유음(遺音)을 이음에 곧 백남자(百男子)로다'
하고, 또 이르기를 '희유(稀有)의 아내를 법(法) 받아 형제에 이르고 가방(家邦)을 어거한다' 하니 문왕의 화(化)가 집으로부터 나라에 미치고 천하에까지 이른 것을 말함이고,
주남(周南)의 관저(關雎)에 왕후의 덕(德)은 인륜(人倫)이 비롯되는 곳이고 천하를 교화한다 함은 모두 태임(太任)과 태사(太姒)를 아름답게 여긴 것이며 무왕이 또한
강씨(姜氏)에게 장가들어 이에 성왕(成王)을 낳고 주나라가 천하를 둠이 30여 세(世) 800여 년이 된 것은 그 기본이 대개 이것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성(族姓)은
귀중히 여기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여덕(女德)이라는 것은 신(臣)은 들으니 삼대(三代)의 흥(興)함에는 모두 어진 왕후가 있고 그 망(亡)함에는 모두 괴이는 계집이
있었으니, 하(夏)나라가 흥한 것은 도산(塗山) 때문이고 그것이 망한 것은 매희(妹喜) 때문이며 상(商)나라가 흥한 것은 유융(有娀) 때문이고 그것이 망한 것은 달기(妲己)
때문이며 주나라의 흥한 것은 강원(姜嫄) 때문이고 그것이 망한 것은 포사(褒姒) 때문이니, 이는 모두 성현이 기록한 것이고『시경(詩經)』과『서경(書經)』에 씌어 있는 것으로서
후세에 드리워 영원한 본보기를 삼는 것입니다. 진(秦)ㆍ한(漢) 이후로는 혼인이 바르지 못한 것이 많아서 법으로 본받을 만한 것이 없고 오직 후한(後漢) 현종(顯宗)의
명덕마후(明德馬后)와 당태종(唐太宗)의 문덕장손후(文德長孫后)가 모두 왕후의 덕이 있어 큰 훈공이 있는 어진 이의 집에서 나오고 그 나머지는 패란(敗亂)하여 경계를 삼을 만한
것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태종(太宗) 황제 이래로 가도(家道)가 바르고 인륜(人倫)이 밝고 역대로 모두 성후(聖后)의 내덕(內德)의 도움이 있어 삼대(三代) 이래로
우리나라와 같은 가법(家法)이 있지 아니합니다. 황제는 성인(聖人)의 덕이 밝고 성(盛)하고 맑은 바탕이 순수하니 하늘이 아래를 살펴보아 반드시 성녀(聖女)를 내어 황가(皇家)를
도울 것이니 오직 폐하는 멀리는 상고(上古)를 관찰하고 가깝게는 후세를 조감(照鑑)하여 위로 천지와 조상의 받들음을 생각하고 아래로 만세 자손의 계획을 위하여 요조(窈宨)한
여자(女子)를 가리어 정하여 만국(萬國)에 어머니로 모범을 뵈고 육궁(六宮)을 지도하여 바로잡게 할 것이니 덕 있는 이가 아니면 누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규문(閨門)의 덕을 나타내어 뵈지 못하니 반드시 그 세족(世族)을 보고 그 조고(祖考)를 보고 그 가풍(家風)을 살피고 참작하기를 여러 가지 일로써 하면 또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적에 한(漢)나라의 초기에 대신(大臣)들이 의논하고 고제(高帝)의 아들 제왕(齊王)을 세우고자 하더니 모두 말하기를 제왕의 어머니의 친정 사균(駟鈞)은 사납고 거슬러서
호랑이가 의관(衣冠)한 자이고 대왕(代王) 어머니의 친정 박씨(薄氏)는 군자이고 어른이라 하여 이에 대왕(代王)을 세우니 이가 문제(文帝)가 되고 문제가 한(漢)나라의 어진 임금이
된 것도 또한 그 어머니 친정의 어질고 착함을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덕(女德을첫째로 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융례(隆禮)라는 것은 신(臣)은 들으니
천자(天子)와 황후는 하늘이 땅에 더불어 함과 해가 달에 더불어 함과 양(陽)이 음(陰)에 더불어 함과 같아서 서로 기다린 뒤에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노애공(魯哀公)을 대(對)하여 말하기를 '옛적에 정치(政治)를 함에는 사람을 사랑함이 큰 것이고 사람을 사랑함을 다스리는 소이(所以)는 예(禮)가 큰 것이고 예(禮)를 다스리는
소이는 공경이 큰 것이고 공경의 지극함은 대혼(大婚)이 큰 것이니 대혼은 지극한 것이며 대혼이 이미 지극하면 면류관하고 친영(親迎)하는 것은 그를 친(親)함입니다' 하니 애공이
말하기를 '면류관하고 친영함이 너무 중(重)하지 아니한가?' 하였습니다. 공자가 추연히 얼굴빛을 변하여 대답하여 말하기를 '두 성(姓)의 아름다움을 합(合)하여 선성(先聖)의 뒤를
이어 천지와 조상과 나라의 주인을 삼는 것이니 군(君)이 어찌 너무 중(重)하다고 이르나이까?' 하니 이는 깊이 그르다고 여긴 것입니다. 신이 이제 여러 관원(官員)과 더불어
