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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노예(奴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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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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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노예(奴隷)

일체 노비(奴婢)는 어미 신분을 따라 부리는 법[從母役之法]을 한결같이 실시한다.[지금 법에는 공사(公私) 노비를 어미 신분을 따라 부리다가도 남종[奴]이 양민 여자[良女]에게
장가를 들어 낳은 자녀는 또 아비의 신분을 따르게 되니 이는 법이 한결같지 못하여 오직 천(賤)한 쪽으로 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법을 확정하여 어느 한쪽을 따르도록
할 것인바 양민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낳은 자녀도 어미 신분을 따르게 해야 한다.]

상고하여 보면 천한 자가[우리나라 풍속에 공사(公私) 노비를 천인(賤人)이라고 한다.] 어미 신분을 따르는 법[從母之法]은 고려 정종(靖宗)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미를 알고 아비를
모르는 것은 날짐승이나 길짐승[禽獸]의 도리인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서 날짐승이나 길짐승으로 자처하는 것이니 어찌 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비법(非法)이 처음
생겨나오게 된 것을 생각한다면 나라 풍속으로 천인을 부리는 데 있어서 흔히 꼼짝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가하는 것이 마소나 닭, 개와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기시 이렇게 부리면서 아비
신분을 따르도록 한다면 농간과 문란한 송사 처리에서 그 번잡성을 걷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이와 같은 법을 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미 신분을 따르는 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노비법(奴婢法)[즉 노비 신분의 상속법]이 나쁜 것이다. 후세에 이르러서 그전대로 어미 신분을 따르게 되어 있으면서 만약 어미가 양민 여자일 때에는 또 아비 신분을 좇아서
천인으로 된다. 이는 법이 아닌 법으로서 오직 사람을 전부 천인으로 만들자는 것이니 비법 중에 또 비법인 것이다.

모든 기관과 고을의 노복으로 노역에 종사하는 자에게는 다 녹봉을 준다.[노역에 종사하는 자에게 다 일정한 녹봉이 있는바 그에 대한 숫자는 녹봉 제도[祿制]에 있다. 서울 각 기관
노복으로서 노역에 종사하는 자의 수가 적으면 지금 선상(選上) 선상(選上)：관청 노비(奴婢)를 뽑아 올리는 것.

노비처럼 윤번으로 시키지 말고 그중 가합한 자를 선택하여 본 기관에 와서 있게 할 것이다.]

노역에 종사하지 않는 자의 신공(身貢)은[대체로 특산물을 국왕에게 바치는 것을 공(貢)이라고 하니 사람의 몸에 대하여는 이른바 공이란 것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있는 노비가
노역 대가를 무는 것을 신공(身貢)이라고 한다.] 남종이 포(布) 2필이요, 여종[婢]이 포 1필인데 이것을 다 사섬시(司贍寺)에 바친다.[서울과 지방에서 노역에 종사하는 정원
이외의 노비에 대해서는 소관 기관이나 고을에서 사사로이 공(貢)을 받지 못하고 이를 전부 사섬시에 납부한다.]

속오군(束伍軍)에 편입된 자는 신공(身貢)을 면제한다.[속오군에 편입된 자는 신공을 전부 면제하고 보부(保夫)와 목자(牧子), 잡색군(雜色軍)들도 다 이와 같이 한다. 노비의
연령이 16세 이하 또는 60세 이상 된 자와 중환자 및 폐질자와 자녀 3명 이상이 신공을 바치고 노역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그의 신공과 노역을 면제하여 준다. 개인의 집
노복[私奴]으로서 속오군에 편입된 자에게 응당 신공을 면제하여 주어야 하지마는 개인 노비법이 폐지되기 전에는 형편상 실행하기 곤란한 점이 있으니 남종의 신공에서 포 1필을 감하여
주는 것이 옳다.]

각 기관에 속한 노비로서 소정 인원수를 초과하는 때는[즉 노역에 종사할 정원 이외 노비] 그들을 노비가 부족한 기관이나 사패(賜牌)를 받은 자에게 이양하도록 하며[지방에 있는
노비는 만일 그가 거주하는 고을의 노비가 부족하다면 그 고을에 이양하고 신공을 면제하여 준다.] 각 고을에서는 노비가 부족한 이웃 고을에 이양하도록 한다.[역도 이와 같다.]

공노(公奴)나 사노(私奴)로서 속오군에 편입된 자가 기술시험에 여러 번 우등을 한 자에게는 특히 천인 신분을 면제하여 준다.[개인 집 종[私奴]에 대해서는 관청에서 다른 종을 대신
주거나 혹 값을 쳐서 준다. 이에 관한 조항은 군사 제도[軍制]에 자세히 말했다.]

지금 서울 각 기관의 현존 노비가 없는 데가 많아서 노비의 할 일을 상번(上番) 군인이나 공물 주인(貢物主人)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으니 전복(典僕) 전복(典僕)：각 관청에서
부리는 하인들에 관한 직무를 맡은 관직이라는 뜻인데 저자가 설정한 것임.

으로 하여금 자기 소속 기관에 있으면서 규정에 의하여 노역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의 각 감영[營], 고을 및 향교(鄕校), 역(驛)의 노비는 모두 소관 감영, 고을, 역의 근처에 살게 한다. 그러나 혹 이사 간 지가 오래되어 돌아오도록 하기가 불편할 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고을에 등록시킨다. 만일 그들에게 사사로이 신공을 받거나 혹 노역을 면제해 주고 대가를 받은 자에게는 범죄 한 관리에 대하여는 방군수포율(放軍收布律)을 적용할
것이다.[전제(田制)가 실행된 뒤에야 이런 폐단을 없앨 수 있다.]

