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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ㅂ) 양로에 관한 역사적 고찰[養老攷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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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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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양로에 관한 역사적 고찰[養老攷說]

『예기』를 보면 "순 임금[虞氏]은 심의(深衣)를 입고 노인을 접대하였는데[養老][양로(養老)하는 옷은 모두 그때의 임금이 뭇 신하(臣下)들과 잔치할 때에 입는 옷이니
유우씨(有虞氏)는 질박하여 심의(深衣)를 입었을 뿐이다. 공영달(孔穎達)은 이르기를"임금의 양로(養老)함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곧 삼로(三老)ㆍ오경(五更)을 접대하는
것이고, 둘째는 곧 자손이 나라를 위하여 난리에 죽으면 임금이 죽은 사람의 아버니나 할아버니를 접대하는 것이고, 셋째는 곧 벼슬을 물러나간 노인을 접대하는 것이고, 넷째는 곧
호적(戶籍)을 가지고 나이를 조사하여 뭇 백성의 노인을 접대하는 것이니 우(虞)ㆍ하(夏)ㆍ은(殷)ㆍ주(周)의 4대(代)가 모두 그러하였다" 하였다.] 국로(國老)를
상상(上庠)에서, 서로(庶老)를 하상(下庠)에서 접대하고 또 그들에게 보통 예절의 잔치를 배설하였으니[상(庠)은 접대하는 것이고 상상(上庠)은 우학(右學)이고 태학(太學)이니
서교(西郊)에 있고 하상(下庠)은 좌학(左學)이고 소학(小學)이니 서울 안의 왕궁(王宮)의 동쪽에 있다] 그것이 가장 좋은 예절이었다. 그때에는 노인들의 도덕을 본뜨고 노인들의
건강을 고려하여 접대하기만 하고 노인들에게 좋은 말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며[헌(憲)은 법(法)이다. 노인을 접대하는 것은 그 덕행(德行)을 본받기 위함이니 오제(五帝) 때부터
이것이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기록하여 돈사(惇史)를 만들었다. 또"하우(夏禹)씨는 보통 검은 옷[燕衣]을 입고 노인들을 접대하였는데 국로를 동서(東序)에, 서로를
서서(西序)에 모아 놓고 큰 잔치를 배설하여 대접하였으며[동서(東序)는 동교(東膠)이고 또한 태학(太學)이니 서울 안의 왕궁(王宮)의 동쪽에 있고, 서서(西序)는 서교(西郊)에
있다.] 은(殷)나라 사람은 흰옷[縞衣]을 입고[은나라는 흰 것을 숭상하여 흰 의상(衣裳)을 입었다.] 노인을 접대하였는데 국로를 우학(右學)에, 서로를 좌학(左學)에 모아 놓고
음식으로써 대접하는 예절을 행하였다.[식(食)은 음(音)이 사(嗣)이다. 아래도 같다.]

주(周) 나라 제도에는 검은 웃옷[玄衣]과 흰 아래옷을 입고 노인들을 접대하였는데 국로는 동교(東膠)에, 서로는 우상(虞庠)에 모았는바 우상은 서울의 서쪽 교외에 있었다.[모두
학교의 이름인데 이름이 다른 것은 사대(四代)가 서로 변한 것이니 혹은 서쪽을 위로 하고 혹은 동쪽을 위로 하고 혹은 서울에 있는 것을 높게 여기고 혹은 교(郊)에 있는 것을 높게
여겼다. 주(周)나라의 소학(小學)은 유우씨(有虞氏)의 상(庠)의 제도이므로 이름을 우상(虞庠)이라 하였다 하며 그 향학(鄕學)을 세운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주나라에서는
우(虞)ㆍ하(夏)ㆍ은(殷) 3대의 연향 예절들을 다 참작하여 시행하였다.[겸하여 쓰는 것은 음(陰)과 양(陽)을 갖춤이니 마시는 것은 양기(陽氣)를 기르고 먹는 것은 음기(陰氣)를
기르니 양(陽)은 봄과 여름에는 쓰고 음(陰)은 가을과 겨울에 쓴다.]