토론하고 연구하는 것은 모두 선왕(先王)의 예(禮)를 요약하여 그 적의(適宜)함을 참작한 것이고 지나치게 융숭하지는 아니하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의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임금에게
말을 올리는 자가 반드시 말하기를 '천자는 지극히 높아서 천하에 짝할 이가 없으니 부부(夫婦)의 예(禮)를 행함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할 것이나 신은 삼가 상고하건대 관례(冠禮)와
혼례(婚禮)에는 오직 사례(士禮)만 있고 천자나 제후의 예(禮)는 없으니 그러므로 삼대(三代) 이래로 오직 사례(士禮)로써 밀어 올려서 천자와 제후의 예를 삼으니 이는
성인(成人)의 부부 혼례는 천자로부터 사(士)에 이르기까지 한가지인 까닭입니다. 신은 들으니 친왕(親王) 종실(宗室)의 사이에서는 아내를 장가드는데 특히 제체(齊體)의 예(禮)와
공경하여 친(親)하는 의(義)가 없다 하니 천하에 어찌 홀로만 높고 짝이 없는 자가 있겠습니까. 야비하고 사특한 예(禮)에 이르러서는 혹 오랑캐의 풍속을 섞고 혹 민촌의 풍을
습행(習行)하여 아래로 사족(士族)으로부터 상류(上流)와 궁중(宮中)에도 이에 넘나드는 자가 있다 하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일체를 물리쳐 끊어 버리고 기본을 바로잡아 천하에
솔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禮)는 융숭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박의(博議)라는 것은 신은 듣건대 옛적에 천자가 왕후를 맞는 데는 상공(上公)이 맞아 오고
제후가 주관하니, 그러므로『춘추(春秋)』에 씌어 있기를 '제공(祭公)이 와서 드디어 왕후를 기(紀)에서 맞았다' 하였습니다.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대신(大臣)이 미리 들어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옛적에 자성 광헌(慈聖光獻)을 세울 적에 여이간(呂夷簡)이, 그 의논을 정한 까닭에 그 조서에 이르기를 '상재상(上宰相)이 올리는 말을 보았다' 하였고 그
책(冊)에 이르기를 '종공(宗公)과 대신이 조정에서 송언(誦言)하였다' 한 것입니다. 이 먼저에 차상(茶商) 진씨(陳氏)의 여자가 또한 황후의 간택에 참여하였는데
왕증송수(王曾宋綬)가 모두 옳지 못함을 말하고 또 이어서 말한 자가 있으므로 드디어 진씨를 파(罷)하니 인종(仁宗)을 성인(聖人)이라 하는 까닭은 능히 뭇사람의 말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말을 올리는 자가 반드시 말하기를 이는 폐하의 집안일이고 외인(外人)이 참여할 일이 아니라 하나 옛적부터 임금을 그르치는 것은 흔히 이 말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천자는 사해(四海)로써 집을 삼으니 안과 밖의 일이 어느 것이 폐하의 집안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신이 참여치 못할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폐하는 한 집정(執政)을 쓰고 한
근신(近臣)을 내는 데에도 반드시 천하의 소망(所望)에 맞추고자 하거든 하물며 황후를 세워 천하에 어머니 되게 하는 일이겠습니까? 신(臣)은 두려워하건대 폐하가 하루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아무 씨(氏)를 세워 황후를 삼았다고 하면 대신이 비록 소견이 있더라도 또한 논의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제 폐하가 간택하는 바를 그 어느 성씨의 집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대신에게 물음을 발(發)하는 것만 같음이 없습니다. 만일 성상(聖上) 뜻 이미 정해지고 뭇 의논이 모두 동일하다고 하면 복서(卜筮)도 서로 맞고 귀신도 의지하여 하늘과 사람의 뜻이
동일하지 아니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의논은 널리 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은 다행히 권강(勸講)의 자리를 충비(充備)하여 그 맡은 일이 제왕(帝王)의 일로써 임금의
덕(德)을 돕는 데에 있는 까닭에 감히 그 들은 바를 말씀드리는 것이니 신의 어리석은 정성으로 생각건대 중궁(中宮)이 정위(正位)한 뒤에 사해(四海) 안의 모든 가정이 서로
경하(慶賀)하면 나라의 복(福)이라 할 것입니다" 하였다.]