[선조(宣祖) 때에 이율곡(李栗谷)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선상(選上)의 고통에 대하여 말하기를 "노비를 뽑아 올리는 목적은 그들에게 면포(綿布)를 받으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전복(典僕)이 각 기관에 복무를 시킬 노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관청 노비를 불러다가 윤번으로 노역을 시키는 것을 선상이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빈한한
공노(公奴)가 자기 식량을 가지고 객지에 와 있게 되니 온갖 고통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면포로써 노역을 대신하게 된 것인데 지금은 다만 면포를 받을 뿐이요 기관에
와서 노역에 종사하는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백성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곤궁에 빠지며 호구는 더욱 축소되는 이때에 공천(公賤)도 역시 백성인데 어찌 그들이라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리저리 유랑하면서 생활을 유지할 도리가 없는데 일단 선상(選上) 노역의 대가를 치르고 나면 패가를 면하는 자가 드물 것입니다. 2년에 한 차례씩 신공을 바치고 1년에
한 차례씩 선상에 뽑히게 되어 대략 3년 만이면 반드시 한 번씩 패가(敗家)를 당하고 마니 그들의 고통이야말로 극도에 달합니다. 더군다나 예조의 각색 아전[色吏]들이 그들을 고르게
배정하지 않아 아무리 노비가 많은 고을이라도 뇌물만 주면 배정을 적게 받는 반면에 노비 두어 명 밖에 없는 고을이라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배정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하여 그 배정
숫자대로 내지 못하면 노비의 겨레에게까지 침해가 미치고 보통 평민들까지도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곤란하게 된 뒤에는 아무리 공평하고 균일한 배정을 한다 하여도 그들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만일 이 제도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그 후환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노비들에게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서 면포를 받는 것은 본시 『대전(大典)』의 법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이 선상 제도를 폐지하고 노비 신분에 따라 받는 신공을 가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관청에 명령하여 노비 문서[奴婢案]를 상세히 조사한 다음 현존 인원수에
근거하여 그들의 매년 신공으로서 남종은 면포 2필씩, 여종은 1필씩 계산해서 총계는 얼마인데 그중 5분의 2는 사섬시(司贍寺)에 납입하여 국가 경비로 쓰고 5분의 3은 각 기관에
분배하여 선상의 몫으로 쓰도록 하고 면포가 부족하면 노역에 종사하는 공수를 적당히 줄이게 하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이렇게 한다면 공천(公賤)에게서 예비에 충당할 만한 신공이 나오니
졸지에 받아 내는 폐단이 없어질 것이며 신공을 받는 일정한 장부가 있고 문서도 뜯어고칠 수가 없게 되니 간사한 아전들의 농간이 근절될 것이며 국가의 명령이 번잡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실지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lt;『대전』에는 "각 기관 노비의 신공으로서 남종은 면포 1필, 저화(楮貨) 20장씩을 받으며 여종은 면포 1필, 저화 10장씩을 받되 면포, 명주, 정포(正布)로써 저화를
대신할 수도 있으며 이것은 모두 사섬시에 납입한다"라고 하였다.&gt;]

이율곡(李栗谷)이 말하기를 "지금 토지 측량을 다시 하지 않으면 황무지에서 세(稅)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승려를 그대로 두면 놀고먹는 백성이 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며 어미
신분을 따르는 법을 양민 여자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면 모든 양민이 다 사천(私賤)으로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법대로 쓰고 지금의 정치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요,
순(堯舜)과 같은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있더라도 정치를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중봉(趙重峰)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선조(宣祖)에게 상소하기를 "저의 듣는 바에 의하면 중국은 전국의 도시가 바둑 점 놓이듯이 많아서 얼마인지를 알 수 없지마는 모두
다 걱정이 없이 안전하게 지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국의 백성으로서 양반의 신분을 가진 자 이외에는 농민과 장인이 아니면 군인이요, 농민과 장인들의 바친 세의 대부분이 군대
양성에 돌려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으로 분열되어 있을 때[三國鼎峙之時]에 다만 삼국끼리 서로 침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ㆍ말갈(靺鞨) 등이 번갈아 침입하여 해마다
전쟁에 죽은 군졸이 걸핏하면 만으로 헤아렸건마는 거의 패망하여 가다가도 다시 세력을 추켜세울 수 있었던 것은 노비 제도가 널리 보급되지 않고 전국 백성이 모두 동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려 이후로는 삼국을 통일하였으니 군사도 많고 힘도 강하여 어디에서나 승리하지 못할 데가 없을 것인데 걸핏하면 패배를 당하였고 결국 세력을 추켜세우지 못한 것은