하관(夏官) 나씨(羅氏)가 2월에 봄새를 잡아서 비둘기를 천자에게 바쳐 국로를 접대하였다.[봄의 새라 함은 겨울에 숨었다가 비로소 나온 것이고 이때에 매가 비둘기로 화하여 봄새와
더불어 옛것을 변(變)하고 새것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그것으로서 노인을 양(養)하여 생기(生氣)를 도울 것이다.]

｢월령(月令)｣에 의하면 8월에 천자가 노인들 쇠한 사람들을 접대함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궤(几)와 지팡이를 주고 또 부드러운 죽을 먹이는 의식을 행한다.[음식은 사(賜)함이다.]
50세 된 노인은 자기의 고을에서, 60세 된 노인은 제후국에서, 70세 된 노인은 태학에서 접대하는데 이 예절은 천자로부터 제후(諸侯)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천자와 제후가
양로(養老)하는 것은 한가지이다.] 80세 된 노인은 임금의 명령을 받을 때에 한 번 앉아서 머리를 두 번 숙이며, 90세 된 노인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임금의 명령을
받았다.[명령이라 함은 임금이 친히 공궤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 예물(禮物)로써 보냄을 이른다. 주소(註疏)에 말하기를"80세에는 점점 쇠약하여 학교에 와서 양(養)함을 받음을
감내치 못하고 임금이 음식을 보내는 예로써 사람을 시켜 그 집에 보내며 그 임금의 명령을 받은 때에는 사리에 모름지기 두 번 절하여야 할 것이나 그 수고로움을 감내치 못하므로
무릎을 한 번 꿇고 머리가 두 번 땅에 닿아서 두 번 절하는 숫자를 채운다. 90세는 또 반드시 친히 절하지 아니하고 특히 사람을 시켜 대신으로 받는다.] 임금이 태학에 가서
시학할 때에는 반드시 노인은 접대하는데[대합악(大合樂)이라 함은 봄에 학(學)에 들어가 석채(釋菜)를 하고 합(合)하여 춤추고 가을에 그 배운 재주를 펴서 소리를 합함을 이름이며,
이때에 천자는 학교에서 시학(視學)하고 드디어 양로(養老)한다.] 좋은 말을 청하거나 음식을 대접하는 절차는 소악정(小樂正)이 임금에게 말하여 동서(東序)에서 거행했다.[말하기를
청한다 함은 노인의 어진 이를 양(養)하고 그것을 통하여 선(善)한 말의 행할 수 있는 것을 청함을 이름이고, 말을 합(合)한다 함은 술을 마시고 잔치하고 활쏘기 하고 하는 등속을
이름이다. 향사기(鄕射記)에 이르기를 '옛적에는 중(衆)이 차서(次序)하여 말한다' 하였다.] 한나라, 은나라, 주나라 때의 양로 의식에는 연령이 높은 사람을 본위로 하였다"라고
하였다.[호적(戶籍)을 가지고 나이를 조사하여 마땅히 구실의 면제를 행할 것이다. 노인이 많아서 어진 이가 아니면 모두 대접할 수 없으니 국로(國老)를 대접하는 예(禮)가 끝남을
기다려 곧 호적을 조사하여 나이를 조사하는 법을 행하여 그 노인에게 은사(恩賜)를 하였다.]

전(傳) 전(傳)：『예기(禮記)』문왕세자(文王世子)편.

