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hema: "bangye-translation-original-pair/v1"
pair_id: "bangye-26-005"
document_sequence: 26
pair_index: 5
pair_count_in_document: 6
title: "ㅁ) 양로(養老)"
status: "complete"
pair_kind: "structural"
document_title: "반계수록 권지26(卷之二十六)"
volume_title: "속편[續篇] 하(下)"
translation_language: "ko"
original_language: "classical_chinese"
role_order: ["translation", "original"]
boundary_method: "unicode-script-runs-v1"
contains_embedded_bilingual_figure_labels: false
source_hwp: "raw_sources/[반계수록] 권26 續篇 下.hwp"
source_hwp_size: 174592
source_hwp_sha256: "56eea412e334d01ae36460a6b36b4c91113688051f1133f60c768feabf6df9e6"
source_markdown: "source_mds/26_권26_續篇_下.md"
source_markdown_sha256: "8ca2bba9c517f974fb121e1eb5f6179b6690a144ff6e68d301bbdc7713d30dec"
hwp_version: "5.0.3.4"
extractor: "pyhwp 0.1b15"
translation_source_spans: [[91, 97]]
original_source_spans: [[99, 99]]
translation_chars: 4709
original_chars: 1697
translation_sha256: "520f6529c5c5a4148e32b7af745efbb809b1c85d0aae089bb10071f7c51d80ee"
original_sha256: "df4a8c6cafe0c1b29ba522dd9f68d7055622d661025ac1b4aba4feaa4ce25019"
translation_images: []
original_images: []
---

# ㅁ) 양로(養老)

<!-- PAIR_START id="bangye-26-005" -->

## 한국어 번역문

<!-- ROLE_START name="translation" lang="ko" pair_id="bangye-26-005" -->

ㅁ) 양로(養老)

양로하는 의례는 매년 가을에[혹은 봄에] 임금이 성균관에 가서 시학(視學)할 때에 양로 의례를 행하는데 이때에 전국 노인들에게 쌀과 고기를 하사한다.[80세 노인과 90세 노인에게
각각 차등이 있게 주며 사대부(士大夫) 노인에게는 솜과 비단을 더 준다.]

임금이 시학할 때에는 공자묘에 참배하는 의식이 있는데 절차는 지금 알성(謁聖) 시의 의식과 같다.[『예기』에 의하면 천자가 시학을 한 다음 해당 관리로 하여금 전례에 의하여
공자묘에 제사를 지내게 한다. 관리가 제사를 마치고 복명을 하면 천자가 동쪽 서재[東序]에 가서 죽은 노인[先老]들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삼로(三老), 오경(五更), 여러
노인[羣老]들의 자리를 정한다고 하였는데 주석자가 말하기를"처음 세우는 학교가 아니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이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없으니 더 자세히 상고해야
하겠다.]