노비 제도가 점차 보급되고 승려의 수가 날로 증가하여 등용되는 자가 적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조[我朝]에 이르러서는 군사 제도가 가장 고통스러워서 백성들이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을 둔 자가 자기 아들을 중[僧]으로 보내지 않으면 천한 여종[賤婢]에게 장가를 들이며 딸을 둔 자는 천한 남종[賤奴]에게 시집을 보내고 값을 받음으로써 족징(族徵)의 화를
모면하려 하며 더군다나 내수사(內需司)에 속한 종은 특별히 자기 집을 보존하게 되므로 빈궁한 백성들은 더욱더 앞을 다투어 내수사에 배속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새로 설치한
농장과 가호들은 모두 양반이나 내수사 노비[內奴]에 속한 농호요 평민 농호는 날마다 감소되어 갑니다. 그리하여 정군(正軍)의 현재 수는 20만 명이 못된다 하오니 비록 그들의 가족
중 장정을 전부 합쳐서 계산하더라도 40만 명이 못될 것입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이 수십만 명이 전부 정예병이라고 하더라도 고려 말엽과 같이 왜적의 선박이 호남 및 경기 황해
등지에 모아들고 몽고(蒙古)군과 홍두적[紅巾]이 평안도와 함경도 등지에 들락날락한다면 이 수십만 명으로 막아 내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 20만 명이란 숫자
중에서도 실지로 사용할 만한 군사는 천명도 못되니 어찌 하겠습니까! 아아! 안일한 생활을 너무 하다가 나쁜 틈이 생겨서 국방에 관한 대책이 이렇게 약하게 된 것입니다. 연전에
노비의 수가 너무 많다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저마다 자기 실속을 따지기 때문에 근본 문제를 구명하지 못하고 말았으니 저는 실로 애석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상고하여 보면 노비라는 이름은 본래 죄 있는 자를 잡아다가 노비로 만든 데서 생긴 것이요, 죄 없는 자를 노비로 만든 예가 옛날 법에는 없었다. 대체로 죄를 지어 노비로 된 자라도
그 죄가 자손에게까지 미치지 않았거늘 하물며 죄 없는 자를 노비로 만들 수 있겠는가?[중국 옛 법에는 범죄와 관련하여 노비로 잡혀 온 자라도 한 번 내지 두 번 면제하는 한도가
있어서 세 번 면제를 받으면 평민[良人]으로 되었고 설혹 자기 일생을 노비 노릇을 하더라도 노비의 신분이 자기 자손에까지 미치는 법은 없었으니 대개 처벌이 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원칙이다.] 우리나라의 노비법은 죄가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고 오직 노비의 가계[世系]만을 따져서 몇 백 대(代)를 내려가면서 노비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혹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라도 남의 생사를 좌우하는 권한을 가지고 혹 현명한 인재가 있더라도 노비 출신이라면 역시 남의 노비로 고정되고 마니 이것이 도무지 무슨 이치인가? 이 법이 어느 시기에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대개 고려 초기에 점점 성행하였고[삼국 이전에는 노비가 있었지마는 범죄나 도둑질하다가 잡혀 들어온 자와 전쟁 포로를 노비로 삼았으나 대대로 내려가면서 노비
노릇을 한 일은 없었던 듯하다. 고려 태조가 국토를 통일하였을 때에 외적을 쳐서 이기거나 반란자들을 토벌하고 나서 흔히 포로를 공신(功臣)들에게 주어 노비로 삼게 하였던바 이것이
세습 노비로 된 것이다.] 본조(本朝)에 이르러서는 노비법을 제정하고 또 평민을 노비로 끌어들여서 노비로 들어오는 자만 있고 면제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천인은 점차 많아져서 10에
8∼9나 되고 평민은 점차 줄어서 겨우 10에 1∼2만 남게 되었다.[지금 법에는 천인이 어미의 신분을 따지게 되어 있는데 아비가 천인이요 어미가 평민일 때에는 또 아비 신분을
따라 노비로 만드니, 이는 사람을 몰아다가 전부 노비를 만들자는 것으로서 노비로 되는 자는 있어도 면제를 받는 자는 없게 된다. 또 군사 제도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평민으로서
아들딸을 둔 자도 대부분 개인집 노비와 결혼을 시키므로 평민의 수는 점차 줄어든다. 그러므로 이 노비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수백 년이 못 가서 나라에는 반드시 평민이 없게 될
것이다. 지금 10에 겨우 1∼2할쯤 남은 평민이란 것은 도망한 노비이거나 양반의 서얼(庶孽) 중에서 아주 잔약한 자로 구성된 것뿐이다.] 그리하여 나라에는 국민이 없어져서 개인의
사유로 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송사가 10년이 걸려도 판결되지 못한 것이 있으며[노비가 재산으로 되었기 때문에 노비주의 일가 간에도 송사하는 자가 많다. 또 노비와
노비주[奴主]와의 송사를 보면 노비주의 말이 "저 놈이 나의 옛날 노비 아무의 자손입니다"라고 하면 노비로 지목된 자는 "나의 선조는 아무이며 그 이름이 아니다"라고 한다.
백성들의 가계를 사람이 다 알 수 없으며 또 그 문건의 진위(眞僞)를 밝히기도 어렵기 때문에 한 사람의 송사 사건에 백 명의 증인을 신문하는 일까지 있어서 10년간을 끌어도
해결하지 못한다.] 노비 한 명을 잡아내는 데 있어서 혹 도망한 노비의 일가 및 내외 친척 전부[九族]를 잡아다 가두고도 해결하지 못한 일까지 있게 되니[대체로 도망간 노비를
찾아낼 때에 그들의 족속에까지 침범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해독이 만백성에게 미치니 형편상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노비의 폐단이 극도에 달한
것으로서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이를 개혁하여 어미 신분을 따르는 법을 그대로 한결같이[양민 여자의 소생은 양민 신분을 따른다는 말임] 실행해야 한다. 만일 좋은
정치가 시행되어 모든 제도를 개혁하고 나쁜 습속을 없애 버리게 되면 노비법이 반드시 폐지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옛날에는 채지(采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재상이나 고급
관리들은 생활상 걱정이 없었으며 지금 중국에서도 일꾼을 삯 주고 부리는 풍속이 있기 때문에 양반으로서 가정생활을 할 때에는 노역에 종사할 사람을 둔다.[중국에도 노비가 있으나 다
