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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승지 양득중의 상소〔承旨梁得中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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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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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승지 양득중의 상소〔承旨梁得中疏〕

삼가 말씀드립니다. 저는 3대(代) 왕조에 벼슬하여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었는데 전하의 대에 이르러 저더러 매양 거짓이 없이 진실하다고 칭찬하시니 저는 이에 격려되고 감격하여
언제나 이 은혜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항상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임금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한 맹자의 말을 외울 때마다 저도 이렇게 해야
하겠다는 것을 마음으로 다졌을 따름이었는데 이제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저의 간곡한 말씀을 세세히 피력함으로써 신하로서의 의리를 다하려 합니다. 제가 상고하건대 맹자는 말하기를
"이루(離婁)의 시력과 공수자(公輸子)의 기교로도 잣대와 먹줄[規矩]을 쓰지 않고서는 모나거나 둥근 것[方圓]을 만들지 못하며 요순(堯舜)의 도(道)로도 착한 정치를 실행하지
않고서는 국가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그는 또 말하기를 "착한 정치는 반드시 토지의 계선을 바르게 하는 데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착한 정치에서
토지의 경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마치 모나거나 둥근 것을 만드는 데 잣대와 먹줄이 있어야 되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제(五帝), 삼왕(三王)이 백성을 위하여
그들의 생활 조건을 해결하여 주던 첫째가는 조치였으며 옛사람들의 큰 사업이 하우씨가 궁실을 검박하게 하면서 치수 사업에 전력을 기울인 것처럼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치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개 토지의 경계를 한번 바로잡아 놓으면 모든 사업이 다 펴지게 되어 백성들을 일정한 생활에 영원히 안착할 수 있고 군대를 모집함에 있어서도 수색하거나 잡아다가
입대시키는 폐단이 없으며 귀천과 상하가 모두 자기 직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민심이 안정되고 풍속이 순후하게 되는 것이니 옛날 제왕들이 수천 수백 년씩 왕업을 공고히
유지하고 제도와 문화가 융성 발전하게 된 것은 이런 기초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토지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적 점유는 제한이 없게 됨에 따라 만사가 다 틀어지고
모든 것이 옛 법과 반대로 되었으니 아무리 정치를 잘하려는 임금이 있더라도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백성의 생활은 끝내 안정시킬 수 없고 그들에게 부과하는 부역을 고르게 할
수 없으며 호구의 통계를 명확하게 잡을 수 없고 군대의 편성을 정비할 수 없으며 송사를 종식시킬 수 없고 형벌을 경감시킬 수 없으며 뇌물질하는 행동을 제지할 수 없고 풍속을 후하게
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고서 정치와 교육을 잘 한 자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대체로 토지는 천하의 큰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
근본인 토지 문제가 바로잡히면 모든 일이 모두 그에 따라 옳게 되나 이 근본이 문란해지면 모든 일이 모두 그에 따라 하나도 옳게 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대개 토지 문제를 잘
해결함에 따라 사람들의 이해득실이 귀착되는 것으로서 변경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공자ㆍ맹자 이후 정자(程子)ㆍ주자(朱子)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여러 현인들이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관심을 두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수(隋)나라 왕통(王通)의 이른바 "밭갈이하는 자에게 밭을 주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 부락에서 일정하게 살지 않으면 순 임금이 정치를
하더라도 성과를 얻지 못한다"고 한 것은 진실로 옳은 이론입니다. 그런데 토지 제도의 자세한 조목에 대해서는 주나라 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강구한 사람이 없었는바
맹자가 필전(畢戰)에게 정전에 대한 대개만을 말해 주고 "이것을 보충하여 실행하는 것은 임금과 그대의 하기에 달렸다"고 했을 뿐이었으며 송(宋)나라의 장재(張載)에게 이르러서도
장전 제도의 시행에 뜻을 두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근심하며 이를 애석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근세 우리나라에 유형원(柳馨遠)이란 선비가 있어서 그에 대한 연구를 하였는데 규정과 제도가 완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전제(田制)로부터 시작하며 선비 양성, 인재 선발[選擧],
관리 임명[任官], 관직제도[職官], 녹봉제도[祿制], 군사제도[兵制]에 이르는 세목까지 다 들어서 조금도 누락된 것이 없습니다. 이 저작을 완성하고 이름을 수록(隨錄)이라
하였는데 모두 13책[卷]으로 되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저의 스승 윤증(尹拯)의 집에서 보았는데 죽은 저의 스승이 저에게 말하기를 "이 책은 옛날 성인들이 남겨 놓은 원칙을
수정, 윤색한 것으로서 성인의 본의에 배치되지 않는다. 국가에서 만일 착한 정치를 하려면 이것을 적용하여 실행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 유형원은 자기 단독으로
연구하였을 뿐이요 남이 알아주기를 희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직 다행하게도 저의 스승에게만 알려졌던 것입니다. 저도 일찍이 수록을 보고 혼자서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사심 없이 인류의 생활의 현실을 공정하게 분석하여 조금도 개인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꾸며 놓지 않았으며 질서가 정연하여 문란하지 않고 명확하게
표현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지리한 생각을 가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乾]은 평이하므로 알기 쉬우며 땅[坤]은 간략하므로 사람들이 잘 이용하게 된다.
평이하면 알기 쉽고 간략하면 그대로 적용하기가 쉽다"고 하였습니다. 이 수록이 알기 쉽게 되어서 적용하기도 쉽게 된 것은 진실로 하늘과 땅의 평이하고 간략하여 적용하기 쉽다는
원칙을 깊이 체득한 것이라고 하겠으며 또 죽은 스승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제가 듣건대 유형원은 이미 죽었으나 그의 자손들은 지금 호남(湖南)의 부안(扶安)과 경기도 과천(果川)에 살고 있다 합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그 고을 원들에게 명령하여
유형원의 자손의 집에서 수록을 가져 오게 하여 한번 보시며 또 학문 있는 신하들로 하여금 옥당(玉堂)에 모여서 깊이 연구하게 하고 서울과 지방에 반포하여 그대로 실행케 한다면
감사한 생각 다 이를 데 없겠습니다.