① 무릇 남녀의 혼인 연령은 반드시 예절과 제도에 의하며 조혼(早昏)을 금지한다.

옛날 예절에는 남자 30세에 장가들고 여자 20세에 시집가게 되었었다. 그 후 현명한 사람이 또 옛 예절을 참작하여 남자는 16세로부터 30세까지, 여자는 14세로부터 20세까지를
혼인 기간으로 하게 하였는데 인간의 발육 정황을 참작하건대 잘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왕실 여자들은 혼인을 너무 일찍이 하며 귀척(貴戚)들이 모방하기 때문에 이것이 풍속으로 되어
사회도덕에 해독을 준다. 병에 걸리고 요사[夭]하게 되는 원인이 모두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니 국가에서 예절과 제도에 의하여 혼인을 하게 하는 동시에 하부에 있어서의 위반하는 자들을
엄금해야 한다.

② 남자가 몸소 맞아들이는 예절을 엄격하게 지킨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왕실 자녀들의 혼인에 있어서는 남자가 몸소 맞아들이는 예절을 지키나 사대부(士大夫)들의 가정에서는 누추하고 구차한 관계로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여러 날
유숙하기 때문에 취처(娶妻)라 하지 않고 입장(入丈) 입장(入丈)：장인의 집에 간다는 뜻인데 즉 장가드는 것을 말함.

이라고 한다. 이것은 양(陽)이 도리어 음(陰)을 따르는 것으로서 남녀 관계의 본의에 대단히 위반되는 것이니 응당 예법(禮法)을 엄격하게 하여 윤리 관계의 도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③ 모든 혼인에 있어서 폐백(幣帛), 데리고 가는 하인[從人], 의복, 음식에 관한 절차도 다 일정한 규정을 제정하여 사치하게 하는 폐단을 일체 금지한다.

혼인 때에 사치하게 하는 풍습은 지금의 막대한 폐단으로 된다. 가난한 사람은 재산이 없어서 곤란을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같이 못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여 반드시 가산을
탕진하기까지 하면서 풍속을 따르며 부유하고 권세 있는 자들은 자기들의 권세로 청탁하고 뇌물을 먹이는 등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국가 상층부에 있는 사람이 먼저 예절을 엄격히
준수하여 습속을 바로잡지 않으면 습속이 저절로 바로잡혀지지 않는다. 옛날의 예절은 극히 간단하였으니 혼인에 따르는 의식도 아주 간략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혼인 때의 폐백, 데리고
가는 하인, 의복, 음식과 같은 것들은 귀천(貴賤)의 차이에 따라 일정한 규정을 제정하며 국가의 상층부로부터 일제히 그 규정을 준수하는 동시에 하부 사람들을 엄격하게 단속하여 법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하며 만일 위반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중한 죄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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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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昏禮○國家昏禮宜遵古制 訪選賢德 罷今聚會子女 閱視容色之弊. 窃嘗聞之 此事亦非東國舊俗. 太宗朝 欲以李續子爲駙馬 使瞽媒池和 往問之 續不肯. 太宗怒籍續家. 於是 乃令士大夫子女 聚入闕庭