노비 자신이 팔려서 품팔이와 같이 된 자이고 가계를 따져서 노비로 만드는 법이 없으며 대체로 남의 일을 해 주고 있는 자자신이 팔려 간 노비와 연한을 정하며 팔려 간 머슴꾼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법을 실행한 지가 오래이므로 이것이 습속으로 되었으며 관리나 선비[士]가 모두 노비의 힘으로 집 일을 꾸려 나가서 졸지에 혁파하기가
어렵다. 이후 점차로 풍속이 변하고 나라와 백성이 부유해지고 머슴꾼이 생기게 된 때에라야 노비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말한 폐지란 것도 노비를 졸지에 다 폐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현재 있는 노비 자신에 국한하고 자손의 대까지 상속하는 제도[世奴之法]를 폐지한다는 말이다.&lt;본래는 남녀 노비를 다 종[奴]이라고 하였다.&gt; 만일 이 법을
시행하려면 응당 일정한 등록 연, 월을 법적으로 제한하여 "지금부터 이전 어느 연, 월까지에 출생한 노비는 해당 노비주가 소속 관청에 보고하여 등록하고 또 그 문건을 관청에
보관하되 이 법정 기한 내에 등록하지 않은 것은 다시 수리하지 말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민심과 풍속은 중국 사람과 달라서 삯을 받고 머슴으로 되는 자가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한다. 지금의 형편으로 말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법이 변경되면 형편이 변하고 형편이 변하면 습속도 변하는 것인데 현재 습속에
구애되어 이런 이치를 모르고 있다. 지금은 노비에 대하여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고[우리나라 풍속은 노비에게 은덕과 의리로써 대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노비들의 기한, 고통에 대하여
이것은 노비의 운명이 그렇게 된 것이라 하여 구제하여 주지 않고 오직 형벌로 억누르거나 매로써 통제하며 그들을 죽이고 살리기를 마소와 같이 한다.] 노비가 아니면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노비가 아니면 남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으니 이렇게 된 형편에 누가 머슴살이를 하려 할 것인가?[형편이 지금 이렇지마는 머슴살이하는 자가 더러 있다.] 만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은덕으로 대우하고 노비의 세습 제도와 노비만이 고통을 받는 풍속이 없어진다면 빈한하고 미천한 사람으로서 자체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자가 모두 삯을 받고 일하기를 자청하게 될 것이니
어찌 머슴살이할 사람이 없을 것을 걱정하랴?[만일 노비가 점차로 줄어가면 윗사람의 아랫사람 대우도 점차로 은덕을 쓰게 될 것이니 백성들의 풍속도 점차로 개혁될 것이며 노비로서 천한
신분이 자기 일신에만 그치고 세습하는 제도가 없게 된다면 머슴살이하는 사람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필연코 자진하여 자기 일생의 고용살이를 지원하는 사람도 있게 될 것이다.] 대체로
사람이 이익 있는 데로 가고 손해되는 일을 싫다 하는 것은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나 다 같은 것이니 어찌 지금이라고 예와 다르며 우리나라라고 중국과 다를 리가 있겠는가? 만일
습속이 한번 개혁된다면 사람들이 새로운 습속을 좋아하기를 마치 지금 사람이 지금 습속을 좋아하는 것에 비할 바 아닐 것이다.[지금 중국 풍속에는 빈궁하고 무능하여 의탁할 데 없는
사람은 모두 남에게 머슴살이를 하여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데 머슴살이하는 자가 주인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주인도 사람을 선택하여 머슴을 삼는다. 그리하여 녹봉을 많이 받고 토지가
많은 사람은 일꾼을 수십 내지 수천을 둔 사람도 있으며 촌에서 사는 사람도 머슴꾼을 두는데 그 수효는 주인 가정의 빈부 여하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고급 관리[卿大夫]의 집에 있는
머슴꾼은 신분상 차이는 엄격하지마는 그 대신 의식이 넉넉하며 촌집에 있는 머슴꾼은 주인이 자식과 같이 보기 때문에 꼭 거지 신세가 되어서 머슴살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식을 많이
둔 백성들은 자식을 남에게 주어서 머슴살이를 시키는 자가 많다고 한다.

지금 형편으로 보면 머슴살이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있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전(公田) 제도를 실행한 뒤에라도 지금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공전으로
되는 때에도 녹봉이 관직의 품계에 따라 많고 적으며 토지에도 많고 적은 규정이 있으니 거기에서 생기는 귀천과 빈부의 차이가 더욱 명확히 구별된다. 비록 토지를 겸병하는 폐단이
없어지고 사람마다 균일한 분배를 받을 수 있으나 관리와 선비 이외에는 놀고먹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농사지을 사람이 더 많아지고 일할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또 국가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금지하지는 않지마는 자력으로 짓지 못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니 관리나 선비가 일을 시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할 것은 없다. 대체 공전법이란 다만 빈부를 귀천에 따르게
하며 귀천을 인재의 현명 여부에 따르게 하는 것뿐이며 기타 모든 제도의 차이는 지금의 예와 같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그 말은 옳다. 그러나 만일 아랫사람에게 은덕으로만
대하고 위압을 하는 일이 없다면 거기에서 상하 구별이 없어지는 폐단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한다. 예절이 밝아지면 계층의 구별이 자연 일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명률(大明律)』에는 머슴이 주인을 모욕하거나 주인을 관청에 고발하는 죄가 있으며 심지어는 주인의 먼촌 일가를 모욕하거나 관청에 고발하는 자에게까지도 죄를 주는 조항이 있다.