에 이르기를"천자가 태학에 가서 시학(視學)할 때에는 지샐 무렵에 북을 치니 이것은 참가할 학사(學士)들에게 알리는 것이며[이른 첫새벽에 북을 쳐서 무리를 부르는 것이니 일깨운다
함은 일으킨다 함과 같다. 『주례(周禮)』에는 음악을 씀에 대서(大胥)가 북으로써 학사(學士)를 부른다.] 모을 사람들이 다 온 뒤에는 천자가 와서 소관 관리에게 명령하여 일을
진행케 하고 또 규정된 예절에 따라 옛날 성현들에게 제사지내게[흥(興)은 거행함이고, 떳떳하다 함은 상(常)이고, 절(節)은 예(禮)와 같다. 유사(有司)로 하여금 그 일을
섭행(攝行)하게 하여 떳떳한 예(禮)를 거행하고 선사(先師)ㆍ선성(先聖)에 제사하는데 친히 제사 드리지 아니하는 것은 시학(視學)을 하고 예(禮)를 관(觀)하는 것이고
선사ㆍ선성에게 보답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는데 소관 관리가 일을 마친 뒤에 사업 완료를 보고한다.[제사가 끝남을 고하면 천자가 이에 들어간다.] 처음 양로연을 배설할 때에
천자가[또 양로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니 대합악(大合樂)을 하면 반드시 드디어 양로하니 이로써 가는 것이다.] 동서(東序)에서 옛날 도덕 있던 노인[先老]들에게 제물을 올리고[친히
전(奠)하는 것은 이미 일이 있는 것이니 동서(東序)에서 양로함은 이는 상상(上庠)에 시학(視學)함이다.] 이어 삼로와 오경의 앉을 자리를 정한다.[삼로ㆍ오경은 각각 한 사람이니
모두 나이 늙고 일을 경력(經歷)하고 벼슬을 물러간 자이고 능히 삼덕(三德)ㆍ오사(五事)를 경력하여 아는 것이며, 천자(天子)가 부형(父兄)으로써 대접하는 것은 천하에
효제(孝悌)를 모범 보이는 것이고, 이름을 삼(三)과 오(五)로써 한 것은 상(象)을 삼진(三辰)ㆍ오성(五星)에서 취(取)함이니 하늘이 이것으로써 천하를 밝게 비추는 것이다.
삼로(三老)는 빈(賓)과 같고, 오경(五更)은 개(介)와 같고, 군로(群老)는 중빈(衆賓)과 같다.] 음식 장만하는 곳에 가서 노인들에게 접대할 술과 모든 맛있는 음식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풍악을 갖추어 영접한다. 이는 참가한 학사들로 하여금 물러가서 자신도 노인들을 이렇게 섬기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리로써 노인들을 접대한다는
의미이다.[발영(發咏)이라 함은 음악으로써 드림을 이름이고 퇴수(退脩)라 함은 이미 맞아 들어와 드리기를 예(禮)로써 하고 드림이 끝나면 음악이 멈추고 함을 이름이다] 천자가
잔치를 마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 청묘(淸廟)의 풍악을 노래하며[돌아온다 함은 군로(群老)에게 드림이 끝나면 가서 모두 올라가서 자리에 나아감을 이름이다. 돌아와 자리에 나아가서
이에 서계(西階) 위에 그 자리를 차리고 청묘(淸廟)를 노래하여 즐긴다.] 또 노래를 마치고 서로 담화를 하니 이는 부자, 군신, 노소간의 도리를 말한 것이다. 아래에서는 상(象)
상(象)：고대 중국 주문왕(周文王)이 15세 이상 아이들로 하여금 추게 하던 춤 이름.

을 연주하고 대무(大武) 대무(大武)：고대 중국 주무왕(周武王)의 풍악 이름.