｢당지(唐志)｣에 기록된 양로 의례는 8월에 좋은 날을 가리어 황제가 몸소 삼로와 오경을 태학(大學)에서 접대하는데 해당 기관에서 미리 삼사(三師)와 삼공(三公)으로서
치사(致仕)한 노인들 중 도덕이 높고 연령이 제일 높은 사람 1명을 삼로(三老)로 정하며 다음가는 사람 한 명을 오경(五更)으로 정하며 5품 이상으로서 치사한 노인을 국로(國老)로
정하며 6품 이하로서 치사한 노인을 서로(庶老)로 정하여 상식(尙食)이 음식을 준비한다. 하루를 전기하여 상사(尙舍)는 학교 후면의 적당한 곳에 천자의 자리를 설정하고 삼로와
오경의 자리를 남문 밖 서쪽에 설정하고 다른 노인들의 자리를 그 뒤에 설정하되 다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문관의 자리는 문밖 동쪽에 정하고 무관의 자리는 여러 노인들의 좌석 서쪽에
정하되 줄을 겹쳐서 동쪽 사람은 서쪽을 향하고 서쪽 사람은 동쪽을 향하게 하여 다 북쪽이 첫 자리로 한다. 또 천자의 자리[御座]를 학당 위의 동쪽 방에 정하여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왕골자리와 무늬 있는 자리를 깔며 삼로의 자리는 서쪽 기둥 쪽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치게 정하여 남쪽으로 향하게 하며 오경의 자라는 서쪽 층계 위에 정하여 동쪽으로 향하게
하며 국로 3명의 자리는 삼로의 서쪽에 정하되 다 잇대지 않게 하여 모두 왕골 자리와 무늬 있는 자리를 깔며 여러 노인들의 자리는 학당 밑 서쪽 층계 서쪽에 정하되 동쪽으로 향하여
북쪽을 첫 자리로 하며 그들의 위치에 모두 검은 포[緇布]로 선[純]을 두른 부들자리를 깔고도 왕골자리를 덧깐다. 그리고 태악(太樂)이 궁현(宮縣)을 뜰에 차리고 등가(登歌)는
대청 위에 차리며 전의(典儀)는 문, 무관 5품 이상 관리의 위치를 궁현을 놓은 동쪽과 서쪽에 정하고 6품 이하 관리의 위치는 그 남쪽에 정하는데 모두 겹줄로 하여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북쪽을 첫 자리로 한다. 제후[蕃客]들의 위치는 6품 이하 관리의 위치 남쪽에 정하고 모든 주의 사신들의 위치는 9품 관리의 뒤에 정하고 학생들의 위치는 문, 무관 뒤에 각각
정하며 문 밖에 설 위치도 이상의 위치와 같이 정한다. 또 술동이를 동쪽 기둥의 서쪽에 두는데 북쪽으로 향하여 왼쪽에 현주(玄酒)를 놓고 오른쪽에 잔대[坫] 받친 잔을 놓는다. 이
날 천자의 수레가 곧 당도하게 되면 먼저 와 있던 관리들이 문 밖 자기 위치에 나가  서며 학생들은 모두 푸른 옷을 입고 자기 위치에 선다. 천자의 수레가 태학(太學) 문 앞에
당도해서는 수레를 돌려 남쪽으로 향한다. 이때에 시중(侍中)이 꿇어앉아 천자를 수레에서 내리라고 아뢴다. 천자가 내려서 자기 자리로 들어가면 따라온 5품 이상의 문, 무 관리들이
다 문 밖 자기 위치에 선다. 태악령(太樂令), 악공 두 명의 춤추는 사람이 들어가면 여러 관리들과 외국 사신들이 차례차례로 들어간다. 처음 천자의 수레가 궁문을 나올 때에 시간을
타산하고 사신을 보내어 삼로와 오경을 각각 자기 위치로 맞아 오는데 삼로와 오경은 모두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안거(安車)를 타며 호위 인원이 그들의 앞뒤를 따른다. 국로