법령이 이렇게 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욕하리라는 것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그들에게 은덕으로 대하는 것과 그들과의 계층 구분을 두는 것이 본의에 있어서 서로 모순되는 것도
아니며 은덕 없이 아랫사람에게 대하여야만 꼭 계층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지금 중국에서는 머슴살이를 할 사람으로서 자기 희망에 맞지 않으면 애당초 들어가지를 않으며 혹 서로
약조한 기한이 경과하면 그만둔다. 그러나 일단 머슴살이를 하게 되는 때에는 조금도 주인의 명령에 위반하지 않으니 이것은 국가 법률이 있기 때문이다. 법률 규정이 이렇게 습속으로
되었기 때문에 머슴살이하던 사람이 혹 후일 높은 벼슬을 하게 되더라도 옛날 주인을 대할 때에는 반드시 극진한 존경을 표시한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현명한 자와 현명치 못한 자가
모두 자기에게 해당한 계층의 신분을 갖게 되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다 자기 희망에 따라 생활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윗사람은 은덕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게 되고 아랫사람도 그에
따라 더욱 충실하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게 될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는 노비에 대하여 형벌로만 억압하기 때문에 상전된 자[主者]는 매질을 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노비로 된
자[下者]도 충직하거나 근면한 자가 없는 것이다.] 이렇다면 노비로 된 자가 원통한 일을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전된 자도 앉아서 일꾼을 구할 수 있고 또 그중에서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부려서 일가 간에 노비를 다투어 송사하는 폐단이 없을 것이며 먼데까지 쫓아다니면서 잡아 오는 폐단이 없을 것이며 더군다나 권력가에게 청탁하여 의세하는 폐단도 없게
될 것이다.[지금 노비 중에서 불량한 자가 있더라도 내어 쫓기에 곤란한 일이 있으니 이는 만일 불량한 자라 하여 내어 쫓으면 선량한 자도 모두 못된 짓을 하여 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노비를 부리는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머슴으로 부리는 습속이 없기 때문에 이웃 마을에 머슴살이를 할 사람이 있더라도 서로 구하지도 않고 반드시 먼 지방에까지
가서 노비를 잡아 온다. 이 노비를 잡아 올 때에는 반드시 관청 위력에 의거하여 노비의 친척들을 잡아다가 엄한 고문을 들여대야만 그가 전날 자기의 노비이었던 증거를 자백하기 때문에
벼슬하고 세력 있는 자들은 편지를 띄우고 사람을 보내어 각지에 다니면서 폐단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세력이 없는 자는 세력가에 의존하여 뇌물을 주고 권력을 빌어서 천 리
지방에까지 찾아가기도 하나 잡아 오지 못한 자도 있으며 또 중로에서 살해를 당한 자도 있다.] 만일 아랫사람에게만 좋게 해 준다면 이것이 어찌 아주 정당한 일이라고 하겠는가?[무릇
지극히 공평한 도리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또 옆 사람에게까지도 모두 고루 좋게 해야 하는 것이니 어찌 지극히 공평하게 한다 하면서 미천한 사람[賤人]에게만 좋게 하면서
양반[士大夫]들에게 좋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노예에 관한 법을 개정하여 이렇게 한다면 이치와 인정에 모순되지 않으며 송사는 간략하게 되고 정치와 형벌이 깨끗하게 되어
풍속이 순후하고 예의가 밝아져서 백성이 편하게 살고 물산이 많아지며 식량이 충족하고 군대가 강하게 되는 성과가 개중에 있을 것이다.[지금 국가가 빈궁에 빠지고 군대가 적어서 국세가
발전되지 못하는 것은 이 노비법이 나쁘기 때문이며 강한 자나 약한 자가 서로 잡아먹고 송사가 잡하 되며 일가간에 서로 다투며 풍속이 못쓰게 되는 것도 모두 이 노비법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지금 동헌 마당에는 매가 가득하고 문서가 들어차서 지방 장관이 된 자는 땀을 흘리고 정신이 피로하여 정치나 교양에 대한 일은 생각조차 해 볼 시간이 없게 된
것도 모두 이 노비와 토지에 관한 문제 때문이다. 가사 신통한 관리가 있어서 이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명확한 판결을 내린다 하더라도 이것이 국가의 융성 발전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폐단을 개혁하면 국가사업이 잘되는 동시에 집집마다 넉넉히 살게 되며 백성이 안착 생활을 하고 물산이 풍부하게 되어 옛날 삼대(三代)의 정치 업적을 성취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관청에서 부리는 하인들이 할 직무에 대하여는 이미 그들에게 해당한 녹봉을 규정한 바 있으니 노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데려다가 대충할 사람이 없을까
염려할 것이 없다. 지금 각 기관과 각 고을에서는 모두 급료를 주지 않고 노비를 부리므로 수백 년을 두고 내려온 노비를 계산한다면 그 수효가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도망하여 일정한 숫자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비의 수가 많은 데는 정원수 이외에도 여유가 있어야 장관된 자가 자기 마음대로 그들의 노역을 면제해 주고 대가로 포를 받으나
노비의 수가 부족한 데는 1명의 노비가 7∼8명의 할 일을 부담하고 있어서 더욱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만일 부릴 일을 짐작하여 인원수를 결정하고 그들에게 녹봉을 주어 농사 대신
먹고 살게 한다면 어찌 이런 폐단이 있으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법을 실행한 뒤에 세상이 태평하고 인구가 많은 때라면 머슴살이할 사람이 없을까 걱정할 것이 없겠지마는 만일 난리를 겪은 뒤에 인구가 적고 토지가 많을
때라면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한다. 난리가 있은 후에는 의탁할 데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니 역시 머슴살이할 사람이 없지 않다. 또 난리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가정한다면
아무리 노비법을 그대로 지속한다 하여도 죽는 사람은 노비뿐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세상에는 자연 귀한 자[貴者]도 있고 천한 자[賤者]도 있는바 귀한 자는 남을 부리고 천한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이니 이는 변경할 수 없는 이치이며 또 변경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노비법을 개혁한 뒤에도 재상이나 관리 가정의 노비는 지금의 형편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삯을 주고 부리는 법은 귀하고 천한 자가 모두 자기의 자질 여하에 따라 직분을 갖게 되므로 사람들이 다 도덕과 은덕으로 행동하는 방향에서 노력할 것이며 노비 세습법은 빈부나 귀천에
관계되지 않고 귀천(貴賤)이 자기의 자질 여하에 관계되지 않아서 사람이 모두 재리의 쟁탈을 일삼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이 노비법은 토지 국유제[公田]와 인재
추천, 선발법[貢擧]과 더불어 다 동일한 사리인 것이다.