로 춤을 추되 학사들이 전부 합하여 즐겁게 노니 이것은 하늘의 명이 주나라에 있다는 것과 문왕과 무왕(武王)의 덕(德)을 찬미한다는 것이다.[상(象)은 주무왕(周武王)이
은주(殷紂)를 칠 때의 음악이다.] 소관 관리가 풍악이 끝났다고 아뢰면 임금이 공ㆍ후ㆍ백ㆍ자ㆍ남(公侯伯子男)과 여러 관리들에게 명하기를 '그대들은 각각 돌아가서 동서에서 노인들에게
양로연을 배설하여 접대하라!'고 하니 이는 천자의 인자한 마음으로 연회를 마치는 의미이다"라고 하였다.[뭇 아전은 향수(鄕遂)의 관원이다. 왕(王)이 잔치의 끝에 제후를 명할 때에
조회하러 와서 여기에 있는 자는 각각 나라에 돌아가서 양로하기를 이 예(禮)와 같이 하라 하니 이는 그 어진 마음을 성종(成終)하는 것이다.] 동서에 또 이르기를 "삼로와 오경을
태학에 모으고 음식 대접을 할 때에 천자가 직접 고기를 베고 잔을 들어 대접하여 술잔을 잡고 권하며 면류관을 쓰고 춤추는 자리에 참가하이는 제후들에게 노인들을 이렇게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의미이다"라고 하였다.[면류관을 쓰고 춤추는 방패를 가진다 함은 친히 춤추는 위(位)에 있음이다. 삼(三)이라 함은 도(道)가 삼(三)에서 이루니
천(天)ㆍ지(地)ㆍ인(人)을 이름이고, 노(老)라 함은 오램이고 장수(長壽)함이니 시(詩)에 이르기를"방숙원로(方叔元老)라"하고 서(書)에 이르기를"노인의 말을 버리지 아니하면
허물될 일이 없다"하였다. 오(五)라 함은 5품(品)을 가리키고, 경(更)이라 함은 고쳐서 대(代)함이니 5대(代)는 장자(長子)가 서로 대(代)하여 그 능히 선(善)한
도(道)로써 몸을 고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삼로(三老)ㆍ오경(五更)은 모두 도덕이 있는 사람을 취하여 삼는다. 정현(鄭玄)은 말하기를"노(老)와 경(更)은 서로 뜻을 표시하여
말하는 것이니 모두 노인(老人)으로 삼덕(三德)과 오사(五事)를 경력(經歷)하여 아는 자이다"하였고, 채옹(蔡邕)은 말하기를"경자(更字)는 마땅히 수자(叟字)라야 할 것 같다"
하였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2년 3월에 이궁(李躬)으로 삼로를 삼고 환영(桓榮)으로 오경을 삼아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양로연을 벽옹(辟雍)에서 배설하였다.[응소(應劭)의
『한관의(漢官儀)』에는 이르기를"삼로ㆍ오경은 하ㆍ은ㆍ주 삼대의 높이던 바이니, 편안한 수레와 부드러운 바퀴로 보내고 맞고 하여 집에 이르고 천자가 홀로 문병(門屛)에서
절한다"하였고, 등진(鄧辰)은 말하기를"한(漢)나라는 다만 한 공(公)으로써 삼로(三老)를 삼고 오경(五更)은 떳떳함이 없다"하였다.] 양로연을 전기하여 사도(司徒)가 태부와 태학
강사(講師) 및 이미 삼공을 지낸 자의 명단을 올리면 그중에서 도덕과 행동이 훌륭하며 나이 많은 자를 선택하여 삼로로 삼고 그 다음가는 자를 오경으로 삼는데 그들이 다
도저대포(都紵大袍)와 단의(單衣)와 깃과 소매를 검은 선으로 두른 중의(中衣)를 입고 옥 지팡이를 짚으며 진현관(進賢冠)을 쓴다. 오경도 삼경과 같은 옷을 입으나 지팡이를 짚지
않으며 다 미리 태학에 와서 정성을 들여 대기하고 있으면 연회 날 천자가 먼저 벽옹 예전(禮殿)에 와서 동상(東廂)에 좌기하고 사신을 보내어 안거(安車)로써 삼로와 오경을
영접한다. 천자가 삼로와 오경을 문밖에서 맞는데 천자가 먼저 절한 뒤에 삼로와 오경이 답배하며 올라갈 때 천자는 동쪽 층계로부터 오르고 삼로, 오경은 서쪽 층계로부터 올라서 작은
층계에 이른다. 거기에서 천자가 삼로에게 오르라고 읍(揖)하면 삼로가 올라가서 동쪽으로 향하는데 삼공이 그들에게 궤를 드리며 구경(九卿)은 신을 바로 놓는다. 천자가 직접 고기를
베고 육장을 갖추어 잔을 권하는데 그때에 축경(祝鯁) 축경(祝鯁)：고기에 가시가 없게 추리는 사람.