저도 지금 세상은 예와 다르다는 구실을 붙여서 반대하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란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정자(程子)가 어떤 사람의 묻는 말에 대답하기를 "어찌 옛사람은 실행하였는데 지금
사람이라고 실행 못할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수록은 예와 지금의 실정을 참작하여 대단히 적당한 해명을 주었으니 반드시 이런 우려는 없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저는 이 수록은 실지로 억만 년 이후까지 우리나라의 무궁무진한 기본 재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세자 전하가 왕위를 계승하는 날에 이것을 실행하라고 전해 주신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와 같이 희망하기를 마지않습니다.

국왕의 회답에 이르기를 "상소문을 보고 그대의 간곡한 성의를 잘 알았다. 내가 이미 전번 유생들에게 준 회답에 언급한 바 있거니와 가상히 여기는 것은 그대의 진실한 태도이니 이
문제에 대한 성의가 있거든 곧 올라와서 나의 은근한 뜻을 보답케 하라! 특별히 중요한 부분은 내가 유의하겠으니 그 책[冊子]을 해당 도의 감사[道臣]로 하여금 곧 추심하여 올려
오게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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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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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以云云. 臣受恩三朝 圖報無階而至於殿下 每以質實許之. 臣啣恩在肝 激昂感慨 每誦孟子"我非堯舜之道 不敢以陳於王前."一語 永矢心 惟此而已. 今請披盡平日肝膈之要 以爲畢義之地.
臣謹按孟子曰"離婁之明 公輸子之巧 不以規矩 不能成方圓 堯舜之道 不以仁政不能平治天下."又曰"仁政必自經界始."是知經界之於仁政 猶規矩之於方圓 此五帝ㆍ三王 爲生民開物成務之第一義也. 古人大事
專在於大禹之卑宮室而盡力乎溝洫者 此也. 蓋經界一正而萬事畢擧 民有恒業之固 兵無搜括之弊. 貴賤上下 無不各得其職. 是以人心底定 風俗敦厚 古之所以鞏固維持數百千年 禮樂興行者 以有此根基故也.
後世 經界廢而私占無限 則萬事皆弊 一切反是. 雖有願治之君 若不定經界 則民産終不可恒 賦役終不可均 戶口終不可明 軍伍終不可整 詞訟終不可止 刑罰終不可省 賄賂終不可遏 風俗終不可厚
如此而能行政敎者 未之有也. 夫如是者 其何故乎? 土地 天下之大本也. 大本旣擧則百度從以無一不得其當 大本旣紊則百度從以無一不失其當. 蓋天理人事得失利害之歸 固是天之經 地之義而不可易者也.
自孔孟以下 至於程朱 歷代諸賢 未嘗不眷眷於此 隋之王通所謂"田不耕授 人不里居 雖禹舜不能理也."云者 誠至論也. 但其制度ㆍ節文之詳則 自周迄今 無人講究.
孟子之告畢戰曰"若夫潤澤之則在君與子矣."云而已. 至於宋之張載 亦有志未就而卒 世蓋以是憂之 以是惜之矣. 近世有儒士柳馨遠者 乃爲之講究 法制粲然備具. 始自田制
以至於設敎ㆍ選擧ㆍ任官ㆍ職官ㆍ祿制ㆍ兵制 纖微畢擧 毫髮無遺 書旣成而名之曰隨錄凡十三卷. 臣蓋見之於臣之師臣尹拯之家. 臣之亡師 嘗爲臣言"此書乃古聖遺法而修潤之 不失其本意.
國家若欲行王政則惟在擧而措之而已."蓋其人杜門獨學 不求聞知 故世無知者而獨幸見知於亡師耳. 臣亦嘗得其書 而私 自紬繹則有天理自然之公 無人爲安排之私 秩然有條而不亂 燠然有文而不厭.
易曰"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信乎. 其易知而易從 深得乾坤易簡之理 益信亡師之言爲不誣矣. 臣伏聞其人已死而其子孫 方在湖南之扶安 京畿之果川云. 伏望殿下 特命其邑守臣
就其子孫之家 取其書來獻以備乙覽 仍令儒臣齊會王堂 極意講明 分布中外 以次施行 不勝幸甚. 臣亦知必有人以古今異宜爲言者 而程子之答或人之問曰"豈有古可行而今不可行者乎?"又况此書 於古今時世
亦以參酌十分停當 必無是憂矣 臣愚竊以爲此實吾東方億萬年無疆之基業 永爲我春宮邸下自貽哲命之日因以爲祈天永命之地 豈不休哉? 豈不懿哉臣無任區區.批答曰"省疏具悉爾懇. 前批旣諭. 所尙者爾之質實
爾有求是之意 其卽上來以副慇懃之意. 其勉者當留意 而其冊子令道臣 卽取以上焉!"隨錄附錄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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