親閱定之. 其後因以成例云.在宣廟嘉禮時 李珥上疏曰"古之帝王所與爲昏姻者 莫非先聖之後 仁賢之裔 而其求之之道 不過曰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不得 寤寐思服而已. 未聞聚會闕庭 辨其優劣
如今日之爲. 已然之事 雖不可追 自今以後 勿以容色ㆍ服飾 次等級 勿以推數吉凶 爲急務 先觀父母之賢否以察其家法 次觀威儀之合度以察其女德. 且出姓氏 先問大臣 必得衆心允協然後 乃定則天人之意
無不同矣. 蓋父母之賢否 非九重之內所可的知 若不咨詢而遽定名目 則群下雖有所見 何敢發言? 三代已後 家法之正 無如趙宋 其立后也 必咨于大臣 此眞後世之法也. 夫用一賢士 去一不賢
尙待國人之皆可則 况求聖女以配至尊而斷以獨見乎? 至於六禮之儀 不須一倣前例 當使儒臣 廣攷古儀 講求禮經 以立垂後之制則昏姻之禮正 獜趾之化 可冀矣."宋元祐中 哲宗將立后 范祖禹上書宣仁
陳擇后四事"一曰族姓. 曰古之帝王所與爲昏姻者 必大國諸侯 先聖王之後 勳賢之裔 不然則甥舅之國也. 不以微賤 上敵至尊 故其福祚盛大 子孫繁昌. 二曰女德. 曰三代之興 皆有賢妃 其亡也皆有嬖女
此皆詩書所載以爲永鑑者. 母儀萬國表正 六宮非有德 孰可以當之? 然閨門之德 不可著見 必觀其祖考 察其家法 參以庶事 乃可知也. 三曰隆禮. 曰天子之與后 猶天之與地 日之與月. 孔子曰'冕而親迎
親之也.'今親王娶妻 亦無齊體之禮 天下豈有獨尊而無配偶者? 願正基本以先天下. 四曰博議. 曰古者 天子聘后 上公逆之 諸侯主之. 國有大事 大臣不容不預聞也. 夫用一執政 進一近臣 必欲協天下之望
况立皇后以母天下乎?"其書凡數千言 忠正懇備 可爲後世法 詳在本書. 其書曰"臣伏奉詔旨 皇帝納后 六禮令ㆍ翰林學士ㆍ御史中丞ㆍ兩省給舍ㆍ禮部太常寺 同共詳議. 臣窃伏思 此乃國家大事 萬世之本
福祚所繫 風化所先 自古聖王重之. 今陛下宜先知者有四 不可不謹也. 臣謹稽之上古 參之後世 爲陛下悉數而詳陳之. 一曰族姓 二曰女德 三曰隆禮 四曰博議.
所謂族姓者臣聞古之帝王所與爲昏姻者必大國諸侯ㆍ先聖王之後ㆍ勳賢之裔 不然則甥舅之國也. 不以微賤 上敵至尊 故其福祚盛大 子孫繁昌. 昔 黃帝娶於西陵之女 是爲嫘祖 爲帝正妃
其子孫皆有天下五帝ㆍ三皇皆黃帝之後也. 舜娶帝堯之二女 釐降于潙汭 遂有天下. 大禹娶塗山 是生夏啓 天下歸之 子孫享國四百七十餘年. 成湯娶于有莘氏 子孫有天下六百餘年. 周之先祖后稷 生於姜嫄
世有賢妃. 大王娶太姜 是生王季 王季娶太任 是生文王 文王娶太姒 其禮尤盛. 大雅歌之曰'文定厥祥 親迎于渭 造舟爲梁 不顯其光.'自古昏禮 未有如文王之盛也. 太姜炎帝之後也. 太任太昊之後也.
太姒 大禹之後也. 太姒生十子 武王ㆍ周公 皆聖人也. 其餘皆爲顯諸侯 周之子孫 徧于天下 太姒之德也. 詩人美文王之聖 本由太任 其詩曰'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 太姒嗣徽音
則百斯男.'又曰'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言文王之化 自家及國 以至天下也. 周南關雎 后妃之德 人倫之始 風化天下 皆美太任ㆍ太姒也. 武王亦娶于姜 是生成王 周有天下三十餘世 八百餘年