은 앞에 있고 축의(祝饐) 축의(祝饐)：상한 음식이 없는지 가리는 사람.

는 뒤에 있다. 오경은 남쪽으로 삼공을 향하는데 그들 접대하는 예절은 삼로에게 하는 것과 같다.[초주(譙周)는 『오경연부(五經然否)』에서 말하기를"한나라의 처음에 혹자는 말하기를
'삼로(三老)가 천자의 절함을 답배(答拜)한다' 하였는데 왕망(王莽)의 난리를 만나서 법과 제도가 이지러지더니 한나라가 중흥(中興)하여 예의(禮儀)를 정함에 군(群)이
삼로(三老)로 하여금 성문에서 천자의 절에 답배케 하고자 하니 교위(校尉) 동균(董鈞)이 반박하여 이르기를 "삼로를 대접하는 까닭은 부모를 섬기는 도(道)를 가르침이거늘 만일
답배하면 이는 천자로 하여금 답배케 함이다" 하였다. 초주가 논하여 말하기를"예(禮)에 시복(尸服)은 오히려 친족이 아닌 까닭에 아들의 절을 답배하고 선비가 딴 나라의 임금에게
보임에 또한 선비의 절을 답배하니 이는 모두 아들과 같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였다. 우희(虞喜)는 말하기를 "한나라의 의식(儀式)에 문병(門屛)에서 예를 사귀니 예(禮)를
사귄다 함은 곧 답배함이다. 중흥할 때에 그릇하여 동균의 의논을 좇더니 뒤에 이미 고치니 매우 예(禮)의 본뜻을 얻은 것이다" 하였다.] 그 이튿날 삼로와 오경이 대궐에 가서
감사의 뜻을 표하니 이는 자기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전국의 삼로[제후국과 지방의 삼로]에게 매인당 술 1석, 고기 40근씩 주었다.

후위(後魏) 효문제(孝文帝) 태화(太和) 16년 8월에 조서를 내려 전 사도(司徒) 위원(尉元)으로 삼로를 삼고 전 대홍려경(大鴻臚卿) 유명근(游明根)으로 오경을 삼았다.
명당(明堂)에 삼로의 자리를 정하고 층대 아래 오경의 자리를 정한 다음 효문제가 삼로에게 절 두 번을 하며 직접 고기를 베고 육장을 갖추어 음식을 권하였으며 오경에게
숙배(肅拜)하는 의식을 치른 다음 국로와 서로에게 의복을 차등 있게 주었다. 연회가 끝난 뒤에 삼로가 말하기를"옛날부터 사람들이 효도와 공손을 제일 중요하게 여겼거니와 그중에도
천자, 제후, 경대부, 사, 평민들이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며[五孝] 부자, 군신, 형제간에 공손히 하는 도리[六順]들은 이 세상에서 첫째가는 일이오니 폐하께서는 이것을 존중히 여겨
전국을 교양하시기 바랍니다"고 하면 효문제는"효도와 공손은 천지간의 떳떳한 일이니 이제 삼로의 말씀을 받들어 나의 마음에 새겨 두겠다"고 대답하였다. 오경이 말하기를"지극한 효도는
신명에 통하고 지극한 공손은 귀신을 감동시키는 것이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효도하고 우애하기를 극진히 하면 신명에 통하고 전국에 빛난다'고 하였으니 폐하께서는 이를 명념하여 여러
백성들을 돌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 효문제는"오경이 삼로의 말을 보충하여 아주 좋은 말씀을 하였으니 나의 사심을 버리고 옛날 예법을 회부하여 이를 실행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채단을 주고 의식이 끝난 뒤에 그들에게 사람이 끄는 수레 한 채씩 주었다.