서로들에게 해당 관리가 미리 통치하여 오게 한다. 천자의 수레가 태학에 도착하면 삼로, 오경 밎 여러 노인들이 모두 모여드는데 여러 노인들은 자기에게 해당한 의복들을 입는다.
태상소경(太常少卿)이 삼로 오경을 부축하여 그들과 함께 나와서 학당 남문 밖 서쪽으로 안내하여 동쪽을 향해 서게 하는데 북쪽이 첫 자리로 된다. 봉례(奉禮)가 여러 노인들을
부축하고 나와서 삼로와 오경의 뒤에 서게 하며 태상박사(太常博士)는 태상경(太常卿)을 인도하여 학당의 북쪽 창문 안으로 올라서 북쪽을 향하여 창과 마주선다. 시중(侍中)이 판을
들고"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아뢰면 황제가 문밖으로 나간다. 전중감(殿中監)이 대규(大珪)를 올리면 황제가 대규를 잡고 문밖 동쪽에서 삼로를 맞아 서쪽을 향해 선다.
시신(侍臣)들은 황제의 뒤를 따라 서고 태상경은 박사와 함께 왼쪽으로 물러선다. 삼로와 오경이 다 따라 서면 두 사람이 삼로와 오경의 좌, 우에서 부축하며 태상소경이 앞에서
인도하고 돈사()는 붓을 잡고 여러 노인들과 오경은 지팡이를 짚게 하여 북쪽을 첫 자리로 하여 문 서쪽에 서며 봉례가 여러 노인과 수원을 인도하여 그 뒤에 세운다. 태상경이 황제의
앞에 나아가 두 번 절하라고 아뢰면 황제가 두 번 절하며 삼로와 오경이 지팡이를 놓고 옷을 여미면서 답배한다. 황제가 읍(揖)을 하면서 앞으로 나오면 삼로는 앞에 서고 오경은 그
뒤를 따르는데 처음과 같이 지팡이를 짚으며 좌우에서 그들을 부축하여 층계에 이른다. 황제가 읍을 하면서 올라가면 모두 황제의 좌석 뒤로 가서 선다. 황제가 서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면 삼로는 남쪽을 향하여 답배하며 황제가 또 서쪽을 향하여 오경에게 숙배(肅拜)하면 오경도 숙배로 답례하고 모두 앉는다. 삼공(三公)은 노인들에게 궤(几)를 주고 구경(九卿)은
신들을 바로 놓으며 전중감, 상식(尙食), 봉어(奉御)가 진수성찬과 밥을 가져오면 황제가 그것들을 살펴보고는 곧 삼로의 앞에 차려 놓는다. 황제가 삼로의 앞으로 가서 잔을 들고
술을 권한 다음 술동이 있는 데로 가서 잔을 들면 시중이 술을 부으며 황제가 앞으로 나아가 술잔을 잡고 술로 입가심을 한다. 상식과 봉어가 순차에 따라 오경의 앞에 여러 가지
반찬과 주식을 차려 놓으며 국로, 서로들이 다 앉으면 또 그들 앞에 주식을 차려 놓고 모두 먹게 한다. 황제가 자기 위치로 가 앉으면 삼로가 경서, 교훈과 좋은 말들을 논술하고
황제는 허심하게 배우기를 청하며 돈사(敦史)는 붓을 잡고 좋은 말과 아름다운 행실에 대한 것들을 적는다. 의식이 끝나면 삼로 이하 노인들이 연석에서 내려온다. 태상경이 황제를
인도하여 삼로를 따라 내려와 층계 앞에 서서 머뭇거린다. 삼로와 오경이 나온 뒤에 황제는 다시 층계 대 위에 올라선다. 삼로와 오경이 문으로 나간 뒤에 시중이 황제 앞에 나아가
의식이 끝났다고 아뢰면 황제가 내려와서 임시 좌기하는 장소로 돌아오며 삼로와 오명은 안거를 타고 수종꾼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돌아가고 여러 관리들과 학생들도 차례로 나온다. 그
이튿날 삼로가 대궐에 들어가 표문을 올려 감사의 뜻을 표한다.