천하의 통례로 말하면 통치자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며 피통치자는 사람에게 부림을 받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부리는 사령(使令)과 노복을 많이 두는 것은 관직에 있는 자만이 그런
것이요, 가정에서 놀고 있는 자에게는 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관리의 임명과 파면이 일정한 규정대로 되지 않으며 관리로서 관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날이 없지 않기
때문에 전제(田制)에서 이미 관리의 품계에 따르는 규정을 두었으며 지금 풍속에도 머슴살이를 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한 모든 문제도 오늘의 정황을 고려에 두고 말한
것이다. 대체로 후세의 일이 옛날의 영지 제도와는 다르니 관리의 임명과 녹봉 제정을 꼭 옛날 제도와 같이는 못한다 하더라도 관리를 한 관직에 오래 두어야만 성과를 거두게 할 수
있고 관리의 녹봉을 후하게 주어야만 그들로 하여금 염치를 차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리를 자조 교체하고 녹봉을 적게 주는 것이 더욱 말할 수 없는 폐습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노비법을 폐지한다면 관리들의 녹봉을 후하게 주고 그들로 하여금 관직에 오래 있게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노비를 재산으로 삼고 있다. 대체 모든 사람은 다 같은 것인데 어찌 사람이 사람을 재산으로 삼을 수 있는가? 옛날에는 나라의 부유한 정도를 물을 때에 말의
필수를 가지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비록 옛날 영주들이 했던 말이지마는 그들로 다만 사람을 통치하는 일을 하였을 뿐이었고 사람을 자기의 재산으로 만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상대자의 재산을 물을 때에 반드시 노비와 토지를 얼마나 가졌느냐고 말을 하니 여기에서도 노비법이 나쁘고 이것이 고질로 된 습속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비법은 사리 상 옳고 그른 것을 본래 알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목전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모두 노비법을 개혁하기가 어렵다고
하거니와 국왕의 처지로 본다면 한 국가의 책임을 지고 모든 사람을 통치하는 것이므로 나라는 바로 자기 나라요, 백성은 바로 자기 백성인데 이러한 입장에서 어찌 따로 노비법을 두어
자기 백성을 해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노비법으로 인하여 노비의 이웃과 일가 간에까지 얼을 입히며 여러 백성에게까지 해독을 끼치게 하니 이것은 자신이 자기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으로서 잘하는 일인가 아닌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법을 개혁하려면 대번 개혁할 수 있는 것이요 원래에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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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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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隸凡奴婢從母役之法 畫一均用. 今法 公私奴婢從母役 而奴娶良女所生則又爲從父 是法不畫一而唯賤之從矣. 宜畫定其法 使有歸一 奴娶良女所生 亦從其母.按賤者 國俗 公私奴婢 謂之賤人. 從母之法
始於高麗靖宗時知母而不知父 禽獸之道也. 人類而處以禽獸豈法也哉? 然原其非法之所自則國俗之使賤人 多驅勒無容 無異牛馬鷄犬 旣使之如此 而欲從父則奸亂之訟 不勝其煩故 不得已如是耳.
然則非從母法之非 乃奴婢法之非也. 卽奴婢以世之法. 至於後世則仍其從母 而母若良女則又使從父爲賤 是法不爲法而唯驅人入賤矣 非法之中又非法矣.各司ㆍ各邑奴立役者 皆給廩料. 立役者 皆有常廩
其數見祿制. ○京各司奴立役者 數小則勿如今選上輪立 以可合者 擇來使居本司下.其不立役者 身貢. 夫土物所獻 謂之貢 人身無有所謂貢者 而本國 奴婢外居者 納身役之價 謂之身貢. 奴綿布二疋 婢一疋
皆納司瞻寺凡京外立役數外奴婢則本司本官不得私自收貢 皆歸於該司. 其爲束伍軍者 免貢. 入束伍者 全免其貢 保夫及牧子ㆍ雜色軍並同. ○奴婢年十六以下及六十以上者 篤疾廢疾者 子女三口以上貢役者
免其貢役. ○私奴入束伍者 當全免其貢 而奴婢未罷之前 勢有所難行 宜令減奴一疋可也.各司奴婢過數者 卽立役數外. 許移給他司之不足處及賜牌. 其外居奴 若本邑不足則許移屬其邑而免其貢.
各邑則許移給旁邑之不足處. 驛同.公私奴爲束伍軍者試才 累度居魁則特許免賤. 私奴則公給其代或給價 此條詳見兵制.今之京各司 多無見存奴婢 而奴婢之役 上番軍士及貢物主人 代爲之 宜令典僕 居在本司下
依例立役. ○外方各營ㆍ各邑及鄕校ㆍ各驛奴婢 皆令居於本營ㆍ邑ㆍ驛底 其久徙不便刷還者 移錄於所居邑. 若有私自收貢 或放役收價者 官員論罪 依放軍收布律. 田制行然後 可絶此弊.宜祖朝
栗谷啓言公賤選上之苦曰"選上本意 非欲辦出綿布也 在京典僕 不足於立役故 以在外公賤 輪立京役 名之曰選上. 貧殘公賤 褁糧覊留 侵苦萬端 有所不堪. 始以綿布償役 今則只徵綿布而已 無一人來役者矣
民生日困 戶口日耗. 公賤亦民也 豈能獨完? 輾轉流亡 不能生息 而一償選上之役則其免敗家者鮮矣. 二年納貢 一年選上 大率三年必一敗家而公賤之苦極矣. 加以該曹色吏 分定不均 雖奴婢衆多之邑
有賂則小定. 雖僅存數口之邑 無賂則多定. 力不能支則侵及一族 齊民亦被其苦矣. 旣困之後 雖公明均定 亦不能救矣 若不變通 後患無窮. 臣愚以爲改身役而受綿布 已非大典之法則今亦廢選上而加身貢也.
願命該官 詳考奴婢案 據其現存之數 每年奴貢納綿布二疋 婢貢一疋半 都計幾何 以其五分之二儲于司贍寺 爲國用 以其五分之三 分給各司 以準選上之役 綿布不足則量宜減立役之數.