其基本蓋由此也 故族姓不可不貴. 所謂女德者 臣聞三代之興 皆有賢妃 其亡也皆有嬖女 夏之興也 以塗山 其亡也以妹喜. 商之興也. 以有娀 其亡也以妲己. 周之興也以姜嫄 其亡也以褒姒 此皆聖賢所記
詩書所載 垂之後世 以爲永鑑者. 秦漢以後 昏姻多不正 無足取法. 惟後漢顯宗 明德馬后 唐太宗 文德長孫后 皆有后德 出於勳賢之家 其餘敗亂 足以爲戒而已. 恭惟本朝 太祖皇帝以來 家道正而人倫明
歷世皆有聖后 內德之助 自三代以來 未有如本朝家法也. 皇帝聖德明茂睿質純粹 天監在下 必生聖女以佑皇家. 惟陛下 遠觀上古 近鑑後世 上思天地宗廟之奉 下爲萬世子孫之計 選卜窈窕 以母儀萬國表正
六宮非有德 孰可以當之? 然閨門之德 不可著見 必視其世族 觀其祖考察其家風 參以庶事 亦可知也. 昔漢之初 大臣議欲立高帝子齊王 皆曰王母家駟鈞 惡戾虎而冠者也. 代王母家薄氏 君子長者 乃立代王
是爲文帝. 文帝爲漢之賢主 亦由其母家仁善也 故女德不可不先. 所謂隆禮者 臣聞天子之與后 猶天之與地 日之與月 陽之與陰 相須而後成者也. 孔子對魯哀公曰'古之爲政 愛人爲大 所以治. 愛人 禮爲大
所以治禮 敬爲大. 敬之至 大昏爲大. 大昏至矣 大昏旣至 冕而親迎 親之也.'哀公曰'冕而親迎 不已重乎?'孔子愀然作色而 對曰'合二姓之好 以繼先聖之後 以爲天地ㆍ宗廟ㆍ社稷之主
君何謂已重乎!'蓋深非之也. 臣今與衆官 討論講議 皆約先王之禮 參酌其宜 不爲過隆 願陛下勿以爲疑. 進言者必曰'天子至尊 無敵於天下 不當行夫婦之禮.'臣謹按禮冠昏 唯有士禮而無天子ㆍ諸侯之禮
故三代以來 唯以士禮 推而上之 爲天子ㆍ諸侯之禮 蓋以成人之與夫婦 自天子 至於士則一也. 臣竊聞親王ㆍ宗室之間 娶妻殊無齊體之禮 敬而親之之義 天下豈有獨尊而無配偶者哉? 至於鄙慝之禮 或雜戎狄之俗
或習委巷之風 下自士族上流宮禁 有涉於此者 願陛下一切屛絶之 以正基本以先天下 故禮不可不隆. 所謂博議者 臣聞古者 天子聘后 上公逆之 諸侯主之 故春秋書祭公來遂 逆王后于紀. 夫國有大事
大臣不容不預聞也. 昔慈聖光獻之立也. 呂夷簡定其議 故其詔曰'覽上宰之敷言.'其冊曰'宗公鼎臣 誦言于朝.'先是 茶啇陳氏女 亦預選擇 王曾ㆍ宋綬 皆以爲言 繼有言者 遂罷陳氏. 仁宗所以爲聖者
能從衆也. 進言者必曰'此陛下家事 非外人所預.'自古誤人主者 多由此言也. 天子以四海爲家 中外之非陛下家事? 大臣無不可預之理. 且陛下用一執政 進一近臣 必欲協天下之望 况立皇后 以母天下乎?
臣恐陸下 一日降詔云'立某氏爲皇后'則大臣雖有所見 亦難乎論議矣. 今陛下所選擇 莫若出其姓氏 宣問大臣. 若聖志旣定而衆議僉同 則卜筮協從 鬼神其依 天人之意無不同矣 故議不可不博. 臣幸備勸講
其所職 在以帝王之事 裨益聖德 故敢獻其所聞 臣之愚誠 惟中宮正位之後 四海之內 室家相慶則宗社之福也."一 凡男女昏娶年歲 必從禮制 禁早昏者.古禮 男子三十而娶 女子二十而嫁. 後賢又酌禮
令男自十六至三十 女自十四至二十 其參人情亦至矣. 今王室子女 昏娶太早 貴戚慕傚之 因以成風 傷敎化. 致疾夭之本 實在於此 宜自國家一從禮制 申禁在下之違者.一 申明親迎之禮.今國家王子ㆍ王女昏姻
皆行親迎之禮 而士大夫家因陋苟簡 壻留婦家 故不曰娶妻而曰入丈 是陽反從陰 大失男女之義. 宜明飭禮法以正人倫之道.一 凡昏姻 幣帛ㆍ從人ㆍ服飾ㆍ饌食之節 皆定其式 痛禁奢侈之弊.昏姻奢侈之習
爲今莫大之弊 貧者苦於無財 而恥不若人 必破家從俗. 貴勢者 因以求請納賄 無所不至 不有上之人明禮正俗 俗無由自正矣. 古禮旣極簡 當令文亦甚省約. 凡幣帛ㆍ從人ㆍ服飾ㆍ飮食之類 差以貴賤 皆定其式
宜自國家 一遵其制 嚴飭在下 毋或敢踰 若有踰犯者 治以重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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