상고하여 보면 양로 의식[養老禮]을 해마다 거행하지 않더라도 노인들에게 주는 쌀과 고기만은 매년 예조에서 국왕에게 보고하고 이를 집행한다.[서울이나 각 지방에서는 다 호적에 기입된
연령을 표준하여 이 일을 시행한다.]

지금 제도에 양로연(養老宴)에 관한 규정이 있어서 매년 9월에 잔치를 배설하는데 귀천과 양반 평민을 불문하고 나이 80이상 된 자는 전부 여기에 참가하며 부인들에 대하여는 왕비가
궁내에 연석을 배설하고 있다. 이것이 노인을 우대하는 본의라고 하겠지마는 고례(古禮)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옛날 노인들을 대우하던 예절은 극진하였었다. 대체로 전국에 노인이 물론
많으니 그들을 위하여 일일이 다 잔치를 배설해 줄 수는 없다. 그들 중에서 덕행이 있는 노인을 선택하여 천자가 태학에서 몸소 대접하고 보통 노인과 평민들에 대해서는 전례에 따라
쌀과 고기를 주어 위안시킬 따름이다. 이 양로 의례를 집행함에 있어서 천자가 직접 젊은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풍속을 숭상함으로써 전국의 모범이
되게 하는 것이요 백성들은 이 효성과 우애에 고무되는 것이다. 이렇게 효성과 우애에 대한 도덕적 기풍이 전국에 확립되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해하지 않고 수가 많다 하여 수가
적은 쪽을 억압하지 않으며 상부에 접근하고 윗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미풍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로의 예절이 중요하고 그 규정이 명백하며 그 의의가 심원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로연이란 원대한 의미에서 존경한 행동으로써 노인을 사랑해 주고 의식으로 존경을 표시하며 또 의리로써 일관하고 친애하는 심정으로써 의식을 마치는 것이니 이 한 가지
일을 거행하여도 거기에는 모든 도덕이 다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모든 평민의 노인들까지 대궐 뜰에 모아 놓고 잔치를 한다면 효성과 우애성을 발양시키는 아름다운
풍속은 나타나지 못하고 공연히 잔치와 풍악만을 즐기게 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잔치를 하게 되면 장소가 난잡하고 규율이 없어서 예절을 제대로 찾기가 곤란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80∼90세 되는 남녀를 다 연석에 참가시킨다면 노인을 편안하게 대우하는 도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니 옛날의 예절에 비교하면 그 차이가 이만저만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 제도에
있어서는 혹 고금이 서로 비슷한 점은 있으나 그 제도를 실행함에 있어서 각각 방법이 같지 않고 성과도 자연 천양지차[天壤之判]가 있게 된다. 임금 된 자가 만일 국가를 잘 다스릴
생각을 가진다면 어찌 또한 예절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 ROLE_END name="translation" pair_id="bangye-26-005" -->

## 한문 원문

<!-- ROLE_START name="original" lang="classical_chinese" pair_id="bangye-26-005" -->