후주(後周) 무제(武帝) 보정(保定) 3년 4월에 무제가 시학을 하려 할 때 태부 연국공 우근(太傅燕國公于謹)으로 삼로를 삼고 연년장(延年杖)을 준 다음 그 길로 태학에 가서
그에게 잔치를 배설하여 주었다. 삼로가 문에 들어올 때에 무제는 문병(門屛) 사이에서 절을 하고 삼로는 답배를 하였다. 삼로의 자리를 복판 기둥 있는 데 정하여 남쪽으로 향하게
하고 태사(太師) 진국공(晉國公) 우문호(宇文護)가 올라와서 자리에 궤를 놓으니 삼로가 자기 자리에 올라와서 남쪽으로 향하여 궤에 기대 앉았으며 대사구(大司寇) 초국공(楚國公)
두로녕(豆蘆寧)이 올라와서 그의 신을 바로 놓았다. 무제가 병풍 앞에 올라와 서쪽으로 향해 서고 소관 관리가 음식을 드리니 무제가 꿇어앉아 육장 접시를 받으며 몸소 직접 팔을 걷고
고기를 베었다. 삼로가 이것을 다 먹은 뒤에 무제가 또 꿇어앉아서 잔을 들어 권하였으며 이것이 끝난 다음 무제가 북쪽을 향하여 서서 좋은 말씀을 청하니 삼로가 일어나 자리 뒤에
섰다. 무제가 말하기를"변변치 못한 이 몸이 전국을 다스리는 중한 책임을 졌으나 자신의 재능이 없으므로 정치를 하는 묘리를 모르니 그대는 가르치기 바란다"고 하니 삼로가
대답하기를"목재는 먹줄을 놓아야 곧게 되고 임금은 신하의 바른말을 접수하여야 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어진 임금들이란 다 겸허한 마음으로 여러 신하들의 간하는 말을
접수하였기 때문에 정치의 잘잘못도 알게 되고 국가도 평안하게 되었으니 폐하께서는 이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계속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충성과 신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밥과 군대는 버려도 신의는 버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국가의 흥망이 상벌에 달려 있는바 만일 공로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죄 있는
자에게 반드시 벌을 준다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날로 많아지고 나쁜 일을 하는 자가 날로 없어질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공로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지 않고 죄 있는 자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선악의 구분이 없고 하부들 수족을 놀리지 못하게 됩니다. -계속하여- 말과 행동이란 자기의 처신하는 근본으로 되는바 말과 실천이 서로 맞도록 하며 성의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세 번 생각한 뒤에 말씀을 하며 아홉 번 생각한 뒤에 실천하소서.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천자의 잘못은
그것이 크건 작건 일식이나 월식처럼 전국 사람이 다 알게 되는 것이니 폐하께서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삼로의 말이 끝나자 무제는 두 번 절하면서 이 말을 접수하였다.
삼로가 답배를 하고 의식을 필한 다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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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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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老攷說禮記 虞氏深衣而養老 凡養老之服 皆其時王所與羣臣燕之服也. 有虞氏 質 深衣而已. 孔穎達云"人君養老 有四種 一是養三老ㆍ五更 二是子孫爲國死難而王養死者父祖 三是養致仕之老 四是引戶校年
養庶人之老 四代皆然." 養國老於上庠 養庶老於下庠而用燕禮. 庠養也. 上庠 右學太學也 在西郊. 下庠 左學小學也 在國中 王宮之東也. 其禮尙矣 憲養氣體而不乞言 憲 法也 養之爲法其德行
自五帝則有斯也. 有善則記之 爲惇史. 惇史 史孝厚者也.夏氏燕衣而養老 改虞制而尙黑衣裳. 養國老於東序 養庶老於 西序而用饗禮. 東序東膠也. 亦太學在國中王宮之東. 西序在西郊.殷人縞衣而養老
殷尙白而縞衣裳. 養國老於右學 養庶老於左學而用食禮. 食音嗣 下同.周制 玄衣而養老. 玄衣素裳. 養國老於東膠 膠之言糾也. 養庶老於虞庠 虞庠在國之西郊. 皆學名也. 異者 四代相變耳. 或上西
或上東 或貴在國 或貴在郊. 周之小學 爲有虞氏之庠制 是以名虞庠云. 其立鄕學 亦如之. 兼用虞燕ㆍ夏饗ㆍ殷食之禮. 兼用之 備陰陽也. 凡飮 養陽氣. 凡食 養陰氣. 陽用春夏 陰用秋冬.