夫如是則公賤有定貢可以預備 無猝辦之患. 收貢有定簿 無所刪改 絶奸吏之術 號令不煩而民受實惠矣."(大典 各司奴貢納綿布一匹 楮貨二十張 婢綿布一匹 楮貨十張 或以綿紬正布代納者聽
皆納于司贍寺.)○栗谷曰"當今田不改量 陳荒之地 未免於收稅 釋敎尙存 游手之民 未反於田畝. 從母之法 不用於良女 而良民盡化爲私賤. 由今之道 無變今之政 雖堯舜在上
亦將無以爲治矣."趙重峯奉使中國而還 上疏於宣祖曰 "臣窃聞 中國四邊之城 碁布星羅 不知其數 而能保固無虞者 以混天下之民士夫之外 非農工則軍 而農工所作 多歸於養軍故也. 三國鼎峙之時
不惟自相侵伐而日本ㆍ靺鞨 迭擧入寇 歲歲戰亡之卒 動以萬數 而能垂斃而復振者 以奴婢之法 不廣於世而一境之民都爲上用故也. 高麗以後 統合三國 宜乎兵衆力强 無往不克而動輒敗北 卒以不振者
實由奴婢漸廣 僧徒日滋而爲上用者寡也. 及乎我朝 軍役最苦 民不堪支 有子者 不許山僧則娶賤婢爲妻. 有女者 嫁賤奴而受直 冀免一族之侵. 况如內需之奴則特完其戶 窮民之殘破者 尤爭投屬.
目今新闢之田 新立之戶則都是兩班與內奴之田戶 而良民田戶則日見消縮正軍之數 不滿二十萬云. 雖幷戶率而計之 不滿四十萬矣. 噫! 此數十萬者 雖或盡是精兵 設如前朝之季 倭船雲集於下三道ㆍ圻黃之境
蒙古ㆍ紅巾 蜂午於兩界之地則以此數十萬 不能分禦也明矣. 况於二十萬之中 實無千人之可用者乎? 嗚呼! 恬嬉之極 釁孽旁成 制變之具 踈弱如是. 年前雖有奴婢 太多之議 而各牽於私 未究其本而止
臣實痛惜也."按奴婢之名 本起於以罪沒入 無罪而使爲奴婢 古無其法也. 夫以罪沒入者. 亦不罰及後嗣 况無其罪者乎? 中國古法 雖以罪沒爲奴者 有一免再免之限 至三免則爲良人. 雖有終身爲奴者
亦無及於其子之法 蓋罰不及嗣之義也. 本國奴婢之法 不問有罪無罪 唯按其世系而百代爲之奴. 是以或無知賤夫而制人死命. 設令賢才出於其間 而亦錮爲人奴 此豈理也哉? 未知此法
何時作俑而蓋漸盛於高麗之初. 三國以前 雖有奴婢 而唯以犯罪贓盜沒入 及戰鬪被俘 而似是無世世爲賤之事. 麗祖統合時 克敵討叛 多以虜獲 給功臣爲奴婢 仍使世世爲奴. 至於本朝則制法 又驅人入賤
有入無出 故賤者漸多 十居八九 良人漸少 僅存一二. 今法 賤人旣爲從母 而若父賤母良則又爲從父爲賤 唯驅人入賤 有入無出. 又軍役尤苦 故民有子女嫁娶 多與私賤而良民漸小矣. 此法不待數百年
國必無民. 而今之僅存一二者 蓋奴婢逃匿者及兩班庶孽之殘微者耳. 非但國無公民 盡爲私有 一人之訟 或爭辨十年而不決 奴婢旣爲財物 故族親爭訟者固多.
又其奴主相訟者則主者曰"彼乃吾舊奴某之子孫也."奴者曰"吾祖先 乃某人而非此名也."小民系派 人不可盡知而文記眞僞 又難以辨 故一人之訟 至於百人驗問 十年持久而不能決者. 一奴之捉 或侵擾九族而未已
凡奴婢推捉 非侵其族屬則不可得 故囚繫之害 及於萬民而其勢無已. 此其弊極勢窮 不得不變者也. 卽今變通之 宜當仍其從母之法 均用晝一 謂良女所生則從良. 可也. 而如王政已行
正百度而洗偏陋則奴婢之法 在所必罷較然矣. 然古者封建釆地 故卿大夫不患無其養. 今之中國 有傭役雇工之俗 故 士夫之家居者 亦有代勞之人. 中國雖有奴婢 皆自賣爲傭者 無按系爲奴之法. 大槩爲人役者
唯傭奴及限年雇工者云. 本國則此法 行之已久 習舊俗成 大夫士皆賴此而家 難可猝革. 必風俗漸變 上下漸厚 雇工漸興然後 乃可罷之. 所謂罷者 亦非卒然盡罷 見在奴婢 但令止於見在者而罷其世奴之法.
(男女本皆稱奴.) ○若行此法則當限立法年月 自今已前所生者 各令其主 告官立案 且藏於官 非此 後勿聽理. 或曰"本國民心風俗 不比中國 人無爲雇工者奈何?"曰在今言之 孰不以爲如此哉? 然
法變則勢變 勢變則俗從而變 是皆溺於今而不知此者也. 今夫奴婢 人之待之也. 不以人道 國俗 待奴婢絶無恩義 飢寒困苦以爲其分 而不之恤 唯馭以刑法 驅以笞杖 生殺有同牛馬. 而非奴婢則人不之役
非奴婢則不役於人 風俗如此 孰肯爲雇工哉? 今如此而亦往往有爲雇工者. 若上之待下 旣有恩義而無奴婢之世錮 無奴婢之偏寃. 風俗如此則凡貧下不能自立者 皆將自求傭役矣 豈患雇工之無其人哉?