養老養老禮. 每歲秋 或春. 人君視學乃行養老之禮. 於是 賜境內老人米肉. 八十者 九十者有差 士大夫加絮帛.視學 有拜聖之節 如今謁聖時行禮儀. 按禮"天子視學 乃命有司
行事興秩節祭先師ㆍ先聖焉. 有司卒事反命 適東序釋奠於先老 遂設三老ㆍ五更ㆍ羣老之席位焉."而疏家謂"非始立學則不釋奠." 未知是否當更詳之.唐志 養老禮 仲秋吉辰 皇帝親養三老ㆍ五更於大學.
所司先奏三師ㆍ三公致仕者 用其德行及年高者一人 爲三老 次一人 爲五更 五品以上致仕者 爲國老 六品以下致仕者 爲庶老. 尙食具牢饌. 前一日尙舍設大次於學堂之後 隨地之宜 設三老ㆍ五更次於南門外之西
羣老又於其後 皆東向. 文官於門外之東 武官在羣老之西 重行東西向 皆北上. 又設御座於堂上東序 西向 莞筵藻席. 三老座於西楹之東 近北南向. 五更座於西階上東向 國老三人座於三老西 皆不屬焉
皆莞筵藻席. 衆國老座於堂下西階之西 東向北上 皆蒲筵 緇布純加莞席. 太樂令展宮縣於庭 設登歌於堂上. 典儀設文武官五品以上位於縣東西 六品以下 在其南 皆重行西向北上. 蕃客位於其南 諸州使人
位於九品之後 學生分位於文武官之後. 設門外位如設次. 又設尊於東楹之西ㆍ北向 左玄酒右 坫以置爵. 其日 鑾駕將至 先置之官 就門外位 學生俱靑衿服入就位. 鑾駕至太學門 回輅南向
侍中跪奏"請降輅"降入大次. 文武五品以上 從駕之官 皆就門外位. 太樂令工人二舞入 羣官ㆍ客使以次入. 礿 鑾駕出宮 量時刻 遣使迎三老ㆍ五更於其次 三老ㆍ五更 俱服進賢冠 乘安車 前後導從.
其國老ㆍ庶老則有司預戒之. 鑾駕旣至太學 三老ㆍ五更及羣老等 俱赴集 羣老各服其服. 太常少卿贊三老ㆍ五更 俱出次 引立於學堂南門外之西 東面北上. 奉禮贊羣老出次 立於三老ㆍ五更之後.
太常博士引太常卿 升立於學堂北戶之內 當戶北面. 侍中版奏"外辦"皇帝出戶. 殿中監進大珪 皇帝執大珪 降迎三老於門外之東西面立 侍臣從立於皇帝之後. 太常卿與博士 退立於左 三老ㆍ五更皆從立.
二人夾扶左右 太常小卿引導 敦史執筆以杖各老五更於門西東面北上. 奉禮引羣老隨人 立於其後. 太常卿前奏"請再拜"皇帝再拜. 三老ㆍ五更 去杖攝齊答拜. 皇帝揖進 三老在前 五更從 仍杖 夾扶至階
皇帝揖升 俱就座後立 皇帝西面再拜 三老南面答拜. 皇帝又西向肅拜五更 五更答肅拜 俱坐. 三公授几 九卿正履. 殿中監ㆍ尙食ㆍ奉御 進珍羞及黍稷等 皇帝省之 遂設於三老前. 皇帝詣三老坐前 執爵而饋
乃詣酒尊所 取爵 侍中贊酌酒. 皇帝進執爵而酳 尙食ㆍ奉御以次進珍羞ㆍ酒食於五更前. 國老ㆍ庶老等皆坐 又設酒食於前 皆食. 皇帝卽坐 三老乃論典訓ㆍ格言 皇帝乃虛躬請受. 敦史執筆 錄善言ㆍ善行.
禮畢 三老ㆍ以下降筵 太常卿引皇帝 從以降階 逡巡立於階前. 三老ㆍ五更出 皇帝升立於階上. 三老五更出門 侍中前奏"禮畢"皇帝降還大次. 三老ㆍ五更 升安車 導從而還 羣官及學生等以次出. 明日
三老詣闕表謝.按養老禮 雖不能歲常行之 賜老人米肉則每歲 禮部啓稟擧行. 京府各邑 皆以戶籍 校年施行.今制 有養老宴 每歲季秋行宴 無論貴賤士庶 八十以上者 皆赴. 婦人則王妃設內廳行宴
是雖優老之意 然而與古禮殊不合. 古養老之禮至矣. 蓋天下 老者固衆 不可人人而饗之 擇其有道者而天子親饗於太學 其衆老ㆍ庶人則因以致賜米肉以安之而已. 是禮也 天子親執少者之禮 隆以孝悌之道
以爲天下則而民莫不興於孝悌 孝悌之道 立於天下而强不犯弱 衆不暴寡 親上死長之風成矣. 是故 其禮重 其道著 其意深遠矣. 故曰慮之以大 愛之以敬 行之以禮 紀之以義 終之以仁 一事而衆德備焉者也.
若無論衆庶 聚宴于闕庭則興孝敬悌之道 不著而徒然宴樂之而已. 且其爲宴也 將雜沓無章 難爲成禮. 而今 耄期男婦 咸來赴會則亦有妨於老者安之之道 其視古禮不啻有相懸者矣. 蓋凡古今之制其事雖或相近
其所以制事之本 固各有在而其效之歸 亦自有天壤之判 人君如有治其國家 盍亦反於禮乎?

<!-- ROLE_END name="original" pair_id="bangye-26-005" -->

<!-- PAIR_END id="bangye-26-0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