夏官羅氏仲春 羅春鳥 獻鳩以養國老.春鳥 蟄而始出者 是時鷹化爲鳩 與春鳥變舊爲新 宜以養老助生氣也. 月令仲秋 天子養衰老 授几杖 行糜粥飮食. 飮食賜也. 五十養於鄕 六十養於國 七十養於學
達於諸侯天子ㆍ諸侯 養老同也. 八十拜君命 一坐再至 九十使人受. 命 謂君不親饗食 必以其禮致之. 疏曰八十年漸衰弱 不堪來學受養 君以饗食之禮 使人就家致之. 其受君命之時 理須再拜 不堪爲勞
足一跪而首再至地 以備再拜之數. 九十則又不必親拜 特使人代受. 凡大合樂 必遂養老 大合樂 謂春入學 釋菜合舞. 秋頒學合聲. 於是時也 天子則視學焉 遂養老. 乞言合語之禮 皆小樂正 詔之於東序
乞言 養老人之賢者 因從乞善言可行者也. 合語 謂飮酒燕射之屬. 鄕射記曰"古者於旅也語." 凡三王養老 皆引年. 引戶 校年當行復除也. 老人衆多 非賢者 不可皆養 待養國老之禮畢 卽行引戶校年之令
恩賜其老者焉.傳曰"天子視學 大昕鼓徵 所以警衆也. 早昧爽擊鼓以召衆. 警 猶起也. 周禮凡用樂 大胥 以鼓徵學士. 衆至然後 天子至 乃命有司行事 興秩節 祭先師ㆍ先聖焉. 興 猶擧也. 秩
常也. 節 猶禮也. 使有司 攝其事 擧常禮 祭先師ㆍ先聖. 不親祭之者 視學觀禮爾 非爲彼報也. 有司卒事反命. 告祭畢 天子乃入. 始之養也 又之養老之處. 凡大合樂 必遂養老 是以往焉. 適東序
釋奠於先老 親奠之者 已所有事也. 養老東序則是視學於上庠. 遂設三老ㆍ五更ㆍ羣老之席位焉. 三老ㆍ五更 各一人也 皆年老更事致仕者也. 能更知三德五事也. 天子以父兄養之 示天下之孝悌也.
名以三ㆍ五者 取象三辰ㆍ五星 天所用以昭明天下者. 三老如賓 五更如介 羣老如衆賓也. 適饌省醴養老之珍具 親視其所有. 遂發咏焉 退脩之以孝養也. 發咏 謂以樂納之. 退脩之 謂旣迎而入 獻之以醴
獻畢而樂闋. 反登歌淸廟 反謂 獻羣老畢 皆升就席也. 反就席 乃席工於西階上 歌淸廟以樂之. 旣歌而語以成之也 言父子ㆍ君臣ㆍ長幼之道 語 談說也. 歌備而旅 旅而說父子ㆍ君臣ㆍ長幼之道. 下管象
舞大武大合衆以事 達有神 興有德也. 象者周武王伐紂之樂也. 有司告以樂闋 闋 終也. 王乃命公ㆍ侯ㆍ伯ㆍ子ㆍ男及羣吏曰'反養老于東序'終之以仁也." 羣吏 鄕遂之官. 王於燕之末而命諸侯時朝會在此者
各反養老如此禮 是終其仁心也. 又曰"食三老ㆍ五更於太學 天子袒而割牲 執醬而饋 執爵而酳冕而摠干 所以敎諸侯之悌也." 冕而摠干 親在舞位也. 三者 道成於三 謂天地人也. 老者舊也 壽也.
詩云"方叔元老"書稱"無遺耉老之言 則罔所愆"五者 訓於五品. 更者 更也. 五代長子 更相代言其能 以善道改更己也. 故三老ㆍ五更 皆取有道者爲之. 鄭玄曰老更互言之耳.