若奴婢漸小則上之待下 自然漸有恩義. 如此則民俗 亦自變 若奴婢役 止其身 而無世世傳賤之法則非但雇工人之衆 亦必有自願終身爲傭者矣. 夫趨利避害 萬古天下之同情 豈有今異於古 東方異於中國之理哉?
俗苟變矣則人之安於彼也 不啻今之習於此也. 今中國之俗 貧窮庸下及無依者 皆求爲人雇工 而食於其力 不但爲雇工者 擇主家而爲之 主家亦擇人爲之雇工. 祿厚田多者 雇工至於數十百千. 村居之人
亦有雇工而多寡皆隨其厚薄貧富. 卿大夫之家 名分雖嚴 衣食周足 村民之家 視之如子. 以故 不必乞丐之人爲之 民之多子者 亦多與人爲雇工云. 卽今事勢則固然矣. 雖論以公田旣行之後 亦無所異於今.
何者? 公田之時 亦祿有高下之品 田有多寡之科. 其有貴賤 貧富則尤整然有常 雖無兼幷 人得均受而大夫士外 無游食之人 故農者益衆而人常有剩矣. 又况天下雖無禁馭 而不能自立者 自不爲無人 大夫士
不患无代役之人矣. 蓋公田之法 但令貧富隨貴賤 貴賤隨賢愚而已 其他凡百儀等之差 與今例 皆一樣耳.曰"是則誠然矣. 若一以恩恤 而無所威制則其無上下無分之弊"曰禮法明則尊卑之分 自定矣.
是以律有"雇工罵家長 告家長之罪 以至罵告家長之緦麻親者 亦皆有罪."法敎旣如是則凌慢之患 非所慮也. 有恩與有分 本不相悖 非必無恩而後 乃有分也. 今中國雇工之人 其不願者則初不爲之
或限滿不復而已. 在其家時則不敢少有違慢 以有國法故也. 法敎如是而因以成俗故 雇工後或貴顯 若値舊主 必極尊之. 苟如是則賢愚皆得其分 上下各獲其求 上使以恩義而下亦有忠勤者 今奴婢 唯以刑法把持
故爲主者 不得不御以鞭笞 爲下者 亦絶無忠勤者. 非唯賤者 無寃抑之事 爲主者 亦坐而得人 擇人而使而無骨肉爭訟之弊 無遠地推捉之弊 無請囑借力之弊 今奴婢 雖有不良者 難於退黜者 若以不良見黜
則善者皆將爲不善而求黜 故不能也. 且今奴婢 外旣無傭役之風 故雖有隣里可傭之人 而彼此皆不相求 必經越遠地而推捉奴婢. 其推捉也 必憑藉官威栲其隣族而後 乃可現出 故貴勢者 不免飛簡發差 作弊八方.
無勢者 請托行賂 借人之力 往赴千里而多有不得推捉者 又或有中路見害者. 豈非至公至當之道哉? 凡至公之道 上下左右 無不均宜 豈有至公而偏利賤人 不便於士大夫乎? 苟如是則天理得人情順 詞訟簡
政刑淸 風俗厚 禮義行而民安物阜 食足兵强之效自在其中矣.今 國貧兵削 不能自振者 奴婢法之故也. 强弱相呑 爭訟煩多 骨肉相猜 風俗壞敗者 亦皆奴婢法之故也. 當官者鞭笞滿庭 簿牒雲委 揮汗疲精
不暇念及於政敎者 大抵皆奴婢田地之事也. 假使一一得人 神明剖決 亦何有益於天下國家之治亂乎? 此弊已袪則國理家給 民安物阜 三代之治不難致矣. ○若夫官府僕隸之任則旣有定祿
不待奴婢而自不患無充立之人矣. 今各司各官 皆役以奴婢 不給料 故積至數百年 奴婢宜不可勝計 而逃散無定. 或數多之處則額外有餘 而爲官者私自放役收布. 不足處則一人至兼七八人之役 而尤不勝其苦.
若令酌事定人 有祿代耕則豈有此弊哉?或曰"此法 世平人衆之時則不患無傭役之人 若亂後人稀田曠之際則似難有矣."曰亂後 人多無依 亦不無其人. 且以亂離死亡之餘 言之則雖有奴婢法 人之死亡者
獨非奴婢乎. 大槩 天地間 自有貴者 有賤者. 貴者役人而賤者役於人 此不易之理 亦不易之勢. 奴婢改法之後 卿大夫之家 與今日事亦無相殊. 但傭役之法則賢愚貴賤 各得其分而人勸於德義.
世役之法則貧富不繫於貴賤 貴賤不繫於賢愚 而人勸於爭奪 此其所異也. 此與公田貢擧 皆一貫事理也.天下之通義 只是治人者 役人 治於人者 役於人而已. 是以 使令之盛 僕隸之衆 唯在官者爲 然
若夫家食者則本非所當論也. 但後世 除罷不常 大夫不無無官之日 故田制旣置品級之科 風俗亦有傭役之事. 凡上所論 亦因今形勢而言耳. 蓋後世 事異封建 任官制祿 縱不能一如古制 亦必久任而後 治效可責
重祿而後 廉恥乃行. 至於本國則數遞輕祿 尤爲極弊 若罷奴婢 尤不可不久任重祿.今我國以奴婢爲財. 夫人者同類 豈有人以人爲財之理? 古者 問國之富 數馬以對 是雖天下諸侯
只是爲理人之任而未嘗以人爲己財物也. 今本國之俗則問人之富 必以奴婢ㆍ田地爲言 於此亦可見其法之非而俗之痼也.我國奴婢之法 其事理是非 本非難知 而凡人則各蔽於目前私意 皆以爲難改矣.
若夫人君則代天理人 國是吾國 民是吾民 豈可更於其間 別作奴婢以害吾民乎? 因此 侵及隣族 流毒衆庶 是自病其國也. 其爲得失 不待言而見矣 此則欲改便改 元無難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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