皆老人更知三德五事者也."蔡邕曰"更當爲叟."○後漢明帝永平二年三月以李躬爲三老 桓榮爲五更 帥羣臣 養于辟雍. 應劭漢官儀曰"三老ㆍ五更 三代所尊 安車軟輪 送迎至家
天子獨拜于屛."鄧辰曰"漢直以一公爲三老 五更無常." 先吉日 司徒上太傅若講師ㆍ故三公人名 用其德行年耆高者一人 爲三老 次一人爲五更. 盧植曰"選三公老者 爲三老 卿大夫中老者 爲五更也."
皆服都紵大袍 單衣皁緣領袖中衣 冠進賢 扶玉杖五更亦如之不杖 皆齋于大學講堂 其日 乘輿先到辟雍 禮殿 御坐東廂 遣使者安車軟輪 迎送三老ㆍ五更. 天子迎于門屛 交禮. 道自阼階三老升自賓階 至裨階
天子揖如禮 三老升東面 三公設几 九卿正履. 天子親袒割牲 執醬而饋 執爵而酳 祝鯁在前 祝饐在後 五更南面 三公進供禮亦如之. 譙周五經然否曰"漢初或云 三老答天子拜 遭王莽亂 法度殘缺
漢中興定禮儀 羣臣欲令三老答拜. 城門校尉董鉤駁云 所以養三老 以敎事父母之道也. 若答拜. 是使天子答拜也."譙周論曰"禮尸服 猶以非親之故答子拜 士見異國君亦答士拜
是皆不得視猶子也."虞喜曰"漢儀 於門屛交禮 交禮卽答拜矣. 中興謬從鉤議 後已革之 甚得禮意." 明日皆詣闕謝恩以見 禮遇太尊著故也. 於是賜天下三老酒人一石 肉四十斤.○後魏孝文帝太和十六年八月
詔以前司徒尉元爲三老 前大鴻臚卿游明根爲五更 於明堂 設國老位庶老位於階下 皇帝再拜三老 親袒割牲 執醬而饋 執爵而酳 於五更 行肅拜之禮 賜國老 庶老衣服有差. 旣而三老言曰"自古 人所崇莫重於孝順
然 五孝ㆍ六順 天下之所先 願陛下重之以化四方!"帝曰"孝順之道 天地之經 今承三老明言 銘之朕懷."五更言曰"夫至孝通靈 至順感幽 故詩云'孝悌之至
通於神明光于四海.'願陛下念之以濟黎庶!"帝曰"五更助三老以言至範敷展德音 當克己復禮以行."釆授禮畢 乃賜步輓一乘.○後周武帝保定三年四月 帝將視學 以太傅燕國公于謹爲三老 賜延年杖
遂幸太學以食之. 三老入門 皇帝迎拜門屛之間 三老答拜. 設三老席於中楹南向 太師晉國公宇文護升階 設几於席 三老升席 南面憑几而坐. 大司寇楚國公豆盧寧升階 正舃 皇帝升立於斧扆之前 西面.
有司進饌 皇帝跪授醬豆 親袒割牲. 三老食訖 皇帝又親跪授爵以酳. 撤去 皇帝北面立訪道 三老乃起立於席後. 皇帝曰"猥當天下重任 自惟不才 不知政理之要 公其誨之!"三老答曰"木從繩則正 后從諫則聖
自古 明王ㆍ聖主 皆虛心納諫以知得失 天下乃安 惟陛下念之!"又曰"爲國之本 在乎忠信. 是以 古人云'去食去兵 信不可失.'國家興廢 在於賞罰 若有功必賞 有罪必罰則爲善者日益 爲惡者日止.
若有功不賞 有罪不罰則天下善惡不分 下人無所措手足."又曰"言行者 立身之本 言出行隨 誠宜相顧. 陛下三思而言 九慮而行! 若不思不慮 必有過失. 天子之過 事無大小 如日月之蝕 莫不知者
願陛下愼之!"三老言畢 皇帝再拜受之 三老答拜 禮成而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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